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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29권, 중종 12년 8월 20일 계해 1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대학연의》를 강하면서 제사의 법도에 관해 조광조 등이 아뢰다

조강에 나아갔다.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독하였는데, 운한편(雲漢篇)에 이르러 시강관 조광조가 아뢰기를,

"이 편(篇)에 ‘교(郊)로부터 종묘(宗廟)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神)에게 제사하였다.’ 하였는데, 후세에서는 큰 가뭄이 있어도 친제(親祭)하지 못하고 대신(大臣)을 보내는 일도 없습니다. 옛말에 ‘정성스럽지 않으면 아무리 제수(祭需)가 훌륭해도 소용없다.’ 하였으니, 관원(官員)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더라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때로 정부(政府)의 대신을 보내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친제해야 하나 혹 연고가 있어서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지금 헌관(獻官)은 중신(重臣)을 차출하여 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낮은 관원을 차출하기까지 하니 매우 옳지 않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제사는 지극히 번다합니다. 당초의 뜻을 살펴보면, 조종조에서는 죽은 이를 섬기기를 살았을 때처럼 하는 뜻을 둔 것인데, 능침(陵寢)에는 삭망(朔望)이 있고 문소전(文昭殿)은 삼시(三時)에 이르니, 이렇듯 번독(煩黷)하면 입번(入番)하는 종재(宗宰)가 어떻게 삼시에 정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일이란 뒷사람이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고, 지사(知事) 장순손(張順孫)이 아뢰기를,

"경연관(經筵官)의 말이 지당합니다. 문소전은 삼시로 제사하고, 그릇을 씻는 소리가 신위(神位)가 계신 곳까지 들리는데, 신도(神道)는 고요한 것을 숭상하니 이처럼 설만(褻慢)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고, 영사(領事) 신용개가 아뢰기를,

"제사에 번독하면 곧 공경스럽지 못한 것이라 합니다. 조종조의 일을 갑자기 고칠 수는 없으나, 능침에도 삭망제가 있어 이 때문에 제관(祭官)이 정성을 다하지 못합니다."

하고, 조광조가 아뢰기를,

"이러한 일은 아뢰기 어려울 듯합니다. 전하께서 몸소 옛사람의 말을 생각하고 대신의 말도 살피시면, 그 이치가 어떠한 것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하였다. 대사헌(大司憲) 최숙생(崔淑生)이 아뢰기를,

"상께서 날마다 경연에 납시어 잘 다스리기 위하여 뜻을 기울이시고, 신 등도 상께서 삼대(三代)의 정치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성학(聖學)이 고명(高明)하고 경전(經傳)을 널리 보셨으니, 어느 대(代)의 일인들 모르시는 것이 있겠습니까? 간언(諫言)을 즐거이 받아들이면 흥하고 간언을 싫어하면 망하거니와, 날마다 고사(古事)를 보더라도 간신(諫臣)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신 등이 일을 말하고 대신도 말하는 것은 그것이 공론(公論)이고 적폐(積弊)이기 때문입니다. 조종조의 일에도 준수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옛말에 ‘도(道)가 아닌 줄 알면 어찌 3년을 기다리랴.’ 한 것이 이 뜻입니다.

지금 신이 논하는 것이 다 원망받을 일이므로 헌부(憲府)의 문을 쏜 일까지 생겼는데, 이것은 한때의 변일 뿐 아니라 만세의 큰 변입니다. 신은 폐조(廢朝)에서 사죄(死罪)를 범하여 여섯 차례 고문당하고 세 번 적소(適所)를 옮겼는데, 중흥(中興) 뒤에 시종(侍從)의 반열(班列)에 들어와 참여하였으니, 죽게 되었다가 살아난 것이므로 바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이라 신은 죽어도 아깝지 않으나 후세에서 의논이 있을 것이 염려됩니다. 임금은 위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래로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며,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은 천명(天命)·천토(天討)에 불과한데 관작(官爵)이 곧 천명이니, 임금이 어떻게 천명에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천재(天災)·시변(時變)이 거듭 나타나서 끊이지 않는데도, 상께서는 분부하시기를 ‘이미 시행하여 온 것이니 고칠 수 없다.’ 하니, 이는 쇠세(衰世)의 말입니다. 여러 달 논열(論列)하여도 곧 윤허하지 않으시니 신은 참으로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시경(詩經)》에 ‘생각하건대 나 홀로 근심이 크다.’ 한 것은 사람들이 다 근심하지 않으나 홀로 근심되므로 그 말이 이러한 것이니, 이런 말을 체념(體念)하여 대간(臺諫)의 말을 들으셔야 하며, 끝내 듣지 않으시면 조정(朝廷)의 복이 못됩니다. 《시경》에 ‘백성의 와언(訛言)을 어찌 막는 이가 없을까.’ 하였는데, 와언은 곧 사설(邪說)·이단(異端)입니다. 이단은 흥하지 못하고 장차 끊어진다는 것은 폐조부터 그러하였으나, 사설의 뿌리가 이제껏 끊어지지 아니하여 궁중에 남아 있다면 그 해(害)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여승[尼]이라는 것은 가장 상서롭지 못한 것인데 안일원(安逸院)·자수궁(慈壽宮)이 있으니, 그로 인연한 화(禍)가 지금 어찌 없겠습니까? 근일 여승의 집을 헐고 환속(還俗)시켰으나, 【이것은 법사(法司)가 한 일인데, 숙생(淑生)이 당시의 장관(長官)이었다.】 어찌 뿌리가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법궁(法宮)686) 에 상시 거처하시도록 신이 전에도 아뢰었으나 상께서 듣지 않으셨는데, 법궁에 상시 거처하여 조종께서 하신 일을 행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신이 잘 알지는 못하나, 외간에서 또한 말하기를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移御)하시기는 하였으나 실은 그렇지 않고 창경궁(昌慶宮)에 거처하신다.’ 합니다. 군신(群臣)은 다 창덕궁에 상시 계신 줄로 생각하는데 이런 말이 있으니, 이는 사설(邪說)에 빠져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무격(巫覡)이 번독(煩黷)하여 외방(外方)의 궁촌(窮村)·벽항(僻巷)에도 많이 있으며, 이뿐 아니라 수령(守令)의 아내(衙內)에 늘 출입하는 자를 아무(衙巫)라 부르고 또 국무(國巫)라 부르는 자도 있으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인데, 이런 일이 있으면 어찌 아래를 바룰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은 어찌 위에서 죄다 아실 일이겠습니까마는 조석으로 경계하여 먼저 스스로 금절(禁絶)해야 합니다."

하고, 조광조가 아뢰기를,

"신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신하는 하루라도 임금이 있는 곳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과연 그렇다. 이단의 일이 사대부의 집에도 있는지 나는 잘 알 수 없으나, 참으로 엄금해야 할 것이다. 당초에 이 궁으로 이어한 것은 자전(慈殿)의 뜻이었다. 상시에는 창덕궁에 거처하고 한더위 때에는 혹 창경궁(昌慶宮)으로 거둥하여 서로 왕래하거나와, 상시 법궁에 거처하라는 대신의 말은 지당하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최숙생이 이 말을 내니, 좌우가 놀라서 말 한 마디 없고 상도 불평한 성색(聲色)이 있으므로 최숙생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는데, 조광조(趙光祖)가 또한 그 잘못을 아뢰니 상이 비로소 성색을 부드럽게 하였다. 장경 왕후(章敬王后)687) 가 훙(薨)하매, 상과 상전(上殿)이 4∼5일 안에 황급히 창덕궁으로 피어(避御)하고는 거처하는 궁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의논하는 자가 조금씩 이것을 말하다 그 까닭을 잘 알 수 없었고, 상이 숨기는 바이므로 사람들이 대개 감히 발설하지 못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최숙생이 비로소 그 언단(言端)을 열고 조광조가 이어서 그 말을 도왔다. 조광조가 말하기를 ‘최숙생의 언사(言事)가 강개(慷慨)하고 절직(切直)하니, 내가 애지중지하여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하였다.

조광조가 아뢰기를,

"외방의 선비들이 성균관에 많이 모인 것은, 친영(親迎)은 성사(盛事)이니 경거(慶擧)688) 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국가에 인재가 없으니 인재를 시취(試取)하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하고, 최숙생이 아뢰기를,

"옛사람은 염퇴(廉退)하는 자가 많았으므로 수령(守令)이 친히 권하여 수레에 태워 보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자라면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하고, 신용개(申用漑)가 아뢰기를,

"외방에 염퇴하여 과거보러 오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서(下書)하여 올려보내게 하시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염퇴하는 사람은 올려보내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이때 이미 오시(午時)에 가까왔는데도 좌우의 논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특진관(特進官) 안윤덕(安潤德)은 말 한 마디 없다가 물러나와서 사사로이 말하기를 ‘쓸데없는 말을 수다히 아뢰니 상께서 싫어하는 기색이 계시더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29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17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사법-치안(治安) / 인사-선발(選拔) / 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사학(史學)

  • [註 686]
    법궁(法宮) : 정궁(正宮).
  • [註 687]
    장경 왕후(章敬王后) : 중종의 비(妃) 윤씨(尹氏).
  • [註 688]
    경거(慶擧) :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에 보이는 과거(科擧). 국가에 큰 경사가 있으면 3년마다 정례(定例)로 보이는 식년시(式年試) 외에 증광시(增廣試)를 특설(特設)한다. 또 별시(別試)·정시(庭試)를 설행(設行)하기도 하는데, 큰 뜻으로 경거라 하면 바로 증광시를 말한다.

○癸亥/御朝講。 講《大學衍義》, 至《雲漢篇》, 侍講官趙光祖曰: "此篇曰: ‘自郊徂宮, 靡神不擧’ 云。 後世雖有大旱, 不能親祭, 而又無遣大臣之事。 古語曰: ‘不誠無物。’ 雖遣官致祭, 而不致其誠, 則何益? 時遣政府大臣, 可也。" 上曰: "予當親祭, 而或有故未敢爲也。 今獻官, 非徒不能以重臣差遣, 至差庸下之官, 甚不可。" 光祖曰: "我朝祭祀, 至爲煩多。 原其初意, 則祖宗朝有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 之意, 陵寢則有朔望; 文昭殿則至於三時, 如此煩黷, 其入番宗宰, 何能盡誠於三時? 凡事, 使後人, 可繼爲當。" 知事張順孫曰: "經筵官之言, 至當。 文昭殿, 祭以三時, 洗滌器皿, 聲徹神御之所。 神道尙靜, 不可如是褻慢。" 領事申用漑曰: "黷于祭祀, 是謂不欽。 祖宗朝事, 雖不可猝改, 陵寢亦有朔望祭, 由是, 祭官不能盡誠也。" 光祖曰: "如此之事, 啓之似難。 若於聖躬, 思古人之語, 又察大臣之言, 則庶知其理之如何也。" 大司憲崔淑生曰: "上日御經筵, 銳意爲治, 臣等亦欲上爲三代之治, 今聖學高明, 博覽經傳, 何代之事, 有不知乎? 樂諫則興, 厭諫則亡, 雖日覽古事, 不聽諫臣之言, 則何益? 臣等言事, 而大臣亦有言之者, 以其爲公論、爲積弊故也。 祖宗朝事, 亦或有不可遵守者。 古語曰: ‘如知其非道, 何待三年?’ 此之謂也。 今臣之所論, 皆取怨之事, 故至於射憲府之門, 此非徒爲一時之變, 乃萬世之大變。 臣於廢朝, 犯死罪, 六次拷掠, 三度遷謫。 中興之後, 入參侍從之列, 在死得生, 冀絲毫有補, 而臣則死不可惜, 恐後世有議也。 人主當上畏天下、畏民, 而畏天則不過天命、天討也, 官爵, 是爲天命, 人君何不順天之命乎? 今天災、時變, 疊見不絶, 而上敎之曰: ‘業已爲之, 不可改也。’ 此乃衰世之言。 累朔論列, 不卽聽允, 臣實未知其意。 《詩》曰: ‘念我獨兮, 憂心京京。’ 人皆不憂而獨憂, 故其所言如是。 體念如此之言, 而聽臺諫之言, 可也。 若終不聽, 則甚非朝廷之福也。 《詩》曰: ‘民之訛言, 寧莫之懲?’ 訛言, 乃邪說、異端也。 異端不能興, 而將絶者, 自廢朝爲然, 然邪說根株, 至今不絶, 宮中若有之, 則其害不少。 夫尼者, 最爲不祥, 而有安逸院慈壽宮, 因緣之禍, 今豈不有乎? 近日壞撤尼家, 使之還俗, 【此, 法司所爲, 而淑生時爲長官。】 然豈無根株乎? 常御法宮之事, 臣前亦進啓, 而上不聽焉。 常御法宮, 行祖宗之事, 可也。 臣不敢細知, 而外間且言之曰: ‘雖移御昌德宮, 實則不然, 在昌慶宮也。’ 群臣皆意其常御昌德宮, 而乃有如此之言, 此無乃溺於邪說而然乎? 今巫覡煩黷, 而外方窮村僻巷, 亦多存焉。 非但此也, 守令衙內, 尋常出入, 號爲衙巫。 又非只此也, 號爲國巫者有焉, 源淸然後, 流可淸。 若有如此事, 豈能正下乎, 此豈上所盡知之事乎? 然朝夕警勑, 先自禁絶, 可也。" 光祖曰: "臣亦聞此言。 人臣雖一日, 不可不知君上之所在也。" 上曰: "果然。 異端於士大夫家亦有之, 予則未能細知也, 固當嚴禁。 厥初移御此宮, 乃慈殿之意也。 常時則御昌德宮, 炎熱之時則或幸昌慶宮, 互相往來, 大臣常御法宮之言, 至當矣。"

【史臣曰: "淑生發此言, 左右愕然無一言, 上亦有不平聲色, 淑生不敢復言, 光祖亦陳其失, 上始怡聲色。 章敬王后之薨, 上與上殿, 四五日內, 遑遽避御于昌德宮, 御宮不定, 議者稍稍言之, 未得其詳, 且上之所諱也, 人多不敢發。 至是, 淑生始開其端, 光祖繼助其說。 光祖曰: ‘淑生言事慷慨切直, 吾愛之重之, 欲撫其背’ 云。"】

光祖曰: "外方之儒, 多集成均, 意以爲親迎盛事, 當有慶擧故也。 且國家無人才, 取人甚可。" 淑生曰: "古之人, 多廉退者, 故守令親勸爲之駕。 若聞奇馳來者, 則將用之於何處乎?" 用漑曰: "外方有廉退不赴擧者, 則下書, 令上送, 可也。" 上曰: "廉退之人, 令上送可也。"

【史臣曰: "是時, 日已近午, 左右論說不絶, 而特進官安潤德, 曾無一言, 退而私語曰: ‘無用之言, 數多啓之, 上有厭惡之色。’"】


  • 【태백산사고본】 15책 29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17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사법-치안(治安) / 인사-선발(選拔) / 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