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감사 성운을 체직하고, 탈옥한 죄인을 21일 처형했으며, 흉년 구제를 논의하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집의 박수문(朴守紋)·정언 김익(金釴)이, 충청도 감사 성운이 한 방면(方面)의 소임에 합당하지 못함을 논하여 체직하기를 청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사신은 논한다. 옛적에 ‘유하혜(柳下惠)가 세 차례나 내침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은 것541) 은, 비록 내침을 받기는 했어도 자신이 내침을 받을 만한 사실이 없었고 또한 외부에서 생기는 비난은 자기 마음에 개의할 것이 못 된다고 여겨서 이연(怡然)하게 스스로 만족하고 기뻐하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운은 그렇지 않아, 한 번 직을 잃게 되자 드디어 마음에 잊지 않고 앙심을 품으며 때를 기다렸다 중상하려 하다가, 기묘 사화(己卯士禍)가 일게 되자 용사(用事)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협조하여 순치(唇齒)가 되어 그의 뜻을 이루었으니, 소인의 원망과 악독은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수문이 아뢰기를,
"이달 21일에 탈옥한 죄인들을 처형했습니다. 비록 그들 자신이 지은 죄이기는 하지만 임금된 분으로서는 마땅히 자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날 망궐례(望闕禮)542) 습의(習儀)543) 를 거행하느라 온 조정이 갔었고 고취(鼓吹)544) 도 평소와 같이 하였으니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처형하는 날은 본래 일을 보지 않는 법인데, 그날 습의를 거행한 것은 예조의 잘못이다."
하였다. 익이 아뢰기를,
"백성이 바야흐로 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모두 유랑하여 흩어질 생각을 하는데, 부역은 전과 다름이 없으니 이는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하고, 동지사 조광조는 아뢰기를,
"올해는 흉년이 더욱 심한데도 풍년든 해와 같은 예로 보고 감해주는 일을 거행하지 않으니, 백성의 유리(流離)를 구제하지 못할 듯 싶습니다."
하고, 익이 아뢰기를,
"경기(京畿)의 학교(學校) 일이 매우 문란해져 신은 적이 한심스럽습니다."
하고, 광조가 아뢰기를,
"경기 감사는 전연 학교의 일 등에 마음을 쓰지 않으니 매우 옳지 못합니다."
하고, 시독관 조우(趙佑)는 아뢰기를,
"기전(畿甸) 백성이 장차 굶주리게 되어 비록 국가에서 감해주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백성이 실다운 혜택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유리하게 된 때를 당하여 구제하지 않는다면 백성의 부모된 본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고, 특진관 민상안(閔祥安)은 아뢰기를,
"각 고을에서 장원서(掌苑署)에 수납(輸納)하는 과일 중에 비자(榧子) 같은 것은 그 수량이 너무 많아, 매양 그 수량을 감하도록 아뢰고 싶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조(提調)가 짐작하여 수량을 감하면 되는데, 어찌 꼭 승전(承傳)을 받아서 해야만 하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7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570면
- 【분류】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사법-행형(行刑)
- [註 541]유하혜(柳下惠)가 세 차례나 내침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은 것 : 이 대문은 《논어》 미자(微子)에 나오는 말.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성은 전(展), 이름은 획(獲), 자는 금(禽)이며, 유하는 식읍(食邑) 이름. 혜는 시호이다.
- [註 542]
망궐례(望闕禮) : 제후국 왕이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하여 절하는 것과 지방관이 국왕이 있는 서울을 향하여 절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전자를 가리킨다.- [註 543]
습의(習儀) : 절차 연습.- [註 544]
고취(鼓吹) : 아악대의 연주.○丙辰/御朝講。 執義朴守紋、(正)〔正言〕 金釴, 論忠淸道監司成雲, 不合方面之任, 請遞, 上從之。
【史臣曰: "昔柳下惠三黜不怨者, 知其在我者, 雖見黜而亦未有見黜之實, 故在外之患, 不足介於吾心, 而怡然自得, 不見喜慍之色。 雲則不然, 一失其職, 遂含之而不忘于心, 俟時得中, 猶日汲汲, 及其己卯禍發, 與其用事者, 助爲唇齒, 以成其志, 小人之怨毒, 亦可戒也。"】
守紋曰: "今月二十一日, 刑叛獄罪人, 彼雖自作之罪, 爲人上者, 當存自責之心, 而其日行望闕禮習儀, 擧朝皆往, 鼓吹如常, 甚爲未安。" 上曰: "行刑之日, 本不視事, 而其行習儀, 禮曹之失也。" 釴曰: "百姓方困於飢寒, 皆爲流散之計, 而賦役則與古無異, 是可慮也。" 同知事趙光祖曰: "今年凶荒尤甚, 而視爲豐年之例, 不擧蠲減之事, 則恐無以救民之流離也。" 釴曰: "京畿, 學校之事, 甚爲廢弛, 臣竊寒心。" 光祖曰: "京畿監司, 全不用心於學校等事, 甚不可也。" 侍讀官趙佑曰: "今畿甸, 將爲飢餓。 國家雖有蠲減之事, 民不得蒙其實惠矣。 然當此流離之時, 不爲救濟, 則惡在其爲民父母乎?" 特進官閔祥安曰: "各官輸納於掌苑署實果, 如榧子等物, 厥數甚多, 每欲啓減其數。" 上曰: "提調酌減其數則可矣, 何必捧承傳而後爲之乎?"
-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7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570면
- 【분류】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사법-행형(行刑)
- [註 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