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례로 생원·진사의 합격자를 방방하다
권정례(權停例)로 생원·진사의 합격자를 방방(放榜)045)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나라 풍속에 구차한 습속이 많아서 예로부터 생원·진사 및 문무과 합격자에게 방방할 때에는, 그 족류(族類)가 혹 벗들을 이끌고 와서 함께 후항(後行)에서 배사(拜謝)하므로 예(禮)가 없어 문란하고 전도된 지가 오래었다. 이날에 우의정 안당이, 그 아들 처근(處謹)이 진사에 입격(入格)하였다 하여, 당리(堂吏)를 시켜 근정문(勤政門) 어간(御間) 곁에 장막을 치게 하니 바로 어탑(御榻)의 맞은 편이었다. 승지 유용근 공서린·주서(注書) 심사손(沈思遜)·한림(翰林) 조언경(曺彦卿) 등이 전상(殿上)에 시립(侍立)해 있다가 장막 안을 바라보니, 요기(溺器)046) 가 분명히 보였는데도 사은례(謝恩禮)를 행한 뒤에 당(瑭)이 당찬(堂饌)을 그 가운데서 먹었다. 이때 공조 판서 김극핍(金克愊)·지중추부사 임유겸(任由謙) 및 종친(宗親)·문무 백관이 잡류(雜類)와 한데 섞여 궐정(闕庭)으로 들어와서는 두다리를 뻗고 앉기도 하고 무릎을 세우고 쭈그리기도 한 채 어로(御路)와 어간(御間)에 어지러이 앉았으며, 그 중에도 서로 읍(揖)하면서 출입하는 자도 있었고 무릎꿇고 절하면서 사례(私禮)를 하는 자도 있었으니, 모두 위(位)를 지날 적에는 색발(色勃)047) 해야 한다는 공경을 모르는 짓이다. 승지 공서린도 족생(族生)에 입격자가 있었는데 전에서 내려가 추사(搊謝)한 것이 두 번이었으며, 유용근도 그랬다. 방방(放榜)을 받는 유생들도 거개 느릿느릿 종용히 걷는 자가 많았는가 하면 부채를 흔들면서 여기저기 돌아보기도 하여, 전문(殿門)으로 들어오기를 마치 장옥(場屋)의 문을 들어가듯 하였다. 아, 예(禮)를 강(講)하지 않은 지가 오래라, 어찌 아이들의 소위에 가깝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는 자들은 더욱 안당이 대신의 체통을 모르는 것을 웃었는데, 뒤에 과연 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509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역사-사학(史學) / 풍속-예속(禮俗) / 왕실-종사(宗社)
- [註 045]방방(放榜) : 과거(科擧)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직접 증서(證書)을 주던 일을 말한다.
- [註 046]
요기(溺器) : 오줌통.- [註 047]
위(位)를 지날 적에는 색발(色勃) : 얼굴빛이 긴장된 모습을 말하는데,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임금이 앉는 자리를 지날적에는 얼굴빛이 긴장되었다." 하였다.○丙戌/以權停例, 放生員、進士榜。
【史臣曰: "國俗多有苟且之習。 自古生員、進士及文、武科放榜時, 其族類或引朋友, 而相與拜謝於後行, 無復有禮, 紊亂顚倒者久矣。 及至是日, 右議政安瑭以其子處謹中進士, 使堂吏設帳幕於勤政門御間之傍, 正與御榻相對, 而承旨柳庸謹、孔瑞麟、注書沈思遜、翰林曺彦卿等, 侍殿上, 望見褰帷之內, 溺器甚分明焉, 行謝恩後, 瑭食堂饌於其中。 時工曹判書金克愊、知中樞府事任由謙及宗親文武官, 洎雜類坌入闕庭, 或箕或蹲, 亂坐御路、御間, 而其中有相揖出入者, 有拜跪私禮者, 皆不知過位色勃之敬也。 承旨孔瑞麟, 亦有族生入格者, 下殿趨謝者再, 柳庸謹亦如之, 其應榜儒生, 率多緩步從容, 或揮扇狼顧, 入殿門, 反似場屋入門者。 吁! 禮之不講, 久矣。 安得不近於群兒之所爲乎? 見者尤笑安瑭不知大臣之體, 後果被憲府之劾焉。"】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509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역사-사학(史學) / 풍속-예속(禮俗) / 왕실-종사(宗社)
- [註 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