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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38권, 중종 15년 1월 10일 기해 1번째기사 1520년 명 정덕(正德) 15년

조강에서 대신들이 기묘별시를 파방하도록 청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좌우가 기묘별시 파방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근일 조광조의 죄는 개인적인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만 시종(侍從)으로서 너무 고집을 세웠으므로 마침내 조종의 법을 어지럽히고 대신의 의논을 막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이는 대간을 치우치게 신임한 폐단이었으니 지금 대간·홍문관이 아뢴 말은 더욱 잘못된 것인가 한다. 파방에 대한 일은 조종조로부터 듣지 못했던 일이며, 만약 이 방(榜)의 사람들을 저들에게 아부하였다는 것으로 파방한다면 장차 뒷날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비록 떠들썩하게 말하고는 있으나 전해 듣는 것이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한 것이다. 대신(大臣) 남곤이 직접 시관(試官)이 되었었는데, 그는 유독 성수종(成守琮)의 대책(對策)만 그 체(體)가 예스럽지 못하다 하였고, 또 조광조(趙光祖) 등이 혹 사심(私心)은 쓴 일이 있는가 의심스럽다고 하였으므로 삭과(削科)한 것이다.

전일 조광조 등이 정국 공신(靖國功臣) 파하기를 청할 때에도 대신들이 의논하기를 ‘잘못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자만을 초록(抄錄)하여 삭적(削籍)하여야 한다.’ 하였었으나 그 뒤 조광조에게 견제되어 억눌러 따랐었다. 파방하는 일 역시 대신과 의논하여 파하지 않은 것인데 비록 다시 대신과 의논한다 해도 어찌 또다시 ‘파방해야 한다.’ 할 사람이 있겠는가? 출제(出題)할 때에 두 가지로 문제를 만들었었는데 쓴 것은 남곤·안당이 출제한 것이었다."

하매, 참찬관(參贊官) 이빈(李蘋)이 아뢰기를,

"기준(奇遵)이 일찍이 선비들 가운데서 사습(士習)이라는 것으로 책문(策問)한다고 말하였었는데, 이때 참여하여 들은 사람은 모두 급제하였습니다."

하고, 사간(司諫) 남세준(南世準)은 아뢰기를,

"남곤이 출제할 적에 좌우에 물으니 김식(金湜)이 ‘마땅히 사습(士習)을 들어 책문하면 유생(儒生)들의 지취(志趣)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했다 합니다."

하고, 이빈(李蘋)은 아뢰기를,

"시권(試券)027) 을 보니 송순(宋純)의 대책(對策)만 출제와 내용이 맞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맞지 않았으므로 문신(文臣)들이 모여 열람하고서 한바탕 웃었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남세준(南世準)은 아뢰기를,

"예로부터 이와 같은 방(榜)이 없었습니다. 과연 방을 이렇게 한다면 과거(科擧)가 공평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이빈은 아뢰기를,

"기준이 이 말을 하였을 때에 윤풍형(尹豊亨)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들은 유생이 있었습니다. 남곤김식의 말을 듣고 출제한 일은 신도 들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책이 출제에 맞지 않는 경우는 예로부터 있었다. 지금 이 유생들은 단지 시세(時勢)를 보고 지은 것뿐입니다. 조종조에서도 파방하려 한 것이 없지 않았으나 이를 어렵게 여긴 것은 특히 국가의 대사(大事)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공평하지 못하다 하여 파방한다면 뒤에 반드시 폐단이 생길 것이니 대신 또한 어찌 헤아리지 않았겠는가? 이미 조정과 더불어 의논하였으니 결코 파방할 수 없다."

하였다. 남세준(南世準) 및 지평(持平) 이순(李純)이 전의 일을 아뢰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이순(李純)이 아뢰기를,

"안당(安瑭)이 정승에 임명되고 나서 지진(地震)의 변이 있었는데, 이는 전고(前古)에 없던 일입니다. 이것이 비록 아무 일 때문에 응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잘못되면 천변(天變)이 위에서 응하는 것이니 어찌 부른 바가 없는데도 그랬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공구 수성(恐懼修省)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하나, 공구만 할 뿐 그 실상이 없으면 또한 무익한 것이다. 또 형정(刑政)이 마땅함을 잃으면 하늘의 견책(譴責)이 이르는 수가 있는데, 근일 죄를 받은 당인(黨人)이 많았다. 조광조(趙光祖) 등은 진실로 죄주어야 하지만 시세(時勢)를 보아 주견없이 붙좇은 자도 모두 죄주었으므로 죄받은 자가 30여 인에 이르렀으니 너무 지나쳤는가 염려스럽다. 그 가운에 어찌 용서하여 너그럽게 할 만한 자가 없었겠는가?"

하매, 이빈이 아뢰기를,

"재변(災變)을 만나면 진실로 공구 수성하여야 하는데, 근래 형옥(刑獄)이 지나쳤던 것은 신도 알고 있습니다. 신이 지난번 장단(長湍) 【부사(府使)가 되었었다.】 에 있을 때에 보니, 그 주군(州郡)의 사수(死囚)로서 옥에 갇힌 자가 매우 많았는데, 사죄(死罪)에 해당되는 사람은 속히 결단해 주기를 바랄 것이고, 사죄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옥에 갇힌 자는 그 억울함이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말한 바가 지당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0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과학-지학(地學) / 사법(司法)

  • [註 027]
    시권(試券) : 시험 답안지.

○己亥/御朝講。 左右請罷己卯別試, 上曰: "近曰趙光祖之罪, 非以私有所失也。 但以侍從執拗, 終至於亂祖宗之法, 拒大臣之議, 此偏任臺諫之弊也。 今臺諫、弘文館所啓之言, 恐尤失也。 罷榜事, 自祖宗朝未聞之事, 若以此榜之人, 爲附於彼而罷之, 則後日之弊, 將不可勝言。 且雖有囂囂之言, 傳聞不如目覩。 大臣南袞, 親爲試官, 言獨守之策, 其體不古, 而且疑光祖等, 或有用私之事, 故削之。 前日光祖等, 請罷靖國功臣之時, 大臣有議云: ‘宜抄其表表者削之。’ 而其後牽於光祖, 抑而從之。 罷榜事, 亦與大臣議之, 而不罷。 今雖復與大臣議之, 豈復有云可罷者也? 出題時, 試官作二題, 而所用者, 南袞安瑭所出之題也。" 參贊官李蘋曰: "奇遵常言於諸儒之中, 以士習爲問, 而與聞者皆中。" 司諫南世準曰: "南袞出題時, 問於左右, 而金湜云: ‘當擧士習以問, 則可見儒生之預知也。’ 曰: "見試券則宋純之策, 只合於題, 而餘皆不合, 故聞有文臣聚覽, 以爲一場談笑。" 世準曰: "自古未有如此榜者。 果如此榜, 則科擧不公矣。" 曰: "奇遵發此言之時, 有一儒生, 從尹豐亨而聞之者。 南袞金湜言而出題事, 臣亦聞之。" 上曰: "策之不合於題者, 自古有之。 今此儒生, 但觀時勢而製之耳。 祖宗朝, 非不欲罷榜而難之者, 特以國家大事耳。 若以不公而罷之, 則後必有弊。 大臣亦豈不計乎? 旣與朝廷議之, 決不可罷也。" 世準及持平李純啓前事, 上皆不允。 曰: "安瑭拜相, 而地震之變, 前古所無。 此雖不可謂某應, 然人事失於下, 則天變應於上。 豈無所召而然也?" 上曰: "恐懼修省, 固當矣。 然徒恐懼而無其實, 則亦無益矣。 且刑政失當, 則天譴或至。 近日黨人, 多得罪。 如光祖等, 固可罪也, 見時而和附者, 皆罪之, 至於三十餘人, 恐其太濫。 其中豈無可冤者耶?" 曰: "遇災則固當恐懼修省。 近來刑獄之濫, 臣亦知之矣。 臣頃在長湍, 【爲府使。】 觀其州郡, 死囚之繫獄者甚多。 罪當死者, 且欲速斷, 不當死而滯獄者, 其冤必多矣。" 上曰: "所言當矣。"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0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과학-지학(地學)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