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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0권, 중종 9년 3월 14일 정축 1번째기사 1514년 명 정덕(正德) 9년

대궐 안의 채소밭에 분뇨 쓰는 것을 금하게 하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영사 김응기(金應箕)가 아뢰기를,

"문소전(文昭殿)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분뇨(糞尿)를 모아다 채소를 심기도 하고, 또 궐내에 조금이라도 빈 땅이 있으면 모두 경종(耕種)을 하니, 이는 지난날 공궐(空闕) 때에 하던 짓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궐정(闕庭)에는 모두 벽돌을 깔았거니와, 궐정에 비록 작은 공지가 있다 한들 어찌 경종을 할 것이며, 하물며 제향(祭享)하는 근처에는 더욱 부당한 일이니 일절 금지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미처 알지 못하였다. 금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 때에 조정에서는 대체(大體)는 유지하지 않고 번잡 세밀한 일을 살피기만 힘쓰며, 한갓 겉치레만을 일삼으므로 규모가 날로 좁아지고 기상이 날로 낮아져서 습속이 경박해졌다. 그리고 의식(衣食)과 궁실(宮室)은 다투어 사치 화려함을 숭상하며, 정령(政令)은 일정하지 아니하여 아침에 세운 것을 저녁에 고치고 기강이 해이하여 관리들이 법을 받들지 아니하며, 염치(廉恥)의 도가 사라져서 범장(犯贓)하는 아전이 많아지고, 충후(忠厚)한 기풍이 상실되어 사람들이 고알(告訐)128) 하기를 숭상하므로 훼예(毁譽)가 실지와 틀리며, 혈족을 친해하는 도가 없어져 종족(宗族)을 사랑하지 아니하므로 이(利)를 다투다가 해치기까지 하였다. 교사(巧詐)가 날로 불어나므로 속이고 배반하기를 일삼으며, 수령이 탐학(貪虐)하므로 백성의 고통이 날로 심하여지며, 출척(黜陟)이 공정하지 못하므로 현부(賢否)가 혼동되는 등 이러한 폐단을 일일이 기록할 수 없었다. 그런데 2품 이상이 5인씩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면서도 교추순복(巧趨順伏)하여 묵묵히 묻는 말에만 ‘네 네’할 뿐 한 사람도 여기에 언급이 없었고, 물러나서는 그 몸의 안전을 도모하여 녹봉(祿俸)을 유지할 뿐이며, 소관(小官)은 월직(越職)의 죄를 두려워하여 또한 감히 진달(進達)하지 못하니 폐단이 날로 더욱 많아지나 개혁될 날이 없었다. 그리하여 식자(識者)가 근심을 하고 있는데도 응기(應箕)는 국정을 맡은 대신으로서 이러한 일은 아뢰지 아니하고 궐내 공지의 불결(不潔)한 것만 걱정을 하니, 식자는 이를 비웃었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농업-개간(開墾)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 / 역사-사학(史學) / 정론-정론(政論)

  • [註 128]
    고알(告訐) : 남의 나쁜 일을 들추고 고발하는 것.

○丁丑/御朝講。 領事金應箕曰: "文昭殿切近處, 聚糞種蔬。 又闕內少有曠地, 亦皆耕種, 此曩者空闕時所爲, 至今因循。 中原闕庭, 皆布之以磗。 闕庭雖少有空曠, 何可耕種? 況祭享近處, 尤不當也, 請一切禁之。" 上曰: "予未及知之, 其禁之。"

【史臣曰: "時, 朝廷不持大體, 務察煩細, 徒事虛文, 規模日狹。 氣象日卑, 習尙偸薄, 衣食、宮室, 爭崇侈美。 政令不一, 朝立夕改, 紀綱解弛, 吏不奉法。 廉恥道消, 吏多犯贓, 忠厚風喪, 人尙告訐, 而毁譽失眞。 親親道滅, 不愛宗族, 而爭利至害。 巧詐日滋, 欺負相尙, 守令貪暴, 民瘼日甚。 黜陟不公, 賢否混進。 類此弊事, 不可勝記, 而二品以上每五人, 入侍經筵, 巧趨順伏, 隱默唯唯, 無一人言及於此, 退而圖身, 苟容持祿而已。 小官畏越職之罪, 亦不敢陳之, 弊日益多, 革之無日, 識者有憂, 而應箕以當國大臣, 捨此不啓, 而只以闕內隙地, 不潔爲憂, 識者譏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농업-개간(開墾)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 / 역사-사학(史學)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