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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1권, 중종 12년 윤12월 26일 정유 2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남곤 등이 신공제·문근·김양진을 승지에 주의하다

이조 판서 남곤 등이 신공제(申公濟)·문근(文瑾)·김양진(金楊震)을 승지(承旨)에 주의(注擬)하면서 아뢰기를,

"전에는 15원(員)까지 주의하였으나, 근래에는 정선(精選)하게 되고 직제학(直提學) 【곧 조광조(趙光祖)이다.】 은 현재 3품의 자급이 아니므로 주의할 수 없으며 그 밖에는 합당한 사람이 없으므로 이 세 사람만 주의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특히 조광조는 임금의 총애를 받아 정3품의 직(職)에 초수(超授)되자 경연관이 ‘너무 지나치다.’ 하였는데 남곤은 왕의 뜻을 엿보고서 계청(啓請)한 것이다. 비록 주의는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은연중에 표시한 것이니 이는 대개 조광조를 두려워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최숙생(崔淑生)을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으로, 한세환(韓世桓)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로, 남곤(南袞)을 이조 판서로, 문근을 승정원 동부승지로, 김양진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신공제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손주(孫澍)를 부수찬으로, 안처순(安處順)을 박사(博士)로, 이희민(李希閔)을 저작(著作)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이조(吏曹)는 박열(朴說)이 판서가 되면서부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좌우 사람에게 아부하였으므로 주의(注擬)가 모두 아랫사람에 의해 조종되었다. 두 번째 판서로 있을 적에도 그러하였으니 전후 거의 5년이나 그런 식이었다. 그가 체직될 때에 하리(下吏)들이 ‘열지(說之)는 적막하게 떠난다.’ 기롱하여 한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열지박열의 자(字)이다. 이 기롱은 대개 그가 자임(自任)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것이 폐습이 되었다. 송천희(宋千喜)가 그를 대신하여 정사를 할 때는 자못 박열과 같지 않아서 하료(下僚)들에게 용납되지 못하더니 얼마 안 가서 논박을 입고 체직되었다. 한세환(韓世桓)에 와서도 또한 주의할 때는 문득 묻기를 ‘대간의 뜻이 어떠한지, 옥당은 또한 어떻게 논하겠는가.’ 하고 잔뜩 의심하고 주저하여 그 권한이 아랫사람에게 돌아가서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그리고 사성(司成) 유보(柳溥)와 첨정(僉正) 채침(蔡忱)은 모두 유명한 선비로 일찍이 시의(時議)의 배척한 바가 되었는데 낭관(郞官)이 이 두 사람을 외방 교수(外邦敎授)에 주의하고자 하니 세환이 불가하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은 이처럼 쓸 수가 없다.’ 하고 극력 저지하자, 낭관들이 크게 미워하고 따라서 물론이 일어났다. 대간이 세환을 암렬(暗劣)하다고 탄핵하여 체직시켰는데 시론(時論)이 분노하였다.

또 사신은 논한다. 이때 이언호(李彦浩)·이자(李耔)도 역시 승지가 되었는데 유운(柳雲)은 부랑하여 검속하지 못하고 문근(文瑾)은 고집불통이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자 같은 사람은 경사(經史)에 통하고 치도(治道)를 알아서 사림에서는 보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믿었는데 어찌 이 사람이 연소배와 결탁하여 궤격(詭激)을 숭상하고 노성(老成)을 배척하며 옛 전장(典章)을 변혁하리라고 생각하였겠는가. 평생의 배운 바가 씻은 듯이 없어졌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8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吏曹判書南袞等, 以申公濟文瑾金楊震擬承旨, 啓曰: "前者至擬十五員, 近來精選, 而直提學, 【卽趙光祖。】 時未爲三品之資, 不敢注擬。 他無可當人, 故只以三員擬之。" 傳曰: "知道。"

    【史臣曰: "時, 光祖, 方被寵任, 超授正三品經筵官, 已爲過矣, 而逆探其意啓請。 雖不注擬, 隱然形言, 蓋畏光祖而爲此言也。"】

    崔淑生爲議政府右參贊, 韓世桓爲知敦寧府事, 南袞爲吏曹判書, 文瑾爲承政院同副承旨, 金楊震爲司諫院大司諫, 申公濟爲弘文館副提學, 孫朱爲副修撰, 安處順爲博士, 李希閔爲著作。"

    【史臣曰: "吏曹, 自朴說爲判書, 欲圖自保, 依阿左右, 注擬悉牽於下。 再判亦如之, 前後幾五年。 及其遞也, 下吏譏之曰: ‘之寂寞而去’, 一時傳笑。 之, 其字也, 蓋言其不得自任也。 因成弊習。 宋千喜代之爲政, 頗不如, 爲下僚不容, 未幾遭駁見遞。 至於世桓, 亦臨注輒問曰: ‘未知於臺諫之意, 將何如, 玉堂亦何以論耶?’ 遲疑顧憲, 權歸於下, 人皆笑之。 然司成柳溥、僉正蔡忱, 皆有名之士, 嘗爲時議所擯。 郞官欲擬二人於外敎授, 世桓不可曰: ‘此人等, 不可如是用之’, 力止。 郞議大惡, 旋起物論, 臺諫劾以暗劣, 遞之, (持)〔時〕 論憤之。"】

    【又曰: "時, 李彦浩李耔, 亦爲承旨。 柳雲之浮浪不撿, 文瑾之執拗不通, 不足道也。 如李耔, 通經史識治道者, 平日士林以公輔期之, 豈意此人亦締結於年少輩, 爭尙詭激, 排擯老成, 變亂舊章乎? 平生所學掃地盡矣。"】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8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