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에 나아가서 종친의 윤대와 천거인의 소견 문제로 의논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지평 임권(任權)이 강하던 글에 임하여 아뢰기를,
"소위 상참관 전대(常參官轉對)라고 하는 것은 곧 지금의 윤대(輪對)입니다. 지금 종친의 숫자가 거의 오백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 어찌 회포를 말하고자 하는 이가 없겠으며, 또 어찌 국가에 유익함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지난번 경연에서 종친의 윤대에 관한 일을 아뢰었던 것인데, 다만 조종조의 구례(舊例)가 아닌 까닭에 어렵게 생각하여 행하지 아니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천거를 받고 올라온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둘이 아닌데, 기왕 분부를 내려 불러온 것이니 불시에 소대(召對)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들의 회포도 들어 보고 언어 동작도 대강 훑어볼 수가 있을 것인데 상께서는 어찌 인견(引見)하고자 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하면 초야(草野)에서 애써 수신(修身)하면서 품고 있던 생각을 숨김없이 피력하려 할 것이니, 인재를 길러 내고 흥기(興起)하는 데 있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단지 백집사(百執事)의 반열에만 끼어두고 그의 회포를 아뢸 길이 없게 한다면 그 마음이 진실로 쾌하지 못할 것이니, 당초에 천거하게 한 본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종조에서 종친을 임용하지 않은 것이 어찌 딴뜻이 있겠느냐? 일을 맡겼다가 혹 실수가 있을 때에 죄를 주고자 하면 은의(恩義)를 상하지 아니할 수 없고 또 죄를 주지 않으면 이는 법을 폐하는 것이라, 이 때문에 일을 맡기지 않았던 것이다. 윤대는 지난번에 경연에서도 말이 있었기 때문에 대신에게 물었더니 대신이 ‘구례(舊例)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모든 사람을 다 입대(入對)하게 할 수는 없다 해도, 그 가운데 학문과 식견이 있는 이를 택해서 윤대하게 함이 옳다."
하였다. 정광필이 아뢰기를,
"종친은 그 수가 무척 많은지라 인재를 고려한다면 혹 빠지는 수도 있기 때문에 아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종조의 성헌(成憲)을 하루아침에 고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요즈음 천거된 사람을 모두 역마를 타고 오게 하였는데 이는 큰 잘못입니다. 초야에 묻혀 있는 재행(才行)이 있는 사람에게 숭장(崇奬)하는 뜻을 보이지 않을 수는 없지마는, 모두 역마를 타고 오게 하면 분요가 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우 불가합니다. 그리고 천거된 자들을 모두 6품으로 올리는 것도 불가합니다. 조정에서 오랫동안 종사(從仕)한 사람이라 해도 한 번만 잘못이 있으면 그의 장점을 다 물리쳐버리고 마는데, 이제 천거된 사람들을 갑자기 6품직에 올려 놓은 뒤, 그들에게 약간의 잘못이 있게 되면 사람들은 반드시 이름을 도둑질한 자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심은 다른 사람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여 조그마한 잘못을 보아도 배척해 버리고자 하기 때문이니, 당초에 말직(末職)으로부터 순서를 따라 나아가면 남도 말이 없을 것이요, 그 사람도 마음이 편안할 것입니다."
하고, 시독관 윤자임(尹自任)은 아뢰기를,
"관작(官爵)은 질실로 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마는, 쓸 만한 인재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순자(循資)118) 가 중하다 하여 현우(賢愚)를 분간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국가의 복이 아닐 것입니다."
하고, 정광필이 아뢰기를,
"세종(世宗)께서 ‘내가 사람을 대우하는 도구로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관작뿐이다.’ 하시고 일자 일급(一資一級)도 매우 아깝게 여기셨습니다. 관작은 왕자(王者)가 진실로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백관에게 각각 한 자급을 더하였는데, 여기에는 현우(賢愚)가 섞여서 나아가는 폐가 있으니 백관에 대한 가자(加資)도 중대한 일입니다."
하고, 대사간 공서린(孔瑞麟)은 아뢰기를,
"대저 인물에는 차등이 있는 것이니, 차서를 뛰어서 써야 할 사람이 있고 순서를 따라 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하의 인물은 한 평생을 하료(下僚)에 침체되어 있는 경우도 고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연소한 무리들을 약간 쓸 만하다고 생각되면 갑자기 올려서 서용하니 여기에 무슨 분별이 있습니까? 대저 뽑아 쓸 만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서무(庶務)를 두루 맡겨서 그로 하여금 배우는 것이 있게 한 뒤라야 자기에게도 좋고 나라에도 유익할 것입니다. 신과 같은 사람은 한 가지 재예(才藝)도 볼만한 것이 없는데도 차서에 다라 옮기지 않고 불차(不次)119) 로 발탁이 되었으니 나라도 이익이 없고 마음에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은 위에서 명이 있었다 해도 전조(銓曹)가 마땅히 옳지 않은 일이라고 아뢰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래에 물망 있는 이가 또한 초탁(超擢)120) 이 되었으나, 이것은 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사림(士林)이 모두 경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진실로 그 자급(資級)을 따질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천거된 사람을 정부의 각사에 시험해 볼 수도 있지마는, 그러나 그들을 수령(守令)으로 쓰면, 반드시 볼 만한 실적이 있어서 특별히 조처할 바가 있게 될 것이니, 이들을 단지 주부(主簿)로만 쓸 것은 아니다."
하였다.
지사 남곤(南袞)이 아뢰기를,
"천거된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데 열읍(列邑)의 숫자는 많으니 어찌 그 수를 충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릇 훌륭한 사람은 마땅히 조정에 써야 합니다. 조정이 엄하고 밝으면 수령에 비록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해도 법을 두려워해서 감히 불의(不義)를 자행하지 못할 것이요, 따라서 백성은 저절로 실혜(實惠)를 입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조종조에서는 문신(文臣)으로 수령이 된 자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30여 인이나 됩니다. 이들이 서울에 있을 것 같으면 모두 큰 일을 맡을 만한 사람들이니, 안팎 경중(輕重)의 형편을 불가불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을 쓰는 데는 진실로 고정된 규정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장원(掌苑) 김식(金湜)이 물망이 있기 때문에 전조(銓曹)에서 지평(指平)에 의망(擬望)하기를 청하여 그대로 시켰는데, 이런 사람을 어찌 쉽게 얻을 수가 있겠느냐? 만약 혹 이런 사람이 있다면 평상의 규정대로만 쓸 수는 없는 것이다."
하였다. 특진관 김극핍이 아뢰기를,
"지난번에 김식도 또한 수령으로 삼으라고 명하셨는데, 이러한 사람을 조정에 쓰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난번에 좌의정 신용개가 ‘김식은 병이 있다.’ 하여 말한 것이지, 나의 본뜻이 아니다. 헌부(憲府)와 같은 데는 출신자(出身者)만 쓸 필요가 없다. 이제 지평이 된 것도 늦은 일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3권 8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43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118]
○御朝講。 持平任權臨文曰: "所謂常參官轉對者, 卽今輪對也。 今之宗親, 其數幾於五百, 其中豈無有懷欲陳者乎, 亦豈無有益於國哉? 故宗親輪對事, 前於經筵, 亦啓之矣, 但非祖宗朝舊例, 故以爲重難而不行。 且近日被薦擧而來者, 固非一二。 旣以有旨召來, 可於不時召對, 或叩其懷抱, 凡其動作擧止, 亦可以槪見矣。 自上亦豈不欲引見乎? 如此則其在草野苦修而有所懷者, 亦樂於披瀝無隱, 而於作成興起之方, 豈不美哉? 若止在百執事之列, 而其所懷抱, 亦未得陳, 則其心固有所不快, 而烏在其爲薦擧之本意也?" 上曰: "祖宗之不任宗親, 亦豈有他意也? 旣任之以事, 而或有所失, 若欲罪之, 則不能無傷恩, 如不罪之, 則是廢法。 以此不任以事。 輪對則前於經筵, 亦有言之者, 故問于大臣, 大臣以爲非舊制, 不可爲也。 雖不可人人皆令入對, 其中擇其有學問識見者, 使之輪對可也。" 領事鄭光弼曰: "宗親其數甚繁, 蓋慮其人才或有遺漏, 故有啓之者矣。 然祖宗成憲, 不可一朝變更也。" 又曰: "近者薦擧之人, 皆令乘馹上來, 此甚不可也。 有才行之人, 在於草野, 雖不可示其崇奬之意, 然使之盡令乘馹上來, 則不無紛擾, 甚不可也。 被薦者, 皆陞六品, 亦不可也。 雖在朝從仕已久之人, 若有一過, 則幷棄其所長。 今薦擧之人, 驟陞於六品之職, 若有微過, 則衆必以爲盜名, 蓋其人心忌其驟陞。 見小過而欲黜之, 不若初自卑官, 循序而進, 則人自無言, 而其人亦必自安於心也。" 侍讀官尹自任曰: "官爵固不可不重, 然於可用之材, 亦不可吝惜之也。 若以循資爲重, 而使賢愚不分, 則尤非國家之福也。" 光弼曰: "世宗曰: ‘我之所持以待人者, 惟此官爵也’, 凡其一資、一級, 亦甚惜之。 官爵, 王者固當惜也。 近日百官各加一資, 此有賢愚混進之弊。 百官加, 亦重事也。" 大司諫孔瑞麟曰: "大抵人物, 自有差等, 有當不次而用之者, 有循例而用之者。 至其最下者, 或終身沈於下僚者, 古今居多矣。 近日少年之輩, 稍以爲可, 則驟於陞敍, 此何有分辨乎? 大抵雖可擢拔而用之者, 必颺歷庶務, 使之有所學, 然後於身於國, 皆有益矣。 至如臣, 素無一才、一藝可觀, 而不以循例以遷, 超擢不次, 無益於國, 而未安於心。 如此之事, 雖自上有命, 銓曹所當防啓。 近有物望者, 亦有蒙其超擢, 然此非臣之類, 士林皆以爲慶。 其於如此之人, 固不可計其資級也。" 上曰: "薦擧之人, 於百執事, 亦可試也。 然若用之守令, 則必有實績可觀, 而別有所處矣。 此不但用之主簿而已。" 知事南袞曰: "薦擧之人, 亦無幾矣。 列邑之多, 豈足充之乎? 凡善人, 當用之朝廷, 朝廷嚴明, 則守令雖有不賢者, 而亦或畏法而不敢恣行其不義, 自然民被其實惠矣。 是以祖宗朝文臣, 爲守令者無幾, 今則至三十餘人。 此人在京, 則皆可堪爲大任者也, 不可不計其內外輕重之勢也。" 上曰: "用人固不可有定規。 近者掌苑金湜有物望, 故銓曹請擬持平望而爲之。 如此之人, 豈易得乎? 如或有之, 不可以常規用之也。" 特進官金克愊曰: "前者金湜, 亦命爲守令。 如此之人, 不用於朝廷, 可乎?" 上曰: "前者左議政申用漑以湜爲有病而言也, 非予之本意也。 若憲府不必出身者, 然後可用。 今爲持平, 亦已晩矣。"
- 【태백산사고본】 17책 33권 8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43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