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재, 내수사의 혁파, 금기 지역의 인가를 없애는 등에 대한 유보의 상소
조강에 나아갔다. 사간 유보가 이장생의 일을 아뢰고, 이어 아뢰기를,
"기신재는 하늘에 계신 조종(祖宗)의 신령으로 하여금 목욕하고 부처에게 절하게 하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고려(高麗)의 사대부는 기일(忌日)이면 반드시 절에 올라가 중에게 재를 올리고 부처에게 공양을 올렸으나, 아조에는 정교(政敎)가 아름답고 밝아서 사대부의 집에서도 오히려 이런 일은 하지 않는데, 국가에서만 하고 있습니다. 가령 부처가 정말로 이런 영험을 베푼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적(夷狄)의 종교(宗敎)이니 어찌 차마 부처에게 절할 수 있습니까? 하물며 이것은 허무한 일임에리이까! 세종 대왕은 우리 나라의 성주(聖主)이십니다. 말년에 안질 때문에 내불당(內佛堂)을 지었는데, 그때 집현전(集賢殿)에서 이를 논난하자 세종께서 어느날 불러들여 면대(面對)하시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시며 이르기를 ‘허위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로되, 행여 명복이 있을까 하여 옳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감히 하였다.’ 하시므로, 집현전에서 말리지 못하여 성덕(聖德)에 누(累)가 된 것입니다. 상께서는 크게 유위(有爲)한 자질로서 어찌 차마 이런 허무한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즉시 통쾌하게 혁파(革罷)하셔야 합니다.
임금은 마땅히 한 나라로 집을 삼는 법인데, 어찌 따로 내수사(內需司)를 설치하여 사사로이 축재를 하십니까? 장리놀이를 하는 것은 폐단만 있을 뿐이 아니라, 임금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재물을 늘이기만 힘쓰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국가로써 본전(本錢)을 두고 변리 취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산 밑에 있는 인가와 궁궐에 바짝 다가서 있는 집은 마땅히 헐어야 할 것이나, 과히 가깝지 않은 집과 풍수설(風水說)에 의하여 헐게 된 것은, 비록 그 법이 있더라도 허는 것은 미편(未便)합니다."
하고, 지평 김인손(金麟孫)도 이장생·구수영의 일을 아뢰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영사 김응기가 아뢰기를,
"내수사의 장리와 기신재에 관한 일은 대소 조관이 모두 미편하다고 합니다. 옛날 성종조에서는 도승(度僧)하지 않으면서 ‘중이 없으면 절로 기신재를 못할 것이다.’ 하고 도첩(度牒)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기신재는 이단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다. 조종조로부터 하여온 행사이므로 그대로 하는 것이다. 성종께서 축수재(祝壽齋)를 폐한 것은 이것이 일신을 위하여 빈 것이기 때문이요, 기신재에 대하여는 성종께서 교서를 내려 이르시기를 ‘선왕(先王)·선후(先后)를 위하여 설치하였다.’ 하셨으니, 혁파하기가 어렵다."
하매, 지사(知事) 신용개가 아뢰기를,
"만약 명복이 있다면 마땅히 선왕·선후를 위하여 해야 할 것입니다마는, 이것은 전혀 무망(誣妄)한 것으로써 누구나 그것이 그른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명복을 받는다는 데 대하여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특히 조종께서 설치한 것이니, 이제 경솔히 혁파하기는 어렵다."
하였다. 신용개가 아뢰기를,
"임금은 본디 백성을 부(富)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요, 사사로이 수장(收藏)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고, 김응기(金應箕)는 아뢰기를,
"기신재와 장리 놓는 일 등은 모두 혁파해야 합니다. 제향에는 마땅히 그 예(禮)를 다하여야 하고, 장리는 백성에게 폐해가 있으니, 모두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특진관 권균(權均)은 아뢰기를,
"이제 봉은(奉恩)·봉선(奉先) 두 절에서 예조에 보(報)하여 차비승(差備僧)을 보내 달라 청하니, 예조가 외방(外方)에 이문(移文)하여 올려 보내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추쇄(推刷)하더라도 모두 없앨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 일을 없애면 중의 근본이 절로 끊어질 것입니다. 비록 선왕·선후를 위하여 설치한 것이라고는 하나, 한갓 무익할 뿐만 아니라, 또 성치에 누가 되는 것입니다."
하고, 특진관 조원기(趙元紀)·시독관 유관도 기신재는 혁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아뢰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4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재정-상공(上供) / 금융-식리(殖利) / 주생활-택지(宅地)
○癸酉/御朝講。 司諫柳溥啓李長生事, 仍啓: "(忌晨齋)〔忌辰齋〕 , 以祖宗在天之靈, 沐浴拜佛, 安有如此事乎? 前朝士大夫, 以忌日必上寺, 齋僧飯佛, 我朝則治敎休明, 雖士大夫家, 尙不爲此事, 而國家獨爲之。 假使佛眞有是事, 是乃夷狄之敎, 安忍拜佛乎? 況是虛無之事乎? 世宗, 我東方聖主, 末年因眼暗, 營內佛堂。 其時集賢殿論之, 世宗於一日, 召入面對, 至於墮淚曰: ‘非不知其虛僞也, 恐幸有冥福, 故知其不是而敢爲之。’ 集賢殿不能請止, 以累聖德。 今上以大有爲之資, 安忍爲此虛無之事乎? 須卽痛快革罷, 可也。 人主當以一國爲家, 安可別設內需司, 以爲私蓄乎? 長利歛散, 非但有弊, 以人主而行斂散, 似爲殖貨, 豈可以國家, 而爲存本取利之事乎? 今山底人家, 其臨壓、切近於闕, 則在所當撤也, 其非切近者及以風水之說而應撤者, 雖有其法, 撤之未便。" 持平金麟孫亦啓李長生及具壽永事, 皆不允。 領事金應箕曰: "內需司長利與(忌晨齋)〔忌辰齋〕 事, 大小朝官皆以爲未便。 昔成宗朝不度僧曰: ‘僧人無, 則自不爲(忌晨齋)〔忌辰齋〕 , 未嘗爲度牒耳。’" 上曰: "(忌晨齋)〔忌辰齋〕 , 非尙異端也, 自祖宗朝所爲, 故因循而爲之耳。 成宗廢祝壽齋, 此則爲一身, 而祝之故也。 (忌晨齋)〔忌辰齋〕 , 則成宗亦敎云: ‘爲先王先后而設, 故革之爲難。’" 知事申用漑曰: "若有冥福, 則當爲先王先后而爲之。 此則專是誣妄, 人無不知其非矣。" 上曰: "必受冥福之意, 則未可知也, 特以祖宗所設, 今難輕革。" 用漑曰: "王者, 固當藏富於民, 不當爲私藏也。" 應箕曰: "(忌晨齋)〔忌辰齋〕 、長利等事, 宜可盡革; 祭享, 當盡其禮; 長利有弊於民, 皆不當爲者也。" 特進官權鈞曰: "今奉恩、奉先兩寺, 報禮曹, 請送差備僧, 禮曹移文于外方, 使之上送。 如此則雖有推刷, 可使盡無乎? 若無此事, 則僧之根本, 自絶之矣。 雖云爲先王先后而設, 非徒無益, 又累於聖治。" 特進官趙元紀、侍讀官柳灌, 亦啓(忌晨齋)〔忌辰齋〕 不可不革, 不納。
- 【태백산사고본】 12책 2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4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재정-상공(上供) / 금융-식리(殖利) / 주생활-택지(宅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