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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0권, 중종 9년 7월 27일 무자 3번째기사 1514년 명 정덕(正德) 9년

송일·이손·소세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송일여원 부원군(礪原府院君)으로, 이손(李蓀)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소세량(蘇世良)을 사헌부 지평으로, 조방언(趙邦彦)을 홍문관 교리로, 민수천(閔壽千)을 부교리로 삼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대간이 송일을 가지고, 배움이 없고 또 산업(産業)을 경영한다고 하여 번갈아 소장(疏章)을 올려 극론(極論)하였기 때문에 파면되었다. 그러나 기우(氣宇)가 관대(寬大)하고, 음험(陰險) 사특(邪慝)한 마음이 없으며, 그 폐조(廢朝)에 있어서도 벼슬이 높지 않은 것이 아니건만, 시속에 따라 자리를 보전했을 뿐, 화(禍)를 끼치거나 환란(患亂)을 빚어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정국(靖國)의 훈공(勳功)에 참여함을 얻고 정승의 지위에 오르기에 이르렀던 것인데, 이 때에 이르러서 파면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2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以宋軼礪原府院君, 李蓀爲判中樞府事, 蘇世良爲司憲府持平, 趙邦彦爲弘文館校理, 閔壽千爲副校理。

【史臣曰: "臺諫以軼爲不學, 而又營産業, 交章極論, 故免, 然氣宇寬大, 無險詖邪侫之心。 其在廢朝, 位非不高, 而唯浮沈保位而已, 未有貽禍稔亂之事, 故得參靖國之勳, 馴致相位, 至是免。"】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2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