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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8권, 중종 15년 1월 4일 계사 2번째기사 1520년 명 정덕(正德) 15년

장령 서후가 조광조·김식 등과 향약의 폐단을 논핵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장령(掌令) 서후(徐厚)가 아뢰기를,

"근일 중외(中外)로 하여금 향약(鄕約)을 행하게 하였으니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십실(十至)010) 의 고을에도 충신(忠信)한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어찌 많이 얻을 수야 있겠습니까? 조정에도 그런 사람이 적은데 하물며 외방(外方)이리까! 속박(束縛)하여 향약의 도(道)를 행하게 하므로 인심과 풍속이 더욱 투박(偸薄)하여졌는데, 더구나 그 선악(善惡)에 대한 기록을 거개 사혐(私嫌)에 의거하여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이 없습니다. 자신의 품은 바를 천하에 펼 수 없는 처지에 있던 옛 사람이 이 향약을 만들어 한 고장 사람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요, 이것으로 천하 사람을 강제로 제어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일 사습(士習)이 그릇된 것은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 등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도학(道學)으로 명분을 삼고는 있었으나 일은 인물을 공박하고 조정의 득실(得失)이나 비방하는 것이었는데, 학자들이 다투어 이를 사모하여 본받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도학이라 하겠습니까? 대저 조정의 득실을 의논하고 인물의 장단(長短)을 논하는 것은 곧 선비로서 조정에 벼슬하고 있는 자가 할 일이요, 학자로서는 감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근래 호조(戶曹)에서 여러 고을의 공물(貢物)이, 혹 그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이 있다 하여 생산되는 것과 바꾸어 정하려고 하는데, 이 법은 진실로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행하게 되면 백성이 더욱 소요(騷擾)할 것입니다. 근래 나라가 무사하여 용도(用度)가 많지 않으니, 만약 1∼2년쯤 공물을 견감(蠲減)시키면 백성이 그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또 조정에는 안으로 삼공(三公)·육경(六卿)이 있고, 밖으로 감사(監司)·수령(守令)이 있어 모두 책임을 맡고 있는데, 이미 위임(委任)하였으면 진실로 신임(信任)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직책을 잘 수행하지 못할까 의심하고, 또 어사(御史)까지 보내어 잘못을 적발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는 수령은 미관(微官)이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겠으나 감사는 책임이 중하니 믿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어사가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극히 짧은 시간에 둘러보는 것이니, 감사가 자세히 순심(巡審)한 것만 못합니다. 이미 한 도를 위임하고서 또 자주 어사를 보내는 것은 대신을 신임하는 뜻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한갓 어수선하고 시끄러울 뿐입니다."

하고, 정언(正言) 조진(趙珍)은 아뢰기를,

"근일의 일이 기구(崎嶇)하고 궤이(詭異)하였으므로 인심이 올바르지 못합니다. 입사자(入仕者)011) 로서 품계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6품에 이를 경우에도 저들이 ‘사람은 모두 요(堯)·순(舜)이 될 수 있다.’ 하였으므로, 학자들은 명분만 숭상할 뿐 학문도 않고 제술(製述)도 않으면서 ‘나는 《소학(小學)》의 도를 행할 수 있다.’ 하였지만, 근본(根本)을 몰랐기 때문에 학교의 정사가 이로부터 폐하여졌습니다. 향약에 대하여는, 김안국(金安國)이 전라도 감사(全羅道監司)로 있으면서 수시로 선적(善籍)과 악적(惡籍)을 상고하여 만약 선적에 실려 있으면 비록 천한 노비(奴婢)라 할지라도 반드시 수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 노비에게 선물을 보내게 하므로 수령이 지탱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또 향약에 관계된 일이면 반드시 형신(刑訊)까지 하므로 인심이 어그러졌으니, 만약 김안국(金安國)을 속히 체직시켜 오게 하지 않으면 화(禍)가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 또 예(禮)에는 존비(尊卑)·상하(上下)의 구분이 있는데, 그 연치(年齒)만 헤아려 천례(賤隷)로 하여금 도리어 위에 거하게 하므로 아랫사람이 웃 사람을 무시하고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무시하는 폐단이 생겼습니다. 이른바 향약이라는 것은 무상(無狀)한 무리들을 모으는 것이니 마땅히 금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소학》과 향약은 모두 좋은 것이다. 단 근래 조광조 등의 소위가 명실 상부(名實相符)하지 않았으므로 이른바 좋다는 것이 도리어 좋지 않는 것으로 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정(朝廷)이 바루어지고 나면 인심도 절로 바루어질 것이니 사람마다 가르칠 필요는 없다. 향약에 관하여는 진실로 형신을 써서는 안 된다. 형벌을 함부로 쓰면 그 폐단이 큰 것이요, 대신도 불가하다 하므로 이미 떼 지어 모이는 것을 금하게 하고 다만 환난(患難)이나 사상(死喪)에만 서로 구제하게 하였으니, 다시 영(令)을 내려 금하게 할 수는 없다."

하매, 동지사(同知事) 이항(李沆)이 아뢰기를,

"저들의 무리가 추국(推鞫)받을 때에 향약의 무리가 광화문(光化門) 밖에 떼 지어 모여서 상언(上言)012) 하여 구하기를 꾀하였으나 그대로 되지 않자 결장(決杖)013) 할 적에 금부(禁府)로 나아와 삼대처럼 빽빽이 서 있었으므로, 장(杖)을 잡은 자가 떼 지어 모인 자들에게 밀려 장을 때릴 수 없었습니다. 무뢰배들이 궐문(闕門)에 모이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므로 또 금부에까지 모인 것이니, 이제 만약 그대로 두고 죄주지 않는다면 사체(事體)에 불가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무리를 다 죄줄 수는 없지만 도약정(都約正)·직월(直月)014) 같은 자들은 진실로 그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하고, 영사(領事) 정광필(鄭光弼)은 아뢰기를,

"향약은 모두 저들 무리가 단서를 만들었습니다. 지난번 형조(刑曹)에서 도망한 사민(徙民)015) 을 체포하려 하였는데 향약인(鄕約人)이 감히 숨겼으며, 체포하러 온 자를 막아 체포하지 못하게 하고서, 가서 고(告)하기를 ‘환난에 서로 구제하여야 하기 때문에 감히 구제하였다.’ 하니, 판서(判書) 김정(金淨)이 ‘이는 선한 사람이다.’ 하였습니다. 참판(參判) 유운(柳雲)이 그에게 죄를 가하려 하자, 김정(金淨)이 발끈 화를 내면서 ‘어찌하여 선류(善類)를 죄로 다스리려 하는가?’ 하므로, 유운(柳雲)이 변죄(辨罪)하지 못하였습니다. 김식(金湜)이 도망간 것은 지극히 불가합니다. 신하로서 이미 마음을 바치고서 감히 이런 짓을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무상(無狀)한 사람입니다. 김식뿐만이 아니라 또 도망가다가 잡힌 자가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또 도망한 자가 있는갸?"

하매, 정광필(鄭光弼)이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기준(奇遵)도 도망가다가 그 고을 사람에게 잡혔다 합니다. 【기준은 처음 아산(牙山)으로 귀양갔었다. 그때 그의 형(兄) 기향(奇逈)이 무장 현감(茂長縣監)이었는데 그 어머니가 따라와 있었다. 기준(奇遵)이 장차 온성(穩城)으로 귀양지를 옮기게 되자, 어머니를 만나보고 오기 위하여 도망쳐 천안군(天安郡) 남원(南院)에 이르렀는데 발이 부르트고 배가 고파 걷지 못하고 시냇가에 엎드려 있다가 마침 아산(牙山)의 보장인(報狀人)을 만나 잡혔다.】 지금 온성(穩城)으로 이배(移配)하려 하는데, 온성은 야인(野人)의 지경(地境)과 가깝고 기준(奇遵)은 연소(年少)한데다가 경박하니 신은 피지(彼地)로 도망하여 들어갈까 염려스럽습니다. 주장합(籌長哈)016) 이 ‘조선(朝鮮) 사람은 죄를 받고나서 1년만 지나면 모두 방환(放還)한다 하는데 우리들 가운데 죄를 받은 자는 어찌하여 오래되어도 방환하지 않는가?’ 하면서 늘 원망하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奇遵)온성에 두는 것이 비록 야인들 지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니나 만약 도망한다면, 그가 도망하여 온 줄은 모르고서 주장합(籌長哈)의 무리가, 방환하였다고 여겨 반드시 원심(怨心)을 품을 것이니 신은 기준을 반드시 온성으로 이배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으로 귀양보내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됩니다."

하고, 이항(李沆)은 아뢰기를,

"정광필의 이 말은 옳은 것 같지만 그릅니다. 만약 그가 도망하려 한다면 가까운 곳에 두는 것 또한 매우 불가합니다."

하고, 정광필은 아뢰기를,

"가까운 곳에 두면 비록 도망하더라도 나라 안에 있을 것입니다."

하고, 서후(徐厚)는 아뢰기를,

"오랫동안 시종(侍從)으로 있던 자이니, 비록 가까운 곳에 귀양보내더라도 끝내 돌아오지 못하게만 하면 될 것입니다."

하고, 정광필은 아뢰기를,

"전일 이성언(李誠彦)이 상소(上疏)하였을 때 기준(奇遵)이 베기를 청하였으니 그 경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김식(金湜)이 만약 이배(移配)시키는 것인 줄 모르고 사형(死刑)을 내리는 것인가 하여 도망하였다면 그만이거니와, 금부 서리(禁府書吏)가 이배하는 문서를 가지고 갔고 대죄(大罪)에 이른 것도 아닌데 감히 도망하였으니 매우 불가하다. 기준이 도망한 것은 어버이를 만나기 위하여서라고 하나 알 수 없다. 그러나 기필코 도망하려 한다면 먼 데 두나 가까운 데 두나 다를 것이 없으니, 또 개정(改正)하여 이비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매, 이항이 이르기를,

"근래 사람을 서용하는 것이 너무 지나쳐 연소자들이 거개 모두 외람되게 제수(除授)되었습니다. 저 연소자들이 불선(不善)한 것은 아니나 옛말에 ‘노신(老臣)을 봉양하여 걸언(乞言)하는 것은 경력(經歷)이 오래어 경험한 바가 많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하물며 작상(爵賞)은 임금이 명백히 하고 삼가야 할 것임에리까! 근래 전조(銓曹)에만 오로지 위임하였기 때문에 연소자들로 하여금 멋대로 하게 하는 한편 신진(新進)들을 임용(任用), 구신(舊臣)을 박축(駁逐)하게 하여 권강(權綱)이 아래로 옮겨졌으므로 식견(識見)이 있는 사람들은 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이제 다행히 조종의 구장(舊章)을 따르게 되었으므로 인심이 안정되었습니다. 저들이 전자에 ‘풍속(風俗)이 이미 좋아졌다.’ 하였으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의 잘못을 비방하고 조카가 숙부(叔父)를 비방하였으므로, 비록 부자·형제·친척 사이라도 서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마음에 품은 바가 상반(相反)되면 서로 의심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카가 아우의 비방으로 하여 죄책(罪責)을 받은 자도 있었으니, 부자 형제·붕우(朋友)의 도(道)가 모두 그 순서를 잃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0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재정-공물(貢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외교-야(野)

  • [註 010]
    십실(十至) : 작다는 뜻.
  • [註 011]
    입사자(入仕者) : 처음 벼슬하는 자.
  • [註 012]
    상언(上言) :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을 글로 적어 임금에게 올리는 것.
  • [註 013]
    결장(決杖) : 장형(杖刑)을 집행하다.
  • [註 014]
    도약정(都約正)·직월(直月) : 도약정은 향약(鄕約) 단체의 우두머리로 향청(鄕廳)의 향정(鄕正)이 겸임 하였으나, 직월은 향약의 일을 맡아보던 직책의 하나로 오늘날의 간사(幹事)와 같다.
  • [註 015]
    사민(徙民) : 전가 사변(全家徙邊)된 백성을 말한다. 세종 때부터 북변(北邊) 개척이 시작되어 남쪽의 백성을 이주(移住)시켰는데 그 정책의 하나로 전가 사변을 실시하여, 주로 함경도 5진(鎭)으로 보내어 정착하게 하였다. 이 법의 적용범위는 문서 위조자·좀도둑·우마도살자(牛馬盜殺者), 관리로서 백성을 억압한 자. 세미(稅米) 20석(石) 이상 미납자 등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범한 자들인데, 당시 이민정책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입거인(入居人).
  • [註 016]
    주장합(籌長哈) : 주장합(住張哈).

○御朝講。 掌令徐厚曰: "近日令中外, 皆行鄕約, 善矣。 然十室之邑, 雖曰有忠信, 亦豈多得? 雖在朝廷, 少有其人, 況外方乎? 束縛而行鄕約之道, 故人心益偸, 風俗益薄。 況其善惡籍, 率多以私以嫌, 故無美事? 古人不能申其所懷於天下, 故爲此鄕約, 而欲化一鄕之人, 非以此欲馳驟天下之人也。 近日士習之誤, 專在於趙光祖金湜等, 乃以道學爲名, 而所事者, 駁擊人物, 誹議朝廷得失, 故爲學者, 爭慕效之, 是豈道學乎? 夫議朝廷得失, 論人物長短, 乃爲士而仕於朝廷者之所爲也, 非學者所敢爲也。 近者戶曹, 以列邑貢物, 或有其地之所不産者, 欲相移易以定。 此法固不可行, 而民益騷擾矣。 近來國家無事, 用度不廣, 若蠲一二年之貢, 則民被其澤矣。 且朝廷內有三公、六卿, 外有監司、守令, 皆任其責。 旣以委任, 則固當信任, 疑其不能, 又遣御史, 俾摘其奸。 守令雖微, 而監司任重, 不可不信。 況御史雖明, 頃刻歷見, 不如監司巡審之爲詳也。 旣委一道, 又頻遣御史, 無信任大臣之意, 徒自騷擾。" 正言趙珍曰: "近日之事, 崎嶇詭異, 故人心不正。 入仕者, 雖無階之人, 率至六品, 以爲人皆可以爲, 故爲學者, 徒尙其名, 不學問、不製述曰: ‘我能爲《小學》之道’, 而不知根本, 學校之政, 自此而廢。 至如鄕約, 則金安國全羅道監司時, 考其善惡籍, 若載善籍, 則雖奴婢之賤, 必侵其守令, 使餽遺之, 守令且有不能支焉, 事出鄕約, 則必至刑訊, 故人心橫逆。 若安國不速遞來, 禍必將至。 且禮有尊卑上下焉, 徒計其年齒, 使隷賤反居其上, 故下凌上、賤凌貴之弊, 生焉。 所云鄕約, 嘯聚無狀, 在所當禁。" 上曰: "《小學》與鄕約, 皆其善者也, 但近者光祖等所爲, 名實不相副, 故所謂善者, 反至於不善。 然朝廷旣正, 則人心自正, 不必人人而敎之。 鄕約固不可用刑。 擅用刑罰, 其弊大矣。 大臣亦言不可, 故已令禁其群聚, 只令患難死喪相救爾, 不可復下令以禁也。" 同知事李沆曰: "彼輩被鞫時, 鄕約之徒群聚光化門外, 謀欲上言以救而不得。 及其決杖也, 就于禁府, 其立如麻, 故執杖者爲群聚者所迫, 不得擧手以杖。 無賴之徒聚于闕門, 而旣不禁, 故又聚于禁府。 今若因而不之罪, 則事有不可, 然不可盡罪其類。 若都約正、直月者, 固當治其罪也。" 領事鄭光弼曰: "鄕約, 皆彼輩所造端也。 頃者刑曹有捕徙民逃亡者, 鄕約之人, 乃敢匿之, 拒其捕者, 使不得捕, 往告曰: ‘患難相救, 故乃敢救之。’ 判書金凈曰: ‘此善人也。’ 參判柳雲欲加其罪, 艴然怒曰: ‘何以治罪善類乎?’ 不至辨焉。 金湜之逃, 至爲不可。 人臣旣已委質, 乃敢如此, 此眞無狀人也。 非徒金湜, 又有逃去而被執者。" 上曰: "又有逃者乎?" 光弼曰: "臣聞奇遵, 亦逃在道, 爲其邑人所執云。 【奇遵, 初謫牙山。 其兄逈爲茂長縣監, 其母隨歸。 遵將移謫穩城, 欲見其母以歸, 而乃逃, 至天安郡 南院, 足繭且飢, 不得行, 伏于川邊, 適値牙山報狀人, 被執。】 今移配于穩城, 穩城野人之境相近。 年少輕薄, 臣恐逃入於彼也。 籌長哈云: ‘朝鮮人被罪者, 若過一年, 必皆放還, 我輩被罪者, 何久而不放也?’ 常爲怨言。 今在彼, 雖不入野人中, 若果逃, 則長哈之類不知逃歸, 而乃以爲放還, 必生怨心。 臣意以爲奇遵, 不必移于穩城, 可謫于近地也。" 曰: "光弼此言似是而非。 若其逃亡, 則雖在近地, 亦大不可。" 光弼曰: "近地則雖逃, 乃在邦域之中爾。" 曰: "久在侍從者, 雖謫于近地, 若終使之不返則可也。" 光弼曰: "前日李誠言上疏, 乃請誅之, 輕薄可知。" 上曰: "金湜之逃, 若不知移配, 而恐其至死, 乃逃則已矣, 禁府書吏持移配之文以往, 非至大罪, 乃敢逃歸, 甚不可。 奇遵之逃, 爲見親而逃, 未可知也, 然乃欲必逃, 則在遠與近無異也。 不可又改而移配也。" 曰: 近日用人太過, 年少者率皆濫授。 彼年少者, 雖非不善, 然古云養老乞言, 以其踐歷已久, 有所更涉也。 況爵賞, 人主之所明愼者也。 近者專委銓曹, 使年少者專恣, 而任用新進, 駁逐舊臣, 使權綱下移, 有識莫不恨悶。 幸今復遵祖宗舊章, 故人心安定。 彼輩等前云: ‘風俗已善’, 臣以爲不然。 子弟謗父兄之失, 姪而謗叔, 故雖父子、兄弟、親戚之間, 不得相語。 其情之所懷, 反相疑畏, 故因姪、弟之謗, 被罪責者亦有之, 父子、兄弟、朋友之道, 皆失其序。"


  • 【태백산사고본】 19책 38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0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재정-공물(貢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