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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2권, 중종 10년 6월 8일 계해 4번째기사 1515년 명 정덕(正德) 10년

권민수 등이 《신속록》, 전폐 사용에 관해 아뢰다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오사온(吳士溫)은 이미 사관(史官)이 되었으나, 승지가 전하는 말을 듣고도 숨기고 적지 않으며, 또 그 말한 것이 내외(內外)가 다르고 바르지 않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니 추문하소서."

하였다. 대사헌 권민수(權敏手)·사간 이행(李荇) 등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은,

"삼가 아룁니다. 대간이 《신속록(新續錄)》을 시행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이미 오래입니다. 그 뒤에 해조에 명하여 삭제해야 할 것을 논의하게 하여 삭제한 것도 또한 이미 많습니다. 그 중에 또 시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수시로 주청(奏請)하여 삭제하였으므로, 지금은 남아 있는 조문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비록 남아 있는 조문이라도 또한 잘못된 것이 많으며, 또 《대전》의 옛 법과 서로 저촉되는 것이 있어서 어떤 것은 시행하고 어떤 것은 시행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떳떳하고 원대한 법전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전일에 대간이 말한 것도 이때문입니다. 삭제한 뒤에는 이미 영전(令典)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서경(署經)할 때에 신 등이 시말(始末)을 참구(參究)하여 보니 그 삭제한 것은 본래부터 제거해야 할 것이지만, 그 중 아직 삭제하지 않은 것도 또한 버려야 할 것이 많습니다. 다만 해조(該曹)가 아직 삭제를 주청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한 권의 책이 도리어 흑책(黑冊)이 되었으니, 이러고도 이름을 국전(國典)이라 해도 좋겠습니까? 조정의 처음 뜻은 근래에 수교(受敎)가 호번(浩繁)하여 좇아 시행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만약 《속록(續錄)》을 찬정(撰定)하여 성법(成法)으로 단정(斷定)한다면 문란한 폐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속록(新續錄)》 이외에 또 행용(行用)되고 있는 수교가 있어 《신속록》에 실려 있는 법조보다 더 많으며, 그리고 《신속록》에 실려 있는 조문을 또 삭제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그 문란한 폐단이 도리어 전보다 더할 것입니다. 지금 《신속록》 가운데서 아직 삭제하지 않은 것은 《속록》이라 하지 말고 《대전(大典)》과 합치지도 말고 다만 수교라고 하여, 이것을 지금의 수교와 함께 서로 참고하여 행용하되 폐단이 생기면 그때마다 제거한다면, 비록 《속록》이라는 이름은 없을지라도 오히려 법을 행용하는 실의(實意)는 있는 것이니, 성전(成典)으로 정하여 놓고 경솔하게 변경하는 것보다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신 등은 또 상고하여 보니, 역대(歷代)에 모두 전폐(錢幣)가 있어서 물화(物貨)를 유통한 것은, 백성이 쓰기 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저화(楮貨)271) 도 또한 그 남긴 뜻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폐지하여 행용하지 않고, 오로지 면포(綿布)를 화폐(貨幣)로 쓰고 있습니다. 그 면포가 거칠고 품질이 나빠 부녀자들이 공력(功力)만 허비할 뿐 쓸데없는 물건입니다. 물가가 등귀하는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국가가 이미 그 폐해를 알고 바야흐로 이를 금단(禁斷)하고 있으나, 물화는 물과 같은 것이므로 이름하여 샘[泉]이라고 합니다. 물을 막는 데 있어 그 흐름을 막아버린 채, 길을 터서 그 물결을 인도하여 유통하게 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막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국가가 다만 추포(麤布)272) 의 유통만을 금지하고 저화는 다시 쓰지 않으니, 이것은 물을 막는 데 소통(疏通)시키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니 시행될 수 있겠습니까? 저화(楮貨)의 법은 《경국대전》에 실려있는 것인데 유사(有司)가 다만 거행하지 않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지금부터 행용(行用)할 것을 거듭 밝히시어, 물화를 유통하게 하신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 되겠습니다. 옛날 하우씨(夏禹氏)가 도산(塗山)에서 전폐를 주조(鑄造)하고, 주(周)나라가 구부(九府)273) 를 설치한 이래로 중국에 유통되어 지금까지 폐해가 없는 것이 전폐입니다. 삼한중보(三韓重寶)·동국통보(東國通寶)·동국중보(東國重寶)·해동중보(海東重寶)·해동통보(海東通寶)와 같은 것은 중국 전적(典籍)에도 실려 있으니 우리 나라에서도 또한 처음에 전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돈이라는 화폐는 그 질(質)이 견고(堅固)하고, 형체가 가벼우며, 쓰기에 편리합니다. 바꾸어 옮겨 갈수록 더욱 광채가 나고, 먼 곳에 가져가도 수고스럽지 않으며, 한번 주조하면 만세(萬世)에 전할 수 있습니다. 신 등은 들으니, 세종 대왕께서 일찍이 조선통보(朝鮮通寶)를 주조하여 행용시킬 뜻이 있었다고 하는데, 뒤에 무슨 일로 인하여 중지하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 추포는 진실로 나라의 큰 폐단입니다. 그러나 전폐(錢幣)가 만약 통용하게 되면 실로 만세의 이익입니다. 바라건대 돈을 주조하게 하여 지금의 저화와 아울러 행용하게 하고 민간의 추포를 관(官)이 사들이며 또 추포의 행용 연한(行用年限)을 정하소서. 그리하면 전폐와 저화는 나라에서 제조하는 것이니 그 공급이 무궁할 것이며, 추포는 민간에서 쓰는 것으로 현재의 수량이 유한(有限)합니다. 무궁한 화폐를 공급하여 유한한 추포를 거두어들이되, 연한이 정해 있고 법금(法禁)을 시행한다면, 백성들도 또한 뒤로는 추포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쁘게 제조하는 폐단이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양사(兩司)의 차자(箚子)를 보니 두 가지 일이 모두 마땅하다. 마땅히 대신과 더불어 의논하겠다. 나머지는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8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역사-편사(編史) / 금융-화폐(貨幣) / 물가-물가(物價)

  • [註 271]
    저화(楮貨) : 원(元)나라의 보초(寶抄)와 같은 것으로서 돈으로 쓰던 저주지(楮注紙). 저주지는 닥나무의 껍질로 만든 종이로서, 길이가 1자 6치, 너비가 1자 4치인데, 태조때에 이 종이 1장을 쌀 1되에 준하였다.
  • [註 272]
    추포(麤布) : 올이 굵고 거친 베.
  • [註 273]
    구부(九府) : 주(周)나라 때 재패(財幣)를 맡던 9개의 관부(官府). 즉 대부(大府)·옥부(玉府)·내부(內府)·외부(外府)·천부(泉府)·천부(天府)·직내(職內)·직금(職金)·직폐(職幣)를 가리킨 말. 태공망(太公望)이 창설한 제도.

○臺諫啓前事, 又曰: "吳士溫旣爲史官, 聞承旨傳之之言, 隱而不書。 且其所言, 內外有異, 反覆不直, 不可棄之, 請推。" 大司憲權敏手、司諫李荇等上箚, 其略曰:

伏以, 臺諫以《新續錄》不可行, 言之者久矣。 其後命該曹, 議可削者削之, 亦已多矣。 其中又有不可行者, 隨請隨削, 今則存者, 已無幾矣。 雖其存者亦多舛繆, 又有與《大典》舊法相妨, 或行或否, 人莫爲信, 其不可爲經遠之典, 明矣。 前日臺諫所以言之者, 此也。 削之之後, 已不爲令典。 又當署經, 臣等參究始末, 其削者固可去也, 其未削者, 亦多有可去者, 該曹但未之請耳。 一卷之書, 反爲黑冊, 如是而名爲國典, 可乎? 朝廷初意必以爲, 近來受敎浩繁, 莫適所從, 若撰次《續錄》, 斷爲成法, 則無有紛紜之弊。 然《新續錄》之外, 又有行用受敎, 多於《新續錄》所載, 而《新續錄》所載, 又削之不已, 則其紛紜之弊, 反加於舊也。 今《新續錄》之中, 其未削者, 不以《續錄》名, 不與《大典》竝, 只稱曰受敎, 與今受敎參用, 隨其弊生去之, 是雖無《續錄》之名, 而用法實意猶在也, 其與定爲成典, 而輕於變更, 大有間矣。 臣等又按, 歷代皆有錢幣, 以通物貨, 所以便民用也。 本國楮貨, 亦其遣意, 而近來廢之不行, 專用綿布。 緜布麤惡, 徒費女工, 無所用之, 物價踴貴, 職此之由。 國家已知其弊, 方且禁斷, 然貨, 猶水也, 故名之曰泉。 防水而遏之, 不疏而導其波,使流通, 終無可遏之理。 國家只禁麤布, 而楮貨不復, 是猶防水而不疏通之也。 其可得行乎? 楮貨之法, 載在《大典》, 有司特不擧行爾。 請自今申明行用, 以通物貨, 幸甚。 昔者鑄塗山; 設九府以來, 中國通行, 至于今無弊者, 錢也。 如三韓重寶、東國通寶、東國重寶、海東重寶、東海通寶, 載之於中國典籍, 則吾東方亦未始不用錢也。 錢之爲貨, 其質堅, 其體輕, 其用便。 貿遷而益光; 致遠而不勞, 一鑄之後, 萬世可傳。 臣等聞, 世宗大王嘗鑄朝鮮通寶, 有意行用, 後不知因何事, 而止也。 今之麤布, 誠國之巨弊, 而錢貨若通, 實萬世之利。 請令鑄錢與今楮貨竝行, 貿民間麤布, 而入之官, 且立年限, 則錢與楮貨, 國之所造, 其出無窮, 麤布, 民間所用, 見在者有限。 出無窮之貨, 以收有限之布, 年限有定, 法禁又行, 則民亦知麤布之後不可用, 自無濫惡之弊矣。

傳曰: "觀兩司箚子, 兩事皆當矣, 當與大臣議之。 餘皆不允。"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8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역사-편사(編史) / 금융-화폐(貨幣) / 물가-물가(物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