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강에서 대신을 중하게 대우하는 문제와 덕행을 앞세워 사람을 등용해야 함을 아뢰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참찬관(參贊官) 권벌(權橃)이 아뢰기를,
"임금과 신하의 사이를 머리와 팔다리에 비기고 또 아버지와 아들에게 비기는 것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 화기(和氣)가 합치, 서로 의지하여 잘 조화된 뒤에야 신하가 사체(四體)를 펼 수 있고 따라서 치화(治化)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래 대신(大臣)이 아뢰는 일에 대하여 윤허(允許)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대신이 아뢰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아뢰지 못합니다. 모름지기 대신을 중하게 대우(待遇)하여 의저(疑阻)가 없게 해야 합니다. 만약 대신을 중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치체(治體)를 세울 수 없으므로, 대신의 죄를 다스리는 것이 비관(卑官)과 다른 것입니다. 최숙생(崔淑生)은 찬성으로서 죄를 지었으므로 조율(照律)하여 입계(入啓), 율(律)에 따라 과단(科斷)하였는데, 과연 죄가 있다면 마땅합니다. 그러나 찬성은 삼공(三公)의 버금가는 자인데 고신(告身)을 수탈한 것은 신의 뜻에는 미안하게 여겨집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과연 합당하다. 최숙생의 일은, 처음에 대간이 추문(推問)하지 않고 파직(罷職)할 것으로 아뢰었으므로 조율할 적에 공사(公事)019) 에 의하여 결단하였으나, 내 뜻에도 지나쳤다고 생각하였다."
하매, 시강관(侍講官) 박세희(朴世熹)가 아뢰기를,
"권벌의 아뢴 말이 옳습니다. 천기(天氣)는 아래로 내려오고 지기(地氣)는 위로 올라가서 천기와 지기가 교태(交泰)020) 된 뒤에야 만물이 육성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임금과 신하의 정의(情意)가 합치된 뒤에야 치도(治道)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최숙생의 일은 과연 너무 지나쳤습니다. 근래 상께서 신하를 대우하심이 간측(懇惻)하고 치도에 대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계시는데도, 오히려 대신이 포부(抱負)를 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상의 추성(推誠)에 미진함이 있어서인가 합니다. 성종조(成宗朝)에는 아랫사람을 접할 적에 외모(外貌)로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사(才士)가 모두 총애를 받았으며, 그들을 지성으로 대우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여 사모하고 있습니다. 숙생은 선비로서 용심(用心)이 매우 정직한데, 단 그가 이공(貳公)021) 의 홍화(弘化)022) 하는 지위에 합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사은사(謝恩使)로 임명되었을 때 두 번이나 사퇴하였으니, 신하된 사람으로서는 모두 용서할 수 없다고 책할 수 있거니와 상께서 대우하는 도리에 있어서 야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권벌은 아뢰기를,
"사람을 쓰는 데는 덕행(德行)을 앞세우고 문예(文藝)를 뒤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입장에서는 백공(百工)의 기술도 폐할 수 없는 것이거든, 하물며 문예는 국가에서 긴절하게 써야 되는 것임에리까! 비록 덕행과 대등하게 할 수는 없으나 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종조 적에는 장의사(藏義寺)를 독서당(讀書堂)으로 만들어 유사(儒士)에게 글을 읽게 하였는데, 일찍이 정조(正朝)023) 에 명하여 선온(宣醞)하였으나 그곳에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법사(法司)에서 추문할 것을 청하매 추문하지 말라고 명하고 다시 선온하였으며, 또 잠두(蠶頭) 【지명(地名).】 에 주육(酒肉)과 여악을 하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즐기게 하였습니다. 여악이 비록 음예(淫穢)한 것 같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아름다운 성사(盛事)라 일컬으면서 많이들 감격하였습니다. 근래 흉년으로 인하여 경사(京師)로 가는 사신에게 잔치 내리는 것을 오랫동안 폐하였으니, 중하게 대우하는 간측한 뜻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랫사람을 대우하는 도리는 마땅히 지성으로 해야 합니다. 하찮은 관직(官職)에 있는 사람이라도 착한 사람이 죽으면 모름지기 애석한 뜻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고, 검토관(檢討官) 구수복(具壽福)은 아뢰기를,
"지성으로 아랫사람을 대우해야 한다는 뜻은 아뢴 내용이 지당합니다. 사인(舍人) 이우(李佑)는 지위가 시종·대간이 참여되었으되 집 살림은 매우 곤궁하여 그 처자가 의뢰할 바가 없었으며, 우(佑)가 죽자 아직까지 염장(斂葬)을 못하고 있으니 매우 슬프고도 딱한 일입니다."
하니, 상이 부의(賻儀)를 내리라고 명하였으며, 또 숙생(淑生)의 직첩(職牒)도 돌려주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0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註 019]공사(公事) : 공무(公務)에 관한 사안(事案).
- [註 020]
교태(交泰) : 음양(陰陽)이 조화(調和)되는 것.- [註 021]
○癸酉/御夕講。 參贊官權橃曰: "君臣之間, 比之於元首股肱, 而又比於父子。 蓋君臣兩間, 和氣脗合, 相須以成, 然後爲臣者, 得以展布四體, 而治化可以成矣。 近來大臣所啓之事, 多不允可, 以此大臣雖有欲啓而不果。 須重待大臣, 使無疑阻, 可也。 若不重待大臣, 則治體無以立矣。 治大臣之罪, 與卑官異。 崔淑生以贊成作罪, 照律入啓, 則依律科斷, 果有罪則當矣, 然贊成, 乃亞於三公者也。 收奪告身, 於臣意有所未安也。" 上曰: "此言果當矣。 崔淑生事, 其初臺諫, 啓以不推而罷, 故其照律也, 依公事斷之, 予意亦以爲過矣。" 侍講官朴世熹曰: "權橃所啓之言, 是矣。 天氣下降, 地氣上昇, 而天地交泰, 然後萬物成焉; 君臣情意相合, 然後治道立矣。 崔淑生事, 果太過。 邇來上之待臣下懇惻, 而勵精治道, 然猶大臣, 不得展布者, 恐上之推誠有未盡也。 成宗朝, 接下不以外貌, 才士皆被寵愛, 而待以至誠, 故人皆感慕。 淑生乃儒者, 而用心頗正, 但未知果合於貳公弘化之地也。 其爲謝恩使也, 辭之至再, 爲臣下者, 皆當責之, 不可容恕, 然在上待之之道, 不可薄也。" 權橃曰: "用人固當以德行爲先, 而以文藝爲後。 然國家雖百工之技, 尙不可廢, 況文藝國家之所切用乎? 雖不可與德行竝, 而不可廢者也。 在成宗朝, 以藏義寺爲讀書堂, 令儒士讀書, 而嘗於正朝, 命宣醞, 則無一人存者。 法司請推之, 命勿推, 更宣醞。 又於蠶頭, 【地名。】 賜酒肉與女樂, 使之娛遊。 女樂雖似淫穢, 一時之人, 望風稱美, 以爲盛事, 而多有感激焉。 近因年凶, 京使久廢賜宴, 似無重待懇惻之意。 待下之道, 當以至誠, 可也。 且雖微官, 善人死, 則須示以愛惜之意, 至美也。" 檢討官具壽福曰: "以至誠待下之意, 啓意至當。 舍人李佑, 得與於侍從、臺諫, 而居家窮甚, 其妻子無所聊賴。 佑之死也, 尙不得歛葬, 甚可悼惜。" 上命致賻, 又命還給淑生職牒。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50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 [註 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