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준이 쓴 고시를 써서 올리라고 전교하고,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의 죄를 묻다
전교하기를,
"종준(宗準)이 쓴 고시(古詩)를 알고 싶으니, 써서 올리게 하라."
하니, 정원(政院)이 아뢰기를,
"무오년 11월에 전 의성 현령(義城縣令) 이종준이 부령으로 귀양갈 때, 단천(端川) 마곡역(麻谷驛)에 도착하여 송(宋)나라 이사중(李師中)의 시(詩)를 벽에 써서 걸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외로운 충절을 자임하지만 뭇사람이 따르지 않으니
홀로 나서서 과감히 말하기는 어렵다
고국을 떠나는 이내몸 낙엽처럼 가벼우나
높은 이름은 천년토록 태산보다 중하리
같이 놀던 영준들아 어찌 그리 얼굴이 두터우냐
죽지 않은 간신배들아 모골이 서늘하리라
하늘이 우리 황제 위해 사직을 부지케 할진대
임으로 하여금 살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은 단천 군수(端川郡守)로 하여금 종준을 수국(囚鞫)하게 하고, 이어 치계(馳啓)하기를 ‘이종준이 무풍정(茂豊正) 총(摠)과 동행하며 벽에다 시를 써 붙였습니다. 종준은 김종직(金宗直)의 문도(門徒)로 좌죄(坐罪)되어 부처(付處)059) 되었는데도, 오히려 경계하는 마음이 없이 고시(古詩)를 가탁하여 자신의 뜻을 펴니, 문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 죄를 알면서 그 실정을 숨겼다면 형문(刑問)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종준과 무풍정의 6부자가 무오년에 죽은 사실을 내가 듣기는 하였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는데, 그와 같이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 시는 고인의 소작이다. 비록 고시가 아니고 종준의 자작이라 하더라도 사직을 위하는 지극한 심정으로 극히 훌륭한 것인데 무슨 죄악이 있단 말인가. 승건의 무상(無狀)한 처사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그 죄는 대신에게 물어 처단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18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사법-탄핵(彈劾)
- [註 059]부처(付處) : 유형(流刑)에 준하는 형벌. 바닷가나 황무지 같은 살기 어려운 곳에 보내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나 한 가족이 모여 살 수는 있다.
○傳曰: "宗準所題古詩, 欲知之, 其書以上。" 政院啓曰: "戊午十一月, 前義城縣令李宗準, 配富寧, 行至端川 磨谷驛, 書宋 李師中詩于壁上云: ‘孤忠自許衆不與, 獨立敢言人所難。 去國一身輕似葉, 高名千載重於山。 竝遊英俊顔何厚, 未死姦諛骨已寒。 天爲吾皇扶社稷, 肯敎夫子不生還。’ 咸鏡道觀察使李承健, 令端川郡守, 囚鞫宗準, 遂馳啓曰: ‘李宗準與茂豐正 摠同行, 寫詩於壁。 宗準以宗直門徒, 坐罪付處, 猶不懲戒, 假托古詩, 以寓己意, 不可不問。 若自知其罪, 隱諱其情, 刑問何如?’" 傳曰: "李宗準及茂豐正六父子, 死於戊午年事, 予聞其言, 而未知其由也, 其至此極乎! 此詩乃古人所作。 雖非古詩, 而宗準自詠, 亦爲社稷之至意, 極爲嘉美, 有何罪惡? 承健之無狀不可勝道。 其罪則當問大臣而處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18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