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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23권, 중종 11년 1월 25일 정미 1번째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늙은 신하의 예우 문제를 논의하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이는 50에는 쇠약하기 시작하고 60에는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못하고 70에는 비단이 아니면 따뜻하게 하지 못하고 80에는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 다는 말이니, 예전의 양로(養老)는 이처럼 지극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절목(節目)이 갖추어지기는 하였으나 참다운 경로(敬老)가 없으니, 일이 예전과 같지 않다. 이제 이 장(章)의 ‘70에는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못하고 비단이 아니면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고 한 말을 보면, 노인을 존경으로 대접해야 마땅한데, 근래 70이 된 사람으로서 모관(毛冠)을 쓴 자를 헌부(憲府)가 규찰(糾察)하여 죄를 다스리니, 일이 잗달을 뿐 아니라 노인을 대접하는 도리에 어떠한가? 먼저 조정에서 행해야 옳을 터인데, 조정에는 늙은 조사(朝士)들을 모두가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버리고자 하므로 사태(沙汰)088) 하는 때가 있으면 으레 늙은 자를 사태하나, 늙은 자가 조정에 있어야 한다."

하매, 지사(知事) 신용개(申用漑)가 아뢰기를,

"늙어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자라면 워낙 일을 맡는 자리에 쓸 수는 없으나, 옛말에 ‘늙은 말이 길을 안다.’ 하였으니, 노성(老成)한 자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고, 사경(司經) 임권(任權)이 아뢰기를,

"이제는 일을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전에 공이 있었던 자라면 녹(祿)을 잃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고, 영사(領事) 김응기(金應箕)가 아뢰기를,

"상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 성종조(成宗朝)에는 친히 양로(養老)하시고, 또 외방(外方)의 감사(監司)·수령(守令)으로 하여금 몸소 공궤(供饋)하게 하셨으니, 이제도 더욱 밝혀서 행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에는, 잗단 일에 대하여 능히 힘써서 하는 자는 워낙 많으나, 대강(大綱)과 본원(本源)이 되는 것으로 말하면 그만두고 행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친영(親迎)같은 일을 다 해야 할 일인데도 수의(收議)하면 다들 안 된다고 하니, 이는 과연 구습(舊習)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매, 신용개가 아뢰기를,

"친영의 예(禮)는 상께서 행하게 하시면 행하기가 어렵지 않으나, 다만 습속(習俗)이 구습을 따르므로 결단하지 못할 뿐입니다. 외방의 향사례(鄕射禮)089) 도 행해야 합니다."

하였다. 좌우가 박상(朴祥) 등을 용서해 줄 것과 이장생(李長生)을 파직시킬 것을 청하고, 정언(正言) 허위(許渭)공서린(孔瑞麟)을 추고(推考)하기를 청하였으나 다 윤허하지 않았다. 허위(許渭)가 아뢰기를,

"이제 영경전(永慶殿)에서 담제(禫祭) 뒤에는 음악을 쓰게 하시니, 과연 상제(祥祭) 뒤에 백관(百官)이 담복(淡服)을 입지 않고 또 음악을 쓰는 것은 매우 미안합니다. 그러나 조종조(祖宗朝)의 제례(制禮)는 상세히 살펴서 작정한 것인데, 이제 한때 미안한 까닭으로 문득 고치면, 조종조의 제례를 뒤에 반드시 많이 고치게 될 것이니 의주(儀註)대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예조(禮曹)가 대신(大臣)과 의논하여 정한 것이었으나, 전에 홍문관(弘文館)의 차자(箚子)를 보니 말한 것이 지당하여, 지나치거나 못 미치거나 과연 다 중도를 잃은 것이니, 정리로 한다면 아들이 부모의 상(喪)을 입는 데에 어찌 3년에 그치겠는가? 그래서 다시 의논하게 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3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3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풍속-예속(禮俗)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註 088]
    사태(沙汰) : 긴요하지 않거나 무능한 자를 제거 하는 것.
  • [註 089]
    향사례(鄕射禮) : 수령(守令)이 매년 3월 3일에, 효제 충신(孝悌忠信)한 그 고장의 사대부(士大夫)·서인(庶人)을 모아 술을 마시고 활쏘기를 하는 예(禮).

○丁未/御朝講。 上曰: "此言五十始衰, 六十非肉不飽, 七十非帛不暖, 八十杖於朝, 古之養老, 若此其至也。 而我國, 則節目雖具, 無敬老之實, 事不如古。 今以此章 ‘七十非肉不飽, 非帛不暖’ 之語, 見之則待老人, 宜尊敬也。 而近有以七十人着毛冠者, 憲府糾察治罪, 非徒事涉細瑣, 其於待老之道, 何如? 當先行於朝廷之上, 可也。 朝廷之上, 見年老朝士, 則皆有輕忽之心, 而欲棄之。 故如有沙汰之時, 則例汰老者, 老者在朝, 可也。" 知事申用漑曰: "老不治事者, 則固不可用於任事之地也。 古云: ‘老馬識路’, 老成者, 不可棄也。" 司經任權曰: "今雖不能治事, 而有前功者, 則使不至失祿, 可也。" 領事金應箕曰: "上敎至當。 成宗朝, 親自養老, 又令外方監司、守令, 躬親饋之。 今亦申明行之, 可也。" 上曰: "我國於小小之事, 能勉力爲之者, 固多有之, 至如大綱本源之地, 則廢而不行。 如親迎等事, 皆所當爲, 而收議則皆以爲不可, 此果因循之故也。" 用漑曰: "親迎之禮, 上若使行之, 則行之不難。 但習俗因循, 不能決矣。 外方鄕射之禮, 亦當行也。" 左右請宥朴祥等, 臺諫請罷李長生, 正言許渭請推孔瑞麟, 皆不允。 曰: "今於永慶殿, 使禫後用樂, 果於祥後, 百官不淡服, 而且用樂, 甚未安矣。 然祖宗朝制禮, 詳究酌定, 今以一時未安之故而輒改之, 則祖宗朝制禮, 後必多改, 依《儀註》爲之, 可也。" 上曰: "此事, 禮曹與大臣所議定也。 前見弘文館箚子, 所言至當。 過與不及, 果皆失中, 以情爲之, 則人子服父母之喪, 豈止三年乎? 玆令更議矣。"


  • 【태백산사고본】 12책 23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3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풍속-예속(禮俗)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