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을 간 일에 관한 시산 부정 이정숙 등의 상소
시산 부정(詩山副正) 이정숙(李正淑)·강녕 부정(江寧副正) 이기(李祺)·숭선 부정(崇善副正) 이종(李灇)·장성 부정(長城副正) 이엄(李儼)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신 등(臣等)은 조종(祖宗)의 유예(遺裔)로 의리가 종사(宗社)와 함께 존망(存亡)을 같이해야 할 자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언책(言責)의 지위에 있지 않더라도 조정(朝廷)의 호오(好惡)와 시비(是非)가 정해지지 않음을 듣고 정의(情意)가 분격됨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여, 천위(天威)를 범하여 성총(聖聰)을 어지럽힙니다.
아, 종사의 액(厄)이 폐조(廢朝)에서 극심하여 망측한 화(禍)가 조석으로 위급해서 달걀을 쌓아 놓은 듯이 위태하였는데도 엎어지기에 이르지 않은 것은 겨우 터럭하나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신 등이 놀랍고 황급하여 할 바를 잃고서 호소할 데를 몰라 울면서 하늘을 부를 뿐이었으나, 다만 믿고 의지할 바는 오직 조종의 하늘에 계신 밝은 신령께서 어두운 가운데에서 음으로 도와 우리 국가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 등은 비록 목숨이 조석에 달렸으나 겨우겨우 스스로 보존하여 천일(天日)이 다시 밝아지기를 기다렸더니, 마침 전하께서 효우(孝友)하고 온공(溫恭)한 덕(德)과 신무(神武)하되 형살(刑殺)을 쓰지 않는 위엄을 갖추고 용비 호변(龍飛虎變)하여 정위(正位)에 오르시어, 혹학(酷虐)한 법을 버리고 인화(仁和)한 정치를 회복하여 지극한 정치를 바라신 지 이제 12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점점 더 잘되어 가지도 않고 은택이 점점 더 내려지지도 않아서, 백성이 더욱 괴로와하고, 사습(士習)이 더욱 야비해지며, 재변(災變)이 더욱 생기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좌우의 신하가 폐조의 혹독한 난정(亂政)을 겪어서 화를 두려워하고 예전 일에 징계되어 오래 의구하고 위축되어서 제 몸을 사사롭게 하여 구습을 따라 구차하게 지내며 평생을 넘기는 것을 급한 일로 삼고 국가를 위한 근심을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성묘(成廟) 때에는 나라에 선정(善政)이 있고 백성에게 선속(善俗)이 있으며, 때맞추어 잘난 사람들이 나서 뛰어난 사람을 그 사이에서 뽑으니, 도학(道學)을 창도(倡導)하여 밝히고 기강을 붙들어 세워, 이제 삼왕(二帝三王)의 교화를 이루게 하기를 바랐더니, 불행히 혼조(昏朝)를 당하여 소인(小人) 유자광(柳子光)·임사홍(任士洪)이 일국의 간지(奸智)로서 이들을 거의 일망타진하니, 국가와 사문(斯文)의 화가 극단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 것입니다. 그 뒤부터 조야(朝野)가 아비는 그 아들을 경계하고 형은 그 아우를 경계하여, 경술(經術)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오직 장구(章句)·사장(詞章)에 힘써서 과거 공부를 익혀 작록(爵祿)을 급한 일로 삼게 하며, 도학·경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화문(禍門)이라 자칭하고 서로 눈짓하며 놀랍게 여기니, 이 때문에 군자다운 사람은 벼슬하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제 몸만 닦고, 다만 강개하여 스스로 흥분할 뿐이었습니다.
근자에 전하께서는 총명이 날로 진취하고 학술이 날로 성취하며, 분연히 염려하여 밤낮으로 힘쓰시며, 도덕을 지켜 변하지 않으며 공(公)을 따르고 사(私)를 취하지 않는 선비를 뽑아서 날마다 함께 경연(經筵)에서 도학을 강론하여, 격물(格物)·치지(致知)·수기(修己)·치인(治人)하는 방도에 마음을 쓰고,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를 본받으시매, 학문이 날로 밝아지고 덕행(德行)이 날로 새로워져 교화(敎化)가 중외(中外)에 덮이니, 전일 벼슬하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제 몸만을 닦으며 강개하여 스스로 흥분하던 선비들이 번연(幡然)히 일어나서 전하의 조정에 이르러, 전하와 함께 성대한 정치를 같이하여 밝은 교화를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낮은 관직에 있다 보니 자기를 굽히고 상관이 바라는 대로 따르고자 하면 의리에 어그러지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하여 상관의 말을 듣지 않고자 하면 반드시 노하여 남들에게 말하기를 ‘아무개나 나를 가벼이 여기고 아무개가 나를 우습게 여긴다.’ 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이를 갈며 유감을 품었다가, 입대하게 되면 평소에 품었던 유감을 펴서, 혹 그럴듯한 말로 전하의 마음을 저촉하거나, 듣기 좋은 말로 전하의 뜻을 동요시킵니다. 이와 같이 교사(巧詐)를 부릴 때에 참으로 전하의 광명(光明)이 없으면 반드시 그 뜻을 수행하여 전일 유감을 두었던 사람을 해칠 것이니, 저 군자들이 어찌 원야(園野)에 물러가 살면서 제 성정(性情)을 기르는 것이 편안하고, 뭇 시기를 사면서 함정을 밟는 것이 위태로운 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주저하고 방황하며 마침내 결연(決然)히 떠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전하의 명덕(明德)이 날로 새로워져서 함께 요·순의 경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공경(公卿) 자리에 발탁하여 두어, 함께 국정(國政)을 꾀하여 군하(群下)의 뜻을 진압하지 않고 도리어 순자(循資)의 격(格)846) 에 얽매이십니까? 대저 순자의 격이란 말세에 부득이한 데에서 시작된 일이요, 성군(聖君)이 어진이를 대우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을 거용(擧用)한 옛이야기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한번 거용하여 재상으로 삼으매 은나라가 크게 다스려졌거니와, 전하께서는 본뜨시기 바랍니다.
금세 사람들이, 전하께서 어진이를 거용하려 해도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먼저 전하께서 호오(好惡)가 정해지지 않고 입지(立志)가 굳지 않다고 의심하여, 간사한 술법으로 전하의 뜻을 움직여서 제 뜻대로 해독을 끼치려 생각하는 자가 있으니, 이성언(李成彦)과 같은 무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성언은 이행(李荇)이 논박받은 틈을 타서, 성현(聖賢)의 말을 빌어 위로 성총(聖聰)을 어지럽히고 아래로 군하의 의혹을 일으키려 하니, 이성언의 간사와 우매는 심합니다. 성현의 말을 빌지라도 어찌 능히 전하의 총명을 그르치겠습니까! 대저 이성언이란 자는 본디 무식하고 망령된 사람입니다. 젊어서부터 말을 달려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문학을 알지 못하므로, 오륜(五倫)이 있는 줄 몰라서 혹 아비와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서 다투어 불공(不恭)하기까지 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찬 일까지 있습니다. 그 무식이 이와 같은데 어찌 이행(李荇)이 간사한지 않은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양사(兩司)가 일국의 공론으로 논핵(論劾)하고, 전하께서도 총명한 지혜로 그 진실을 환히 살피시어 곧 그 관직을 삭탈하여 갈았으니, 참으로 국가의 행복이요 신인(神人)의 행복이었습니다. 신 등은 본디 전하께서 이성언에게 미혹되시지 않을 줄로 알았으나, 전하께서 이성언의 소(疏)를 보시고서, 대간이 전일에 올린 소 가운데에 있는 말을 추론(追論)하여 그 벼슬을 죄다 갈고 특별히 이행의 복직을 명하셨으니, 신 등은 속으로 괴이하게 여겼거니와, 이성언의 소에서 의심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좌우 사람들이 구습에 따라 편안하게 넘기며 사사롭고 공변되지 않은 말에 미혹되신 것이 아닙니까? 전하께서는 만민 위의 의표(儀表)로서 어찌하여 전도되어 안정되지 않은 기미를 보이십니까? 아, 전하께서 전일 어진 사대부(士大夫)와 도학을 강론하여 마음을 밝히고 뜻을 정하신 공(功)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 등은 황공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지금 대간이 전하께서 힘써 치평(治平)을 구하시는 뜻을 받들어 한때의 병폐를 적발하여 고치니, 이것은 전하께서 사랑하여 영화롭게 하셔야 할 자인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차마 가셨습니까? 말이나 글에 정의(情意)가 분격하여 함부로 빗나가서 혹 세속을 놀라게 하는 말이 있더라도, 세상을 격려하고 임금을 바로잡는 곧은 말이라 생각하여 관용하고서 임금이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셔야 옳을 터인데, 어찌 언책(言責)을 맡기고서 또 말에 따라 죄줄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은 황공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만약에 신 등의 말을 망령되거나 어리석다고 생각하시지 않고 행여 친대(親對)하게 하여 상세한 것을 물으신다면 신 등이 평소에 본 고금의 흥망의 자취와 사직(社稷)의 존망(存亡)의 기틀과 국가의 치란(治亂)의 까닭과 군자·소인의 진퇴(進退)의 도리와 천재(天災)·시변(侍變)의 격응(格應)하는 이치와 무릇 방금 치도(治道)가 서지 않고 시비의 갈피를 못 잡고 호오(好惡)가 정해지지 않고 군자가 존중되지 않고 소인이 틈을 타는 까닭을 조금도 빠짐없이 죄다 아뢰겠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신 등을 망령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말고 성려(聖慮)에 깊이 유념하소서."
하니, 정원(政院)에 전교하기를,
"종친(宗親)들이 상소하여, 면대(面對)해서 평소에 품은 뜻을 아뢸 것을 청하였는데, 이제 면대하고자 하더라도 전시(殿試)를 베푸는 중이니, 날짜를 물려서 인견(引見)해야 할 것인지 의논하여 아뢰라."
하매, 정원이 아뢰기를,
"종친들이 상소하고 또 면대를 청하여 품을 뜻을 아뢰고자 하니 면대를 허가하셔야 하겠으나, 오늘은 인대(引對)할 만한 곳이 없으니 날짜를 물려서 인대하는 것이 무방하겠습니다."
하니, 정숙 등에게 전교하기를,
"너희들은 모두 종실(宗室)의 후예로서 국가의 존망의 기틀을 염려하여 상소해서 논열(論列)하였으니 너희 뜻이 가상하다. 오늘 면대해야 하겠으나 마침 정전(正殿)이 지금 시장(試場)이 되어 있으므로 아직은 인대하지 못한다."
하고서, 경회문(慶會門)에서 술을 내리매 정숙 등이 다 참석했다가 물러갔다.
사신은 논한다. 이정숙 등 4인은 다 먼 종척(宗戚)인데, 글을 읽고 학문한다는 명색으로 진신(縉紳)사이에서 명예를 얻으려 하였으며,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의 무리가 혹 그들과 사귀어 정숙을 주계군(朱溪君)처럼 떠받드니, 이 때문에 정숙의 이름이 사림(士林)에서 중시되었다. 그러나 정숙 등이 읽는 것은 사서(四書)에 불과하고 문의(文義)나 구두(句讀)도 모르는 데가 많은데도, 스스로는 능히 궁리(窮理)하고 격물(格物)하여 정·주(程朱)의 중단된 학문을 잇겠다고 하였다. 일찍이 《소학(小學)》·《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 등의 글을 읽고서, 함께 말할 만한 유사(儒士)를 보면 반드시 이 몇몇 글 가운데에 있는 말을 질문하였는데, 그 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를 비웃었으나 모르는 사람은 그가 이학(理學)을 안다고 생각하였다. 4인 중에서 오직 이종(李灇)이 글을 많이 읽어서 경전(經傳)을 거의 익혔고, 이기(李祺)와 이엄(李儼)은 말로 사람을 속일 뿐이고 《소학》도 읽지 못하였는데, 4인은 늘 뜻을 맺고 행동을 같이하며 정숙을 우두머리로 삼았다. 정숙이 시의(時義)에 따라, 이성언의 소언(疏言)이 상의 마음을 의혹하고 신진(新進)을 억지하여 이행(李荇)을 진용(進用)하게 된 것이 매우 큰 기회라고 생각하여, 드디어 앞장서서 상소하여 과직(過直)하고 절박(切迫)한 말을 망령되게 해서 시의에 빌붙고 또 면대를 청하였는데, 상이 온화한 말로 위로하여 답해서 칭찬하는 뜻을 보이매, 정숙 등이 소득이 있는 듯이 매우 기뻐하니 영의정(領議政) 정광필(鄭光弼)이 듣고 매우 언짢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4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 [註 846]순자(循資)의 격(格) : 오직 자급(資級)에 따라서만 벼슬을 주는 격식. 본디 당(唐)나라 때에 비롯한 것으로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연한이 차면 자급을 올려 주고 자급에 넘치는 벼슬을 주지 않으며, 현능(賢能)하더라도 특별히 승자(陞資)·승직(陞職)시키지 않는 전형 제도(銓衡制度)이다.
○詩山副正 正叔、江寧副正 祺、嵩善副正 藂、長城副正 儼等上疏曰:
臣等以祖宗之遺裔, 義當與宗社俱存亡者也。 故雖不在言責之地, 而聞朝廷好惡、是非之不定, 情憤意激, 不能自已, 冒犯天威, 瀆以聖聰。 嗚呼! 宗社之厄, 極於廢朝, 罔測之禍, 朝殆夕急, 危如累卵, 而不至乎傾覆者, 僅容一毫。 而臣等驚惶失措, 不知所訴, 但涕泣號天而已。 然而所獨信而依之者, 唯祖宗昭昭在天之靈, 有以陰佑於冥冥之中, 而不絶我國家也。 是以, 臣等雖命在朝夕, 而僅僅自保, 以待天日復明, 幸遇殿下, 以孝友、溫恭之德, 神武、不殺之威, 龍飛虎變, 御極正位, 撥酷虐之法, 復仁和之政, 求爲至治者, 垂十有二年于玆矣。 然而政不愈擧、澤不愈下、百姓愈苦、士習愈鄙、災變愈至者, 其故何哉? 意者, 左右之臣, 經廢朝酷亂, 而畏禍徵前, 長疑却顧, 以私其身, 因循苟且, 以過平生爲急, 而不爲國家憂也。 噫! 成廟之朝, 國有善政, 民有善俗, 時有英豪卓犖之人, 拔乎其間, 倡明道學, 扶樹綱紀, 欲致二帝三王之化, 不幸遭遇昏朝, 小人柳子光、任士洪, 以一國之奸智, 一網殆盡, 國家斯文之禍, 至此極矣。 是, 殿下之所親見也。 自後朝野之人, 父戒其子、兄戒其弟, 使不得以經術自治, 惟騖於章句、詞章之下, 習以名科, 爵祿爲急, 若見人以道學、經術爲業者, 則必指爲禍門, 相目駭愕, 是以君子之人, 斂蹤杜門, 獨善其身, 而徒慷慨自憤而已。 近者殿下, 聰明日進, 學術日躋, 奮然惕慮, 日夜孜孜, 擢經德不回、循公不私之士, 日與經筵, 講論道學, 以格物致知、修己治人之方爲心, 而以堯、舜、禹、湯、文、武爲法, 學日明而德日新, 敎化孚於中外, 前日之斂蹤杜門, 獨善其身, 慷慨自憤之士, 幡然而起, 至于殿下之庭, 以與殿下, 同爲盛大之治, 欲觀熙皞之化。 然而未免爲下官, 若欲枉己, 而循上官之欲, 則悖於義; 若欲執己之是, 而不聽上官之言, 則必怒於人曰: "某輕我, 某慢我。" 揚臂切齒而銜之, 及其入對, 逞平昔所銜之懷, 或以似是之言, 抵殿下之心; 或以妖媚之辭, 撓殿下之意。 若是其巧也, 苟非殿下之光明, 則必遂其意, 以毒前日所銜之人矣。 彼君子者, 豈不知退居園野, 以養其性情之爲安, 而冒觸群猜, 以蹈機檻之爲危也? 然踟躕彷徨, 卒不敢決然去之者, 誠慕殿下之明德日新, 而可與至於堯、舜之域也, 殿下何不擢置公卿之位, 與謀國政, 以壓群下之情, 而反拘循資之格乎? 夫循資之格, 起於末世, 不得已之事, 非聖君所以待賢之道也。 殿下不覩高宗之擧傅說乎? 一擧爲相, 殷國大治, 伏願殿下效之。 今之人見殿下擧賢而不能, 先疑殿下之好惡不定、立志不固, 思以奸術, 移殿下之志, 以肆其毒者有之矣, 若李誠彦之輩, 是也。 誠彦, 乘李荇被駁之釁, 而假聖賢之言, 欲以上惑聖聰, 下鼓群疑, 甚矣, 誠彦之奸且愚也。 雖假聖賢之言, 豈能誤殿下之聰明哉? 夫誠彦者, 本無識、悖妄之人也。 自少以馳騁田獵爲業, 而不識文學, 不知有五倫之道, 或與父博弈戲謔, 以至爭道不恭, 瞋目彈舌, 其爲無識若此, 安能知荇之奸否乎? 兩司以一國公論劾之, 而殿下亦以聰明之智, 洞照其實, 卽奪其官而遞之, 誠國家之幸, 而神人之福也。 臣等固知殿下不爲誠彦之所惑也, 然殿下見誠彦之疏, 追論臺諫前日疏中之言, 而盡遞其官, 特命復荇之職, 臣等竊自怪焉。 無乃始疑於誠彦之疏, 而終惑於左右因循、苟安、自私、不公之言歟? 何殿下儀表於萬民之上, 而示顚倒不定之機乎? 噫! 殿下前日, 與賢士大夫, 講論道學, 明心定志之功安在哉? 臣等不勝惶懼。 今臺諫, 奉殿下孜孜求治之意, 而摘一時之病以救之, 是, 殿下之所宜寵錫, 而進榮之者也, 殿下何忍遞之也? 雖於辭語文字之際, 情憤意激, 汎濫橫出, 而或有駭俗之言, 當以爲, 礪世、格君之直言而寬之, 以弘人君納言之量, 可矣, 安可授之以言責, 又從而罪之乎? 臣等不勝惶懼。 殿下若不以臣等之言, 爲狂爲愚, 而幸使親對, 問其詳則臣等以陳平昔所見, 古今興亡之迹、社稷存亡之機、國家治亂之故、君子小人進退之道、天災時變格應之理與夫方今治道不立, 是非無向、好惡不定、君子不尊、小人乘間之所以, 而無纖毫不盡也。 伏願殿下, 不以臣等爲狂爲癡, 而深留聖慮。
傳于政院曰: "宗親等上疏請面對, 以陳平昔所懷, 今雖欲面對, 殿試方張, 退日而可爲引見乎? 議啓。" 政院啓曰: "宗親等上疏而又請面對, 欲陳所懷, 可賜面對也。 今日則無可引對處, 退日引對無妨。" 傳于正叔等曰: "爾等俱以宗室之裔, 慮國家存亡之機, 而抗疏論列, 爾意可嘉。 今日可面對, 而適正殿, 方爲試場, 故姑未得引對。" 仍賜酒於慶會門, 正叔等皆就退。
【史臣曰: "正叔等四人, 皆宗戚疎屬, 而以讀書學問爲名, 求譽於縉紳間, 趙光祖、金湜輩, 或與之交, 推許正叔如朱溪君, 由是正叔之名, 重於士林。 然正叔等所讀, 不過四書, 而文義句讀, 亦多不曉, 猶自謂能窮理、格物, 欲繼程、朱絶學云。 嘗讀《小學》、《近思錄》、《家禮》等書, 而見儒士之可與言者, 必以數書中語質之, 知其心者, 非笑之; 不知者, 以爲知理學。 四人之中, 惟灇多讀書, 略習經傳, 而祺與儼, 但以言語欺人, 雖《小學》, 亦不能讀, 四人常結志同行, 以正叔爲首。 正叔因時議謂: ‘李誠彦疏言, 疑惑上心, 沮抑新進, 進用李荇, 機會甚大。’ 遂唱疏, 妄爲過直切迫之言, 以附時議, 又請面對, 上溫言慰答, 以示嘉奬之意, 正叔等大喜, 若有所得。 領議政鄭光弼聞之, 大不悅。"】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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