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를 분명히 가릴 것을 청한 홍문관의 상소문
홍문관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러하였다.
"대간은 국가의 원기(元氣)요, 조정의 기강이니 한번 그 직책을 잃으면 모든 일이 허물어져서, 난망(亂亡)이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의 정치가 그 체통을 잃어 사람들이 자기 몸을 사사롭게 여기고, 즐겨 단연(斷然)히 나라를 위해서 봉공(奉公)하겠다고 자임(自任)하는 자가 없습니다. 원기가 거의 다 없어지고 기강이 피폐했는데도 믿고 버티어 나갈 수 있는 것은, 홀로 대간이 있는 데에 힘입어서 다행히 그 공론(公論)이 없어지지 않아, 사람들이 권하고 저지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직책에 있는 자는 비록 착한 말을 아뢰고 간사한 일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전통[遺器]을 삼가 유지하여 쇠한 것을 일으키고 허물어진 것을 보충하는 자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자견(李自堅) 등은 보존하여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스스로 깨뜨려 없애고, 구차하게 벼슬에 되돌아와서 제 몸만을 편하게 하니, 그 공(公)을 업신여기고 염치없기가 심합니다. 아아! 당당한 국가의 맥(脈)이 이제 모두 없어지고, 구구하게 시비(是非)를 가리는 그릇마저 허물어졌으니, 누가 분하고 원통해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이어받은 자는 의연히 분발하여 죄를 끝까지 따져서 형법을 바루어서 아주 허물어지기 전에 붙들어 세워 정돈하려고 해야 하는데, 이장곤(李長坤)·권민수(權敏手) 등은 간신히 스스로 책임만 면하고 감히 다 말하지 아니하여 구차하게 그대로 습속을 이루었습니다. 다행히 한두 사람이 개연(慨然)히 반대하여 의논해 아뢴 것은 일부러 다른 의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개 맡은 직책을 저버리지 않고자 함입니다.
무릇 이 몇가지 일은 시비(是非)가 분명하여 지혜 있는 자가 아니더라도 구별이 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분명히 구별하여 권하고 징계하지 못하실 뿐만 아니라, 공변된 것을 좇는 자를 도리어 그르다 하시어 버리기를 오히려 미치지 못할 듯하시고, 제 몸만 위하는 자를 도리어 옳게 여기시어 물리치는 것을 어렵게 여기시니, 신 등은, 아마도 학문이 정밀치 못하고 마음이 밝지 못하여, 능히 중용(中庸)을 잡지 못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하의 한 마음은 만화(萬化)의 근원인데,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같이 전도되었으니, 아랫사람들이 붙좇듯 날마다 편벽되고 사사로운 데로 나가는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대간이 직책을 폐해서 천재(天災)가 한 달이나 계속된다고 아뢰면, 말씀하시기를 ‘대간이 취직하면 대신이 스스로 편안하고 천재도 그칠 것이다.’ 하시니, 범용(凡庸)한 무리들이 함부로 조정에 있어서, 남들이 감히 지목하여 의논하지 못하게 되어야 재앙이 없어진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 변론하여 말하는 것을 막아서 거의 공론(公論)을 꺾고 천재를 만홀히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까?
근일에 전하께서는 넓고 원대한 도량을 가지려는 데는 힘쓰지 않으시고, 조그만 일을 살피시는 데 정력을 허비하시며 사람을 의심하시어 스스로 적게 생각하시어 원기(元氣)가 날로 줄어드는 것을 알지 못하시니, 어찌 크게 포용하고 널리 함양(涵養)하는 도량이리까! 이대로 계속하고 중지하지 않아서 고질이 되면 풍화(風化)가 점점 투박하고 거짓되어 사람들이 손발을 놀릴 수가 없을 것이니, 조그만 근심거리가 아닙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성학을 강구하여 연마하시고, 성정(性情)을 함양하시어 이 마음의 위태롭고 은미한 기미를 깨달아 정밀하게 살피시고 이 마음의 근원의 바름을 밝혀서 전일하게 지키시어, 모든 일의 중도를 잡아서 만인(萬人)의 표준을 세운다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편벽됨이 어찌 감히 침범할 수 있으며, 시비의 시끄러운 마음이 어찌 감히 현혹할 수 있으며, 조정과 사방이 어찌 감히 바르지 않고 전일하지 않으리까!"
전교하기를,
"소(疏)에 역력히 나의 잘못된 일과 시비를 분명히 가리지 못한 일을 말했는데 이는 모두 마땅하다. 경숙(慶俶) 등은 과연 강직한 사람이기는 하나, 의논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독계한 것은 지나치다. 홍문관이 또 여러 대간을 의논하기 때문에 모두 명하여 갈게 한 것이지, 그 속에 어찌 피차의 사사로운 뜻이 있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癸丑/弘文館上疏, 略曰:
臺諫者, 國家之元氣; 朝廷之紀綱, 一失其職, 庶事頹圮, 亂亡隨之。 今國家政失其統, 人私其身, 無肯斷然以徇國、奉公自任者。 元氣幾盡斲喪; 綱紀幾盡廢弛, 而惟恃以支持緜延者, 獨賴臺諫之存, 尙幸其公論之不泯, 人有所勸沮耳。 居是職者, 縱不能陳善閉邪, 固宜謹持遺器, 以爲興替補壤之資。 李自堅等非徒不能保守, 反自毁衊, 苟還祿位, 以便己私, 其蔑公無恥甚矣。 嗚呼! 堂堂國脈, 今垂蕩殄, 而區區是非之器, 倂與而遂壞之, 孰不憤切? 繼此者, 當毅然奮厲, 極列其罪, 正其罰典, 庶幾扶立, 整頓毁衊於未遠之日, 李長坤、權敏手等僅自塞責, 不敢盡言, 苟因成習。 而幸一二人慨然抗議論啓, 非故立異, 蓋欲不負所職。 凡此數事, 是非之著, 不待智者而辨別也。 殿下非徒不能明辨而勸徵之, 循公者反非之, 去猶不及; 徇身者反是之, 退猶疑難, 臣等恐學問之不精、心術之不明, 不能執中之致耳。 殿下一心, 萬化之原, 而其好惡顚倒至此, 無怪乎下人之靡然日趨於偏私也。 以臺諫廢職, 天災彌月爲言, 則曰: "臺諫就職, 則大臣自安矣; 天災弛矣。" 未聞有凡庸之流, 冒居巖廊, 人莫敢指議而後, 可以弭災也。 殿下縱辯以禦言者, 不幾於挫公論, 而慢天災乎? 近日, 殿下不務弘遠之度, 勞精察細之間, 疑人自小, 不知元氣之日索, 豈大包同涵之量哉? 長此不已, 轉成沈痼, 則風化漸趨澆僞, 人無所措手足, 非小患害也。 伏願殿下, 講劘聖學, 涵養性情, 悟此心危微之幾, 察之以精;明此心本原之正, 守之以一, 以執萬事之中; 以立萬人之極, 則好惡之便僻者豈敢干; 是非紛挐者豈敢眩; 朝廷四方, 豈敢不正、不一乎?
傳曰: "疏中歷言予之過擧及是非不能明辨之事, 皆當矣。 慶俶等果剛直矣, 然議論不定, 而獨啓過矣。 弘文館又論諸臺諫, 故倂命遞之, 其間豈有彼此私意乎?"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