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17권, 중종 7년 10월 6일 병오 2번째기사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부제학 이자화의 상소

부제학(副提學) 이자화(李自華) 등이 상소하였다. 대략,

"근년(近年) 이래로 별의 변괴가 잦고 지진이 수차 일어나며, 한황(旱蝗)이 잇따른 데다가, 올해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지 않았는데, 기전(畿甸)과 영북(嶺北)이 더욱 심하며, 도성(都城)의 지맥(地脈)이 통하지 못하여 모든 우물이 다 말랐습니다. 또 8월에는 관서(關西)의 여섯 고을에 우박이 쏟아졌는데, 크기가 주먹만하고 쌓인 두께가 두어 치나 되었으며, 안압조작(雁鴨鳥雀)441) 이 모두 다치고 죽고 하였습니다. 또 9월 17일에는 용인현(龍仁縣)에 큰 우박이 내리고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 나무가 뽑히고 집이 무너져 상해된 자도 있었으며, 바람기가 사나와 마치 연화(烟火) 같았는데, 이튿날에도 또 뇌성과 번개가 일며 거센 우박이 내리어 큰 것은 밤[栗]만하고, 서울에도 우박이 내리고 번개가 여러 날 계속되었습니다.

지성으로 다스리기를 구하시는 때를 당하여 재변이 이와 같이 많이 일어나 하늘에서 변괴를 보임은, 비록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어찌 인사(人事)가 잘못되어 일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일을 정칙(正勅)하여 하늘의 뜻을 감동시킴이 어찌 전하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우선 근래의 일을 들어 말한다면, 천령(天嶺)에 관문(關門)을 설치하고 어사(御史)를 파견하여 여닫기를 관장하게 하려다가, 얼마 안 되어 그 불가함을 알고서는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고, 북지(北地)에 흉년이 들자, 처음에는 대신을 보내어 순찰하려 하고, 또 겸도사(兼都事)를 두려고 하다가 얼마 안 되어 그 불가함을 알고서는 파의(罷議)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변장(邊將)이 적(賊)의 머리 두엇을 베어 오면 지나치게 상주고 함부로 가자(加資)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그 불가함을 알게 되면 개정(改正)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 불가함을 알고서 고친 것은 나쁠 것이 없지만, 일을 처음 계획할 때에 삼가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경솔하게 하기를 이와 같이 하십니까?

영북(嶺北)에 곡식을 수송하려면 한 관원에게 차임(差任)하여도 족히 일을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반드시 따로 전운사(轉運使)를 두어, 해조(該曹)에서 맡지 못하게 하며, 국사를 의논할 적에는, 원래부터 궐정(闕庭)에서 하여 또한 족히 청문(淸問)442) 을 받들어 가유(嘉猷)443) 를 펼 수 있는데, 어찌하여 반드시 따로 의득청(議得廳)을 세워, 도성 가운데에 떼 지어 모이게 함으로써 보기에 놀랍게 해야만 합니까?

국가에서 법조(法條)를 창립한 것이 지극히 정밀하고 자상하여 《대전(大典)》《속록(續錄)》이 있는데, 모두 《대명률(大明律)》444) 에 근본한 것이니,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반드시 국(局)을 설치하고 근정(斤正)하여, 폐조(廢朝)의 어지러운 정사마저 첨가해서 기록하여 조종(祖宗)의 좋은 법을 더럽혀야 합니까? 형벌을 조심함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두남두는 덕이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하지 못함은 어쩐 일입니까? 근자에 죄가 난역(亂逆)이 아닌데도 먼 지방에 귀양보낸 사람이 많으니, 만일 그 실정을 살핀다면 그 속에 어찌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재변을 초래하고 화기를 손상함이 또한 반드시 이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인재 선발하기를 힘쓰지 않는 것이 아니로되, 전조(銓曹)가 주의(注擬)할 적에 추천된 사람을 쓰지 않음은 어쩐 일입니까? 세가(勢家)의 청탁이 빈번하면 조정의 공도(公道)가 행해지지 못합니다. 추천된 사람이 반드시 모두 합당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어찌 모두 청탁하여 벼슬을 얻은 사람만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은 일하기를 잘못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사(祭祀)는 국가의 큰 일로서 인정(人情)에 마땅히 지성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의물(儀物)이 비록 갖추어지더라도 성의가 극진하지 못하면 신명이 흠향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옛사람이, 섬기기를 산 사람 같이 하고 제사 지내기를 계신 것 같이 한 것은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몸소 묘정(廟庭)에 제사드린 일이 대체로 적으신데, 신 등은, 근본에 보답하고 선대(先代)를 추모하시는 마음이 극진하지 못한 바가 있으신가 생각합니다. 더구나 선농단(先農壇)445) 에 제사하며 풍년을 빎은 제왕의 훌륭한 예이니 즉위하신 처음에 마땅히 먼저 거행하여야 할 일인데, 늘 흉년이라 하여 거행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너무나 근본을 모르는 일입니다.

공론은 국가의 정맥(正脈)이요, 수의(收議)는 또한 공론이 유통되는 길입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여러 신하에게 수의함은 여러 사람의 의논을 모음으로써 지당한 의논을 얻으려는 것이니, 의논에 참여한 사람은 진실로 마땅히 자기의 생각을 다하여 각기 계획한 바를 진달하여야 하는데, 지금은 일을 의논할 즈음에 한두 대신이 의논을 주창(主唱)하면, 반열(班列)에 있는 사람들이 휩쓸려 따르며, 속으로는 그것이 불가함을 알면서도 감히 거스르지 못하고 같이 호응하니, 이로 말미암아 공론이 아래서 답답하되 위에 전달되지 못하게 됩니다. 아아, 이런 풍조가 변하지 않고, 한 권신(權臣)이 그 사이에 끼게 된다면,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는데, 답하기를,

"이는 모두 나의 허물이니, 마땅히 여러 신하들과 그 가부를 논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1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 / 사법-법제(法制)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교통(交通) / 농업-농작(農作) / 농업-권농(勸農) / 과학-천기(天氣)

  • [註 441]
    안압조작(雁鴨鳥雀) : 모든 새들을 가리키는 말.
  • [註 442]
    청문(淸問) : 임금이 겸허한 마음으로 묻는 것.
  • [註 443]
    가유(嘉猷) : 좋은 계책.
  • [註 444]
    《대명률(大明律)》 : 중국 명대(明代)의 형법전(刑法典). 명례율(名例律)·이율(吏律)·호율(戶律)·예율(禮律)·병률(兵律)·형률(刑律)·공률(工律)의 7편 30권 4백 60조(條)로 되어있다.
  • [註 445]
    선농단(先農壇) : 신농씨(神農氏)와 후직(后稷)을 제사하는 단으로 동대문 밖 보원동동(普院東洞)에 있었다. 해마다 경칩(驚蟄) 뒤 첫 해일(亥日)에,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임금이 친히 나와 제사지냈다.

○副提學李自華等上疏, 其略曰:

近歲以來, 星辰數變, 地震屢作, 旱蝗相仍。 今年則自春至秋不雨, 畿甸嶺北尤甚。 都城之中, 地脈不通, 萬井俱渴, 又於八月, 關西六郡, 雨雹暴下, 大如手拳, 積地深二寸許, 雁、鴨、鳥、雀, 皆爲傷死, 又於九月十七日, 龍仁縣大雨雹, 暴風卒起, 拔樹仆屋, 人有被傷者。 風氣之惡, 有似烟火, 翌日雷電又作, 暴雹亦下, 大者如栗。 京師亦雨雹雷電者累日。 當至誠求治之時, 而災變之作, 若是其多。 天之示異, 雖曰仁愛人君, 人事之失, 豈無所召? 正勑庶事, 感動天意, 豈非殿下之責乎? 姑擧近日之事言之, 設關天嶺, 則欲遣御史, 掌開閉, 旣而知其不可, 則不得不罷, 北地凶荒, 則初欲遣大臣巡察, 又欲置兼都事, 旣而知其不可, 則不得不罷, 邊將殺賊數級, 則濫賞妄加, 旣而知其不可, 則不得不改。 知其不可而改, 未爲病也, 其不謹於建事之始, 而輕擧若是何也? 輸穀嶺北, 差一官, 亦足就事, 何必別置轉運使, 而不管於該曹乎? 謀議國事, 自有闕庭, 亦足以承淸問展嘉猷, 何必別建議得廳, 而群聚國中, 以駭瞻視乎? 國家創立法條, 至精至悉, 有《大典》《續錄》, 而皆本於《大明律》, 則宜無所不備。 何必設局斤正, 添錄廢朝之亂政, 以汚祖宗之良法乎? 恤刑非不至也, 而矜恕之德, 未洽於人心何也? 近者罪非亂逆, 而投竄遐裔者多矣。 若察其情, 則其間豈無冤枉? 召災傷和, 亦未必不由於此也。 選才非不勤也, 而銓曹於注擬之際, 不用薦擧之人何也? 勢家之請托煩, 而朝廷之公道不行也。 薦擧雖未必盡得其人, 豈皆下於請托而得官者乎? 然此不過事爲之謬耳, 至於祭祀者, 國家之大事, 而人情之所當至誠者也。 儀物雖備, 誠有所未盡, 則神不肯享, 故古之人, 事之如生, 祭之如在, 所以致其誠也。 殿下卽位以來, 躬祀廟庭者蓋寡, 臣等恐報本追遠之心, 有所未盡也。 況祀先農祈穀, 帝王之盛禮, 卽位之初, 宜先擧行, 而常以歲歉不擧, 此甚不知本者也。 公論者, 國家之正脈, 而收議者, 又公論通行之路也, 國有大事, 則必收議于群臣者, 欲集衆思, 而得聞至當之論也。 與議者, 固當悉其思慮, 各陳所蘊, 今則議事之際, 一二大臣唱議, 則在列靡然從之, 心雖明知其不可, 不取違忤, 同然和之。 由是公論, 鬱於下, 而不達於上。 嗚呼! 此風不變, 而一權臣閒其閒, 是豈非寒心者乎?

答曰: "此皆予之咎也。 當與群臣, 論其可否。"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1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 / 사법-법제(法制)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교통(交通) / 농업-농작(農作) / 농업-권농(勸農)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