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에 나아가다
조강에 나아갔다. 지평(持平) 김희수(金希壽)가 아뢰기를,
"구수영은 용심이 간사하니 준엄하게 근절하여야 합니다. 조정에 숨은 화단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에게 있으니 속히 개정하소서. 고안정(高安正)은 폐조 때에 녹수(綠水)199) 의 제부(弟夫) 김효손(金孝孫)을 만나 기회를 타서 현달하였으며, 또 용모가 추한 이숙원(李淑媛)의 아우를 첩으로 삼고 불의를 자행하여 심지어는 남의 가대(家垈)까지 탈취하였으니, 이는 아주 흉특(凶慝)한 사람이거늘, 이제 2품의 가자(加資)를 제수하고 봉군(封君)까지 하기에 이르니 개정하소서. 홍문관은 옛 집현전(集賢殿)으로서 그 선록(選錄)200) 은 지극히 중한 것인데, 지금은 조종의 법을 변경하여 전조(銓曹)로 하여금 주의(注擬)하게 하시니 이는 심히 불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에 대신의 말을 따라 이조로 관장하게 하였으나, 과연 조종조로부터 선록한 지 오랬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였다. 영사 송일이 아뢰기를,
"세종조(世宗朝)에서 집현전을 설치하여 당시의 인재를 죄다 선임하였는데 혹은 글에 능한 자도 초선(抄選)하고, 글은 부족하더라도 행실(行實)이 있는 자면 참례하였으며, 문종이 세자(世子) 때에 친히 논란(論難)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조조(世祖朝)에 와서 비로소 폐지하였다가 성종(成宗)께서 또 그 관(館)을 세우고 홍문(弘文)이라 이름을 붙여 당시의 쓸 만한 사람이면 다 초선하는데 그 수에 구애되지 않고 다 기록하여 쓰되, 비록 선록에 참예된 사람이라도 부당함이 있으면 쓰지 않았습니다. 근간 홍문관에 결원이 많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선록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지난번 선록할 때 본관에서 6인, 이조에서 1인, 의정부에서 3인을 더 초선하여 모두 10인이었는데, 소신은 그들이 합당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시강관(侍講官) 김내문(金乃文)이 아뢰기를,
"경연관(經筵官)은 매우 중한 벼슬이니, 이조가 독선(獨選)한다면 용인(用人)하는 도가 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고, 동지사(同知事) 박열(朴說)이 아뢰기를,
"비록 홍문관·이조·정부의 초선을 거쳐도 오히려 정하지 못한데, 만약 이조가 단독으로 초선하면 더욱 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전과 같이 선록함이 어떠하리까?"
하고, 송일이 아뢰기를,
"대간이 아무는 부당하다고 직청(直請)하지 않으면, 다시 초선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간원이 아무아무는 합당하지 않다 말하는 것이 가하나, 다시 대신에게 의논하라."
하였다. 헌납(獻納) 김선(金璇)이 아뢰기를,
"홍문록(弘文錄)을 간원이 개택(改擇)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초선한 바가 잡되어서 입니다. 옛법은 고칠 수 없습니다."
하고, 김희수(金希壽) 등이 이어 전의 일을 아뢰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5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
- [註 199]녹수(綠水) : 장녹수(張綠水)를 말한다.
- [註 200]
선록(選錄) : 홍문관의 관원으로 쓸 만한 사람을 가려 내어 기록하는 것, 또는 그 기록. 문과(文科)의 방(榜)이 나게 되면 7품 이하의 관원이 모여 홍문관 관원으로 쓸 만한 사람을 초출(抄出)한 뒤에 부제학 이하 응교·교리·수찬 등이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에 권점(圈點)을 붙이는데 이것을 홍문록 혹은 본관록(本館錄)이라 하며, 이것을 다시 의정(議政)·찬성(贊成)·참찬(參贊)과 이조(吏曹)의 당상관(堂上官) 등이 모여서 제 2차의 권점을 붙이는데, 이것을 도당록(都堂錄)이라 한다. 이것을 임금에게 아뢰어 교리(校理)·수찬을 임명한다. 여기서 선록이란 본관록·도당록을 합칭한 것으로, 곧 홍문록(弘文錄)이다. - [註 200]
○辛亥/御朝講。 持平金希壽曰: "具壽永用心回邪, 當痛絶根株。 朝廷隱禍, 不在於他, 在於斯人, 請速改正。 高安正在廢朝, 見綠水弟夫金孝孫, 乘時顯達, 又娶李淑媛之弟貌醜者爲妾, 恣行不義, 至奪人家代, 乃凶慝人也。 今授二品之加, 至於封君, 請改正。 弘文館, 古之集賢殿, 其選至重, 今者變祖宗之法, 使銓曹擬之, 此甚不可。" 上曰: "前因大臣之言, 令吏曹掌之, 果自祖宗朝, 選錄久矣。 何以則可?" 領事宋軼曰: "世宗朝, 設集賢殿, 其一時人才, 皆選之, 或有選其能文, 或短於文而有行實者, 則亦與焉。 文宗爲世子時, 親自論難, 至世祖朝, 始廢之。 成宗又立其館, 名以弘文, 一時可用之人, 則皆選之, 不拘其數, 皆錄而用之。 雖參錄之人, 若有不當, 則不用焉。 近間弘文館, 多有缺員, 臣問其故, 則無選錄人故也。 頃者選錄之時, 本館選六人, 吏曹選一人, 議政府加錄三人, 幷十人, 小臣未知其不合矣。 侍講官金乃文曰: "經筵官甚重, 吏曹獨選, 則用人之道恐未精也。" 同知事朴說曰: "雖經弘文館、吏曹、政府之選, 尙且不精, 若吏曹獨選, 則恐未精也。 因舊選錄何如?" 宋軼曰: "臺諫非直請某人不當, 更選爲難。" 上曰: "諫院言某不合可也。 然更議于大臣。" 獻納金璇曰: "弘文錄, 諫院非欲其改擇也。 今所選冗矣。 舊法則不可改也。" 金希壽等, 仍啓前事, 皆不允。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5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