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37권, 중종 14년 11월 16일 병오 12번째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년

정부·육조·한성부에서 조광조의 일을 동사로 아뢰다

정부(政府)·육조(六曹)·한성부(漢城府)가 동사(同辭)로 아뢰기를,

"이제 조율(照律)을 보니 지극히 놀랍습니다. 서로 붕비(朋比)를 맺었다는 말을 저들이 승복하지 않고 증험도 없는데, 이 율로 죄주면 성덕(聖德)에 크게 누가 될 것입니다. 면대하여 친계(親啓)하게 하여 주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조광조 등의 당초의 마음은 나라의 일을 그르치고자 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조정에서 이와 같이 죄주기를 청하였으니, 죄주지 않을 수 없다. 조광조·김정은 사사(賜死)하고, 김식·김구는 장 1백에 처하여 절도(絶島)에 안치(安置)633) 하고, 윤자임·기준·박세희·박훈은 장(杖)을 속(贖)하고 고신을 진탈하고 외방(外方)에 부처(付處)634) 하도록 하라. 이렇게 곧 판부(判付)635) 하라."

하매, 기사관(記事官) 채세영(蔡世英)·이공인(李公仁)이 아뢰기를,

"조광조 등에게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나라의 일을 위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대신에게 다시 물어서 판부하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 일은 상세히 의논하였다. 이렇게 판부하라."

하였다. 그래서 김근사(金謹思)가 돌아보고 채세영의 초필(草筆)을 빼앗아 판부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채세영이 곧 붓을 가지고 멀리 물러가서 허용하지 않으며 또 아뢰기를,

"이것이 큰 일이나, 임금의 말이 한번 내리면 고치기도 어려운 것이니, 대신을 불러서 의논하게 하소서."

하고, 김근사가 아뢰기를,

"대신에게 다시 물어서 판부하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대신과 의논하여 결단해야 하겠다."

하였다. 정광필·안당·김전·이장곤·홍숙이 입대(入對)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조광조·김정·김식·김구 등의 조율은 같다. 그러나 4인의 죄가 다 같은가 차이가 있는가?"

하매, 정광필이 아뢰기를,

"저 4인의 죄상이 같은지 다른지 모르겠으며, 임금께서 무슨 율로 죄주려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율에 따라 죄주려 하신다면 2∼3등을 감하더라도 옳지 않습니다. 털끝만한 죄라도 실정보다 지나치게 벌준다면 크게 성명(聖明)에 누가 될 것입니다."

하고, 김전(金詮)이 아뢰기를,

"무정(無情)한 일이므로 신 등이 조율할 때에 서로 보면서 실색(失色)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조율 공사(照律公事)를 굽어보며 점검하는데 차마 말을 내서 하지 못하는 기색이 보이는 듯하더니, 한참 있다가 정광필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조정에서 죄주기를 청한 일이므로 가볍게 죄줄 수 없다. 조광조·김정은 사사하고, 김식·김구는 절도에 안치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매, 정광필이 놀란 빛으로 부복(俯伏)하여 아뢰기를,

"확실한 일일지라도 성명의 조정에서 어찌 이 율로 사류(士類)를 죄줄 수 있겠습니까? 성종(成宗)조(朝)에서 임사홍(任士洪)의 죄가 이 율에 합당할 만하였는데도 이것으로 죄주지 않았습니다. 임사홍은 참으로 간교한 사람이니, 조광조에게 임사홍과 같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 율로 죄줄 수 있겠으나, 워낙 그렇지 않은데 어찌 다른 뜻을 가졌었겠습니까? 다만 나라의 일을 위하였을 뿐입니다. 신이 비록 미열(迷劣)하여 선(善)으로 인도하지는 못하나, 어찌 살육(殺戮)하는 일로 임금을 인도하겠습니까! 저 사람들의 심지는 조금도 비뚤지 않은데 어떻게 사사(賜死)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홍숙이 아뢰기를,

"신이 추관(推官)으로서 추국(推鞫)에 참여하였는데, 조광조 등이 말하기를 ‘성명을 믿고 국사를 위하고자 하였을 뿐인데 도리어 이렇게 되었다.’ 하므로, 듣고서 매우 감동되었습니다."

하고, 안당이 아뢰기를,

"성명의 조정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조광조 등은 다 젊은 사람이니 이는 어설프고 곧기만한 소치인데 어찌 심한 죄를 줘야 마땅하겠습니까!"

하고, 정광필이 아뢰기를,

"김정은 신에게 삼촌질(三寸姪)이 되는데, 평생에 청류(淸流)로 자처하였습니다. 신이 저 사람을 감싸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명의 조정에서 이 율로 사대부(士大夫)를 죄줄 수는 없습니다."

하고, 안당이 아뢰기를,

"저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위를 속이고 사를 꾀하는 마음이 없고, 성명을 믿고서 나라의 일을 위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정광필이 아뢰기를,

"임금이 살육의 꼬투리를 열면 국가의 기맥(氣脈)의 크게 상할 것이니, 더 짐작하셔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것은 중한 일이므로 갑자기 결단할 수 없다. 반복하여 깊이 생각해서 결단하겠으니 대신들은 우선 물러가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81면
  • 【분류】
    변란-정변(政變) / 사법-탄핵(彈劾)

  • [註 633]
    안치(安置) : 《대명률》의 유형에 준하는 것으로, 바닷가의 황무지 등에 보내어 가족이 모여 살 수는 있게 하나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형벌.
  • [註 634]
    부처(付處) : 《대명률》의 유형에 준하는 것으로, 비교적 가까운 도(道)에 보내어 그곳 수령(守令)의 처치에 맡겨 살 곳을 정하게 하며, 가족이 모여 살 수는 있으나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형벌.
  • [註 635]
    판부(判付) : 옥사(獄事)의 심리를 끝내어 품신한 사안(事案)에 대하여 임금이 재결하여 내리는 것.

○政府、六曹、漢城府同辭啓曰: "今見照律, 至爲驚愕。 交相朋比之語, 彼輩不服, 又無證驗。 若以此律罪之, 則大累聖德。 請面對親啓。" 上曰: "光祖等, 初心則雖不欲誤國事, 然朝廷如此請罪, 不可不罪也。 趙光祖金凈可賜死; 金湜金絿可決杖一百, 絶島安置; 尹自任、奇遵、朴世熹、朴薰, 杖贖告身盡奪, 外方付處。 其以是卽可判付。" 記事官蔡世英李公仁曰: "光祖等豈有他意? 只欲爲國事而已。 請更問大臣, 判付何如?" 上曰: "此事議之詳矣。 其以是判付。" 於是謹思顧欲取世英草筆, 爲判付, 世英卽携筆遠退而不許, 又曰: "此大事也。 王言一下, 改之亦難。 請召議大臣。" 謹思曰: "更問于大臣, 而判付何如?" 上曰: "可與大臣議斷。" 鄭光弼安瑭金詮李長坤洪淑入對, 上曰: "趙光祖金凈金湜金絿等, 照律則同矣, 然四人之罪, 其皆同乎? 有間乎?" 光弼曰: "未知彼四人罪狀同異, 又未知上意欲以何律罪之。 若欲依照律罪之, 則雖減二三等, 不可也。 雖毫毛之罪, 過於情, 則大爲聖明之累矣。" 曰: "無情之事, 故臣等照律時, 相顧失色。" 上俯點照律公事, 若有不忍開說之色, 良久乃語光弼曰: "此朝廷請罪之事, 不可輕罪之也。 趙光祖金凈賜死, 金湜金絿絶島安置何如?" 光弼愕然俯伏曰: "雖判然事, 聖明之朝, 安可以此律罪士類乎? 成宗朝, 任士洪之罪, 足當此律, 而不以此罪之。 士洪則實奸巧之人。 光祖等有士洪之心, 則可以此律罪之也。 固不如是, 豈有他意乎? 只爲國事而已。 臣雖迷劣, 不能以善導之, 豈以殺戮之事, 導君父乎? 彼人心志, 小無邪曲, 安可賜死乎?" 洪淑曰: "臣以推官參鞫, 光祖等曰: ‘只恃聖明, 欲爲國事, 而反至於此。’ 聽之至爲感動。" 安瑭曰: "聖明之朝, 安有如此事乎? 光祖等, 皆年少之人, 是疎戇之致也。 豈宜深罪?" 光弼曰: "金凈於臣, 三寸姪也, 生平以淸流自許。 臣非欲庇彼人也, 聖明之朝, 不可以此律, 罪士大夫也。" 安瑭曰: "彼人等, 小無罔上營私之心, 只恃聖明, 欲爲國事而已。" 光弼曰: "人君啓殺戮之端, 則國家氣脈大傷矣。 須加斟酌。" 上曰: "此重事, 不可卒然決也。 當深思反覆而決之, 大臣姑可退也。"


  • 【태백산사고본】 19책 3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81면
  • 【분류】
    변란-정변(政變)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