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에서의 석전제 시행을 독려하고, 중을 없애는 일 및 유향소·경재소 혁파 문제를 논의
인동(仁同)의 훈도(訓導) 은임(殷霖)을 인견하였다. 임이 말하기를,
"석전제(釋奠祭)281) ·사직제·여제(厲祭)282) 는 모두 국가의 중요한 행사인데 수령(守令)들이 홀만히 여기고 조심하지 아니하여, 석전제는 한결같이 예대로 갖추지 않고 사직제·여제는 전연 거행하지 않습니다. 무릇, 보새(報賽)283) 의 예절이 게을러져 의탁할 데 없는 외로운 영혼들이 제사받지 못하기 때문에 천지의 화기를 손상하여 수재와 한재(旱災)를 불러들여 백성이 살아가지 못하니, 신의 생각에는 제사를 거행할 때 특별히 어사를 보내 적발한다면 수령들이 반드시 두려워하게 되리라고 여깁니다."
하자, 우의정 안당이 묻기를,
"음양(陰陽)이 고르지 못하고 바람과 비가 때에 맞지 않음이 모두 이런 제사를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겠습니까?"
하니, 임이 말하기를,
"땅과 곡식의 귀신이 제사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의탁할 데 없는 외로운 영혼이 제사 받지 못하니, 이래서 흉년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니, 좌의정 신용개가 묻기를,
"허다한 고을들을 모두 하나하나 가볼 수 있습니까?"
하니, 임이 말하기를,
"추첨하여 가본다면 다른 고을들이 또한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용개가 이어 땅과 곡식의 귀신에게 제사하는 의의를 물으니, 임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였고, 또 토신(土神) 배열하는 자리를 물으니 또한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당이 말하기를,
"또 말할 일이 있습니까?"
하니, 임이 말하기를,
"농상(農桑)과 학교(學校)는 모두 국가의 중요한 일인데, 농상을 권장하는 분부가 번번이 내려와도 수령들이 전연 거행하지 아니하니, 수령들로 하여금 봄에 갈고 여름에 김 매고 가을에 추수할 때 친히 검찰하여 거행하게 하고, 또 민가의 가호(家戶)를 대·중·소로 분별하여 뽕나무를 심도록 하되 각각 일정한 그루 수효가 있게 하기 바랍니다. 학교는 교훈하는 관원들이 비록 힘써 하려고 해도 외방(外方) 유생들이 양식 떨어지는 것을 꺼려 모이려 하지 않으니, 수령들이 엄중하게 검찰하여 거행하도록 한다면 될 것입니다."
하였다. 당이, 옛적에 다스리던 방법을 묻자, 임이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임이 또 말하기를,
"대범 수원(水源)이 모두 산에서 나오는데, 지금은 백성들이 산에 나무를 베고 불을 질러 밭을 만들기 때문에 물 근원이 모두 끊어져 산에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대범 소나무 껍질과 상수리는 모두 곤궁한 백성이 먹고 사는 것인데, 이러하기 때문에 곤궁한 백성이 점차로 살아갈 생리가 없어지게 되니 산에다 불놓는 죄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하고, 또 구청(求請)284) 을 금단하고, 사사로이 포고(捕告)하는 것은 죄를 다스리기 청하자, 용개가 아뢰기를,
"전일에 횡행(橫行)하며 들락거리는 그런 자들이 있으므로 법사(法司)가 검찰했었는데, 그때 지목(指目)하기를 ‘부생원(桴生員)·전체생원(傳遞生員)’이라고 했습니다. 【전일에 생원 윤탕우(尹湯佑) 등이 벗들과 결탁하고 떼를 지어 주(州)·군(郡)을 두루 돌아다니매, 수령들이 비방할까 두려워 영접과 위로가 매우 정성스러웠고 요구하는 것을 수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부생원’이라 했는데, 떼로 모여 횡행하기 때문에 부벌(桴筏)에 비유한 것이며, ‘전체생원’이라고 한 것은, 타고 싣는 말과 딸린 종들을 각 고을이 전체(傳遞)하여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풍습이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다면 추쇄(推刷)하여 징계해야 하나, 만일 포고하게 한다면 매우 소란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과연 폐단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수령이 적임자라면 이런 부류들이 저절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임이 아뢰기를,
"무신(武臣)이 내지(內地)의 수령이 되게 되면 반드시 변방에서 하는 일을 시행하여 그 폐단이 매우 많습니다. 또한 한 가정 안에서 부자·형제가 비록 4∼5인이 된다 하더라도 모두 군보(軍保)285) 가 되어 각기 맡은 대역 때문에 번갈아 나갔다 들어왔다 하느라 집에 있을 때가 없어 농사 시기를 놓치기 때문에 가난과 궁색이 너무도 심해져 마침내 외방으로 떠돌게 되고, 관속(官屬)이 그 수가 과다한데 함부로 점유한 향리(鄕吏)들이 또한 많으니, 지금 만약 가려낸다면 군보도 넉넉해지고 백성의 힘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하고, 또 청하기를,
"도첩(度牒)286) 이 없는 중들을 가려내어 본고장으로 돌아가 농사짓도록 하고, 무릇 사찰들을 모두 철거하여 공해(公廨)287) 와 학당(學堂)으로 수리하게 하며, 주(州)·현(縣)에 각각 큰 절을 하나씩 두고 늙은 중만 살게 하여 스스로 없어지도록 한다면 중들이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자, 당이 아뢰기를,
"도첩이 없는 중들을 지금 추쇄(推刷)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였다. 임이 말하기를,
"부녀자들은 남자들과 달라 바깥에서 먹고 자는 곤란이 없으므로 비록 이엄(耳掩)288) 이 없더라도 되니 금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자, 당이 말하기를,
"부인들은 남편의 직에 따라 차등을 두므로 일체로 금단할 수 없습니다."
하고, 또 주단(紬緞) 답호(褡胡)289) 를 금단하고 각사(各司)의 서리(書吏)나 생도(生徒)는 염색한 답호 착용을 금단하며, 일반 민중은 가죽신 신는 것을 금단하여 사치하는 풍습 없애기를 청하자, 용개·당이 모두 말하기를,
"세쇄한 일은 금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이 또 말하기를,
"생원·진사들이 조금 성공한 것에 편안하여 크게 성취하지 못하니, 바라건대 지금부터 서울에 있는 사람은 예조(禮曹)가, 지방에 있는 사람은 감사가 날마다 읽는 글을 고과(考課)290) 한다면, 거의 각기 스스로 권면하여 학업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하자, 용개·당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 따로 법조(法條)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이 또 말하기를,
"무릇 산물(産物)이 예와 지금은 다르니, 대록피(大鹿皮)291) 및 녹포(鹿脯)292) 등의 물품을 지금부터는 재감하고 다만 제주(濟州)의 세 고을로 하여금 대신 공상(貢上)하게 하기 바랍니다."
하자, 용개·당이 모두 말하기를,
"제주는 지금 바야흐로 흉년이므로 옮겨서 배정할 수는 없고, 혹 그 수량을 재감한다면 가할 듯합니다."
하였다. 임이 또 말하기를,
"유향소(留鄕所)293) 와 경재소(京在所)294) 가 아전(衙前)이나 향리(鄕吏)들을 침해하여 매우 폐단이 되니, 향약(鄕約) 모임의 도약정(都約正)·부약정이 그 고장 풍습을 검찰하게 하고 유향소와 경재소 등은 혁파하기 바랍니다."
하자, 용개·당이 모두 말하기를,
"과연 폐단이 있기는 하나, 드센 향리들이 오히려 이를 꺼려 감히 방종하지 못하니 혁파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이 또 말하기를,
"재상(災傷)의 등급을 수령이 잘 조사하지 못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백성이 있게 한 것은 백성이 고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자, 용개·당이 모두 ‘불가하다’ 하였고, 임이 또 한강(漢江) 나룻배를 더 만들어 백성이 건너다니기에 고통 받지 않게 하기를 청하자, 용개가 말하기를,
"이미 한성부로 하여금 더 만들도록 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4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정론-정론(政論) / 교통-수운(水運)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농업-농작(農作) / 농업-권농(勸農) / 농업-양잠(養蠶) / 농업-임업(林業)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註 281]석전제(釋奠祭) : 공자에게 지내는 문묘(文廟) 제사.
- [註 282]
여제(厲祭) : 천재나 전란에 죽은 사람과 자손이 없어 제사받지 못하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註 283]
보새(報賽) : 매년 가을에 농사를 마치고 신(神)의 공덕과 은혜에 보답하려 지내는 제사.- [註 284]
구청(求請) : 토색질.- [註 285]
군보(軍保) : 정병(正兵)을 돕기 위해 두는 조정(助丁). 한 사람의 현역병에게 조정인 봉족(奉足) 두 사람씩을 주어 현역병의 장비나 가사(家事) 등을 보살펴 주는 사람.- [註 286]
도첩(度牒) : 승려 증명서.- [註 287]
공해(公廨) : 관청.- [註 288]
이엄(耳掩) : 사모 밑에 쓰는 방한구.- [註 289]
답호(褡胡) : 답호(褡胡)를 취음(取音)하여 쓴 말. 곧 벼슬아치가 입는 옷의 한 가지로, 예복 밑에 입는 긴 조끼형의 것.- [註 290]
고과(考課) : 시험 보임.- [註 291]
대록피(大鹿皮) : 다 큰 사슴의 가죽.- [註 292]
녹포(鹿脯) : 사슴고기포.- [註 293]
유향소(留鄕所) : 수령(守令)의 자문 기관. 곧 수령을 보좌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들을 규찰하는 지방 자치 단체.- [註 294]
경재소(京在所) : 각 고을의 서울 연락사무소. 그 고을의 중앙과 관계되는 사무를 관장한다.○引見仁同訓導殷霖。 霖曰: "釋奠祭、社稷祭、厲祭, 皆國家重事, 守令慢不之敬, 釋奠祭則皆不備禮, 社稷祭、厲祭則專不行之。 凡執賽之禮旣倦, 而孤魂無托, 不得其享, 故傷天地之和, 召水旱之災, 民不得其生。 臣意行祭時, 特遣御史擲奸, 則守令必畏之。" 右議政安瑭問曰: "陰陽不調, 風雨不時, 皆由此等祭之不謹乎?" 霖曰: "土穀之神, 不享其祀, 孤魂無托, 不得其享, 此所以致凶荒者也。" 左議政申用漑問曰: "許多州郡, 皆可一一往見耶?" 霖曰: "抽籤往見, 則他郡亦可畏之。" 用漑仍問祭土穀神之意, 霖不能對。 又問土神之配位, 亦不能對。 瑭曰: "又有可言之事乎?" 霖曰: "農桑、學校, 皆國家重事。 勸農桑之敎每下, 而守令專不擧行。 請令守令, 春耕夏耘, 秋收之時, 親行檢擧。 又分民戶大中小, 使之種桑, 各有條數。 學校則敎訓之官, 雖欲勉力爲之, 外方儒生憚於贏糧, 不肯來聚。 守令嚴令檢擧則可也。" 瑭問古爲治之方, 霖不能對。 霖又曰: "大抵水源, 皆出於山, 今則百姓伐山木, 焚之爲田。 是故水根皆絶, 而山木不盛。 夫松皮橡實, 皆窮民所食, 而如此, 故窮民漸無資生之理。 請治火山之罪, 又請禁求請與私行, 捕告治罪。" 用漑曰: "前者有如此橫行出入者, 法司察之。 其時指目曰桴生員、傳遞生員。 【前者生員尹湯佑等, 結伴作群, 周歷郡縣, 守令畏其非毁, 迎勞甚款, 所求靡不應, 時人謂之桴生員, 以其群聚橫行, 比之桴筏謂之。 傳遞生員, 以其騎駄僕從各邑傳遞而送之也。】 此風今若不泯, 則可推而懲之, 若使之捕告, 則甚紛擾。" 上曰: "此果有弊。 然守令得人, 則此類必不自恣矣。" 霖曰: "武臣若爲內地守令, 則必以邊方之事施之, 其弊甚多。 且一家之中, 父子兄弟, 雖至四五人, 皆爲軍保, 各以其役, 更出迭入, 無時在家, 農失其時。 故貧窘太甚, 卒歸於流離外方。 官屬過於其數, 鄕吏冒占者亦多。 今若抄出, 則軍保可足, 民力可寬矣。" 又請刷無度牒僧人, 使還本土, 歸之於農。 凡寺刹, 竝令撤毁, 以修公廨學堂。 州縣各置一大刹, 處老僧, 使之自滅, 則僧徒可以絶矣。 瑭曰: "無度牒僧人, 今推之甚難矣。" 霖曰: "婦女非如男子, 無風飱露宿之苦, 雖無耳掩可也。 不可不禁斷。" 瑭曰: "婦人從其夫職而爲之差等, 不可一切禁之。" 又請禁紬單搭胡、各司書吏生徒禁着染色搭胡。 凡民禁着皮鞋, 以絶侈靡之習。 用漑、瑭皆曰: "細碎不可禁。" 霖又曰: "生員、進士, 安於小成, 不能大就。 請自今在京者禮曹, 在外方者監司, 以逐日所讀考課, 則庶幾各自勸勵, 成就其業矣。" 用漑、瑭皆曰: "今不可別立科條。" 霖又曰: "凡物産, 古與今異。 大鹿皮及鹿脯等物, 請自今蠲除, 只令濟州三邑代貢。" 用漑、瑭皆曰: "濟州今方凶荒, 不可移定。 如或裁減厥數, 則似可。" 霖又曰: "留鄕所、京在所, 侵虐衙前鄕吏, 甚有弊。 請以鄕約中都約正、副約正, 糾檢鄕風, 而罷留鄕、京在等所。" 用漑、瑭皆曰: "果有弊矣。 然鄕吏豪橫者, 猶忌此不敢放縱, 不可革也。" 霖又曰: "災傷等第, 守令不能踏驗, 使民有冤抑者, 許民告訴。" 用漑、瑭皆曰: "不可。" 霖又請加造漢江渡公船, 使民不病涉。 用漑曰: "已令漢城府加造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4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정론-정론(政論) / 교통-수운(水運)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농업-농작(農作) / 농업-권농(勸農) / 농업-양잠(養蠶) / 농업-임업(林業)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註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