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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23권, 중종 11년 1월 3일 을유 2번째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내수사 장리, 박상 등의 문제, 조석에 따른 전가 사변 문제, 번다한 소송 등에 대한 임권 등의 상소

야대(夜對)에 나아갔다. 《고려사(高麗史)》를 강독하였는데 ‘김정순(金正純)은 대체(大體)를 제거(提擧)하여 폐사(廢事)가 없었다.’는 말에 이르러, 사경(司經) 임권(任權)이 아뢰기를,

"김정순의 덕(德)은 따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으나, 대체를 보존한 일 같은 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재상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임금은 더욱 대체를 보존해야 합니다."

하고, 시독관(侍讀官)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역사에 ‘정순은 재화(財貨)를 좋아하고 오로지 지나친 사치를 일삼았다.’ 하였는데 이는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임권이 아뢰기를,

"내수사(內需司)의 장리(長利)는 왕정(王政)에 매우 해롭거니와, 대저 이(利)라는 것을 어찌 조장할 수 있겠습니까? 금세의 사대부(士大夫)에는 혹 물건을 팔아서 이익을 얻으려는 자가 있으나, 재상이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내수사는 참으로 국가의 큰 누(累)가 되는 것인데도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신은 경상(卿相)이 이(利)를 얻으려 하는 것을 억제하려면 먼저 내수사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상소(上疏) 때문에 성중(省中)이 비었다.’ 한 데에 이르러, 임권이 아뢰기를,

"여기서, 인종(仁宗)이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 역사에 ‘임금이 답하지 않았다.’ ‘임금이 잠자코 있었다.’ 한 데가 있는 것을 볼 때 마다 신은 못 견디게 답답합니다. 물이 흐르듯이 간언에 따르고 지나치게 곧은 것을 감싸 받아들이는 것은 임금의 덕에 있어서 앞세워야 할 일입니다. 요즈음 구언(求言)에 따라 일을 아뢰었다가 죄를 입은 자가 있는데 아직 놓아 주지 않았으니, 신은 아마도 성덕에 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상(朴祥)·김정(金淨) 등이 구언에 따라 일을 아뢸 때에 그것이 망령된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극히 착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품은 뜻을 아뢰어서 드디어 죄에 빠졌습니다. 당초 구언할 때에 ‘말이 착하지 않으면 죄준다.’ 하였으면, 박상 등이 어찌 감히 이렇게까지 말하였겠습니까? 우러러 성명(聖明)을 믿고서 평소의 뜻을 아뢰었을 따름이요,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빨리 놓아 돌려 보내면 인심이 다 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상께서 즉위하시고부터 일을 말한 자에게 죄를 준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신이 듣건대, 여염 사람들 중에 구언에 따라 상소하고자 하는 자가 있어도,김정·박상 등의 일을 듣고서 다들 말하기를 ‘어찌하여 반드시 말을 아뢰어 죄를 얻을 것인가.’ 하고 다 돌아간다 하니, 신은 아마도 이제부터는 상소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박상 등이 한 짓은 망령되고 어그러진 것이거니와, 전 대간이 죄주기를 청한 것은 인심이 정해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간은 법을 집행하는 관리이므로 워낙 죄주기를 청해야 할 것이나, 다만 지나쳤습니다.

하고, 임권이 아뢰기를,

"신하를 알기로는 임금만한 이가 없는데, 김정 등은 시종(侍從)으로 오래 있었으니 그들의 생각을 상께서 환히 아실 것입니다. 한때 망령된 생각을 하였을지라도 어찌 나라를 그르칠 생각을 가졌었겠습니까? 상께서는 그 정성을 살피셔야 합니다. 이제는 큰 계책이 이미 정해졌고 【이미 윤씨가 왕비로 정해졌다.】 또 한 해가 지났으니 상께서 짐작하소서."

하고, 참찬관(參贊官) 경세창(慶世昌)도 언로에 해롭다고 말하니, 상이 이르기를,

"요즈음 이 일 때문에 전후의 대간이 의논이 정해지지 않는다. 박상 등의 일이 과연 구언하지 않은 때에 있었다면 죄가 워낙 크겠으나, 특히 구언한 뒤이기 때문에 내가 우선 버려두었는데, 대간이 죄주기를 청하였으므로 죄준 것이다. 그 뒤에 대간이 서로 시비하니, 이것으로 보면 인심이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놓아 줄 수 있겠는가?"

하매, 임권이 아뢰기를,

"근자에 시비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재상이 물러나 앉아만 있으므로 본관(本館)003) 과 대간이 다 논계(論啓)하였습니다. 처음 대간을 갈 때에는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셨었는데, 그 뒤에 대간을 갈 때에는 다시 대신에게 의논하지 않고서 홀로 결단하셨으니 이는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대신이 시비를 정하지 않은 것은 이미 잘못이거니와, 신은 상께서도 대신을 대우하는 체모를 잃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임권(任權)이청(李淸)경세창(慶世昌)이 반복해서 박상(朴祥)·김정(金淨) 등을 놓아 줄 것을 청하였다. 이청이 아뢰기를,

"외방(外方)의 수령(守令)들이 지난해의 관조(官糶)004) 를 이미 거두어들이고서도 그 문적(文籍)을 두었다가 후년에 다시 거두어서 채우는데, 곤궁한 백성은 호소할 길이 없으니 몹시 억울합니다. 수령들이 사사로이 경비를 쓰고서, 갈려 갈 즈음에 해유(解由)005) 를 받아 내지 못할세라 각박하게 거두어들이는데, 이제는 또 관조 10석(石) 이상을 바치지 않은 자는 전가 입거(全家入居)하게 하니, 이 때문에 민간이 소요하여 입거를 면하려고 앞을 다투어 가산(家産)을 기울여서 죄다 관부(官府)로 날라갑니다. 이로 말미암아 올해는 조금 곡식이 잘 되었다고는 하나, 도리어 흉년든 지난해보다 괴로움이 심하여 달아나는 자까지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때 듣건대, 수령들이 10석을 바치지 않은 자는 입거시킨다는 법을 빙자하여 요란하게 독촉하여 거두어들인다 하므로 이미 호조(戶曹)로 하여금 금지하게 하였으나, 이제 각도에 따로 일러서 빨리 그렇게 하지 말게 하여야 하겠다."

하매, 임권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노비를 가지고 소송하는 일 때문에 가까운 친족들을 원수처럼 보게 되니, 이보다 더 상서롭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 신은 송사를 결단하는 기한을 또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례(周禮)》에 ‘송사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균금(鈞金)006)속시(束矢)007) 를 바치게 한다.’ 하였는데, 균금은 아끼는 물건이고 화살은 곧은 물건을 뜻할 것입니다. 지금 송사를 좋아하는 자에게도 《주례》에 따라 균금과 속시를 바치게 하면, 정리가 굽은 자를 조금은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형제끼리 소송함이 있으니, 이러한 풍속은 매우 나쁘다. 전세(前世)에도 단송 도감(斷訟都監)을 둔 적이 있었으나 끝내 효과가 없었거니와, 다시 법을 세운들 또한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지금 먼저 힘쓸 것은 오직 송사를 청리(聽理)함에 있어서 밝게 살피는 일이다."

하였다. 경세창이 아뢰기를,

"근자에 이성군 부인(利城君夫人)이 졸(卒)하였기 때문에 진풍정(進豊呈)을 그만두었습니다. 신 등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물(晝物) 【별례(別例)로 진상(進上)하는 것이다.】 같은 일로 말하면 성종조(成宗朝)에도 여러 번 거행하였는데, 이제 자전(慈殿)께서 폐해가 있다고 하실 것이므로 그만두었으나, 아랫사람으로서는 효성을 곡진하게 해야 하는 것이니, 어버이를 위한 일은 융례(隆禮)008) 를 따르더라도 안 될 것이 없는데, 어찌 한 나라가 봉양하는 일에 작은 폐해를 염려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세수(歲首)에 진풍정을 행하려 하였으나, 자전께서 이성군 부인이 졸하였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하시므로, 감히 굳이 청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이청이 아뢰기를,

"여염 백성은 곤궁한 자까지도 속절(俗節)를 당하면 오히려 친구를 모아서 음식을 먹으며 서로 즐겨서 부모를 기쁘게 합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이제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봉양하는 방법이라면 무엇이고 다하여 늘 자전께서 기뻐하시게 하셨습니다."

하고, 임권이 아뢰기를,

"자식으로서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몸을 봉양하는 데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니, 옛말에 ‘날마다 삼생(三牲)의 봉양009) 을 하더라도 오히려 불효(不孝)가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는 양지(養志)010) 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근자에 진풍정을 거행하지 않은 것을 신은, 전하께서 양지를 유념하신 것이니 이는 미덕이지 잘못하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말이 끝나니, 술을 내리고서 파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박상·김정신씨(愼氏)가 까닭없이 폐출(廢黜)되어 있는 데에 울분하여 상소해서 직간(直諫)하여 중궁의 자리를 회복하여 올바른 명분을 세우고자 하였으니 그 충직이 지극한데, 어찌 망령되고 어그러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근일 말하는 자가 오히려 상(祥) 등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언로가 막히는 것을 염려하니, 이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지극한 충직을 모르고서 망령되고 어그러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소견이 밝지 못함을 알 수 있으니, 등이 귀양간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3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2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금융-식리(殖利)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호구-이동(移動) / 상업-상인(商人) / 정론-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구휼(救恤)

  • [註 003]
    본관(本館) : 홍문관을 가리킨다.
  • [註 004]
    관조(官糶) : 관가에서 백성에게 꾸어 준 미곡(米穀). 관가의 창고에 있는 미곡은 통상 그 반을 봄에 백성에게 꾸어 주었다가 추수 뒤에 1할의 이식을 붙여서 거두어들인다.
  • [註 005]
    해유(解由) : 관물(官物)을 관리하던 벼슬아치가 이직(移職)할 때에 후임자에게 사무를 인계하고 호조에 보고하여 물품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아 책임을 면하는 일. 또 그 공문서.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 해유(解由)·호전(戶典) 해유(解由).
  • [註 006]
    균금(鈞金) : 30근의 금.
  • [註 007]
    속시(束矢) : 한 다발의 화살.
  • [註 008]
    융례(隆禮) : 융숭한 의례.
  • [註 009]
    삼생(三牲)의 봉양 : 어버이에게 융숭하게 음식을 올리는 것. 삼생은 소·양·돼지를 갖춘 희생(犧牲)인데, 육미(肉味)를 갖춘 음식의 뜻으로 쓴다.
  • [註 010]
    양지(養志) : 어버이의 뜻에 맞추어서 봉양하는 것.

○御夜對。 講《高麗史》, 至 "金正純擧大體, 無廢事" 之語, 司經任權曰: "正純之德, 他無可稱, 如存大體等事, 深可嘉也。 非徒宰相爲然, 人主尤當存大體也。" 侍讀官李淸曰: "史稱正純好貨, 專事侈靡, 此不學之故也。" 任權曰: "內需長利, 甚妨王政。 夫利, 何可長也? 今世士大夫, 或有販物求利者, 宰相豈可爲如此事乎?" 李淸曰: "內需司, 誠國家大累, 而視以爲常。 臣意以爲, 欲抑卿相之求利者, 先除內需司, 可也。" 講至上疏, 省中爲空, 任權曰: "於此可見仁宗之不納諫也。 每觀古史, 有上不答、上默然處, 臣不勝悶鬱。 從諫若流, 包容狂直, 在君德所當先也。 近有因求言陳事, 而被罪者, 尙未疏放, 臣恐累聖德。 朴祥金淨等, 因求言陳事之際, 其意不料其謬妄, 而自以謂計之至善, 開陳懷抱, 而遂陷於罪辜。 當初求言之時, 若曰: ‘言不善則罪之’, 則朴祥等, 安敢陳之至此哉? 仰恃聖明, 道達情素耳, 有何他意哉? 若速令放還, 則人心皆以爲快也。 自上卽位, 罪言事者, 此其始也。 臣聞, 閭巷之人因求言, 有欲陳疏者, 聞金淨朴祥等事, 皆曰: ‘何必陳言而得罪乎?’ 卽皆還去。 臣恐自今以後, 更無陳疏也。" 李淸曰: "朴祥等所爲, 妄悖矣。 前臺諫請罪者, 以人心未定故耳。 臺諫, 執法之吏, 固當請罪, 但過中耳。" 任權曰: "知臣莫如君。 金淨等, 久爲侍從, 其所懷抱, 上所洞照。 雖有一時妄料, 豈有誤國之計? 上宜察其精誠。 今則大計已定, 【已定尹氏爲王妃。】 且已經年, 請上斟酌。" 參贊官慶世昌, 亦以言路有妨爲言, 上曰: "近以此事, 前後臺諫, 議論不定。 朴祥等事, 果在不求言之時, 則罪固大矣。 特以求言之後, 予姑置之, 而臺諫請罪, 故罪之爾。 其後臺諫, 互相是非, 以此觀之, 人心尙未定, 何可放乎?" 任權曰: "近者是非不定, 而宰相退坐, 故本館與臺諫, 皆論啓耳。 初遞臺諫時, 旣命議于大臣, 而其後遞臺諫, 則不復議于大臣, 而獨斷之, 此甚未安。 大臣之不定是非, 則旣失之矣。 臣意以爲, 上亦失待大臣之體也。" 世昌, 反覆請放等。 李淸曰: "外方守令等旣徵納往年官糶, 而尙存其文籍, 於後年復取盈焉, 窮民無告, 冤悶莫大。 守令等私用經費, 而遞代之際, 恐未出解由, 刻迫徵納。 今則又抄官糶十石以上不納者, 全家入居, 以此, 民間騷擾, 欲免入居, 爭傾家産, 盡輸官府。 由是, 今年雖稱稍稔, 而反有甚於往歲之凶荒, 至有逃散者。" 上曰: "向者聞, 守令等憑藉十石不納者入居之法, 擾亂督徵, 故已令戶曹禁抑。 今可別諭各道, 速令勿爲。" 任權曰: "我國以爭訟奴婢, 視切親如仇讎, 不祥莫甚。 臣以爲, 斷訟之期, 亦可立也。 《周禮》: ‘好訟者, 使納鈞金、束矢。’ 意者, 鈞金所愛惜之物, 矢乃直物也。 今之好訟者, 亦依《周禮》, 使納鈞金、束矢, 則理曲者, 庶可少戢矣。" 上曰: "至有兄弟爭訟者, 此風甚惡。 前世, 亦嘗有斷訟都監, 而終無效焉。 雖復立法, 亦何益哉? 今之先務, 只在於聽訟明察也。" 世昌曰: "近者進豐呈, 以利城君夫人之卒, 而停之。 臣等竊念, 如晝物 【別進上也。】 等事, 在成宗朝亦屢爲之, 今必慈殿以爲有弊, 故停之, 然在下, 則當曲盡誠孝。 爲親之事, 雖從隆禮, 未爲不可。 豈可以一國奉, 而慮小弊哉?" 上曰: "歲首, 將進豐呈, 慈殿以利城君夫人之卒, 爲未安, 故不敢强請耳。" 李淸曰: "閭巷小民, 雖至窮寒者, 如遇俗節, 猶且會親舊, 飮食相樂, 使父母歡欣焉。 殿下卽位, 今已累年, 奉養之具, 無所不至, 常使慈殿歡喜也。" 任權曰: "人子事親, 不在口體。 古云: ‘雖日用三牲之養, 猶爲不孝’, 故事親莫大乎養志。 日者不行進豐呈, 臣則以爲殿下以養志爲念也。 斯爲美德, 非失擧也。" 語竟, 賜酒而罷。

【史臣曰: "朴祥金淨, 憤悶愼氏無故在廢, 抗疏直諫, 欲復壼位, 以定名分之正, 其忠直至矣, 豈可謂之妄悖乎? 近日言者, 猶知等之不非, 而慮言路之壅蔽, 此足嘉也, 然不知忠直之至, 而謂之妄悖, 其見之不明可知, 而無怪乎等之竄逐也。"】


  • 【태백산사고본】 12책 23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2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금융-식리(殖利)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호구-이동(移動) / 상업-상인(商人) / 정론-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