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를 명하매 대사헌 최숙생 등이 홍중근의 일 등 시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다
소대(召對)를 명하매 대사헌 최숙생(崔淑生)이 아뢰기를,
"사온서의 비자와 홍중근의 일은 지극히 자질구레하고 지저분한 일입니다. 비록 ‘들깨 2승(升)을 사송(賜送)하였다.’ 하였으나, 이를 사송하는 물건이라 할 수는 없으며, 또 이렇게 외쇄(猥瑣)385) 한 말이 궁금에까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께서는 아실 수가 없는 일인데도 특별히 놓아 보내라는 분부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질구레한 일은 나인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인데 상에게까지 전달이 되었으니 사체(事體)에 지극히 어긋난 것입니다. 만약 치죄하지 않는다면 궁중의 법도가 엄숙할 수 있겠으며 여알(女謁)의 흥행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일은 비록 작지만 장래의 폐단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로부터는 그 조짐을 미연에 방지해서 궁금(宮禁)의 안팎이 엄연히 구별되도록 하소서."
하고, 대사간 이언호(李彦浩)는 아뢰기를,
"사대부(士大夫)라도 가법(家法)이 엄하지 못하면 장획(臧獲)의 말에 그 주인이 동요하기 쉬운 것인데 하물며 임금이겠습니까? 근래에 오랫동안 경연에 납시지 않으시니, 이는 정심 공부(正心工夫)가 미흡하여 게으르고 불경(不敬)한 생각이 있어 그러신 것인가 두렵습니다. 옛날 성탕(成湯)은 가뭄을 만났을 때 육사(六事)386) 로써 자책(自責)을 하였는데, 여알(女謁)이 그 중의 하나였으니 삼대(三代)의 성시(盛時)에도 여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가뭄이 극심하니 상께서는 여알의 조짐을 모르실까 더욱 두렵습니다. 일의 진위(眞僞)를 상께서 어찌 참으로 아시겠습니까? 사온서 비자의 공초에 ‘나인(內人)의 요식(料食)을 주고 남은 것을 가지고 갔다’ 하였는데, 전교에는 ‘사송(賜送)하는 물건’이라 하시었으니 어찌 이리도 한결같이 다릅니까? 그리고 병조(兵曹)에 압류된 것은 사물(私物)인데, 상달(上達)하기는 ‘사송하는 물건’이라 하매 상께서도 이를 믿으시니, 신 등은 이 때문에 의구(疑懼)하는 터입니다."
하고, 최숙생(崔淑生)이 아뢰기를,
"무릇 상교(上敎)가 있을 때는 승전색(承傳色)이 친히 승지에게 전달해서 사관(史官)이 다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승지가 사알(司謁)의 말만 듣고 병조로 하여금 놓아주게 하였으니, 상교를 받듦에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정말로 사송하는 물건이라 해도 표(標) 없이 가져가면 그것이 어찌 사물이 아닌 줄을 알겠습니까? 또 ‘그 말을 들었을 뿐이다.’ 한다면, 큰 일에 대해서도 상의 분부를 가칭(假稱)하는 자가 있으면 들어야만 하겠습니까?"
하였다. 이언호(李彦浩)가 또 아뢰기를,
"이제 승전색이 왕명(王命)을 출납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잘못인데 하물며 승전색이 사알을 시켜서 전달하게 함이겠습니까? 그리고 승지는 출납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출납 내용을 반드시 모두 살펴서, 만약 대체(大體)에 어긋나는 일이 있거든 힐문(詰問)해 본 뒤에 계품(啓稟)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순종만 하면서 사알의 말을 믿고 곧 병조로 하여금 놓아주게 하였으니, 직책을 잘못 수행한 것이 매우 심합니다."
하고, 부제학 이자(李耔)가 아뢰기를,
"옛날 임금은 ‘서옥(庶獄)·서신(庶愼)에 있어서 또한 이를 구태여 알려 하지 않는다.387) ’ 하고, 이를 유사(有司)의 어진 이에게 맡겨 그 책임을 다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임금이 하는 일이 너무도 번다하므로 그것들을 이루 다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규모(規模)는 자질구레한 일까지 모두 반드시 위에 취품(取稟)을 해서, 임금께서는 그때마다 정신을 쓰시며 잠시도 틈이 없으시니 대체(大體)에 매우 어긋나는 일입니다. 더구나 사송(賜送)하시는 소소한 물건에까지 성려(聖慮)를 쓰신다면 크게는 학문(學問)·지경(持敬)에 관한 일에 전념하실 수가 없을 것이니, 아랫사람으로서 실망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비록 여알(女謁) 등의 일이 있다 해도 임금께서 들어 주지 않으시는 까닭에 그들이 마음대로 하지는 못합니다만, 그러나 옛날의 임금은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였는데도 자기도 모르게 점점 그 속으로 빠져들어갔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대간·시종(侍從)이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또 평안도는 한재(旱災)가 매우 심하여서, 지금 비가 온다 해도 가망이 없으니 국가에서 여러 가지로 조치를 한다 해도 결코 그 도(道)를 소복(蘇復)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피인(彼人)388) 이 지금 중원(中原)에서 소란을 피우는데 자질구레한 도적들이 아니어서 인축(人畜)을 잡아간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평시(平時)에도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더구나 지금은 공사(公私)가 모두 궁핍한 상태이니 만약 변고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서방(西方)은 우리 나라의 관문(關門)이니 만약 잘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상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 상례(常例)만 따르지 마시고 스스로 격려하시어 대신(大臣)·재상(宰相)과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고, 승지 윤은보(尹殷輔)가 아뢰기를,
"서방의 일은 지극히 걱정이 됩니다. 지난해에도 흉년이 심하였는데 금년에 또 한발이 있으니, 여러 모로 생각해 봐도 베풀어 봄직한 계책이 없으나 신 등이 생각하기에는 조전(漕轉)389) 에 관한 일을 미리 주획(籌畫)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전은 대신이 이르기를 폐가 있다고는 하나, 진실로 곤핍(困乏)하다면 미리 초치하되 대신과 의논하라."
하였다. 이언호(李彦浩)가 아뢰기를,
"요사이 모든 일에 있어서 옛것을 본받으려 하나, 정사(政事)에 간혹 편사(偏私)로 흐르는 실수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상의 학문이 성실하지 못하여서 그러한 것입니다. 대간이 아뢴 남가(濫加)390) 와 시폐(時弊) 등에 관한 일은 하나도 쾌히 따르신 적이 없었습니다. 또 비록 어쩌다가 윤허를 하시어도 반드시 오래 두고 유난(留難)하신 뒤에 따르시어 거간(拒諫)391) 의 조짐이 이미 뚜렷하고 성덕(聖德)에도 누(累)가 됨이 많으니 신 등은 결망(缺望)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임금이란 비록 실수가 있다 해도 그 허물을 고치면 훌륭한 것이니, 앞으로는 과감하게 허물을 고치시고 정심 공부(正心功夫)에 순실하게 힘쓰시어, 광명 정대한 터전을 세우기를 기약하소서."
하고, 이어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니, 상이 이르기를,
"전조(銓曹)에서 정사(政事)할 때에 매양 사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거니와, 빈 자리는 많고 사람은 적으니 다소라도 쓸 만한 사람이면 체직할 것 없다."
하였다. 이자(李耔)가 아뢰기를,
"지난번에 남곤(南袞)이 인물이 부족하다고 아뢰기에 신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아뢰었습니다만, 대체로 인물이 부족하다는 말은 임금이나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는 입 밖에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일세(一世)의 재능 있는 이를 내는 것은 반드시 일세에 쓰기 위함이니, 재능 있는 이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데 달린 것입니다. 그 인물이 옛날의 성현과 같아서 하루아침에 재상 지위에 둘 만한 사람이야 어찌 대대로 나올 수 있겠습니까마는, 여러 가지 직임에 적합한 사람이야 어찌 많이 얻을 수가 없겠습니까? 옛사람이 부족하다고 한 것은 일세의 인물을 속인 것입니다. 인물은 결코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물을 얻는 데는 도(道)가 있고 인물을 쓰는 데는 요령(要領)이 있는 것인데 인물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어찌 폐가 없겠습니까? 상께서는 참작을 하셔야 합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시종(侍從)·대간(臺諫)을 불시에 소대(召對)한 것은 상이 즉위한 이래 일찍이 없던 성사(盛事)였다. 홍문관이 매양 그렇게 하기를 청하고자 하다가 감히 못하였는데, 어쩌다 그것을 청하자 문득 허락하고 또 스스로 인책하며 자경(自警)하는 언사가 많았다. 그리하여 사림(士林)이 기꺼워하여 말하기를 ‘군신 상하의 뜻이 통하여 서로 막힘이 없게 되는 단서가 이로부터 열릴 것이다.’ 하니, 이는 교리(校理) 조광조(趙光祖)가 건의하여 행하기를 청하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상은 자주 소대에 나아갔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285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구휼(救恤) /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정(軍政)
- [註 385]외쇄(猥瑣) : 자질구레하고 지저분함.
- [註 386]
육사(六事) : 상탕(商湯)이 7년간 대한(大旱)을 당하여 상림(桑林)에서 기우(祈雨)하면서 반성하던 여섯 가지 일. 즉 1. 정사가 한결같지 않은가. 2. 백성이 실직(失職)하지 않았는가. 3. 궁실이 화려하지 않은가. 4. 여알(女謁)이 성하지 않은가. 5. 뇌물이 있지 않은가. 6. 참소(讒訴)하는 자가 있지 않은가 등 여섯 가지.- [註 387]
서옥(庶獄)·서신(庶愼)에 있어서 또한 이를 구태여 알려 하지 않는다. : 《서경(書經)》 입정(立政)의 "서옥과 서신을 문왕이 감히 이에 알려 하지 아니하였다." 한 귀절을 인용한 것으로, 정치의 최고 책임자인 제왕은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 알려 하지 않고 그것들을 각각 유사(有司)에게 맡겨 처리케 하였다는 뜻. 서옥은 여러 가지 옥송(獄訟), 서신은 여러 가지 삼가야 할 일, 즉 그 나라의 금계(禁戒)·재정(財政)·군비(軍備) 등 신중히 다루어야 할 일들이다.- [註 388]
피인(彼人) : 야인(野人).- [註 389]
○命召對。 大司憲崔淑生曰: "司醞署婢子及洪仲根事, 至微細暗濁。 雖云: ‘賜送荏子二升’, 不可謂賜送之物, 而猥瑣之言, 且不宜入於宮禁。 以自上不可知之事, 而特命放之。 如此微細之事, 內人猶不可知, 而至於轉達于上, 則事體至乖。 若不罪之, 治內之政, 得爲嚴肅乎? 女謁興行, 豈能禁斷? 事雖似微, 將來之弊, 有不可言。 願自今防微杜漸, 使宮禁斗絶內外。" 大司諫李彦浩曰: "雖士大夫, 家法不嚴, 則臧獲之言, 易以搖主, 而況人君耶? 近來久不御經筵, 臣恐正心工夫, 有所未至, 而有怠惰不敬之念, 而然也。 昔成湯遭旱, 以六事自責, 女謁其一也, 三代盛時, 亦有女謁。 近日亢旱極矣, 尤恐上不知有女謁之漸也。 事之眞僞, 上豈眞知? 司醞婢子之招云: ‘持內人料食之餘。’ 傳敎則以爲: ‘賜送之物’ 一何異也? 見拘於兵曹者私物, 而輒上達以爲: ‘賜送之物’ 上亦以是爲信, 臣等之所以疑懼也。" 淑生曰: "凡上敎, 承傳色當親傳于承旨, 使史官皆得參聽。 而承旨只聞司謁之言, 令兵曹放之, 承奉上敎, 豈容如是? 雖誠爲賜送, 無標持去, 則安知其非私物也? 若曰: ‘只從其言。’ 則有以大事假稱上旨者, 其從耶?" 彦浩曰: "今承傳色, 出納王命, 亦旣非矣, 而況承傳色, 令司謁傳之耶? 爲承旨, 非但出納而已, 使其出納, 必皆惟允。 如有妨害大體之事, 當詰問而啓稟之, 可也。 徒爲將順, 乃以司謁之言爲信, 卽令兵曹放之, 失職甚矣。" 副提學李耔曰: "古之人君, 其於庶獄庶愼, 亦曰罔敢知于玆, 猶付諸有司之賢者, 以責其任, 蓋以人君所爲之事甚繁, 不可勝爲故也。 我國規模, 雖微細之事, 必皆取稟於上, 上每爲之經意, 不暫遑暇, 有妨大體。 而況賜送小小之物, 亦經聖慮, 則大而學問、持敬之事, 必不能專, 下人莫不失望焉。 且雖有女謁等事, 上不聽信, 故今不恣行。 然古之人君, 亦常戒懼, 而駸駸然入於其中, 而自不知也, 可不愼歟? 此臺諫、侍從之所以憂慮也。 且平安道旱災甚酷, 今雖下雨, 無復有望, 國家雖多方措置, 必不使其道蘇復矣。 彼人作耗中原, 非鼠竊狗偸之比, 其擄去人畜, 不知其幾也。 在平時, 猶不可支也, 況今公私俱匱, 若有變故, 其何以爲也? 西方, 我國之關限也, 若至於不守, 則將何以爲國乎? 自上當用人, 不循常例, 振發激勵, 而與大臣、宰相, 議處之可也。" 承旨尹殷輔曰: "西方之事, 至爲可慮。 前年大飢, 今又旱暵, 多方計之, 無可施之策。 臣等計較以爲, 漕轉一事, 當預爲籌劃。" 上曰: "漕轉, 大臣以爲有弊, 然誠若頓乏, 當預措置, 可與大臣議之。" 彦浩曰: "近日凡事, 皆欲倣古, 而時於政事之間, 未免爲偏私之失。 是, 上之學問, 不能誠實而然也。 臺諫所啓濫加及時弊等事, 無一快從, 雖幸有兪允, 必久留難, 然後從之, 拒諫之漸已著, 聖德多有所累, 臣等不勝缺望。 夫人君, 縱有所失, 改過爲美。 願自今改過不吝, 於正心功夫, 純實着力, 期立於光明正大之域。" 臺諫仍啓前事, 上曰: "銓曹臨政, 每以不得人物爲言。 窠闕多而人物少, 若其人物稍可, 則不必遞也。" 李耔曰: "前日南袞以人物不足啓之, 臣乃論啓其非。 夫人物不足之言, 人君與執政大臣, 皆不必出諸口。 天生一世之才, 必爲一世之用。 才非不足, 惟在於用之何如耳。 若其人物有如古之聖賢, 而一朝可置之宰相之位者, 豈世世而出哉? 若其人優於百執事之任者, 豈不可多得? 古人以爲: ‘不足之言, 誣一世人物也。’ 人物, 不可謂之乏於世也。 其得之有道, 用之有要, 而乃謂人物不足, 豈無其弊乎? 上須斟酌焉。"
【史臣曰: "不時召對侍從、臺諫, 自上卽位以來, 未有之盛事也。 弘文館每欲請行, 而不敢, 今請之輒許, 亦多引咎自警之辭。 士林喜曰: ‘君臣上下, 情意交通, 無疏隔之患, 其端自此開矣。’ 此, 校理趙光祖建議請行也。 是後, 上數御召對。"】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285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구휼(救恤) /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정(軍政)
- [註 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