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필 등이 유순의 사직을 허락하기를 건의하다
좌의정 정광필·우의정 김응기가 아뢰기를,
"유순(柳洵)이 당초 영상이 될 때의 공론이 노성한 사람이 정부에 있어야 한다 했으므로 신 등도 또한 그렇게 아뢰었는데, 영상을 제배한 이후에 노병(老病)을 거행하지 못하게 되자 신 등에게 지극한 심정을 말했고, 또 ‘경연(經筵)에도 입시하지 못하고, 또한 압반(押班)155) 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으니, 지금 사면(辭免)하려 함은 역시 그의 지극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재량하실 일입니다. 또한 듣건대 전라도에 우박이 내리는 천재가 있었다고 하니, 신 등도 사면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 생각에 영상은 여러 조정을 지낸 노성한 신하이니 체직하고 싶지 않다고 여겨서 영상에게 하문(下問)한 것인데, 전에도 이미 굳이 사양했고 이번에는 또 극력 사양하기를 ‘경연에도 입시하지 못하니, 조정의 체모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두 정승의 뜻은 내가 이미 알았으니, 마땅히 모두 동서벽(東西壁)의 말을 들어보아 처리하겠다. 【정부(政府)의 동벽(東壁)은 좌찬성과 우찬성이고, 서벽은 좌참찬과 우참찬이다.】 재변이 거듭 생기는 것은 곧 내가 부덕한 소치이지, 대신이 무슨 과실이 있어서이겠는가? 사직하지 말라.
대개 근래에 재변이 더욱 심해져 반정한 이후 10여 년 동안에 없는 해가 없으니 무슨 일의 감응(感應)인지 모르겠다. 나의 생각에는 조정에 상하의 분의(分義)가 있은 뒤에야 나라가 나라답게 된다고 여기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충후(忠厚)한 풍속은 없고 경박한 풍습만 자라 인심과 습속의 퇴폐하고 야박함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니, 돌이켜 변동시킬 길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충후한 일은 마땅히 존중해야 하고 경박한 것은 마땅히 배척하여 없애야 하는 법인데, 지금은 터무니없는 일을 떠들어대어 속임수를 쓰므로, 경박한 기풍이 날로 심해진다. 또한, 전일에 좌의정이 경연에서 말하기를 ‘선상(選上) 일을 법으로 세웠지만, 받들어 거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준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체 파직한다면, 어찌 이렇게 되겠는가? 풍속의 폐단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갑자기 고칠 수 없는 것이니, 마땅히 점차 순후한 데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돌이켜 고쳐가는 기틀은 윗사람에게 있고 준행하는 것은 아랫사람들에게 달린 것이다. 비록 몇 달 사이에 공효를 거두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거의 이렇게 함으로 인해 변화 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재변을 가져온 까닭을 비록 적실히 알 수는 없으나, 나의 생각에는 혹 인심과 풍속이 퇴폐하고 야박해져 그런가 싶다."
하니, 정광필 등이 아뢰기를,
"인심을 맑히고 풍속을 후하도록 하려면 덕으로써 인도해야 하는 법이니, 지금 인심이 경박한 것도 형벌로만 다스릴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순후한 일로 인도해야 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15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과학-천기(天氣) / 재정-역(役)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註 155]압반(押班) : 백관의 반열을 감독하는 수상의 일.
○左議政鄭光弼、右議政金應箕啓曰: "柳洵初爲領相時, 物議以爲: ‘老成之人, 當在政府。’ 而臣等亦如是啓之矣。 及其拜相之後, 以老病不得行, 以至情言於臣等。 且云: ‘未得入侍經筵, 又未得押班。’ 今之辭免, 亦其至情, 然在上裁。 且聞, 全羅道有雨雹之災, 臣等請免。" 傳曰: "予意以爲, 領相, 累朝老成之臣也。 不欲遞之, 故下問于領相, 前旣固辭, 今又力辭曰: ‘未得入侍經筵, 朝廷體貌不宜如是’ 云。 兩政丞之意, 則予已知矣, 當竝聞東西壁之言而處之。 【政府東壁則左右贊成, 西壁則左右參贊。】 災變荐臻, 乃予不德所致, 大臣有何過失乎? 其勿辭。 大抵近來災變彌甚, 反正後十餘年間, 無歲無之, 未知爲某事之應也。 予意則以爲, 朝廷有上下之分, 然後國爲國矣。 今則不然, 少忠厚之風, 長輕薄之習, 人心習俗之澆薄, 一至於此, 轉移之道, 不可不講也。 忠厚者所當尊崇, 輕薄者所當斥去也。 今者譸張虛事, 澆薄日甚。 且前日左議政於經筵, 亦曰: ‘選上事, 立法而不奉行。’ 其不奉行者, 一皆罷職, 則豈至如是乎? 風俗之弊, 非一朝一夕所能卒變, 當務趨淳厚之域, 其轉移之機在上, 而奉行則在下, 雖不能收效於期月, 庶可因此而馴致矣。 致災之由, 雖未能的知, 而予意, 或因人心風俗澆薄而然也。" 光弼等啓曰: "若欲淑人心, 厚風俗, 則道之以德。 今也人心輕薄, 此不可徒用刑罰爲也, 須道之以厚, 可也。"
- 【태백산사고본】 12책 2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15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과학-천기(天氣) / 재정-역(役)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