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가 사정문 밖에 모여 복을 벗은 것이 미안하다고 의논하다
이날 미명(未明)에 승지 이언호(李彦浩)·이자(李耔)·한효원(韓效元)·김정(金淨)·문근(文瑾)·신공제(申公濟)가 사정문(思政門) 밖에 모여 앉아 의논하기를,
"복을 벗으니 실로 미안하다."
하고, 곧 이어 아뢰기를,
"태황태후를 위한 거애(擧哀)에 대한 제도는 본래 의주(儀注)에 실려 있지 아니하고 다만 황제(皇帝)에 대한 거애의 예절만 있습니다. 그 의주에 보면 ‘처음 황제의 상사를 들으면 곧 변복(變服)하고, 4일 만에 성복(成服) 【최복(衰服)을 가리킨다.】 하며, 그후 제3일 아침에 길복을 입는다.’ 하였는데, 어제 예조(禮曹)는 필시 이 조례를 근거하여 아뢰었을 것이나, 황제의 상사에는 성복(成服)의 절차가 있기 때문에 3일 아침에 길복을 입는 것입니다. 지금은 변복만 할 뿐이니 3일을 다 채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예조가 와서 이 일을 아뢸 때는 신 등이 퇴청한 뒤였기 때문에 아뢰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부(政府)에 하문하시고 겸하여 홍문관(弘文館)으로 하여금 고사(古事)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어제 예조가 와서 이 일을 아뢸 적에 내 생각에는 필시 조정 대신과 의논하여 정하고 아뢰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이것을 좋다고 하였는데, 지금 승지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온당하지 못한 것 같다. 주서(注書)를 보내서 정부에 물어보고 또 홍문관으로 하여금 고사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라."
하였다. 이에 주서 권운(權雲)이 수의(收議)하여 회계(回啓)하기를,
"영의정 정광필, 좌의정 신용개 등의 말이 ‘어제 예조에서 아뢴 것은 신 등도 참여하고 듣고 의정한 것이다. 오늘 아침 곡림(哭臨)한 후에 흰 옷을 벗지 않는다면 그후 복(服)을 벗는 절차가 어렵게 된다. 대저 부모의 상사에도 역시 첫 기제(朞祭) 후에 연복(練服)을 입고, 두 번째 기제 후에 담복(禫服)을 입고, 담제(禫祭) 후에 길복을 입는다. 이와 같이 아니하면 그 절차가 어렵게 되어 소복(素服)을 벗더라도 슬픔이 다 가시지 않으니, 무릇 정조(停朝)와 도륙(屠戮)을 금지하는 것과 음악(音樂)을 중지하는 등의 일을 오늘로 끝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03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是日未明, 承旨李彦浩、李耔、韓效元、金淨、文瑾、申公濟會坐于思政門外, 相與議曰: "會釋服, 實爲未安。" 仍啓: "爲太皇太后擧哀之制, 本不載儀注, 只有爲皇帝擧哀之禮。 其儀注云: ‘初聞皇帝喪, 卽變服, 第四日成服, 【卽衰服也。】 其後第三日朝, 從吉云。’ 昨日禮曹必據此例而啓之, 然皇帝之喪, 有成服節次, 故三日之朝, 乃從吉。 今則但變服而已, 不可不盡三日也。 昨日禮曹來啓此事時, 臣等罷仕之後, 故未果啓之。 請下問于政府, 兼令弘文館, 考古事以啓爲當。" 傳曰: "昨日禮曹來啓此事, 予以爲必與朝廷大臣議定以啓, 故卽可之, 今聞承旨之言, 果似未穩。 其遣注書, 問于政府, 又令弘文館考古事以啓。" 於是注書權雲收議回啓曰: "領議政鄭光弼、左議政申用漑等以爲, 昨日禮曹所啓, 臣等亦參聞而議定矣。 今朝擧臨後, 不釋白衣, 則其後釋服節次爲難。 大抵父母之喪, 亦於初朞祭後着練服, 再朞祭後着禫服, 禫祭之後, 卽從吉。 不如是, 則其節次爲難, 素服雖釋, 餘哀未殄。 凡停朝、禁屠戮、斷音樂等, 猶當盡今日也。"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03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