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36권, 중종 14년 7월 17일 무신 2번째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년

국기일의 복색을 정하는 것과 청정하는 문제와 종자법 및 《가례》와 《오례의》에 대해 논의하다

대간이 아뢰기를,

"국가의 큰 일을 모두, 대간이 의논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는 예문(禮文)에 관한 일로서 틀림없이 시행할 것이니, 예관(禮官)403) 으로 하여금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하면 되는데 널리 의논해야 할 것이 뭐 있으며, 무릇 일이 의정(議定)된 다음에는 대간이 자연 규탄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데 하필이면 의논에 꼭 모여야만 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의정된 다음에 대간이 옳고 그름을 규탄함이 과연 가하나, 다만 국론(國論)이 한번 정해진 다음에는 시끄럽게 고치지 않는데, 이번에는 분명히 확정하고 싶기 때문에 모두 명소(命召)한 것이고, 지금 일제히 모였으니 즉시 입대(入對)404) 해야 한다."

하였다. 대간이 회계(回啓)하기를,

"각기 자기 뜻을 말하는 것이니, 지금 마땅히 입대하겠습니다."

하고, 대신들과 함께 들어가니, 승지 한충(韓忠)이 묻기를,

"국기일(國忌日)405) 에 복색(服色)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고, 안당(安瑭)이 아뢰기를,

"복색 일을, 조종조(祖宗朝)의 일기(日記)를 고찰해 보아도 또한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데,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기일에는 복색을 천담색(淺淡色)으로 한다.’ 하고, 구준(丘濬)406)《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에는 ‘지일(至日)은 천담복(淺淡服)을 입는다.’ 하였는데, 지일이란 그날이란 말이며, 《대명회전(大明會典)》에도 ‘이틀 전부터 천담복을 입는다’ 했으니, 이번 국기의 치재(致齋) 때 계사관(啓事官)407) 은 천담복을 사용함이 어떠하리까?"

하고, 권균(權鈞)·김전(金銓)은 아뢰기를,

"신 등의 의견도 그러합니다."

하고, 남곤(南袞)·이장곤(李長坤)은 아뢰기를,

"《주자가례》를 주삼아야 합니다."

하여, 좌우 사람들의 말이 모두 이와 같았다. 최명창(崔命昌)이 아뢰기를,

"길제(吉祭) 때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 차림으로 향축(香祝)408) 을 친전(親傳)하는데, 대범 익선관과 곤룡포는 길복(吉服)이어서 예문에 맞지 않을 듯하니, 이도 또한 물어봄이 어떠하리까?"

하고, 안당이 아뢰기를,

"곤룡포는 화려한 의복으로, 이는 치재할 때 합당치 않을 듯하니, 모름지기 예조와 홍문관으로 하여금 참작해서 결정하게 하여 만세토록 시행되게 하소서."

하고, 장곤은 아뢰기를,

"길제 때 복색을 바꾸는 일은 모름지기 딱 확정해야 합니다."

하고, 김전은 아뢰기를,

"옛글에 ‘제명(齊明)하고 성복(盛服)한다.409) ’ 하였으니, 길제 때 복색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입니까?"

하고, 모두 아뢰기를,

"이른바 성복이란 옷을 정결하게 함이지 어찌 화려한 것을 말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평시에도 치재하는 날은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단지 화려하게 하라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의복 바꾸는 일을 말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하였다. 교리 이희민(李希閔)이 아뢰기를,

"천담복(淺淡服)을 입는다고 하였으니, 치재하는 날에도 반드시 입는 옷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김정(金淨)이 아뢰기를,

"‘치재할 때에는 반드시 명의포(明衣布)410) 가 있었다.’ 하였으니, 반드시 옷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하자, 홍문관원이 모두 아뢰기를,

"신 등이 또한 고찰해 보니, 치재 때에 반드시 명의포가 있었다고 했으니 이것은 곧 목욕하는 옷입니다."

하고, 김정이 아뢰기를,

"그러나 어찌 치재하는 옷이 없었겠습니까?"

하였다. 한충이 또 친림(親臨)하여 문병하는 일에 대하여 물으니, 이 아뢰기를,

"대신의 병이 위급할 때 이 예를 행하는데, 곧 예전 제왕들이 하던 일입니다. 그러나 신이 일찍이 옛 예문을 자세히 고찰하지는 못하였습니다만, 반드시 큰 덕과 중한 인망이 있어 조야(朝野)가 신망하는 사람이라야 이 예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로 본다면 대신들의 집이 거개 누추하고 좁아, 만일 이 예를 실행하게 된다면 온 집안이 감격하여 창황하게 분주할 것이고, 병자도 또한 경동(驚動)하여 죽음을 재촉하게 되리라 싶습니다. 근자에 내의(內醫)를 보내 약을 의논하고, 또한 승지나 주서(注書)를 보내 문병하는데, 이도 역시 특은(特恩)입니다. 친림하는 일은 진실로 용이한 것이 아니니, 모름지기 위에서 짐작해서 하셔야 합니다."

하고, 권균·김정·남곤도 모두 아뢰기를,

"신 등의 뜻도 또한 같아 시행할 수 없을 듯합니다."

하고, 장곤은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선대의 제왕들이 문병할 적에 마을 골목에 좁게 막힌 데가 있으면 모두 철거하여 넓히고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는 신자(臣子)들을 감동시킬 성의로서 한 시대를 고무시킬 일인데, 이런 아름다운 일을 신하들이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땅히 그 사람 자체를 보아 대처해야 하고 격식을 정하여 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고, 이자(李耔)는 아뢰기를,

"옛적에는 임금이 대신들에게 병이 나면 친림하여 문병하고 죽으면 친히 염(殮)하여 한결같이 골육처럼 하였고, 문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뒷일을 묻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은 군신의 사이가 소원한데, 만일 위에서 이런 일을 거행하신다면 아랫사람들이 또한 저절로 감동되어 분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에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신상(申鏛)은 아뢰기를,

"비록 삼공(三公)이라 하더라도 어느 사람에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을 아래에서는 반드시 어렵게 여길 것이니, 반드시 위에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새로 규정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널리 묻는 것이다. 또 그 자리에 가당한 사람이므로 이미 삼공의 자리에 있는 것인데, 어찌 구별이 있겠는가?"

하자, 안당이 아뢰기를,

"진실로 일일이 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좌우에서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으나, 이희민·조우(趙佑)·이연경(李延慶)·심달원(沈達源)·경세인(慶世仁)·김명윤(金明胤) 등은 모두 마땅히 시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한충이 청정(聽政)하는 일에 대하여 물으니, 이 아뢰기를,

"대범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을 친근히 하는 때가 적고 현명한 사대부를 접하는 날이 많으면 도의가 날로 신장(伸長)될 것이니, 조계(朝啓) 같은 큰 일은 정전(正殿)에 나아가 대신을 명소(命召)하여 의논하고, 작은 일에 있어서는 사정전이나 강녕전(康寧殿), 혹은 비현합(丕顯閤)으로 나아가 승지와 사관으로 하여금 드나들며 일을 아뢰게 함이 매우 합당합니다."

하고, 권균·김전·남곤 등도 모두 같은 의견이라고 하였으며, 김정(金淨)은 아뢰기를,

"세종조(世宗朝)에는 날마다 일을 보았기 때문에 다스림과 교화가 크게 시행되었습니다."

하고, 남곤·장곤이 아뢰기를,

"이 일은 밖에서 이미 모두 의논했는데, 안당의 의견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범상한 정사는 승지가 항시 친계(親啓)하고, 육조의 공사(公事)에 있어서는 낭관을 더러 인견하는데, 만일 날마다 대신들을 모아 청정(聽政)한다면, 조강(朝講)일 등을 모두 폐하게 되고 육조의 공사가 또한 방치될 것이니, 일정한 때가 없이 하면 좋겠다."

하매, 이 아뢰기를,

"일정한 때가 없이 청정하는 일은 한결같이 조종조(祖宗朝)의 고사(古事)처럼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종조에는 과연 일정한 때가 없이 청정했었다."

하매, 이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세종조에는 언제나 강녕전에서 대신들을 소대(召對)했는데,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정전으로 나아갔으니 조계(朝啓)와 같았으며, 항시 하는 공사는 모두 승지들로 하여금 친계하게 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편전(便殿)에서 대신을 접견함은 불가한 일이다."

하였다. 신상이 아뢰기를,

"요사이 승지들이 친계하게 하고, 육조 낭관도 모두 인견하니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청정이라고 한다면 앞날에 소홀해질 폐단이 또한 있게 될 것이니, 조계 때가 아니더라도 아뢸 일이 있다면 역시 인견해야 합니다."

하고, 이 아뢰기를,

"세종조께서는 경연관들을 때로 편복(便服) 차림으로 접견하셨으니, 한결같이 엄격하고 근신하기만 함은 불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편전에서는 편복을 입음이 어떻겠는가?"

하매, 광조(光祖)가 아뢰기를,

"의관은 반드시 하고 시선[瞻視]은 존엄하게 하는 법이니 의관을 경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관대(冠帶)라고 하였지만 어찌 모두 곤룡포를 말하였겠습니까? 심의(深衣)411) 같은 옷을 입는다면 철릭[帖裏] 같은 옷은 입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한충이 종자법(宗子法)에 대하여 물으니, 이 아뢰기를,

"신은 본래 학술(學術)이 없고 또한 옛일을 고찰해 보지 못하였습니다마는, 대개는 고조(高祖)의 종통(宗統)을 이어받고 조부의 종통을 이어받고 아비의 종통을 이어받아, 백대가 되도록 변함이 없는 종통을 이루어 성이 같은 친족은 모두 종손의 집에서 명령을 받으니, 이는 옛적에 하던 지극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만일 이 일을 시행한다면 풍속이 한결같이 바로잡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이런 법을 시행하지 않은 지 오래어서, 비록 성이 같은 친족이라 하더라도 더러는 외방(外方)에 살고 더러는 서울에 살아 서로 소원함이 심하기 때문에 종손에게 통할되는 사람이 전혀 없고, 지손(支孫)들도 으레 대종가(大宗家)에서 제사지내지 않습니다. 아무리 동족을 친목하게 하려는 사람이 있어도 귀중하게 여기지 아니하여, 비록 시행하려 하더라도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예관(禮官) 및 대소 신하들로 하여금 모여 의논하여 참작해서 작정하도록 하소서."

하고, 권균은 아뢰기를,

"종자법은 옛 법제이니, 널리 옛 제도를 모아 크게 규모를 세우되 반드시 옛것에도 맞고 지금에도 합당하도록 해야 하는데, 신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능히 건의하지 못합니다."

하자, 좌우에서 모두들 ‘옛제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말을 하였으며, 신상은 아뢰기를,

"이는 좋은 법이니 만일 이 일을 시행한다면 인륜을 두텁게 하고 풍속을 이루게 할 길이 어찌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아비의 종통을 이어받고 조부의 종통을 이어받는 것만 보았지 그런 절목(節目)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대종가에서도 사당을 세우고 소종가에서도 또한 각각 사당을 세우는데, 종가 세우는 뜻은 알지 못하니 모름지기 널리 채택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하고, 이자는 아뢰기를,

"비록 옛 예법대로 다하지 못하더라도 거행해야 합니다. 만일 옛 예법을 알지 못한다고 드디어 방치하고 거행하지 않는다면, 다스리는 도리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하고, 김정은 아뢰기를,

"만일 옛 예법대로 다 거행할 수 있게 된 다음에 하려 하면 거행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인륜을 두텁게 하고 풍속을 이룰 좋은 취지가 오래 방치되고 거행하지 않아 크게 성치(聖治)에 누가 되었으니, 모름지기 한 시대의 규모를 세워야 되는데, 널리 옛 예법을 고찰해 보면 자연 절목이 마련될 것입니다."

하고, 광조는 아뢰기를,

"비록 온 세상 사람이 다 거행하게는 못할지라도, 왕실과 대종가에서 먼저 거행한다면 아랫사람들이 또한 보고 감동되어 자발적으로 거행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늙은 유현(儒賢)으로 덕이 높은 사람이 스스로 한 가문의 규모를 세운다면 감화하게 되는 도리가 있을 것인데, 자세히 고찰한다면 어찌 옛 법례가 없겠습니까?"

하였다. 한충이 또 《가례(家禮)》《오례의(五禮儀)》를 합치되게 하는 것 및 승보(陞補)412) 에 대한 일을 물으니, 이 아뢰기를,

"《오례의》《가례》를 신이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개 《오례의》는 곧 조종들이 참작하여 결정한 현행 법제이니 준행함이 가하고, 거기에 불가한 것이 있으면 옛 예법을 고찰하여 참작해서 결정함이 또한 가합니다. 뜻있는 사람을 추천받아 승보하는 일은 매우 좋기는 하나, 옛 준례가 초시(初試)에 합격한 사람 및 승보시(陞補試)로 취재(取才)한 사람을 거관(居館)413) 하게 했습니다."

하고, 권균은 아뢰기를,

"《오례의》《가례》는 다르지 않고, 비록 다른 데가 있다 하더라도 또한 많지 않으니, 《오례의》에 의해 거행하되 맞지 않는 데가 있으면 《가례》를 고찰하여 절충해서 거행함이 합당할 듯합니다. 승보하는 일은 3년에 한 차례씩 하면 뜻있는 사람들이 더러 승보되지 못할 것이니, 김식(金湜)의 의논대로 하소서."

하고, 좌우의 의논은 모두, 《오례의》대로 거행하되 《가례》를 참작해서 함이 가하다고 하고, 승보하는 일은 가하다 하기도 하고 불가하다 하기도 하였다. 한충이 아뢰기를,

"오늘 의논한 일을 다음 합좌(合坐) 때에 다시 의논하여 서계(書啓)하는 것이 어떠하리까?"

하자, 광조가 아뢰기를,

"오늘 의논은 대체로 같았는데 무엇하러 다시 의논하겠습니까? 위에서 행하고 싶으시면 그대로 시행하면 됩니다."

하였다. 이때 밤 2고(二鼓)414) 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55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의생활-예복(禮服)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가족-친족(親族) / 풍속-예속(禮俗) / 윤리(倫理)

  • [註 403]
    예관(禮官) : 예조 관원.
  • [註 404]
    입대(入對) : 대궐에 들어가 자문에 응하는 것.
  • [註 405]
    국기일(國忌日) : 임금이나 왕후의 제삿날.
  • [註 406]
    구준(丘濬) : 명대(明代)의 학자. 자는 중심(仲深). 호는 경산(瓊山), 시호는 문장(文莊). 저서로 유고(遺稿)와 《가례의절(家禮儀節)》 등이 있다. 《명사(明史)》 권181.
  • [註 407]
    계사관(啓事官) : 일을 아뢰는 관원.
  • [註 408]
    향축(香祝) : 제사에 쓸 향과 축문.
  • [註 409]
    제명(齊明)하고 성복(盛服)한다. : 《중용》 제 16장에 보인다. 여기서 제명(齊明)이란 생각을 정돈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 [註 410]
    명의포(明衣布) : 목욕할 때 입는 옷.
  • [註 411]
    심의(深衣) : 옛적의 제복(制服). 소매가 넓은 저고리와 12폭의 하의가 연결된 옷. 대부(大夫)·사(士)의 조제(朝祭) 때 차복(次服)이고, 서인(庶人)들의 길례(吉禮) 때 입는 옷이다. 《예기(禮記)》 심의(深衣).
  • [註 412]
    승보(陞補) : 승보시(陞補試)의 약칭. 곧 매년 10월에 성균관 장(成均館長)이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12일 간 시부(詩賦) 시험을 보이는 것. 합격자에게는 생원(生員)·진사과의 응시 자격을 부여하였다.
  • [註 413]
    거관(居館) : 성균관의 재방(齋房)에 들어가는 것.
  • [註 414]
    2고(二鼓) : 오후 10시 전후.

○臺諫啓曰: "國家大事, 臺諫皆可與議, 此在禮文之事, 必行無疑。 可令禮官磨鍊行之, 何必廣議? 凡事議定後, 臺諫自可糾正, 何必會議?" 上曰: "議定而臺諫糾其是非, 果可也。 但國論一定, 則後不紛更。 今欲大定, 故俱命召矣。 今旣齊會, 則可卽入對。" 臺諫回啓曰: "各言其志耳。 今當入對, 與大臣等俱入。" 承旨韓忠問曰: "國忌日服色, 何以爲之?" 安瑭曰: "服色事, 考之祖宗朝日記, 亦不明言之。 《朱文公家禮》云, 忌日服色, 以淺淡色; 丘濬 《大學衍義補》云: ‘至日以淺淡服。’ 至日, 其日也。 《大明會典》亦云: ‘前期二日, 淺淡服。’ 今國忌致齋, 啓事官, 用淺淡服何如?" 權鈞金銓曰: "臣等意, 亦如是。" 南袞長坤曰: "以《文公家禮》爲主可也。 左右之言皆類此。" 崔命昌曰: "吉祭以翼善冠、袞龍袍、香祝親傳。 夫翼善冠、袞龍袍, 吉服也。 似未合於禮, 此亦問之何如?" 安瑭曰: "袞龍袍, 華服也, 此於致齋, 似不可也。 須令禮曹、弘文館酌定, 使萬世行之。" 長坤曰: "吉祭變服事, 須大定。" 金銓曰: "古云‘齋明盛服。’ 吉祭則何以變服乎?" 僉曰: "所謂盛服, 以其精潔耳。 豈謂華也?" 上曰: "常時致齋日, 則不爲華盛之服矣。 此則非特不爲華盛也, 乃謂變服事, 故云爾。" 校理李希閔曰: "其曰以淺淡服, 則齋日亦必有服矣。" 金凈曰: "齋必有明衣布, 則必變服矣。" 弘文館皆曰: "臣等亦考之, 齋必有明衣布, 則乃沐浴衣也。" 金凈曰: "然。 豈無齋衣乎?" 韓忠又問親臨問疾事, 曰: "大臣病革, 而行此禮, 乃古昔帝王所爲之事, 然臣曾未詳究古禮耳。 必有碩德重望, 朝野所倚望者, 可當此禮。 然以我國見之, 大臣家多陋隘, 若行此禮, 則一家感動, 蒼皇奔走, 而病者亦恐驚動促死。 近日遣內醫問藥, 而又遣承旨、注書問疾, 則此亦特恩也。 親臨事, 固非輕易, 須自上斟酌。" 權鈞金淨南袞皆曰: "臣等意亦同。 似未可行。" 長坤曰: "臣聞先代帝王, 於問疾時, 有閭巷隘塞者, 則皆闢破而入。 此可以震動臣子之誠, 使一代鼓舞者也。 如此美事, 臣何可抑止? 然當觀其人而處之, 不可定格例行之。" 李耔曰: "古之人君, 於大臣病則臨問, 死則親斂, 一如骨肉, 非特問病, 乃問後事也。 今則君臣踈隔, 自上若行是事, 則下人亦自感奮, 然不可人人而爲之。" 申鏛曰: "雖三公, 不可人人而爲之也。" 上曰: "此事在下, 則必以爲難, 必自上爲之可也。 然此乃新立規模, 故廣問之耳。 且以其可當其位, 故已居三公, 亦何有間?" 安瑭曰: "固不可一一爲之。" 左右皆以是爲言, 李希閔趙佑李延慶沈達源慶世仁金明徹等, 皆以爲在所當行。 韓忠問聽政事, 瑭曰: "大抵親宦官、宮妾之時少, 接賢士大夫之日多, 則道義日長。 若大事如朝啓, 則御正殿, 命召大臣論議; 若小事, 則或御思政殿, 或於康寧殿, 或於丕顯閤, 令承旨、史官出入啓事甚當。" 權鈞金銓南袞等皆曰: "臣等意同。" 金淨曰: "世宗朝, 逐日視事, 故治化大行。" 南袞長坤曰: "此事於外, 已悉議之, 無異於安瑭意。" 上曰: "凡政事, 承旨常親啓, 六曹公事則郞官亦或引見。 若逐日會大臣聽政, 則朝講等事皆廢, 而政府六曹公事亦廢矣。 若不時爲之則可也。" 曰: "不時聽政事, 一從祖宗朝事可也。" 上曰: "祖宗朝果不時聽政矣。" 曰: "臣聞世宗朝, 皆於康寧殿, 召對大臣矣, 若大事, 則必御正殿, 如朝啓矣, 常行公事, 則皆使承旨等親啓也。" 上曰: "於便殿接大臣, 不可也。" 申鏛曰: "近日承旨親啓, 而六曹郞官皆引見, 則甚盛事也。 然以是謂之聽政, 則後日簡忽之弊, 亦有之矣。 未朝啓之時, 有所啓, 則引見亦可。" 曰: "世宗於經筵官, 有時以便服見之。 一於嚴謹, 不可也。" 上曰: "便殿則用便服何如?" 光祖曰: "正衣冠、尊瞻視, 衣冠不可忽也。 雖云冠帶, 豈皆謂袞龍袍也? 若用深衣等服, 則可也, 如帖裏等服, 不可也。" 韓忠又問宗子法, 曰: "臣本無學術, 又未考古事。 大槪繼高祖之宗, 繼祖之宗, 繼禰之宗, 百世不遷之宗, 同姓之親, 則皆於宗子家聽命, 此古昔所爲至美之事也。 若行此事, 則風俗一正, 然我朝不行此法久矣。 雖同姓親, 或居外, 或居京, 相遠之甚, 故統於宗子者專無, 支子例不行祭于大宗家。 雖有睦族者, 亦不以爲貴, 雖欲行之, 亦不易也。 須令禮官與大小諸臣, 會議酌定。" 權鈞曰: "宗子法, 古制也。 可廣取古制, 大立規模, 必使合於古、宜於今, 可也。 臣不知, 故不能建議。" 左右皆以未諳古制爲言, 申鏛曰: "此良法也。 若行此事, 則厚倫成俗之道, 何過於此? 但見繼禰之宗, 繼祖之宗, 而其節目則未之見也。 如我朝, 大宗則立廟, 而支宗亦各立廟, 其立宗之意, 則未之知也。 須博採定之。" 李耔曰: "雖未盡古禮, 而擧行可也。 若以未知古禮而遂廢不行, 則治道何自而出也?" 金凈曰: "若欲盡行古禮而後, 爲之則無可行之時。 以此厚倫成俗之美意, 久廢不行, 甚累於聖治。 須立一代規模可也。 廣考古禮, 則自有節目。" 光祖曰: "一世之人, 雖未盡行, 而如王室大宗先行之, 則下人亦可觀感而興行矣。 且有老儒宿德者, 自立一家之政, 則亦有化之之道。 若詳考, 則豈無古例乎?" 韓忠又問《家禮》 《五禮儀》歸一及陞補事, 曰: "《五禮儀》《家禮》, 臣未能考之, 故未能詳知。 然大槪《五禮儀》, 乃祖宗所酌定時王之制也, 則遵行可也。 於是有不可, 則考古禮而酌定, 亦可也。 有志者, 薦擧陞補事, 甚好, 然舊例以初試入格者及陞補取才者, 居館矣。" 權鈞曰: "《五禮儀》《家禮》不異, 雖有異處, 亦不多矣。 依《五禮》行之而有不合者, 則考《家禮》, 酌中行之似當。 陞補事, 三年一次爲之, 則有志者或未陞補。 從金湜議。" 左右之議, 皆以爲以《五禮儀》行之, 而參以《家禮》, 可也。 陞補事, 或曰可, 或曰不可。 韓忠曰: "今日所議, 後於合坐時, 更議書啓何如?" 光祖曰: "今日議大同, 何可復議? 自上欲行, 則自可行之。" 時夜二鼓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55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의생활-예복(禮服)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가족-친족(親族) / 풍속-예속(禮俗)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