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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17권, 중종 7년 11월 22일 임진 1번째기사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주강에서 가묘에 대해 분부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상이 글에 임하여 분부하기를,

"임금의 악(惡)을 키움은 그 죄가 작고, 임금의 악을 싹트게 함은 그 죄가 크다 하였는데, 지금 요숭(姚崇)이 한 말487) 은 한갓 임금만이 경계삼아야 할 바가 아니라, 또한 신하도 마땅히 거울삼아야 할 바이다. 또한 가묘(家廟)는 신하가 모두 세워야 하는데, 지금 세우지 아니한 자가 매우 많으니, 이는 법사(法司)가 마땅히 규찰(糾察)하여야 한다."

하매, 시강관(侍講官) 윤은필(尹殷弼)이 아뢰기를,

"임금의 악을 키운다는 것은, 과실을 바루어 도(道)에 나아가게 하지 못함을 이른 것이요, 임금의 악을 싹트게 한다는 것은, 뜻에 앞질러 유도하여 불의(不義)에 빠지게 함을 이른 것입니다. 요숭이, 임금의 과오가 싹트기도 전에 뜻을 앞질러 유도하였으니, 그가 임금의 악을 싹트게 한 것은 비록 간사(奸邪)한 자의 소위로도 더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명황(明皇)이 만일 밝게 살폈다면 아랫사람이 비록 악으로 인도하려 하였더라도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또한 당 태종(唐太宗)은 즉위한 지 오래되자 영선(營繕)이 매우 많았지만 끝까지 태묘(太廟)를 새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저 군자(君子)가 궁실(宮室)을 지으려면 가묘(家廟)를 먼저 지어야 하는 것인데, 더구나 천하의 임금으로서 창업(創業)한 처음에 태묘를 새로 세우지 않았으니 되겠습니까? 태종 또한 잘못입니다."

하고, 검토관(檢討官) 소세양(蘇世讓)은 아뢰기를,

"임금에게는 태묘, 신하에게는 가묘가 있어 천자와 제후로부터 경대부(卿大夫)와 사서인(士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사 모시는 일이 있는데, 우리 문종 대왕(文宗大王)께서는 홀로 일위(一位)로만 향사(享祀)하였으니, 그 때의 일을 신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종조(成宗朝)에 소릉(昭陵)을 추복(追復)하는 일로 더러 아뢰는 사람이 있었으나 고치지 아니하니, 여러 사람의 의논이 매우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만약 자손이 조종(祖宗)이 한 일이라 하여 고치지 않는다면, 비록 천만 세가 되더라도 그 과오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우리 나라의 잘못된 거사가 이 일처럼 큰 것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소릉의 일은, 조종조(祖宗朝)가 한 일인데 진달(陳達)하여 아뢰는 사람이 없었으며, 오래 된 일이요 또한 경솔히 바꾸어서는 안 되니, 지금 처치(處置)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62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풍속-예속(禮俗) / 역사-고사(故事)

  • [註 487]
    요숭(姚崇)이 한 말 : 당 현종(唐玄宗)의 명신(名臣)으로, 현종이 동도(東都)로 행행하려 할 때에 태묘(太廟)가 무너지자 임금이 요숭에게 징조를 물었는데, 이에 대(對)한 상소문을 가리킨다. 내용은 대략 "건물이 오래되어 자연히 무너진 것이니 신주를 옮겨 모시고 태묘를 신축할 것이요, 거가(車駕)를 이 때문에 중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서(唐書)》 요숭열전(姚崇列傳).

○壬辰/御晝講。 上臨文敎曰: "‘長君之惡, 其罪小; 逢君之惡, 其罪大。’ 今姚崇所言, 非徒人君之所當戒, 亦臣子所當鑑也。 且家廟, 臣下皆當建, 而今有不立者甚多, 此則法司所宜糾察." 侍講官尹殷弼曰: "長君之惡者, 謂不能糾正君失, 引以當道也; 逢君之惡者, 謂先意導之, 使陷於不義也。 姚崇於君過之未萌, 先意導之, 其逢君之惡, 雖奸邪所爲, 無以加矣。 明皇若能明以照之, 則下人雖欲導之以惡, 其能得乎? 且 太宗卽位日久, 營繕甚多, 而終不改建太廟。 大抵君子將營宮室, 家廟爲先, 況以天下之主, 創業之初, 不改建太廟可乎? 太宗亦非也。" 檢討官蘇世讓曰: "人君則太廟, 臣下則家廟, 自天子諸侯, 至於卿大夫士庶人, 皆有祀事。 我文宗大王獨以一位享之, 其時之事, 則臣未之知矣。 成宗朝, 以復昭陵事, 或有啓之者, 而不改之, 衆論深以爲恨。 若子孫, 以祖宗之所爲而不改, 則雖千萬世, 其過不滅矣, 我國失擧, 無如此事之大也。 上曰: "昭陵事, 在祖宗朝所爲, 而無陳啓之者。 事在久遠, 且非輕易, 今之處置, 似乎難矣。"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62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풍속-예속(禮俗)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