예조 판서 신상이 세자 책봉 전에 관례하는 일에 관해 아뢰다
예조 판서 신상(申鏛)이 아뢰기를,
"세자 책봉 전에 관례하는 일은, 신이 이미 의정부 당상(議政府堂上)과 같이 의논해서 아뢰었습니다만, 지금 다시 생각한즉 관례란 예(禮) 중에서도 큰 일이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옛사람의 바른 예를 거행하려 하면서 어린 나이에 시행한다면 어떻게 성인(成人)을 책려(責勵)하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역사를 고찰해 보아도 태자를 책봉한 뒤에 관례한 자가 매우 많은데, 이는 어찌 책봉은 일찍 하지 않을 수 없으나 관례는 구차스럽게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씨(杜氏)의 《통전(通典)》 및 《대명회전(大明會典)》에 모두 책봉하고 즉위하는 예가 실려 있는데, 쌍동계(雙童髻)라고만 일컬었고 그 제도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고증(考證)할 수는 없으나, 신의 뜻으로 헤아리건대 이는 반드시 동자(童子)의 의구(儀具)로서 오늘날의 편발(編髮)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또 전날의 사서(史書)에 2∼3세로 책봉받은 자가 있는데, 이는 필시 책봉받을 때에 다른 사람이 안고서 면복을 앞에 진열해 놓고 거행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오례의》를 고찰한 즉 왕세자관의(王世子冠儀)에 ‘관례를 마치고 조알(朝謁)할 때에 돕는 사람이 인(印)을 지고 있다.’ 하였으니, 책봉받기 전에 관례를 거행하지 않았음이 또한 분명합니다. 이제 책봉받을 때에 면복으로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급박하게 관례를 행한다면 곧 다시는 동자의 의식(儀式)을 할 수 없을 것이니 선왕(先王)의 성례(盛禮)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임시 편의를 따라 면복(冕服)으로 책봉을 하고 10세가 되기를 기다려 뒷날 관례를 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책봉하는 일은 중국에 주청(奏請)해야 하는 일이니, 사신(使臣)이 고사(故事)를 보고 듣고 올 것인즉 천천히 예문(禮文)을 상고해서 반드시 정례(正禮)에 부합한 뒤에 행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관례는 조종조(祖宗朝)에서 시행하지 않던 일이나 선왕의 정례는 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의정부·예조·정승을 지낸 이들로 하여금 아울러 의논하여 가부를 아뢰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3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禮曹判書申鏛啓曰: "世子冊封前冠禮事, 臣已與議政府堂上, 同議以啓矣。 今更熟思之, 則冠者, 禮之大者也, 故古人重之, 今欲擧古人之正禮, 而加之於幼弱之年, 將何以責成人之禮乎? 考前史, 太子冊封後, 冠者甚多。 豈不以冊封不可不早定, 而冠禮不可苟行之歟? 《杜氏通典》及《大明會典》, 皆載太子冊封卽位之禮, 而以雙童髻稱之, 不言其制。 今雖不可考, 以臣意料之, 則必是童子之儀具, 猶今之編髮也。 且前史, 或有二三歲而受冊者, 此必受冊之時, 人必扶抱, 而以冕服陳于前而行之無疑矣。 況以《五禮儀》考之, 則王世子冠儀云: ‘禮訖朝謁時, 翊贊負印’, 則受冊前, 未行冠禮, 亦已明矣。 今以受冊之時, 加冕服爲難, 遽行冠禮, 而仍不復爲童子之儀, 有不合於先王之盛禮也。 請從權宜, 以冕服受冊, 且待十歲後, 行冠禮何如? 又以冊封事, 奏請于中朝, 則使臣猶可聞見故事而來矣。 徐考禮文, 必合正禮後, 行之可矣。" 上曰: "冠禮在祖宗朝所不行, 然先王正禮不可不行。 其令議政府、禮曹、曾經政丞, 竝議可否以啓。"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3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