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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34권, 중종 13년 11월 4일 경자 1번째기사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석강에 나아가니, 仁에 대하여 논하다

석강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인(仁)이란 것은 사심(私心)이 없이 천리(天理)에 합하는 것이다. 안자(顔子)는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지난 사람이 없으므로, 이것으로써 오래다고 하는 것인가?"

하매, 참찬관 조광조가 아뢰기를,

"안자(顔子)가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은 이 때를 지난 뒤에는 곧 어긴다는 말이 아니라, 사념(私念)이 있되 잠깐 있다가 곧 천리로 돌아와서 오래도록 끊김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릇 인심이 천리에 합하지 않고 털끝만큼이라도 사념이 끼게 되면 인이 아닙니다. 대저 인(仁)은 입으로 형언(形言)할 수 없는 것인데, 약간 옳은 것을 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를 극진히 하여 조금도 사사롭고 사특한 마음이 없어야 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孔子)의 문하에 다니는 제자 중에 어진이가 진실로 많았는데, 안회(顔回) 한 사람만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다 한 것은, 인이 큼을 말한 것입니다. 적연(寂然)히 움직이지 않을 때에도 환하게 맑고, 일에 응할 적에도 천리에 합하는 것이 곧 인입니다."

하고, 최명창(崔命昌)이 아뢰기를,

"송(宋)나라 때에 조개(趙槪)란 이가 있었는데, 선한 마음이 나면 누른 콩을 놓아 두고 악한 마음이 나면 검은 콩을 놓아 두었으니, 이와 같이 한 것은 그 악한 마음을 끊어버리고 선한 마음을 자라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고, 조광조가 아뢰기를,

"이는 마음을 쓰지 아니하는 자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치우쳐서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있으면 이미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비록 광대 관평(廣大寬平)하여 몸이 항상 한가롭고 너그럽더라도 마음 가지는 방법은 경(敬)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敬)으로써 을 비루기만 하려 하면 곡식의 심을 뽑아서 성장을 돕는 것과 같은 폐단을 면하지 못하니, 마땅히 엄한 가운데 너그러움이 있고 너그러운 가운데 기름[養]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예(禮)와 악(樂)은 잠시도 몸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충성스럽고 지조 있는 선비가 화를 당하여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인(仁)을 좋아하고 차마 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성인은 교화(敎化)를 밝히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사람이 강상(綱常)의 중요함을 알면 국가의 원기(元氣)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대저 사람은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났으므로 오직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만 있을 뿐이니, 천리(天理)가 애초에 어찌 악함이 있겠습니까? 다만 기품(氣稟)이 같지 않아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고식적(姑息的)이고 나약(懦弱)함은 인(仁)에서 틀린 것이고 포학하고 사나움은 의(義)에서 틀린 것이고, 아첨하고 지나치게 공손함은 예(禮)에서 틀린 것이고, 간휼(奸譎)하고 궤사(詭詐)함은 지(智)에서 틀린 것입니다. 이치는 더욱 미약한데 기(氣)는 더욱 성하므로 언제나 선한 사람이 적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옛사람의 말에 ‘안자(顔子)와 같이 되려고 희망하는 것은 안자의 무리이다.’ 하였으니, 마음씀이 강(剛)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마음씀이 강하면 선을 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도 후세의 사람은 기질이 어둡고 게으릅니다. 신(臣)과 같은 사람도 맑은 밤 고요한 속에서는 지기(志氣)가 청명(淸明)할 때가 있습니다. 진실로 바르게 길러서 잃어버리지 않으면 옛사람도 바랄 수 있으나, 마음씀이 강하지 않으면 이튿날에 가서 반드시 분요(紛擾)해집니다. 이러므로 임금은 모름지기 교화를 밝혀 사람으로 하여금 정학(正學)을 높이고 예의(禮義)를 힘쓰게 하여 평시에는 정치를 보좌하고 교화를 받들며, 난시에 임해서는 절의(節義)를 알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에 폐조(廢朝)의 정치가 어지러울 적에 바루는 사람이 없어서 성종께서 배양(培養)한 이 이 때에 와서 없어졌으니, 대개 살육(殺戮)이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최명창이 아뢰기를,

"각기 제몸만 위하여 화를 두려워하고, 심한 자는 훼방(毁謗)을 듣지 않으려고 피하려고 하니, 이미 이렇게 되매 어찌 그 임금에게 거스리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녹만 받아먹고 구차하게 용납하는 자가 많고 충심으로 나라를 돕는 자가 적게 되면 나라가 반드시 위망하게 될 것입니다. 세종조에 사기(士氣)를 배양하였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효과가 따라서 나타났고, 성종조에 이르러서는 함께 성종의 성명(聖明)하심을 믿고 언론이 격렬하였습니다. 성종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를 믿고 그러는 것이나 후에 반드시 나를 생각할 것이다.’ 하셨는데, 과연 폐조(廢朝)에 이르러 주살(誅殺)하여 거의 다 없애버리고 사기가 쓸어버린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조(聖朝)를 만나 선비들이 다 전일의 화를 잊어버리고 분려(奮勵)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전의 습관이 다 없어졌다고 하겠습니까? 모름지기 크게 향방(向方)을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조광조가 아뢰기를,

"기절(氣節)만 숭상하고 의(義)로서 도와가지 않으면, 그 기절이 정리(正理)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붕우(朋友)·장유(長幼)의 차례를 살펴 알게 되면, 훗날 비록 대변(大變)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국가의 위망을 부지(扶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간절하게 매양 이것으로써 아뢰는 것이 번거로운 듯하오나, 이는 우리 나라의 고칠 수 없는 병통인데, 만약 분연(奮然)히 구제하여 바로잡지 않으면 끝내 다스릴 수 없습니다. 또 요즘 아랫사람들은 학문을 하려 하여도 같이 강명(講明)할 만한 밝은 스승이나 좋은 벗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경연(經筵)에서의 의론도 다름이 있으니, 이는 학문이 밝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회를 얻기가 매우 어려우니,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옛날 사람의 제술(製述)을 뽑아 적어서 과거에 오르는 학문으로 삼고, 과거에 오르게 되어서는 직무에 구애되어 또 학문할 여가가 없습니다. 성학(聖學)은 날로 고명(高明)해지시는데, 시강(侍講)의 반열에 있는 이로는 학문하는 이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성리대전(性理大全)》은 체용(體用)과 본말(本末)이 다 갖추어져서, 천문 지리(天文地理)·예악 법제(禮樂法制)·성명 도덕(性命道德)의 이치와 역대 군신의 현부(賢否)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진실로 이에 밝으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은 다른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원기도 그제야 일어설 것입니다. 전에 이 책을 진강(進講)하려 하였으나, 강해(講解)할 사람이 없으므로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만약 성품이 적합한 문관(文官)을 가려 부지런히 강독하게 하면 반드시 그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요즘 이문(夷文)·한어(漢語) 같은 것은 다만 공장(工匠)의 일과 같아서 학문으로 논할 수 없는데도 강독(講讀)과 제술(製述)에 부지런하지 않은 자는 추핵(推劾)을 당하기까지 하는데, 하물며 이것이겠습니까? 그리고 강독할 즈음에 또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겠습니까? 김안국·이자(李耔)·김정 등을 모두 모아서 질의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관름(官廩)을 소비해 가면서 모으게 되면 폐해가 많을 것이니, 항상 그 집에서 강론하게 하고 한 달 안에 으레 세 번 홍문관에 모여서 논란하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의견이 매우 좋으니 정밀하게 가려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62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48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윤리-강상(綱常) / 어문학-어학(語學) / 출판-서책(書冊)

○庚子/御夕講。 上曰: "仁者, 無私心, 合天理。 顔子三月不違, 其無過於此者, 而以是爲久乎?" 參贊官趙光祖曰: "顔子之三月不違, 非謂過此後便違, 蓋有私念耳。 乍有而旋卽還歸於天理, 非久有間斷也。 凡人心不合於天理, 有一毫私念間之, 則便非仁也。 夫仁不可以口形言, 非以稍是者, 謂之仁, 極盡天理, 略無私邪, 方可謂之仁也。 門弟子, 賢者固多, 而只一也。 三月不違云, 蓋言仁之爲大也。 於寂然不動時, 惺惺然澄澈, 至應事也, 亦合天理, 斯乃仁也。" 崔命昌曰: "時有趙槪者, 善念生, 則置黃豆; 惡念生, 則置黑豆。 如此者, 蓋欲絶其惡念, 而長其善念也。" 光祖曰: "此與無所用心者有間矣。 然有所偏著, 已有病矣。 心雖廣大寬平, 而體常舒泰。 持心之方, 莫先乎敬, 而但欲以敬直內, 則未免有揠苗助長之弊。 當使嚴中有泰, 泰中有養可也。 此所謂禮樂不可斯須去身者也。 自古忠志之士, 雖見禍而無悔者, 知仁之可好, 而不忍爲惡也。 是故聖人貴乎明敎化, 人知綱常之重, 則國家元氣, 在乎此矣。 夫人受天地之氣以生, 只有仁義禮智之德, 天理初豈有惡哉? 但氣稟不齊, 乃有差焉。 姑息懦弱, 仁之差也, 暴虐厲猛, 義之差也; 諂諛過恭, 禮之差也; 奸譎詭詐, 智之差也。 理愈微而氣愈勝, 故善人常少, 不善者常多。 古人云: ‘希徒。’ 要在用心剛, 用心剛。 則爲善不難, 而後世之人, 氣質昏惰。 如臣者, 亦於淸夜潛寂之中, 有志氣淸明之時矣。 苟能正養而不失, 則古人可希, 而用心不剛, 至於明日, 必復紛擾矣。 是以人主須明敎化, 使人崇正學務禮義, 在平時則輔理承化, 臨亂則知節義矣。 向者廢朝擾攘紛亂之際, 未曾有格止之者。 成廟培養之功, 至此泯焉, 蓋亦以殺戮慘酷故也。" 命昌曰: "各私其身, 怵於禍福, 甚者欲免毁謗而規避之。 旣如是, 則豈復有欲咈於其君者哉? 持祿苟容者多, 赤心輔國者少, 則國必危亡矣。 其在世宗朝培養士氣, 未幾而成效隨著, 至成宗朝, 共恃聖明, 言論激烈。 成宗嘗曰: ‘此乃恃我而然, 後必思予。’果至廢朝, 誅殺殆盡, 士氣掃地。 幸値聖朝, 士皆忘前日之禍, 而莫不奮勵, 然豈曰盡無前習? 須大示向方, 可也。" 光祖曰: "徒尙氣節, 而不濟以義, 則其爲氣節, 不出於正理。 若察得君臣、父子、夫婦、朋友、長幼之倫, 則他日雖値大變, 必能扶持國家之危亡矣。 臣眷眷每以此啓者, 似乎煩瀆, 而但以此乃我國膏肓之疾, 若不奮然以救正, 則終難愈矣。 且今者下人, 雖欲爲學問, 而無明師、良友, 可與講明, 以是於經筵之上, 議論亦有異同。 此未必不由學問之不明矣。 得此機會甚難, 時不可失也。 今世之人, 自口尙乳臭, 抄書古製, 以爲決科之學, 及至登第, 牽於職務, 又不暇學問, 聖學日以高明, 而在侍講之列者, 奈無學問何? 《性理大全》之爲書, 體用該備, 本末畢具, 天文地理、禮樂法制、性命道德之理、歷代君臣賢否, 靡不備具, 苟明乎此, 則治世之方不待乎外, 而元氣於是乎立矣。 頃者欲進講此書, 無講解者, 故不果矣。 今若擇性近文官, 使勤於講讀, 則必有其效矣。 今者如吏文、漢語, 只似工匠之事, 不可論以學問, 而不勤於讀製者, 至被推劾, 況於此乎? 且講讀之際, 又豈有常師哉? 如金安國李耔金淨等輩, 幷令會而質疑, 可也。 若費官廩而聚會, 則爲弊多矣。 常令講論於其家, 而一月之內, 例使三會于弘文館論難。 金湜, 學問甚精, 亦使參之。 如天文、律呂妙奧之理, 必多有曉解處。" 上曰: "此意甚善。 其精擇爲之。"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62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48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윤리-강상(綱常) / 어문학-어학(語學)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