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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0권, 중종 9년 8월 6일 병신 2번째기사 1514년 명 정덕(正德) 9년

원각사의 재목 중 퇴락하려는 것을 영선에 쓰게 하다

호조(戶曹)가 아뢰기를,

"원각사(圓覺寺)의 재목 중에서 퇴락(頹落)하려는 것은 영선(營繕)에 쓰소서."

하니, ‘그리하라.’고 전교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원각사는 도성(都城) 안에 있으니, 세조(世祖)가 창건한 것인데, 폐조(廢朝)에 이르러서 승도(僧徒)를 모두 내보내고, 불상(佛像)을 끌어내었으므로 비어 있었다. 반정(反正)한 뒤 한성부(漢城府)가 옮겨 와서 관아(官衙)로 삼았는데, 판윤(判尹) 전임(田霖)이 이곳에서 병들어 죽자 뒷사람이 의혹(疑惑)하여, 옛 관아로 도로 돌아갔다. 그리고 절 곁에 있는 공지(空地)가 매우 넓어서 해사(該司)에서 집 없는 재상과 조관(朝官)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두려워하며 감히 살지 못하니, 도성 사람이 이를 보기를 엄연(儼然)히 신명(神明)의 처소(處所)처럼 하였다. 그 근기(根基)가 매우 공고(鞏固)하니 모두 다시 흥건(興建)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22면
  • 【분류】
    건설-건축(建築) / 사상-불교(佛敎) / 역사-사학(史學)

○戶曹啓曰: "圓覺寺材木, 其將頹落者, 請用諸營繕。" 傳曰: "可。"

【史臣曰: "圓覺寺在都城中, 乃世祖所創, 而至廢朝, 盡黜僧徒, 曳出佛像, 因以空焉。 反正後, 漢城府移入爲司, 判尹田霖得疾於此而卒焉, 後人惑之, 還于舊司。 且寺傍空地甚廣, 該司分給無家舍宰相、朝官, 而咸畏忌, 不敢居焉, 都人視之儼然如神明之所。 其根基甚鞏, 咸恐復有興建之時。"】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22면
  • 【분류】
    건설-건축(建築) / 사상-불교(佛敎)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