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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2권, 중종 10년 7월 9일 갑오 1번째기사 1515년 명 정덕(正德) 10년

호조에서 저화 행용 절목을 감정한 것을 아뢰다

호조(戶曹)가 아뢰기를,

"저화 행용 절목(楮貨行用節目)을 이미 감정(勘定)하였습니다. 청컨대, 아래 기록에 의하여 시행하되 선상가포(選上價布)323) 는 해조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마련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전일 유순(柳洵) 등의 의득(議得)을 호조에 내려 마련하게 하였다.】

1. 저화(楮貨)는 본디 민간에서 사사로이 만드는 것이 아니므로, 백성이 저축하고 있는 것이 많지 못합니다. 지금 백성에게 행용(行用)시키려면 반드시 관(官)에서 급여한 뒤에야 행하여질 것이니, 백성으로 하여금 관에 베를 납입하고 시가(時價)에 따라 저화를 화매(和賣)하게 할 것을 방(榜)을 내걸어 효유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본국의 민속이 가포를 쓸 줄만 알고 저화를 쓸 줄은 모르는 것이 그 유래가 이미 오래어서, 지금 비록 방을 내걸더라도 백성은 반드시 즐겨하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관부(官府)에서 먼저 쓴 뒤에야 백성도 긴요한 줄 알고 화매할 것입니다. 경중(京中)의 각사(各司)는 오는 10월 초1일부터, 외방(外方)의 각 고을은 오는 병자년 1월 1일부터 시작하여, 징속(徵贖)을 《대전(大典)》에 의하되 저화만을 쓰도록 하고, 결송 작지(決訟作紙)324) ·차지 징궐(次知徵闕)325) ·약재매매(藥材賣買)와 일체 관부에 납입하는 모든 물품은 다 징속과 같이 오로지 저화만을 쓰도록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1. 한성부(漢城府)가 이미 악포(惡布)를 행용하는 기한을 세웠는데, 정면포(正綿布)와 악포는 직조하는 공력의 어렵고 쉬움이 아주 다르니, 기한을 정하는 것만으로는 악포를 금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악포의 준척(準尺)326) 2필(匹)을 정면포 1필에 준하게 하면, 사람들이 악포 2필 짜는 데 드는 공력이 정면포 1필을 짜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알아 악포를 짜는 자가 점차 드물어지게 될 것이니 정면포는 교령(敎令)을 내리지 않아도 절로 흥용(興用)될 것입니다. 다만 《대전(大典)》의 국폐(國幣) 조에 ‘징속은 오로지 저화만을 쓰고 가매(價買)327) 에는 그 절반을 저화로 쓴다.’ 하였으니, 지금 저화만을 쓰고자 하는 것은 특별히 한때의 폐단을 구제하려는 것뿐입니다. 영구히 저화만을 쓰게 하는 법을 만들면, 형세가 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종(祖宗)의 법도 또한 무너질 것이니, 악포를 금단한 뒤에 정면포·저화를 《대전》에 의하여 아울러 쓰도록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1. 저폐(楮幣)는 동전(銅錢)과 달라서, 공사간 행용하는 동안에 몇 해를 못가서 이내 파훼(破毁)되어 드디어 못쓰게 됩니다. 매년 사섬시(司贍寺)가 받아들인 월세(月稅)의 수를 상고하여 만약 혹 부족하면 임시로 적당히 헤아려서 더 만드는 것이 어떠합니까?

1. 사섬시에 현재 있는 저화는 3백 18만 5천 9백 52장(張)인데, 각도(各道)의 회계(會計)에 기록된 저화의 수를 상고하니, 경기(京畿)가 3만 1천 6백 34장, 충청도가 4백 46장, 황해도가 3천 1백 79장, 강원도가 12장, 전라도가 5만 7천 8백 94장, 평안도가 5만 8백 86장, 경상도가 12만 6천 3백 45장, 함경도가 3천 3백 83장, 개성부(開城府)가 9천 6백 77장입니다. 저축하고 있는 것이 대단히 적어서 공사간 행용(行用)하기가 반드시 부족할 것이니, 잠시 사섬시에 현재 있는 저화를 경기에 2만 장, 충청도에 9만 장, 황해·강원도에 각 5만 장, 전라·경상도에 각 10만 장, 평안도에 3만 장, 함경도에 6만 장, 개성부에 1만 2천 장을 나누어 보내어 그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각각 그 고을의 인물의 다소를 분간하여 나누어 지급하고, 공사간 비용에 쓰게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1. 저화로 민간의 악포를 화매하면 마땅히 납의(衲衣)를 만들어야 합니다. 경중(京中)의 각사(各司)에 현재 있는 상면포(常綿布)는 10만 1천 75필인데 이것으로 모두 납의를 만들어서는 안되니, 저화를 행용하기 전에 구처(區處)하지 않으면 한정된 수의 국용 포화(布貨)가 마침내 무용하게 되어 헛되어 버려질까 염려됩니다. 민간에 행용되는 악포는 이미 오는 병자년328) 3월까지를 한하여 행용할 것을 정하였으니, 각사와 각 고을의 면포도 기한 전에는 민간에 행용되는 악포의 예에 의하여 쓰게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1. 기전(畿田)의 가난한 백성은 시탄(柴炭)·판자(板子)나 생곡초(生穀草)나 생어물(生魚物)과 닭·꿩이나 나물·과일 등 잡물(雜物)을 싣고 와서 판매하여 조석 비용에 이바지하는데, 이와 같이 자질구레한 물건까지도 저화를 가지고 서로 무역(貿易)하게 되면 원망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니, 이상 잡물은 쌀이나 저화 중에 원하는 대로 매매하도록 하되, 만일 혹 백성이 원하는 것을 어기고 강제로 매매하는 사람이 있으면, 법사(法司)로 하여금 규거(糾擧)하게 하여 중하게 논죄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1. 악포가 쓰인 것은 그 유래가 오래지 않습니다. 폐조(廢朝)329)서총대(瑞蔥臺)330) 의 공사가 있은 뒤로부터 백성이 곤궁하여지고 재물이 다하여 계책을 낼 방법이 없으므로, 비로소 2∼3승의 베를 만들어 신역(身役)을 갚게 하였습니다. 【폐조의 징렴(徵斂)이 번거롭고 무거워지자, 궁한 백성들은 옷솜으로 실을 뽑아 베를 짜기까지 하였으므로 그 빛깔이 잿빛과 같았다.】 그 뒤 경외(京外)의 간교한 무리들이 다투어 숭상하여 짜서 시장의 이익을 거둬들였으니, 지금 쓰는 것을 금단하고자 하면 마땅히 그 근원을 끊은 뒤에야 금단할 수 있습니다. 위 악포를 직조하는 사람및 2∼3승의 바디를 만드는 장인(匠人) 등은 남녀를 물론하고 악미(惡米)331) 를 만드는 예로써 치죄하여 용서하지 않으면 악포의 행용이 거의 절로 그칠 것입니다. 서울은 한성부(漢城府), 외방은 관찰사가 엄하게 금단하여, 계절(季節)마다 범금(犯禁)한 사람의 유무를 격식에 의하여 계문(啓聞)하게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1. 공사간에 저화를 쓰지 않은 지가 오래고, 다만 각사(各司)에서 지공(支供)하는 노비의 어목가(魚木價)332) 로 지급할 따름입니다. 부상(富商)과 대고(大賈)가 때를 타고 이익을 노려 어목가로 지급된 저화를 다수 거두어 집에 축적한 자가 있을 것이니, 저화를 행용할 때에 무역하는 이들이 공문(公門)에서 하지 않고 상고의 집에서 무역하면, 저들 상고는 민간에 저화가 희귀한 것을 알고 그 가격을 조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고만 이익을 보고 백성은 이익을 보지 못한 채 한갓 그 폐단만을 받게 되어 지극히 미편합니다. 사섬시(司贍寺)로 하여금 현재 있는 저화에 처음 쓰기 시작한 연월일(年月日)을 적어 넣고서 도장을 찍게 하고, 상고들이 사사로이 가지고 있는 저화도 이 예에 의하여 일월을 적어 넣고서 도장을 찍어 도로 지급하여, 법에 의하여 저자에 내어 시가에 따라 화매하도록 하되 쓰기 시작한 일월과 도장을 찍지 않는 저화를 가지고 서로 화매한 자는 추고(推考)하여 중죄(重罪)로 논하며, 그 법금을 범한 저화(楮貨)와 포물(布物)은 관에 몰수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한다.’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93면
  • 【분류】
    금융-화폐(貨幣) / 사법-법제(法制) / 상업-시장(市場)

  • [註 323]
    선상가포(選上價布) : 지방 각 고을에서 서울 각사(各司)에 선상한 노비가 대역(代役)을 세울 때에 내는 값. 대개 1개월에 면포(綿布) 2필로 규정되어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공천(公賤).
  • [註 324]
    결송 작지(決訟作紙) : 결송은 민사 소송(民事訴訟)을 재판하는 것이며, 각지는 세목(稅目)의 일종으로서 문서에 필요한 지대(紙代)로 징수하는 것. 즉 소송 수수료.
  • [註 325]
    차지 징궐(次知徵闕) : 차지는 계원이라는 뜻. 계원이 맡은 일을 수행하다가 국가의 공물을 훼손하였을 경우에 거기에 대한 벌금을 징수하는 것.
  • [註 326]
    준척(準尺) : 35척을 말한다.
  • [註 327]
    가매(價買) : 국가의 공용으로 구매하는 대가.
  • [註 328]
    병자년 : 1516 중종 11년.
  • [註 329]
    폐조(廢朝) : 연산조를 가리킨다.
  • [註 330]
    서총대(瑞蔥臺) : 창덕궁 후원에 있는 대 이름. 연산군(燕山君) 때 이 대를 건축하기 위하여 부역을 과하고 포목을 자주 징수하니 인민이 피폐하여 검은 빛 단척(短尺)의 포목을 공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서총대포라면 악포(惡布)로 통하였다.
  • [註 331]
    악미(惡米) : 잡곡을 섞은 백미.
  • [註 332]
    어목가(魚木價) : 어전(魚箭)의 어세와 노비의 신공.

○甲午/戶曹啓曰: "楮貨行用節目, 旣已勘定, 請依後錄施行, 而選上價布, 則與該曹同議磨鍊, 何如?" 【前日柳洵等議得, 下戶曹磨鍊。】

一, 楮貨, 本非民間私造, 民之所儲, 因此不敷。 今欲民行用, 必待官給然後, 乃可行之, 令民納布于官, 從時直, 楮貨和賣事, 當掛榜曉諭。 而本國民俗, 但知用布, 不知用楮貨, 其來已久。 今雖掛榜, 而民必不肯, 須自官府先用, 然後民知用緊而和賣矣。 京中各司, 來十月初一日; 外方各官, 來丙子年正月初一日爲始, 徵贖依《大典》, 專用楮貨, 決訟作紙、次知徵闕、藥材買賣及一應官府所納之物, 竝依徵贖, 專用楮貨, 何如? 一, 漢城府已立惡布行用之限, 而正綿布惡布、織造功㠫難易頓殊, 則只以定限, 禁斷惡布爲難。 今以惡布準尺二匹, 準正綿布一匹, 則人知惡布織造二匹之功, 與正緜布一匹無異, 造惡布者, 漸至稀罕, 正緜布不待敎令, 而自然興用。 但《大典》國幣條:‘徵贖, 專用楮貨, 價買, 一半用之’ 云, 則今之欲專用楮貨, 特救一時之弊耳。 若爲永久專用之法, 則非徒勢所難行, 祖宗之法亦毁矣。 惡布禁斷後, 正綿布、楮貨, 一依《大典》竝用, 何如? 一, 楮幣, 非銅錢例也。 公私行用之際, 不出數年, 易致破毁, 遂至無用。 每歲考司贍寺所納月稅之數, 若或不足, 臨時量宜加造, 何如? 一, 、司贍寺時在楮貨三百十八萬五千九百五十二張, 而各道會計付楮貨數考之, 則京畿三萬一千六百三十四張, 忠淸道四百四十六張, 黃海道三千一百七十九張, 江原道十二張, 全羅道五萬七千八百九十四張, 平安道五萬八百八十六張, 慶尙道十二萬六千三百四十五張, 咸鏡道三千三百八十三張, 開城府九千六百七十七張。 所儲甚少, 公私行用, 必爲不足矣, 姑以司贍寺時在楮貨, 京畿二萬張、忠淸道九萬張、黃海江原道各五萬張、全羅慶尙道各十萬張、平安道三萬張、咸鏡道六萬張、開城府一萬二千張分送, 令其道觀察使, 各其官人物多小, 分揀分給, 以爲公私之用, 何如? 一, 以楮貨和賣民間惡布, 則當衲衣縫造矣。 京中各司時在常緜布十萬一千七十五匹。 不可以此, 盡數縫造衲衣, 而楮貨行用前, 不爲區處, 則有數國用布貨, 終至無用, 虛棄可慮。 民間行用惡布, 旣定限, 來丙子年三月而行用矣, 各司各官緜布, 定限前, 依民間行用惡布例用之, 何如? 一, 畿甸貧民等, 或柴炭板子, 或生穀草, 或生魚物、雞雉, 或菜果等雜物, 載來而賣, 以供朝夕費, 則如此細碎之物, 亦以楮貨相貿, 怨咨必興。 右雜物, 或米、或楮貨中, 從願買賣, 而如有或違民願, 勒令買賣之人, 令法司糾擧重論, 何如? 一, 惡布之用, 其來未久。 自廢朝瑞葱臺役興之後, 民窮財盡, 計無所出, 始造二三升之布, 【廢朝徵斂煩重, 窮民至以衣絮引繅織之, 其色如灰。】 以償身役。其後京外奸巧之徒, 爭尙織造, 以罔市利, 今欲禁用, 當絶其源, 然後可禁。 右惡布織造人及二三升造筬匠等, 勿論男女, 以造惡米例, 治罪不饒, 則惡布之行, 庶可自止矣。 京則漢城府 外則觀察使, 嚴加禁斷, 每節季, 犯禁人有無, 依式啓聞, 何如? 一, 公私不用楮貨, 久矣, 而只給於各司支供奴婢魚木價而已。 富商大賈欲乘時射利, 以魚木價楮貨, 數多收斂, 蓄積於家者有之矣。 楮貨行用時, 貿易者, 不于公門, 而貿於商賈之家, 則彼商賈者, 知民間楮貨稀貴, 低昻其價, 利在商賈之家, 民不見利, 徒受其弊, 至爲未便。 令司贍寺以始用年月日書塡, 踏印於時在楮貨, 而商賈人私藏楮貨, 亦依是例, 日月書塡, 踏印還給, 依法出市, 從市直和賣, 而無始用日月踏印楮貨, 自相和賣者, 推考重論, 其犯禁楮貨布物, 沒官何如?

啓依允。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93면
  • 【분류】
    금융-화폐(貨幣) / 사법-법제(法制) / 상업-시장(市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