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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1권, 중종 13년 1월 18일 무오 6번째기사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조광조가 《대학》의 진강이 끝났으니, 성상이 이미 학문의 종지를 안 것이라고 아뢰다

야대(夜對)에 나아갔다. 참찬관 조광조가 아뢰기를,

"진강(進講)한 《대학(大學)》이 이제 끝났으니, 성상의 학문은 이미 학문의 종지(宗旨)를 아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한결같지 않아서 방일(放逸) 태타(怠惰)하기 쉬워서 간직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또는 글을 보는 데 있어서 풍월이나 읊는 경우에는 비스듬히 누워서 볼 수도 있고, 허트러진 자세로 앉아서 볼 수도 있지만, 만일 이학(理學)을 볼 경우에는 의관(衣冠)을 정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먼저 의관을 정제하고 단정히 앉아서 보아야 합니다. 의관을 정제한다는 것은 조사(朝士)의 경우 반드시 모대(帽帶)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철릭[帖裏]은 호복(胡服)에 가까우니 그것을 입고 글을 보아서는 안 되고, 직령(直領)같은 것은 곧 심의(深衣)이니 그것을 입고 글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학문을 하는 자들은 한갓 구두(句讀)나 사예(詞藝)에 관한 것만을 힘쓰고 대의(大義)는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인재가 나지 않고 나라가 옛날처럼 잘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옛사람이 ‘사우연원(師友淵源)’이라 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폐조(廢朝)를 거친 뒤로 사람들이 사우의 도리가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스승이니 제자이니 하고 부르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합니다. 지금은 성명(聖明)하신 상께서 위에 계시므로 약간 사우의 도리가 흥기할 기세가 보이니, 이는 바로 흥기시킬 초두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다면 어찌 상심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습(士習)이 만일 의리(義利)의 분수를 알아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기를 마치 색(色)을 좋아하고 고약한 냄새를 싫어하듯 한다면 거의 잘 될 것입니다. 지금 다스림의 효과가 없는 것은 사습이 바르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해야 할 일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잘 거느려야 하는 것입니다. 무지한 백성은 책망할 것이 못 됩니다.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대신이 자신을 책하고, 대신이 잘못을 저지를 경우에는 상께서 성궁(聖躬)을 책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이 옳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면 자신은 책망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그 잘못을 전가할 줄만 압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의 염치(禮義廉恥)는 나라의 사유(四維)이니 사유가 제대로 펴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근일에는 사유가 펴지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사습이 날로 낮은 데로 향한다. 또한 청렴한 관리를 전조(銓曹)에서 분별해서 쓰는 뜻이 없으니, 모름지기 청렴한 관리를 써서 권장해야 한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신이 매양 이에 대해 말씀드리려 하다가 못했는데, 지금 들은바 상의 교시는 지당합니다. 위에서 마땅히 청렴한 관리를 발탁해서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시 신하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발탁받은 사람은 도리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대개 청렴이란 신하의 분수 안의 일입니다. 사람이 만일 청렴하지 못하다면 무슨 일인들 잘 하겠습니까? 청렴은 사대부가 할 보통 일이요, 특이한 행실이 아닙니다. 상께서 그 요령(要領)을 가져 조정을 정숙한다면 사대부는 모두 청렴할 것입니다. 충효 절의(忠孝節義)로 말하면 사람마다 하기 어려운 것이니, 마땅히 권면해야 합니다. 청탁하는 기풍은 폐조 적에 극심하였는데, 반정한 뒤에도 아직 그것이 있습니다. 대간이 만일 어떤 사람의 탐오(貪汚)한 일을 논하면, 마땅히 결단하여 진심으로 그를 미워한다는 뜻을 보여야 옳습니다.

또 근일에는 경연(經筵)에 세 번 납시고 또는 자주 야대(夜對)에 납시니, 이것은 신민(臣民)의 복이옵니다. 다만 신의 생각에는 성상께서 정무 여가에 자주 경연에 납시니, 성상의 몸이 너무 피로할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여러 신하를 접견하고 옛글을 보시는 때에는 반드시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시면 성상의 몸은 자연 조섭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상의 몸이 과로하게 될까 염려이옵니다. 만일 피로를 잊으실 정도로 성상의 마음에 진정 좋아해서 수무 족도(手舞足蹈)한다면 경연이 족히 성상의 몸을 피로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궁중에서 제때에 의복을 갈아 드리지 못하고 수라를 제때에 올리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염려될 뿐입니다.

또 걱정되는 일이 있는데, 옛날에는 군신간에 대면하고 서로 보았기 때문에 신하가 성상의 얼굴을 살펴 근심스러운 기색이 계시면 병이 있음을 알고, 기뻐하는 기색이 있으면 화평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신 사이에 예절이 엄격하여 용안(龍顔)을 살피지 못하니 성체(聖體)가 어떠하신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 비록 편하게 앉으라고 명하신다 해도 우리 나라는 습속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편하게 앉을 수가 없습니다. 군부(君父)는 일체이온데 임금의 안색을 보지 못하오니 지극히 민망하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세 때 경연에 나아가고 또 야대에 나아가는 것은 어진 사대부를 접견하고 싶은 때가 많기 때문이지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매, 참찬관 신공제(申公濟)가 아뢰기를,

"부제학(副提學)의 말이 매우 절실하고 좋습니다. 성체는 늘 잘 조섭되고 경연에는 항시 납시기를 바랍니다. 방서(方書)에 이르기를 ‘천방 만약(千方萬藥)이 하룻밤 혼자 자는 것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보신하는 데는 여색을 삼가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이같은 말은 신자가 임금에게 감히 말할 것이 못 됩니다마는 오늘 여기에 들어왔는데, 어찌 꺼려 말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조광조는 아뢰기를,

"옛날에는 신하가 항시 임금 곁에 모시고 있었는데, 지금은 신하가 궁궐 밖에 떨어져 있고 임금을 환관의 무리에게 맡겨 두니 어찌 이처럼 통분한 일이 있겠습니까? 옛날 송 인종(宋仁宗)은 병이 났을 때 수상(首相)에게 명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궁중에 숙위(宿衛)하도록 하였습니다. 대저 임금이 병이 있을 때 대신이 궁중에 들어가 자는 것은 바로 옛날의 제도입니다. 임금이 편찮으시면 신하의 마음으로서는 용렬한 의원의 손에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이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상께서 장수하시려는 방법을 마치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神仙)에게 기도한 것처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에게 바랄 것이 못됩니다. 초목(草木)을 예로 들더라도 알맞게 배양해서 조석으로 물을 준다면 뿌리가 견고해지고 지엽이 무성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말라 죽을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도 역시 그 성정(性情)을 배양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게 무슨 병이 있는가? 기쁜 마음으로 경연에 나아간다면 되는 것이다."

하였다. 조광조가 아뢰기를,

"성종께서 초년 정치에 분발하셨으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산증(疝症)이 발생하매, 용렬한 의원이 종증(腫症)으로 치료하다가 끝내는 큰 변을 당하게 하였으니, 내의(內醫)는 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어찌 지성으로 임금을 사랑하는 신하가 없었겠습니까? 하루아침에 천안(天顔) 【곧 성종을 말한다.】 의 수척하심을 보고 깊이 근심하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신이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상께서 경연에 뜸하게 납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기 어려운데 혹시 성체가 피로할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상께서 조섭(調攝)하는 일에 만전을 기하신다면 바로 만세 생민(生民)의 복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9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의생활(衣生活)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御夜對。 參贊官趙光祖曰: "進講《大學》, 今已臨畢。 今聖學已知其爲學之宗要, 然人心無常, 易於放逸怠惰, 難於收歛矜藏。 且看書者吟風詠月, 則或可偃臥而觀之, 或不正坐而見之, 若看得理學, 則非正其衣冠則不可。 必須先正冠帶, 兀然端坐而看得也。 所謂正衣冠者, 非謂朝士則必具帽帶也。 若帖裏, 則近於服, 不可衣而看書也。 如直領者, 所謂深衣也, 可衣而看書。 今之爲學者, 徒以句讀詞藝爲務, 而不知大義。 以故人才不出, 而至治不復矣。 古人云: ‘師友淵源。’ 我國自經廢朝, 人不知有師友之道, 有名爲師爲弟子云者, 則人皆畏之。 今則聖明在上, 稍有興起者, 此正興起之初也。 然若深思之, 則豈不爲傷心乎? 今士習若能知義利之分, 好善惡惡, 如好好色〔如〕 惡惡臭, 如此則庶乎其可矣, 今無治效者, 以士習不歸於正故也。 爲今之事, 當以上率下也, 無知民庶, 不足責也。 下人不率, 則大臣責己, 大臣有違, 則上自責聖躬, 如是則可也, 而今則不然, 在己者不自責己, 徒知歸咎於下也。" 上曰: "禮義廉恥, 國之四維, 四維不張, 國乃滅亡。 近日四維不張, 故國家士習日趨於汙下矣。 且廉吏, 銓曹無分別擧用之意。 須擧廉吏以勸奬也。" 光祖曰: "臣每欲言此而未果, 今聞上敎至當。 自上則當擢拔廉吏以勸奬也, 然亦臣子分內事也。 於其人, 則反有愧焉。 蓋淸廉, 乃其分內事也。 人若不廉, 則何事可能乎? 此乃士大夫常事, 非卓異之行也。 自上執其要領, 以整肅朝廷, 則士大夫皆淸矣。 若忠孝節義, 人所難能, 當加勸勵也。 請托之風, 極於廢朝, 反正之後, 猶有存者。 臺諫若論人貪汚之事, 則當快斷, 示以至誠惡之之意, 可也。 且於近日經筵, 每御三時, 又數御夜對, 此臣民之福。 但臣意以爲, 萬幾之暇, 數御經筵, 恐聖躬勤勞。 然接群臣, 見古書之時, 必有持敬之心。 持敬則聖躬自當調攝也, 然亦恐聖躬有勞也。 若心誠好之, 好而忘倦, 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 則經筵不足爲聖體之勤勞也。 但於宮中, 或衣服失時, 御膳失調, 此可慮也。 又有可憂者, 古者君臣之間, 對面相視, 故臣下察知上體有愁戚之容, 則知其有病, 有悅樂之容, 則知其和平。 今則不然, 君臣之間, 禮節峻截, 不能察識天顔, 不知聖躬爲何如也。 今雖命之平坐, 而我國習俗不如是, 故不得平坐。 君父一體, 而不見君上之顔色, 至爲可悶也。" 上曰: "御三時經筵, 而又御夜對者, 欲接賢士大夫之時多故也, 非出於勉强也。" 參贊官申公濟曰: "副提學之言, 甚切且好。 欲聖躬調攝得宜也, 經筵則當常御也。 方書曰: ‘千方萬藥不如一夜獨宿’, 保身莫如愼色也。’ 如此等言, 臣子所不敢言於君父, 然今日入此, 豈敢有所諱避乎?" 光祖曰: "古者人臣常侍君側, 而今則人臣隔於九重之外, 委君父於宦寺之流, 安有如此痛悶事乎? 昔 仁宗有疾, 命首相率百官, 宿衛於禁中。 大抵君上有疾, 則大臣入宮中宿處, 乃古之道也。 君父未寧, 則臣子之心, 不可委諸庸醫之手也。 臣之言, 非欲上爲延年之術, 如祈禱神仙, 若 武帝之所爲也。 是則非所望於上也。 以草木之生見之, 培養得宜, 而朝夕灌漑, 則根本盤據, 而枝葉繁茂, 不然則必枯死。 人之有生, 亦若能培養性情則可矣。" 上曰: "予有何病? 若樂御經筵則可矣。" 光祖曰: "成宗初年, 銳意於爲治, 一朝疝證卒發, 庸醫以腫證而治之, 終至大變。 此內醫不可不擇也。 其時亦豈無至誠愛君之臣乎? 一朝見 天顔 【卽言成宗。】 瘦瘠, 深以爲憂者有之矣。 今臣所言, 非欲上罕御經筵, 以此機會難逢, 而恐或上體勤勞, 乃敢言之。 苟自上於調攝之事, 無所不愼, 則乃萬世生民之福也。"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9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의생활(衣生活)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