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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29권, 중종 12년 8월 29일 임신 1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윤은필 등이 재변을 경계할 것과 여악의 폐지 등을 아뢰다

조강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경상 감사(慶尙監司)의 서장(書狀)을 보니, 풍수(風水)의 재해가 근고(近古)에 없던 바로, 나무가 뽑히고 집이 무너졌을뿐 아니라 사람이 많이 깔려 죽었다 한다. 한 사람이 숨지더라도 슬픈 일인데, 더구나 죽은 사람이 이토록 많음에랴! 하늘이 이토록 나를 경계하니 할 바를 모르겠다."

하매, 사간(司諫) 윤은필(尹殷弼)이 아뢰기를,

"근래는 재변(災變)이 없는 해가 없습니다. 옛임금은 재변을 만나면 두렵게 여기고 자신을 반성하여 스스로 꾸짖어,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힘써서 참되게 하늘에 응답하였습니다. 정전(正殿)을 피해 거처하거나 찬선(饌膳)을 줄이는 따위는 겉치레의 일이요 재변을 그치게 하는 도리가 아니니, 안에 스스로 공경을 간직하여 홀만(忽慢)한 마음이 없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 재이(災異) 때문에 삼공(三公)을 책면(責免)한 것은 수성(修省)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변이 있으므로 워낙 측신수행(側身修行)하여 하늘의 견책에 응답해야 할 때인데, 대신(大臣)이 태연하여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심상한 일로 보며 하늘의 운수에 미루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라의 화환(禍患)이 은미한 가운데에 숨어 있으니, 당시에는 비록 무사한 듯하더라도 뒷날에 헤아릴 수 없는 화환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상하가 서로 수성하여 각각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해서, 참되게 하늘에 응답하고 겉치레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근래 조정의 기강이 퇴폐하여 떨치지 않는 걱정이 있으니 어찌 큰 염려가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대신은 삼공의 자리에 있으나 유명무실하여, 봉록(俸祿)을 유지하고 자신을 보전하는 계책으로 삼으며 자신을 잊고 나라를 좇는 뜻이 없습니다. 국가가 위임하여 책성(責成)하는 원망(願望)을 돌보지 않으면 모든 일이 날로 문란해질 것이니, 기강이 퇴폐하고 풍속이 박악(薄惡)함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하고, 영사(領事) 신용개(申用漑)가 아뢰기를,

"신 등이 건백(建白)하지 않는다고 대간(臺諫)이 말하나, 신 등이 할 만한 일을 당하면 어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종조(祖宗朝)의 묘당(廟堂)의 슬기로운 계책이 빠짐없이 모두 실려 있으므로, 천박한 지려(智慮)로 선왕(先王)의 정제(定制)를 고치고자 하면 한갓 어지러울 따름이고 마침내 치도(治道)에 도움이 없을 것이 염려될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건백하는 일은 법정(法政)을 변란(變亂)하는 것이 아니다. 삼공에게는 온갖 책임이 통속(統屬)되어 있으니, 백성의 억울함은 풀어 주고 인재의 현부(賢否)는 그에 따라 진퇴시킬 따름이다."

하였다. 장령(掌令) 소세양(蘇世讓)이 아뢰기를,

"국가의 여악(女樂)은 통절히 혁파(革罷)해야 하는데, 전일 혁파할 때에 죄다 혁파하지 못한 까닭은 자전(慈殿)을 위해서입니다. 객인(客人)749) 의 연회에 반드시 무동(無童)을 쓰는데 그 폐단은 여악과 같거니와, 그 요사하고 괴이한 형상은 보고 듣기에 매우 합당하지 않습니다. 여악은 혁파해야 마땅하고, 다만 간척(干戚)750) ·관약(管籥)은 조정에서 쓰더라도 흠이 될 것은 없습니다. 또 묘중(廟中)의 제향(祭享)에 속악(俗樂)을 섞어 연주하므로 개구리가 와글거리는 것과 같아서 청숙(淸肅)에 매우 마땅하지 않은데다가 악공(樂工)의 수가 거의 4∼5백이나 되어도 한 사람도 악(樂)을 잘 아는 자가 없으니, 이것은 부질없이 둔 것일 뿐입니다. 비록 조종조에서 정한 제도일지라도 이런 속악 따위는 대신과 의논하여 혁파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여악은 혁파해야 하는데도 지금 혁파하지 않는 까닭은 자전을 위해서이다. 다만 관현(管絃)의 소리를 내전(內殿)에서 쓴다면 혁파해야 마땅하다. 악공의 수도 많다면 그 폐단이 크니 대신과 의논하여 혁파할 만하면 혁파하고, 속악은 지금에 반드시 쓸 것 없다."

하매, 신용개가 아뢰기를,

"장악원(掌樂院)의 공인(工人)의 수는 과연 외람되게 많습니다. 당초에 여악을 없애고 남악으로 갈음하였으나, 무동의 형상은 여악과 같습니다. 세종조(世宗朝)에서는 남악의 무리를 다 양인(良人)·공천(公賤)751) 으로 하고 그 의복을 관에서 스스로 장만해 주었습니다. 지금 부득이 써야 한다면 어찌 그 작은 폐단을 헤아리겠습니까? 세종께서는 한결같이 당제(唐制)를 지켜 무동은 없애셨는데, 지금 또 쓰는 것은 매우 마땅하지 않습니다. 과연 간척·관약을 쓴다면, 이런 음란한 일은 다 혁파해 없애야 하며 무동도 없애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속악은 마땅히 혁파하여 정음(正音)을 좇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짐작해서 혁파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29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26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정론-간쟁(諫諍) / 예술-음악(音樂) / 신분(身分)

  • [註 749]
    객인(客人) : 외국의 사자, 특히 일본의 사자를 가리킨다.
  • [註 750]
    간척(干戚) : 무무(武無).
  • [註 751]
    양인(良人)·공천(公賤) : 신분을 사(士)와 서(庶)로 크게 나누고, 서인을 다시 양(良)·천(賤)으로 나눈다. 양인은 관공(官公) 또는 개인에게 매여 있지 않고 생업을 자영하는 일반 백성이다. 천인은 다시 공(公)·사(私)로 나누는데, 공천은 왕실 또는 관가에 소속된 노비(奴婢)·역졸(驛卒)·목자(牧子) 등이다.

○壬申/御朝講。 上曰: "觀慶尙監司書狀, 則風水之災, 近古所無, 非但拔木仆家, 人多壓死。 雖一人隕命, 猶可惻愴, 況死者如此其多乎? 天之儆予至此, 罔知攸濟焉。" 司諫尹殷弼曰: "近來災變, 無歲無之。 古之人君, 遇災恐懼, 反躬自責, 過則改之, 無則加勉, 應天以實。 而避殿、減膳之類, 乃外貌之事, 非弭災之道也。 須內自持敬, 不使有慢忽之心, 可也。 古者以災異, 責免三公, 欲其修省之爲也。 今則有如此之變, 固爲側身修行, 以應天譴, 而大臣恬不爲怪, 視之爲尋常之事, 推諸天運, 豈不痛哉? 國之禍患, 伏於冥冥之中, 當時雖若無事, 安知他日之患, 有不可測者也? 須上下交修, 各盡警懼之心, 應天以實, 不以文具, 可也。 近來朝廷紀綱, 有頹靡不振之患, 豈不爲大慮乎? 今之大臣, 處三公之位, 有其名, 無其實, 爲持祿保身之計; 無忘身循國之志。 不顧國家委任責成之望, 則庶事之日紊、紀綱之頹靡、風俗之薄惡, 無足怪矣。" 領事申用漑曰: "臺諫謂臣等不爲建白。 臣等遇可爲之事, 則豈不爲乎? 然祖宗朝廟謨神算, 俱載無遺, 只恐智慮淺短, 欲更置先王之定制, 則徒紛擾而已, 卒無益於治道矣。" 上曰: "建白之事, 非變亂法政之爲也。 三公統屬百責, 民之冤抑則伸之; 人之賢否則進退之而已。" 掌令蘇世讓曰: "國家女樂, 當痛革之, 前日革罷之時, 未能盡革者, 爲慈殿也。 客人宴會, 必以舞童爲之, 而其弊則與女樂等矣。 其妖邪詭怪之狀, 於見聞, 甚不合焉。 女樂宜當革除, 而只以干戚、管籥, 用之於朝廷, 未爲欠也。 且廟中祭享, 雜奏俗樂, 有同蛙沸, 甚不宜於淸肅, 而樂工之數, 至幾四五百, 而無一人審於樂者, 是徒設而已。 雖祖宗朝所定之制, 如此俗樂之類, 當與大臣議而革罷。" 上曰: "女樂可革, 而今不革者, 爲慈殿也。 只以管絃之聲, 用之於內殿, 則宜當革也。 樂工之數亦多, 則其弊大矣, 與大臣議而可革則革之。 俗樂, 不須用於今時矣。" 用漑曰: "掌樂院工人之數果猥多。 初除女樂, 以男樂代之, 然舞童之形狀, 與女樂等矣。 世宗朝男樂之類, 皆以良人、公賤爲之, 而其衣服, 官自備給。 今若不得已用之, 則豈計其小弊哉? 世宗一遵制, 舞童則除之, 今又用之, 甚不當也。 果以干戚、管籥用之, 則如此淫褻之事, 皆當罷去, 舞童亦可無也。" 上曰: "俗樂當革, 而從正音, 甚美事也, 然斟酌罷之, 可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29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26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정론-간쟁(諫諍) / 예술-음악(音樂)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