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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9권, 중종 12년 8월 5일 무신 8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묘현·절의 등의 일을 군신에게 연방하다

상이 묘현(廟見)·절의(節義) 등의 일을 군신(群臣)에게 연방하였다.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이 아뢰기를,

"묘현의 일은, 신 등이 당초의 의논을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워낙 거행해야 할 예(禮)이나, 친영(親迎)도 우리 나라에서는 행하지 않던 것을 행하였는데, 행한 뒤에 마땅하다고도 하고 마땅하지 않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위에서 융례(隆禮)를 아래에 보이는 것이니 무방합니다. 이 묘현으로 말하면, 당(唐)·송(宋)에서 이미 행하였다고는 하나 예전과 지금은 마땅한 것이 다르며, 우리 나라는 남부(男夫)의 예도(禮度)도 소활(疏闊)한데 부인(婦人)의 예도는 맞게 할 수 있을는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또 되도록 간실(簡實)하게 하고자 하더라도 부녀(婦女)의 종자(從者)가 많지 않겠습니까? 고례를 행하려 하다가 지금에 맞지 않는 것보다는 선왕(先王)의 제도를 따르는 것이 낫습니다. 절의의 일은, 국가에서 원기(元氣)를 배양하는 것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길재(吉再)·정몽주(鄭夢周)는 선왕조(先王朝)에서도 포장(褒奬)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근래 폐기하고서 수거(修擧)하지 않으므로 신명(申明)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는 좋은 뜻입니다.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의 일로 말하면, 당대에는 버려두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젊은 유사(儒士)가 이것을 말하면, 상께서는 그런 줄 알고 마실 뿐이요, 절의가 가상한 사람이 있더라도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평안도의 일은, 신상(申鏛)에게 이야기해서 보내고자 하는 것이니 이는 아름다운 일이나, 신상(申鏛)도 범상한 사람이 아니므로 저들을 접대하는 일과 변방의 방비에 관한 일들은 다 그 마음으로 처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우의정 신용개(申用漑)·좌찬성 김전(金詮)·병조 판서 고형산(高荊山)·좌참찬 이계맹(李繼孟)·호조 판서 안당(安瑭)·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한세환(韓世桓)·예조 참판 조계상(曺繼商)·병조 참판 유미(柳湄)·호조 참판 이자견(李自堅)·한성부 좌윤 윤희평(尹熙平)·이조 참판 김극핍(金克愊)·한성부 우윤 이자화(李自華)·공조 참판 방유령(方有寧)·공조 참의 정광국(鄭光國)·호조 참의 박소영(朴召榮)·병조 참의 서극철(徐克哲)·참지(參知) 박호겸(朴好謙) 등의 계사(啓辭)도 같았으며, 형조 참판 이사균(李思鈞)이 아뢰기를,

"묘현의 일은, 행하고자 하는 자는 고례를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고, 행하지 않고자 하는 자는 시의(時宜)에 맞지 않는 것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미 친영(親迎)을 행하였으면 묘현을 행해야 하는데, 이미 친영을 행하고서 묘현을 행하지 않으면 예(禮)에 갖추지 못한 바가 있게 되거니와, 큰일을 하고자 하는 자라면 군의(群議)가 어렵게 여기든 쉽게 여기든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또 조종(祖宗)께서 행하지 않은 것이라 하여 행하지 않는다면 매우 옳지 않습니다. 주(周)나라의 예악(禮樂)은 성왕(成王) 때에 이르러서야 크게 갖추어졌으니, 무릇 일에 있어서 선왕이 행하지 않은 것이라 하여 행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묘현은 정례(正禮)에 맞으므로 진실로 의심없이 행해야 합니다."

하고, 이조 참의 김안로(金安老)가 아뢰기를,

"묘현의 일은 성인(聖人)의 정례인데, 고례가 오래 폐기되었던 것을 문득 회복하려 하므로 뭇사람이 다 어렵게 여기는 것이나, 혼례는 지극히 중하니 이미 대혼(大婚)의 예(禮)를 바로 하였으면 묘현을 행하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절의(節義)는 국가가 원기를 배양하는 큰일인데 폐조(廢朝)의 정치가 혼란한 뒤로 절의가 퇴폐하였으니, 정몽주 등은 특별히 치제(致祭)609) 하고 또 그 자손을 찾아서 녹용(錄用)해야 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은 다른 초사(招辭)에 연루된 일이 아니므로, 전에 《속삼강행실》을 지을 때에 그려서 올리려 하였으나 당대의 일이라 하여 의논이 마침내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성종조(成宗朝)에서도 그 자손으로서 금고(禁錮)610) 된 자를 풀어 주었으니, 이제 그 자손을 현직(顯職)에 통하게 해야 합니다."

하고, 우승지(右承旨) 이자(李耔)가 아뢰기를,

"근일 예전에 없던 성례(盛禮)를 행한 것을 대소 신민(大小臣民)이 누구인들 탄미(嘆美)하지 않겠습니까? 아랫사람이 묘현을 행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어찌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대신(大臣)은 나라의 습속에 없던 일이라 하여 시의(時宜)에 어그러지는 일일 것이라 하나, 아랫사람은 이미 정례를 행하고서도 끝내 정례를 행하지 못하는 것을 미진(未盡)하게 여겨 반드시 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상께서 처음에 고례(古禮)를 찾아서 행하셨는데 이제 습속에 구애되어 행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상께서 다시 짐작하셔야 합니다."

하고, 김안로가 또 아뢰기를,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은 폐조(廢朝)에서 억울하게 죄를 입었으니, 그 자손은 주죄(誅罪)된 사람의 자손의 예(例)로 녹용할 수 없습니다. 어진 사람의 후손으로 녹용하고 그 처자로 하여금 기한(飢寒)을 면하게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정광필·신용개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대신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하매, 정광필 등이 같은 말로 대답하기를,

"도리를 지키고 실천한 사람은 포장해야 합니다."

하고, 김전이 아뢰기를,

"그 사람은 학문이 순정(醇正)하고 명예와 세력에 뜻을 두지 않았으니 정파(正派)를 얻은 사람입니다. 학자가 종사(宗師)로 삼아 마침내 그 학행(學行) 때문에 화(禍)가 미쳤으니 매우 애석합니다."

하고, 이자가 아뢰기를,

"김굉필·정여창은 학술이 순정하여 우리 나라에는 이런 사람이 없으니, 선비들이 향방을 알게 된 것은 오로지 이 두 사람의 공(功)에 힘입은 것입니다. 예전에 증직(贈職)하여 포장한 일이 있는데,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에게 관계되겠습니까마는 나라를 맡은 이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자손도 녹용해야 합니다."

하니, 정원(政院)에 전교하기를,

"묘현(廟見)의 일은 군의(群議)가 다 행하기를 어렵게 여기니 홍문관(弘文館)에 말하라. 김굉필 등의 자손은 녹용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29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0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윤리-강상(綱常) / 가족-친족(親族)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

  • [註 609]
    치제(致祭) : 임금이 제수(祭需)·제문(祭文) 등을 내려서 제사하는 것.
  • [註 610]
    금고(禁錮) : 벼슬아치에 대한 처벌로, 벼슬에 서용(敍用)하지 않는 것. 이를테면, 파직하고서 영불서용(永不敍用)에 처하는 것이 이것인데, 당자뿐 아니라 자손에게도 미칠 수 있다.

○上以廟見、節義等事, 延訪群臣。 領議政鄭光弼曰: "廟見事, 臣等非堅執初議也。 是固可行之禮也, 然親迎, 亦我朝所未行而行之, 旣行之後, 或以爲當, 或以爲不當。 然此則上之示下以隆禮, 爲無妨也。 若此廟見, 則雖云已行, 然古今異宜, 我國男夫禮度, 亦爲疎闊, 婦人之能合禮度與否, 臣不知也。 且雖欲務從簡實, 婦女從者, 不其多乎? 欲行古禮, 而不合於今, 不如從先王制之爲愈也。 節義事, 國家培養元氣, 豈不好乎? 吉再鄭夢周, 先王朝亦非不褒奬, 而近來廢而不修, 故欲申明之, 是好意也。 若成三問朴彭年等事, 當代置而不論, 無乃可乎? 少年儒士以此爲言, 則自上知之而已, 雖有節義可尙之人, 不可論議也。 平安道事, 欲說與申鏛以遣之, 是美事也。 亦非常人也, 接待彼人邊備等事, 皆在於其心處置耳。" 右議政申用漑、左贊成金詮、兵曹判書高荊山、左參贊李繼孟、戶曹判書安瑭、漢城府判尹韓世桓、禮曹參判曹繼商、兵曹參判柳湄、戶曹參判李自堅、漢城府左尹尹熙平、吏曹參判金克愊漢城府右尹李自華、工曹參判方有寧、工曹參議鄭光國、戶曹參議朴召榮、兵曹參議徐克哲、參知朴好謙等啓辭亦同。 刑曹參判李思鈞曰: "廟見事, 欲行之者, 以古禮爲美也; 欲不行者, 以不合時宜爲重也。 旣行親迎, 則當行廟見。 旣行親迎而不行廟見, 於禮有所不備矣。 若欲爲大事者, 不可拘於群議之難易也。 且以爲, 祖宗所不行而不行, 有大不可, 家禮樂, 至于成王而後大備。 凡事不可以先王所不行, 而終莫之行也。 今廟見, 合於正禮, 固當行之無疑。" 吏曹參議金安老曰: "廟見一事, 聖人正禮。 古禮久廢, 而遽欲復之, 故衆皆以爲難也。 然婚禮至重, 旣正大婚之禮, 則廟見之行, 有何難焉? 節義, 乃國家培養元氣之大者。 廢政昏亂之後, 節義頹毁, 鄭夢周等, 當別用致祭, 而又搜訪其子孫, 錄用之可也。 成三問朴彭年, 非他辭連之事。 前此撰《續三綱行實》之時, 皆欲圖錄, 而以其當代之事, 議竟不行。 在成宗朝, 亦放其子孫之見錮者, 今其子孫, 當使之通顯也。" 右承旨李耔曰: "近行曠古之盛禮, 大小臣民, 孰不嘆美? 下人之以爲當行, 豈不以此哉? 大臣則以國俗所不行之事, 而恐異於時宜也; 下人則以旣行正禮, 而不能終行正禮, 爲未盡而必行之也。 上初求古禮而行之, 今拘於習俗, 而不能行者, 何也? 自上須更斟酌。" 安老又曰: "金宏弼鄭汝昌, 被罪於廢朝。 其子孫, 不可以被誅人子孫例, 錄用也, 當以賢者之後, 而使其妻孥, 得免於飢寒可也。" 上顧謂光弼用漑曰: "於大臣意何如?" 光弼等同辭以對曰: "操守踐實之人, 褒奬可也。" 金詮曰: "其人所學醇正, 不趨名勢, 得其正派之人也。 學者以爲宗師, 終以其學行, 而禍及之, 甚可痛惜。" 李耔曰: "金宏弼鄭汝昌, 學術醇正, 東國無如此人。 儒者知所向方, 專賴二人之功也。 古有贈職褒美之事, 此何預於賢者乎? 然有國者所當爲也。 其子孫亦可錄用。" 傳于政院曰: "廟見事, 群議皆以爲難行, 其言于弘文館。 金宏弼等子孫, 錄用可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29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30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윤리-강상(綱常) / 가족-친족(親族)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