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에서 내수사 장리와 기신재 혁파를 아뢰고, 각사의 관원을 구임하게 하도록 청하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장령(掌令) 이원간(李元幹)·정언(正言) 박육(朴稑)이 기신재(忌晨齋) 및 내수사(內需司)의 장리(長利)에 관한 일을 아뢰고, 시독관(侍讀官) 채침(蔡忱)·검토관(檢討官) 조광조(趙光祖)·영사(領事) 신용개(申用漑)가 공론(公論)에 따르기를 청하였으나 상이 윤허하지 않았으며, 동지사(同知事) 남곤(南袞)이 아뢰기를,
"조정의 뭇 신하 중에는 재(齋)를 올려서 제 조상을 받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국가에서만은 이것을 하므로, 다들 극진히 아뢰어 반드시 철저히 혁파(革罷)하고자 합니다. 만약에 터럭만큼이라도 선왕(先王)·선후(先后)를 훼손하는 일이 있다면, 신 등도 조종(祖宗)의 신민(臣民)인데, 어찌 감히 아뢰겠습니까?"
하였다. 박육이 아뢰기를,
"요즈음 보건대, 잠실(蠶室)443) 의 적상군(摘桑軍)444) 이 공무를 빙자하여 사리(私利)를 영위하느라고 패(牌)를 차고 여염을 출입하며 민간에서 사사로 심은 뽕을 빼앗으므로 백성이 견디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하룻길이 되는 민가에서는 뽕나무를 죄다 베어 버려서, 백성이 누에를 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매우 불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종조(祖宗朝)에서 잠실을 둔 본의는 아랫백성으로 하여금 본뜨게 하고자 한 것인데, 다만 그 직임에 제수된 자가 잘 봉행하지 못하므로 이와 같은 폐단이 있는 것이다. 앞서 이미 금하게 하였다."
하매, 용개가 아뢰기를,
"율도(栗島) 같은 데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었으나 수직(守直)하는 자가 사가(私家)에 죄다 팔므로, 도리어 공용(公用)의 뽕이 부족하여 드디어 이런 폐단이 있게 됩니다."
하고, 원간이 아뢰기를,
"과연 이와 같은 폐단이 있으므로 전에 이미 그 관원을 추고하였습니다. 또, 각사(各司)의 관원이 반드시 구임(久任)445) 하고서야 능히 한 관사(官司)의 일을 깊이 살필 수 있는 것인데, 요즈음은 구임하는 법을 행하지 않아서 혹 한 달도 못되어 갈리는 자가 있으니 매우 불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은 시폐(時弊)에 매우 합당하다. 각사의 관원이 매우 자주 갈리므로 제가 맡은 바를 잘 처리할 겨를이 없으니, 비록 구임하는 법을 행할 수는 없을지라도, 자주 갈기에 이르지 않으면 될 듯하다."
하매, 용개가 아뢰기를,
"구임하는 법은 폐지한 지 오래므로 주의(注擬)446) 할 즈음에 인물이 없으면 부득이 구임할 사람을 아울러 쓰는데, 대간(臺諫)·시종(侍從)과 같은 부득이 가려서 주의해야 할 자라면 모르거니와, 그 밖의 잡직(雜職)은 다른 데로 옮겨 쓰지 않으면 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앞서 계유년447) 에 구임하는 법을 썼으나 그 뒤에 도로 폐지한 것은 오로지 인물이 모자라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다시 시행하고자 할지라도, 어찌 잘 행해지겠는가? 대간·시종뿐 아니라 송사(訟事)를 청리(聽理)하는 관리가 더욱 자주 갈려서는 안 되며, 송사가 지체되는 폐단이 다 이로 말미암는데, 전조(銓曹)가 이 뜻을 모르지는 않으나 인물이 없으므로 부득이 그러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5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재정-상공(上供) / 금융-식리(殖利)
- [註 443]잠실(蠶室) : 국가에서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고 권장하기 위하여 설치한 누에치는 집. 왕비가 친히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궁내에 설치한 내잠실(內蠶室)이 있고, 각도(各道)의 뽕나무를 기르기에 알맞은 곳에 설치한 도회 잠실(都會蠶室)이 있다.
- [註 444]
적상군(摘桑軍) : 뽕잎을 따는 무리.- [註 445]
구임(久任) : 여느 관직에는 일정한 임기가 있어 임기가 만료되면 관직을 옮기게 되어 있으나, 특별히 오래 근무하여 일과 관례에 익숙해야 할 관직은 장기간 유임(留任)하는데, 이것을 구임이라 한다. 한성부(漢城府)·장례원(掌隷院)·성균관(成均館)·승문원(承文院)·봉상시(奉常寺), 그 밖의 소각사(小各司)에 거의 다 구임직이 있다.- [註 446]
주의(注擬) : 관직 임명이나 시호(諡號)를 정하기에 앞서 임금의 지정을 받기 위하여 몇 후보를 천거하는 것. 관직 임명에 있어서는 문관(文官)은 이조(吏曹)가, 무관(武官)은 병조(兵曹)가 세 사람을 주의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며, 이 세 후보를 삼망(三望)이라 한다. 시호에 있어서도 삼망을 갖추어 주의하는데, 이조의 소관이다.- [註 447]
계유년 : 1513 중종 8년.○壬寅/御朝講。 掌令李元斡、正言朴稑啓(忌晨齋)〔忌辰齋〕 及內需司長利事, 侍讀官蔡忱、檢討官趙光祖、領事申用漑請從公論, 上不允。 同知事南袞曰: "立朝群臣, 無一人以齋僧飯佛, 奉其先者, 而國家獨爲之, 故皆欲極陳, 期於痛革。 若有一毫虧損於先王先后之事, 則臣等亦祖宗之臣民也, 豈敢啓之哉?" 朴稑曰: "近見蠶室摘桑軍, 憑公營私, 佩牌而出入閭里, 攘奪民間私植之桑, 民不堪支。 距京一日程, 民家盡伐桑木, 使民不得爲蠶桑, 甚不可矣。" 上曰: "祖宗朝設蠶室本意, 欲使下民效之。 但其授任者, 不能奉行, 故有如是之弊耳, 前此已令禁之矣。" 用漑曰: "如栗島多植桑木, 而守直者盡賣於私家, 故反致公桑之不給, 遂有此弊。" 元幹曰: "果有如是之弊, 故曾已推其官員矣。 且各司之員, 必須久任然後, 能深察一司之事, 近不行久任之法, 或有未滿一朔而遞者, 甚不可。" 上曰: "此言甚合時弊。 各司官員更代甚數, 故不暇治其所任。 雖不能行久任之法, 不至數遞, 則似可矣。" 用漑曰: "久任之法, 廢之已久, 注擬之際, 若無人物, 則不得已幷用久任之人。 如臺諫、侍從, 不得已擇擬者則已, 其他雜職, 不移用於他, 則似可矣。" 上曰: "前於癸酉年間, 用久任之法, 而其後還廢者, 專是人物不足故也。 今雖欲復行, 亦豈能行乎? 非徒臺諫、侍從, 聽訟官吏, 尤不可數遞, 滯訟之弊, 皆由於是。 銓曺非不知此意, 而但無人物, 不得已而然耳。"
- 【태백산사고본】 13책 25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재정-상공(上供) / 금융-식리(殖利)
- [註 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