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33권, 중종 13년 6월 19일 정해 2번째기사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직산현에서 한 선비로부터 받은 시폐에 관한 글을 홍문관 응교 한충이 아뢰다

홍문관 응교 한충(韓忠)청주(淸州)로부터 돌아올 때 직산현(稷山縣)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서 어떤 선비를 만나 함께 이야기하면서 진위현(振威縣)까지 와서 같이 잤다. 그 선비가 종이 한 장을 주었는데 시폐(時弊)를 대강 이야기한 것이었다. 한충이 그 종이를 받아가지고 와서 위에 올리니 ‘친히 아뢰라.’고 명하므로, 한충이 그 글을 가지고 나아가 아뢰기를,

"신이 직산 지경에 이르니, 어떤 사람이 길가에 섰다가 신과 이야기를 하자 하므로 신이 말에서 내려 예(禮)를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본시 유생(儒生)인데 초야(草野)에 있으면서 조정의 잘못을 좀 들었다. 그러나 감히 진달(陳達)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이제 시종인(侍從人)이 이 지경을 지난다는 말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하여 이렇게 온 것이다.’ 하면서 이 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명(姓名)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그후에 충청 감사(忠淸監司)가 수소문해서 찾아보니, 그는 곧 유학(幼學) 권탁(權鐸)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본시 음사(淫邪)한 사람으로 학술(學術)은 조금도 볼 것이 없는 위인이었다. 폐조(廢朝) 때에 숙원(淑媛) 장녹수(張綠水)의 집에 출입하면서 그 집의 뒤를 돌봐주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유생들에게도 용납되지 않았고 모든 사람에게 따돌림을 당한 지도 오래되었었다. 평범한 사람이 보아도 눈에 차지 않는 위인이요, 한충도 들은 얘기가 없지도 않았을 터인데, 망령되게 상께 아뢰어 이리저리 찾게 하는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으니, 당세와 후인(後人)에게 죄를 면할 수 있을까?

한충의 말을 듣고〉 상은 웃으면서 그 글을 받아 곧 펴보고 이르기를,

"뜻이 있는 선비는 반드시 그의 회포를 말하는 것이다. 글 가운데에 있는 제향(祭享)·환관(宦官)·부부(夫婦)에 관한 일은 유래가 이미 오래된 것이라 졸연히 고칠 수 없다."

하매, 참찬관 권벌이 아뢰기를,

"그가 지은 문자(文字)를 보니 그는 글에 능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태일전(太一殿)314) 에 관한 일은 전조(前朝) 때의 폐습을 그냥 답습하는 것이지 조종조(祖宗朝)에서 창설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의논이 한결같지 않으니 상께서 결단하심이 옳겠습니다. 이 사람이 이름을 대지 않았으니 매우 취할 만한 사람입니다."

하고, 한충이 아뢰기를,

"신이 보니 충청 감사(忠淸監司)가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간인(刊印)해서 그 지방의 연소한 선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이 모두 시비(是非)와 호오(好惡)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소민(小民)들도 모두 악한 짓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아무개는 부모에게 불효하다.’ ‘아무개는 그 형에게 불공하다.’ 하면서 배척하여 동류에 끼워주기를 싫어합니다. 신이 고로(古老)에게 물으니 ‘예전에는 조정에서 「방금 선도(善道)를 흥기시킨다.」고 말한 경우에도 그 효과를 본 일이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조정에서 한 일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감사(監司)가 또 한 고을에서 추앙받는 노숙(老宿)을 뽑아 도약정(都約正)·부약정(副約正)을 삼고 그 고을을 교화(敎化)하게 하고 있는데, 풍속을 선도하고 백성을 바로잡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법이 없습니다. 신이 시골에서 아이들이 읽는 《향약(鄕約)》을 보니 곧 김안국(金安國)이 교정(校正)한 언해본(諺解本)이었습니다. 이것을 널리 인출하여 팔도(八道)에 반포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권벌이 아뢰기를,

"김수돈(金守敦)은 강개(慷慨)한 사람으로 폐조 때에 세상을 분개하다가 심증(心證)315) 까지 얻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疏)는 취할 만한 것이 있는데, 상께서 단지 한 번만 보시고 내려보내신다면, 이는 자못 구언(求言)한 뜻이 아닙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3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5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출판-서책(書冊)

  • [註 314]
    태일전(太一殿) : 도교(道敎)의 태일(太一)을 제사지내는 전각.
  • [註 315]
    심증(心證) : 마음의 병.

○弘文館應敎韓忠, 自淸州還, 至於稷山縣境, 路傍遇一士, 相與邀語, 因偕至振威縣宿。 其人乃與一紙, 略言時弊。 韓忠受之而來上達, 命親啓, 韓忠手持其書而進曰: "臣至稷山境, 有一人立路傍, 要與語, 臣下馬禮之則曰: ‘我本儒生, 在草野。 竊聞朝廷之失, 不敢陳達, 今聞侍從之人過境, 欲言其所懷而來耳’, 仍授此書。 問姓名, 皆不言。"

【史臣曰: "厥後忠淸監司訪問求之, 則乃幼學權鐸稱名人也。 性本淫邪, 小無學術。 在廢朝, 出入淑媛綠水家, 掌紀理之任, 不容於儒輩, 人人唾棄久矣。 雖使庸流見之, 固不滿于眼矣, 非不有所聞, 而(罔)〔妄〕 陳于上, 俾物色旁求, 聳動見聞, 其能逃當世與後人之罪乎?"】

上笑而受其書, 卽披見曰: "有志之士, 必陳其懷抱也。 如書中祭享、宦官、夫婦事, 其來已久, 不可卒變也。" 參贊官權橃曰: "見其所作文字, 蓋能文者也。 太一殿事, 乃前朝之弊習, 而因循之也, 非祖宗朝所創設也。 今之議論, 不歸于一, 而可獨斷宸衷也。 此人不言其名, 甚可取也。 韓忠曰: "臣見忠淸監司, 刊印《呂氏鄕約》, 以敎鄕中年少之士。 以故士皆知是非好惡之所趣。 雖蠢蠢之民, 皆知爲惡之可惡, 乃曰: ‘某也不孝於其父母, 某也不弟於其兄’, 皆欲斥而不齒。 臣問古老則曰: ‘向者朝廷雖曰方興善道, 而猶未見其效, 今而後知朝廷之所爲也。’ 監司又擇其耆老, 爲一鄕之所推者, 爲都約正、副約正, 以興勵一鄕。 其所以善俗作民之道, 無過於此。 臣見鄕中小兒所讀《鄕約》, 乃金安國所校諺解者也。 須廣印《鄕約》, 頒于八道可也。" 權橃曰: "金守敦, 憾慨之士也。 在廢朝, 憤世而因得心證, 其疏可取。 自上只經一覽而下之, 甚非求言之意。"


  • 【태백산사고본】 17책 33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5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