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3경에 권정례로써 반교하고 사면하다
밤 3경(更)에 권정례(權停例)로서 반교하니 내용은 이러하였다.
"듣건대 대혼(大婚)의 예(禮)를 중히 여기는 것은 왕화(王化)의 근원을 튼튼히 하고 인륜(人倫)의 시초를 바루어서 장차 치국(治國)과 제가(齊家)의 공효를 거두고자 하는 때문이다. 주(周)나라의 도(道)가 쇠미해진 뒤로부터 예문(禮文)이 무너지고 이지러져서, 이성(二姓)이 서로 맞이하는 좋은 일을 대개는 모두 간단하게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노 애공(魯哀公)이 성인(聖人)을 친견(親見)하였을 때에도 ‘예법이 너무 번중하지 아니합니까?’ 하는 말이 있었고445) , 송 철종(宋哲宗)은 육례(六禮)를 모두 갖추었으면서도 친영례(親迎禮)는 궐하였으므로, 삼대(三代)의 아름다운 제도가 마침내 회복되지 아니하고 속화(俗化)도 따라서 날로 잡박하게 되었으니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못난 몸으로 크나큰 자리를 이어받아, 안팎에서 보조하는 힘으로 영구히 천명(天命)을 맞을까 하였더니, 불행히도 장경(章敬)446) 이 조서(殂逝)하여 곤위(坤位)가 비게 되매, 외화(外和)하는 도리(道理)를 나 혼자서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훌륭한 인물은 만나기가 실로 어려운지라, 위로 자전(慈殿)의 분부를 받들고 아래로 대신의 청을 들어서 두루 명문(名門) 중에 물색하여 마침내 현덕(賢德)한 사람을 얻게 되었다. 이제 윤씨(尹氏)를 보건대, 일찍부터 아름다운 성망(聲望)이 널리 드날려 문지(門地)로 보나 인물로 보나 곤위에 거하기에 손색이 없는 터라, 사람의 모의가 이미 귀일되고 점괘가 또한 순조로우므로, 이에 유사(有司)에 명하여 옛법을 거행할 새, 융숭한 예절을 다하여 정덕(正德) 12년 7월 19일 계사(癸巳)에 면복(冕服)을 갖추고 관소(館所)에서 친히 맞이하여 왕비로 책립, 중위(中位)를 바르게 하였다. 이미 대례(大禮)를 치루었으니 관대한 은전을 선포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달 19일 새벽 이전의 모반 대역과, 자손으로서 조부모·부모를 모살(謀殺)하거나 구매(毆罵)한 것과, 처첩(妻妾)으로서 지아비를 모살한 것과, 노비로서 주인을 모살한 것과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과, 고독 염매(蠱毒魘魅) 등 강상(綱常)에 관계되는 것은 제하고, 단 장도(贓盜)를 범한 것 외에 현재 추열(推閱)하고 있는 도죄(徒罪) 이하는 모두 사면(赦免)하라. 아, 나의 처(妻)에게 모범이 되어 그것을 온 나라에 확대함으로써 문왕(文王)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따르고, 예전의 나쁜 풍습을 고쳐 그 이목(耳目)을 새롭게 해서, 거의 관저(關雎)의 국풍(國風)을 일으키고자 하여 교시(敎示)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남곤(南袞)이 지었다.】
사신은 논한다. 이보다 앞서 곤위(坤位)가 아직 결정되지 아니하였을 때에 숙의(淑儀) 박씨(朴氏)가 후궁 가운데에서 총애가 으뜸이었으므로, 장경(章敬)의 예를 따라 스스로 중위(中位)에 오르고자 하였었다. 상도 이것을 들으려 하였으나 대신의 뜻이 어떤지를 모르겠으므로, 정광필·김응기·신용개 등에게 간곡한 말로 물어서 그 뜻을 시험하였다. 그랬더니 김응기는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신용개는 약간 허락하였으나, 정광필만이 분연히 허락하지 않으며 아뢰기를 ‘정위(正位)는 마땅히 숙덕(淑德)이 있는 명문(名門)에서 다시 구해야 할 것이요 미천한 출신을 올려서는 안 됩니다.’ 하고, 진서산(眞西山)의 《대학연의(大學衍義)》447) 의 제가(齊家)하는 요체(要諦)와 범조우(范祖禹)448) 가 후비 간택을 논한 일을 진간(進諫)하니, 박씨의 뜻은 마침내 저지되고 상의 뜻도 새 왕비를 맞기로 결정되었다. 사림(士林)에서 이 말을 듣고 서로 이르기를 ‘정광필의 이번 일은 송(宋)나라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이라 해도 더 낫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293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註 445]노 애공(魯哀公)이 성인(聖人)을 친견(親見)하였을 때에도 ‘예법이 너무 번중하지 아니합니까?’ 하는 말이 있었고 : 노 애공이 공자(孔子)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에 공자가 예법의 소중함을 강조하니까 "……그렇지만 면복(冕服)으로 친영(親迎)하는 것은 너무도 번잡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예기(禮記)》 애공문(哀公問).
- [註 446]
장경(章敬) : 장경 왕후 윤씨(尹氏).- [註 447]
《대학연의(大學衍義)》 : 송(宋)나라 진덕수(眞德秀)의 저서로 43권임. 군주(君主)의 수양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대학》의 정신을 경전(經典)과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해설하였다.- [註 448]
범조우(范祖禹) : 송나라 때의 문신(文臣). 호는 화양 선생(華陽先生). 사마 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편수에 참여하고 뒤에 급사중(給事中)이 되었다. 철종(哲宗)이 즉위한 뒤에, 소인(小人)의 발호를 금할 것과 장돈(章惇)이 대신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간장(諫章)을 올렸다가 폄적(貶謫)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당감(唐鑑)》·《제학(帝學)》·《인종정전(仁宗政典)》 등의 저서가 있다. 《송사(宋史)》 권337.○夜三鼓, 用權停例頒敎。
王若曰; 蓋聞, ‘重大婚之禮, 所以基王化之源, 正人倫之始’, 將欲收治齊之效。 曰自周道旣衰, 禮文殘缺, 其於合二姓之好, 率皆苟簡。 魯哀公親見聖人, 而尙有 "已重" 之問; 宋 哲宗備擧六禮, 而猶闕親迎之儀, 使三代之制, 終於不復, 而俗化隨而日駁, 可勝惜哉? 予以眇末, 叨嗣丕構, 庶資內外補助之力, 永迓天休, 不幸章敬殂逝, 中壼曠位, 外和之理, 非予獨成。 顧惟, 令淑實難其人, 上稟慈殿之敎, 下循大臣之請, 歷選名門, 聿求賢德。 眷玆尹氏, 懿聞夙彰, 以地以人, 堪處坤極, 人謀旣協, 龜告亦從, 乃命有司, 修擧古典, 誕備隆禮, 於正德十二年七月十九日癸巳, 冕而親逆于館所, 冊立爲妃, 俾正中位。 旣講大禮, 宜布寬恩, 自今月十九日昧爽以前, 除謀叛大逆, 子孫謀殺、歐罵祖父母ㆍ父母, 妻妾謀殺夫, 奴婢謀殺主, 謀故殺人, 蠱毒魘魅, 關係綱常, 但犯贓盜外, 時推徒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刑寡妻以御于家邦, 尙克迪文王之彝敎, 革舊染, 而新其耳目, 庶幾興《關雎》之《國風》, 故玆敎示, 想宜知悉。 【南袞所製。】
【史臣曰: "先是, 壼位未定, 淑儀朴氏, 寵冠後宮, 欲援章敬之例, 自陞中位。 上欲從之, 而不知大臣之意如何, 令懇辭求之於光弼、應箕、用漑等, 試觀其意。 應箕則無可否, 用漑微許之, 光弼獨奮然不許曰: ‘正位, 當更求淑德名門, 不可以側微陞。’ 遂以眞西山 《大學衍義》齊家之要、范祖禹論擇后之事, 進諫, 朴氏之意遂沮, 上意亦定於納新妃。 士林聞之, 相語曰: ‘光弼此擧, 雖宋 韓、范, 無以過也。’"】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293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註 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