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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4권, 중종 13년 8월 17일 갑신 1번째기사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사정전에 나아가 방어사 이지방을 보내는 일로 조광조와 유담년 등이 쟁론하다

상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방어사 이지방을 인견(引見)하였는데 영의정 정광필·우의정 안당·병조 판서 유담년도 명패(命牌)로 부름을 받고 들어와 있었다. 부제학 조광조가 마침 숙배(肅拜)하러 예궐(詣闕)하였다가 장차 방어사를 보내려 한다는 말을 듣고 ‘가벼이 의논해서는 불가하다.’ 하므로, 상이 곧 불러들이니, 광조가 아뢰기를,

"이 일은 묘당 대신(廟堂大臣)과 지변사 재상(知邊事宰相)이 이미 자세히 의논하여 처리한 것이므로 신처럼 오활(迂闊)한 유자(儒者)가 가벼이 의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일은 작은 듯하나 실로 큰 것이니, 신은 이것 때문에 변방에 일이 일어나는 조짐이 될까 두렵습니다. 속고내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제왕(帝王)의 거동은 만전해야 합니다. 반드시 사리가 바른 뒤에 거행해야 합니다. 지금 속고내가 모역하는 마음이 없고 다만 사냥하러 왔을 뿐인데, 우리가 불의에 엄습하여 사로잡으려 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은 일은 변장이 혹 편의로 처리하였더라도 불가한데, 만약 조정에서 스스로 도적의 꾀를 행하여 재상을 보내어 엄습한다면 의리에 어떻겠습니까? 만약 사로잡았다가 속고내가 아니면 그 걱정거리가 장차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오, 참으로 속고내라 하더라도 만약 죄가 있다면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지금 변경에 요란을 피운 것이 아닌데 몰래 군사를 내어 엄습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합니다. 비록 장수를 보내더라도 사로잡지 못하면 호인(胡人)이 반드시 우리를 믿지 아니하고 간사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옳다. 만약 속고내가 지금 와서 변경을 요란하게 하면 사로잡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냥하러 왔는데, 도적의 꾀를 행하여 엄습해서 사로잡는 것이 사체에 어떻겠는가?"

하매, 정광필이 아뢰기를,

"조광조의 말은 참으로 유자(儒者)의 지극한 말입니다. 그러나 삼대(三代) 이후로 변방 일을 처치하는 데에 한결같이 제왕(帝王)의 도를 따르지 못하였으니, 지금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조광조가 아뢰기를,

"전쟁의 기회도 또한 한마음에 있을 뿐입니다. 옛날 제왕이 이적(夷狄)을 대함에 있어서 도(道)에 맞게 하는 것도 반드시 친히 그곳을 가 보고서 안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다 인(仁)과 의(義)로 한 데 불가합니다. 그리고 올해 북방에 서리가 일찍 와서 농사 수확이 전혀 없으니, 만약 변경의 환란을 만나면 반드시 제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자(王者)가 이적을 대하는 데는 변경을 충실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하여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저들이 먼저 변경을 요란하게 하여 적이 우리에게 침범하면 부득이 대응하되, 서서히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본디 사리에 마땅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의 병력을 살피고 헤아려야 하며 가벼이 움직여서는 불가한데, 하물며 명분없는 거사임에리까? 비록 주장합이 이 거사로 인하여 스스로 징치될 수 있다 하나, 아마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듯합니다. 옛날 성종조에 만포 첨사 허혼(許混)이 사냥하는 오랑캐를 몰래 사로잡았더니, 이로 인하여 수십여 년 동안 변방의 근심이 그치지 않아서 백성들이 그 폐해를 받게 되므로, 성종께서 허혼을 베어서 앞으로 올 일을 징계하셨습니다. 지금 조정에서 대신을 보내어 숲속에서 오랑캐를 엄습하여, 사기의 술책을 가지고 도적의 방법을 행하니 국가의 사체에 어떻겠습니까? 신은 변방의 일만 일으키고 국가의 체면만 크게 상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하자, 유담년이 버럭 화를 내어 소리를 지르며 아뢰기를,

"일이 만약 처리를 잘못하면 과연 사단이 생기겠지만, 그러나 옛말에 ‘밭가는 일은 종에게 물어야 하고 베짜는 일은 여종에게 물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은 신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조광조의 말도 또한 깊은 뜻이 있으며, 일이 매우 가볍지 않으니 가벼이 움직일 수 없다. 정부 및 지변사재상을 다시 모아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473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甲申/上御思政殿, 引見防禦使李之芳。 於是領議政鄭光弼、右議政安瑭、兵曹判書柳聃年亦在。 命召副提學趙光祖, 適以肅拜詣闕, 聞將遣防禦使, 以爲不可輕議。 上卽召入, 光祖曰: "此廟堂大臣與知邊事宰相, 業已詳議而處之者, 非如臣迂闊儒者所得輕議也。 然此機會, 似小而實大。 臣恐邊事將作, 是爲之兆。 束古乃之有罪與否, 則未之知也, 但帝王之擧動, 在萬全。 必須理直, 然後事可擧也。 今者束古乃, 無有心謀, 只爲獵獸而來, 我乃邀擒於不意。 如此等事, 邊將雖或便宜以處, 亦爲不可。 若由朝廷自行盜賊之謀, 遣宰相爲掩襲之事, 於義爲何如乎? 若擒之而非束古乃, 則其爲患, 將有不可勝言者矣。 雖眞束古乃, 而若以爲有罪, 則當興問罪之師也。 今非梗於邊境, 而潛師掩擄, 是誠不可。 雖遣將而不得擒, 則胡人必不信於我, 以爲詐譎也。" 上曰: "斯言是也。 若束古乃今來擾邊, 則擄之猶可也, 但因山行而來, 行盜賊之謀而掩擄, 爲何如哉?" 光弼曰: "此眞儒者之至言也。 但自三代以下, 處置邊事, 不得一從帝王之道也。 今無乃可遣乎?" 光祖曰: "兵機亦在於一心而已。 古昔帝王之待夷狄, 得其道者, 不必親履其地而後知之。 然凡事皆不過仁義而已。 且今年北方早霜, 農收專歉。 如遇邊患, 必不得制也。 王者之待夷狄, 當實邊寬民, 使不生事, 而彼若先事擾邊, 敵加於己, 不得已而應之, 徐興問罪之師, 固當於理也。 然猶審度我兵力, 不可輕動, 況無名之擧乎? 雖曰住張哈, 可因此擧而自戢, 恐未必然也。 昔在成宗朝, 滿浦僉使許混, 潛擒山行之虜, 因此數十餘年, 邊患不息, 民罹其害, 成宗, 以懲後來。 今者自朝廷遣大臣, 邀虜於草莽之間, 挾欺詐之術, 行盜賊之謀, 於國事何如? 臣恐徒生邊事, 重傷國體也。" 聃年拂然厲聲曰: "事若失處, 果可生事, 然古云: ‘耕當問奴, 織當問婢。’若此之事, 當聽臣之言也。" 傳曰: "光祖之言, 亦有深意。 事甚非輕, 不可輕動。 可更會政府及知邊事六卿而議之。"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473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