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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30권, 중종 12년 11월 25일 정유 5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임권 등이 종친을 접견하는 일과 관상감의 일 등에 관해 아뢰다

주강에 나아갔다. 검토관(檢討官) 임권(任權)이 아뢰기를,

"지금은 왕자 이하 종친(宗親)들이 자주 뵙지 못하니, 선왕조(先王朝)에서 하신 일과 다릅니다. 달마다 초하루·보름으로 문안하느라 다들 궐정(闕庭)에 모이는데, 한추위와 무더운 때에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있다가 해가 저물 때에야 비로소 피하니 지극히 미안합니다. 번번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혹 품계(品階)를 한정해서 접견하거나 그 회포를 아뢰게 한들 정치에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은 지당하다. 먼 붙이 종친은 연회 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으므로 품계를 한정하여 접견하려 하였으나 아직 하지 못하였다."

하매, 참찬관 성세창(成世昌)이 아뢰기를,

"임금이 어버이를 공양하는 것은 여느 사람과는 같지 않으니, 대개 사방의 정공(正貢)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맛있는 물건의 봉양은 상께서도 참여하여 아셔야 합니다. 또 우선당(友善堂)은 오로지 종친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혹 향실(香室)에 나가 향을 받으러 오는 종친을 만나기도 하셨습니다. 외종친(外宗親)928) 은 먼 듯하나 선왕으로 본다면 같은 자손입니다."

하고, 설경(說經) 안처순(安處順)이 아뢰기를,

"부자간에는 상하가 다름없이 음식을 먹고 기거할 즈음에 본디 서로 상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고, 성세창이 아뢰기를,

"주(周)나라 때에는 영대(靈臺)를 쌓아 천문(天文)을 우러러보고 재앙을 굽어살폈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재앙을 삼가는 도리가 지극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 관상감(觀象監)을 설치한 까닭은 이를 위해서일 터인데, 하는 일이 지극히 소완(疏緩)하여 크게 본의에 어그러지며, 관상감의 관원 중에는 오성(五星)이 운행하는 도수를 잘 아는 자가 드무니, 어떻게 감히 천문을 우러러보아 인사(人事)를 살피겠습니까? 근일 목성(木星)이 태미원을 범하고 달이 또 태미원을 범하였는데, 이것은 다 성세(盛世)에 있어서는 안 될 재변입니다. 관상감의 일은 정승이 맡아 다스리니 중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없는데, 그 일을 중하게 여겨서 유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종조(世宗朝)는 치도(治道)가 지극히 갖추어졌는데, 간의대(簡儀臺) 같은 것을 다 그때에 세운 까닭은 하늘을 공경하고 재앙을 삼가는 도리가 지극히 크고도 급하기 때문이었으니, 이제 대신(大臣)을 가려서 특별히 가르쳐야 합니다. 신과 김안국(金安國)보루각(報漏閣)흠경각(欽敬閣)의 교정(校正)을 맡았으나 아직도 미치지 못하고, 누각(漏刻)도 혹 어긋나는 것은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니니 유념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천문의 일은 지극히 크다. 관상감의 관원이 무슨 아는 것이 있겠으며 또한 어떻게 잘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미 젊은 문신으로 하여금 익히게 하였다."

하매, 성세창이 아뢰기를,

"문신 중에 배울 만한 사람이 있더라도, 한 사람이 이문(吏文)·한어(漢語)·사자(寫字) 등의 일을 아울러 닦는다면 어떻게 전업(專業)하여 기예(技藝)에 반드시 정통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안처순이 아뢰기를,

"대신은 박호(朴壕)성삼문(成三問)의 외손이 된다 하여 말을 하나, 박호의 사람됨은 사람들이 다 아끼며, 이미 홍문록(弘文錄)929) 에 올랐고 또 대직(臺職)이 되었으니 국가에서는 이런 일에 대하여 그 길을 열어 넓혀야 합니다. 태종조(太宗朝)에서는 정몽주(鄭夢周)의 절의(節義)를 크게 여겨서 충신으로 논하여 자손을 녹용(錄用)하였는데, 반드시 이렇게 해야 사습(士習)을 배양하고 국맥(國脈)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많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듣건대, 대신은 이조(吏曹)가 조정의 의논을 기다리지 않고서 주의(注擬)한 것을 그르다 하였지, 집의(執義)를 갈아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한다. 대저 사람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조선(祖先)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62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역사-고사(故事) / 가족-친족(親族) / 윤리-강상(綱常)

  • [註 928]
    외종친(外宗親) : 임금의 고모의 딸들.
  • [註 929]
    홍문록(弘文錄) :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 등을 선거하는 기록. 먼저 홍문관의 박사(博士)·저작(著作)·정자(正字) 등이 문과 방목(文科榜目)을 살펴서 뽑을 만한 사람을 베껴 낸 다음에, 부제학(副提學)·전한(典翰)·응교(應敎)·교리·수찬 등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에 권점(圈點:둥근 점을 치는 것)한다. 이것을 본관 홍문록(本館弘文錄) 또는 본관록(本館錄)이라 한다. 이 본관록을 가지고 의정(議政)과 이조(吏曹)의 판서(判書)·참판(參判)·참의(參議) 등이 모여서 권점한다. 이것을 정부 홍문록(政府弘文錄) 또는 도당록(都堂錄)이라 한다. 이것을 임금에게 아뢰어 차점(次點) 이상을 받은 사람을 임명하게 된다.

○御晝講。 檢討官任權曰: "今王子以下宗親, 不得數見, 與先王朝事異。 每月朔望, 以問安, 皆會于闕庭, 雖隆寒暑濕之時, 不食不飮, 日晏始罷, 至爲未安。 雖不得每爲之, 或限品而接見, 或使陳其懷抱, 有何妨於政治乎?" 上曰: "此言至當。 踈屬宗親, 非宴會則不得見, 故欲限品接見, 而時未行之耳。" 參贊官成世昌曰: "人主養親, 非若常人, 蓋以四方惟正之供也。 然其間甘旨之奉, 自上亦可與知之。 且友善堂者, 專爲接待宗親而設也。 先王或出香室, 見宗親之受香來者。 外宗親雖似疎遠, 若以先王視之, 則均是子孫也。" 說經安處順曰: "子父之間, 上下無異, 飮食起居之際, 固當纖悉委曲也。" 世昌曰: "時築靈臺, 仰觀天文, 俯察妖祲, 其敬天謹災之道, 至矣。 我國觀象監之設, 蓋爲此也, 而其所事, 至爲疎緩, 大違本意。 觀象監官員, 能知五星之纏度者, 鮮矣, 何敢望仰觀天文, 以察人事乎? 近日木星犯太微, 月又犯太微。 此皆盛世不宜有之災變也。 觀象監事, 政丞領之, 不爲不重, 而未有重其事而留意者。 世宗朝, 治道至備, 如簡儀臺之類, 皆創於其時, 以敬天謹災之道, 至大且急故也。 今可揀選文臣, 別用敎之也。 臣與金安國, 當校正報漏閣欽敬閣, 而時未及焉。 漏刻亦或差違, 誠非細故, 願須留念。" 上曰: "天文事至大, 觀象監官員有何所知, 亦何能爲之? 故已令年少文臣肄習矣。" 世昌曰: "文臣雖有可學之人, 一人兼治吏文、漢語、寫字等事, 何能專業而於藝必精乎?" 處順曰: "大臣, 以朴壕成三問外孫。 之爲人, 人皆愛之, 已爲弘文錄, 且爲臺職。 國家於如此等事, 所當開廣其路也。 太宗朝以鄭夢周節義爲大, 而論以忠臣, 錄用子孫。 必如此然後培養士習, 維持國脈者亦多矣。" 上曰: "聞大臣, 以吏曹不待廷議而注擬, 爲非, 不言執義可遞云。 大抵用人, 不可拘於祖先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62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역사-고사(故事) / 가족-친족(親族)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