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14권, 중종 6년 10월 11일 무자 6번째기사 1511년 명 정덕(正德) 6년

양사가 조진한 다섯 조목을 빈청에 내리고 전교하다

양사(兩司)가 조진(條陳)한 다섯 가지 일을 빈청(賓廳)에 내리고, 이어 전교하기를,

"재변은 한 지아비의 원망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어늘, 지금 정승들이 무엇을 그르친 일이 있기에 이런 재변이 있는가? 좌의정이 재산을 불린다는 일은 역시 알 수 없다. 홍경주는 위로 삼공이 있으니 참찬으로서 독단하는 일이 없거늘, 무엇이 합당치 않은가? 신윤무 역시 경력이 있는데 무엇이 맞지 않은가? 사람을 쓰는 것은 조종조로부터 양과(兩科) 외에 자제 중에 특이한 재능이 있는 자를 육조(六曹)에 써 왔다. ‘삼가 사혐(私嫌)을 피하라.’는 말은 나의 병통을 바로 맞춘 것이다. ‘귀근(貴近)에게 죄가 있어도 다스리지 않는다.’는 말을 필시 남치원(南致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이른바 ‘외척 중에 특이한 재능이 없는 자를 여러 차례 현직(顯職)에 제수하였다.’는 것은 어느 사람을 가리킴인지 모르겠다."

하자, 김수동 등이 아뢰기를,

"이제 대간이 서계(書啓)한 다섯 조목을 보니, 말이 매우 적절합니다. 신 등이 정승의 지위에 있으면서 폐정(弊政)을 닦고, 폐사(弊事)를 제거하는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으니, 대간의 말이 사실입니다. 유순정(柳順汀)은 본시 세가(世家)로서 상의 은혜를 두텁게 입고 있으니, 포곡(布穀) 등의 물자가 넉넉함은 사실이나 재산을 불린다는 일은 신 등도 역시 듣지 못하였습니다. 정부의 일은 삼공이 논의하는 것이니, 참찬(參贊)이 독단으로 한 일이 없습니다. ‘홍경주(洪景舟)가 재직 중에 근신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신윤무는 청간(淸簡)하여 씀직한 사람이니, 비록 경력은 없다 하나 일찍이 수령(守令)을 하였고, 참판과 절도사를 거쳐 이제 참찬이 되었으니, 사물에 숙달하였다고 할 만합니다. 선비들이 급작스레 승진하려는 버릇이 들었다는 것은 과연 아뢴 바와 같습니다. 근래엔 공천(公薦)의 길이 넓은데 어느 사람이 길이 막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양과 외에 특이한 재능이 없는 자제를 현직에 서임하지 말라.’는 것은 과연 옳습니다. 또 허다한 수령들을 어찌 다 적임자를 얻으며, 조정 또한 누가 적임자인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전최(殿最) 외에 감사가 수소문하여 포폄(褒貶)함이 옳을 듯합니다. 적간(摘奸)하여 죄를 다스리는 일은 과연 제왕의 미사(美事)가 되지 못하며, 사명을 받들고 추국함에 있어 ‘덮어주는 것을 현명하다 하고, 강명(剛明)한 것을 그르다고 한다.’는 것은 역시 알지 못합니다.

율(律)436)실입(失入)한 죄와 실출(失出)한 죄437) 가 있으니, 이로써 죄를 다스림이 마땅하며 따로 과조(科條)를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임금의 상벌(賞罰)은 과연 중한 일이니 ‘귀근(貴近)에게 죄가 있는 것을 다스리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상의 전교에서와 같이 필시 남치원을 지적함일 것입니다. ‘일가붙이에게 여러 차례 현직을 제수했다.’는 것은 신 등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대간이 아뢴 것은, 기필코 상으로 하여금 대공 지정(大公至正)의 도를 쓰시도록 함으로써 화근을 시초에서 막고자 함일 것입니다. 이른바 ‘대신이 환심을 사기에 급하다.’는 것이니, 재상직은 과연 신 등이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하고, 김수동은 또 아뢰기를,

"이른바 ‘조정이 불화하다.’는 것은 필시 신을 가리켜서 한 말일 것입니다. 신이 전일에 ‘마음이 화(和)하고 기(氣)가 화한 뒤에야 조정이 화목하고 만물이 화목해져서 재변이 일어날 데가 없다.’고 한 말이 있는데, 필시 이 말을 의심하여 그 말을 했을 것입니다."

하고, 성희안이 아뢰기를,

"이른바 ‘위를 능멸한다.’ 함은 필시 신을 지적해서 한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전강(殿講)하던 날, 《상서(尙書)》의 ‘경’(敬)자 한 자를 강론함에 있어서 ‘오늘날에는 아랫사람이 상관을 공경하지 않으며, 후진(後進)이 선진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었을 따름입니다. 폐조 때 위를 능멸한 말로 된 ‘화’(和)는 신이 목도(目睹)한 바인데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자기와 뜻이 다른 자를 미워한다.’는 말을 필시 ‘이극돈을 추론함이 마땅치 못하다.’는 신 등의 말 때문에 한 말일 것입니다. 또 대간이 아뢴 것 중에 어찌 수의(收議)할 만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권세가 대신에게 돌아간다.’는 말 역시 그 시초에서 막자는 뜻입니다. ‘재변의 일어남이 실로 이에 말미암았다.’ 하니, 이 말은 신 등이 더욱 직(職)에 있을 수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론의 소재를 더욱 뚜렷이 알 수 있으며, 삼공이 직임을 다 할 수 없다는 것도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재난을 그치게 하시려거든 속히 신의 직을 갈고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여 하늘의 견책에 응답하소서."

하였다. 김수동이 또 아뢰기를,

"어제 사면을 청했을 때 즉시 갈기를 명하셨던들 대간의 이 말이 없었을 것이요, 상께서도 적임자가 아닌 사람을 쓰시는 실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신에게 죄가 있음은 온 나라가 다 같이 아는 일이니, 속히 갈아 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하고, 이어서 대간에 전교하기를,

"귀척(貴戚)에게 죄가 있어도 다스리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게 누구이며 외척이 여러 번 현직(顯職)을 제수 받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또 누구인가?"

하자, 회계(回啓)하기를,

"판결사 이맥(李陌)과 정(正) 이위(李偉)와 홍원 현감(洪原縣監) 이위(李瑋)의 일을 대간이 논집(論執)하였으나 즉시 윤허를 얻지 못한 것은 필시 척리(戚里)인 까닭입니다. 이른바 ‘죄가 있는데 다스리지 않았다.’ 함은 과연 남치원(南致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임금이 만약 척리에게 사사로운 뜻을 쓴다면, 대신이 자제(子弟)를 위해 벼슬을 구하는 것을 어떻게 금할 수 있겠습니까? ‘유순정(柳順汀)이 재산을 불린다는 일은 상세히 듣지 않고 아뢰었겠습니까. 대신이 나라 걱정을 집걱정처럼 한다면 어찌 재산 불리는 것을 일삼겠습니까. 홍경주(洪景舟)는 물망이 없으므로 아뢴 것입니다. 신윤무(辛允武)는 위인이 쓸 만한데, 성종조(成宗朝)에서도 어유소(魚有沼)가 무신으로서 찬성(贊成)이 되었으니, 신윤무는 경력을 쌓아 숙달한 뒤에 쓰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53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과학-천기(天氣)

  • [註 436]
    율(律) : 《대명률(大明律)》을 말한다.
  • [註 437]
    실입(失入)한 죄와 실출(失出)한 죄 : 죄가 가벼운데 무거운 벌을 줌으로써 법의 알맞은 시행을 그르치는 것. 실출(失出)은 그 반대이다.

○下兩司條陳五事于賓廳, 仍傳曰: "災變雖一夫之怨, 猶可致之。 今政丞等, 有何誤事, 而有此災變乎? 左議政貨殖事, 亦未可知也。 洪景舟上有三公, 以參贊無所擅爲, 有何不合? 辛允武亦有踐歷, 何不稱之有? 用人自祖宗朝於兩科外, 若子弟有異能者, 亦用諸六曹。 且謹避私嫌之語, 正中予病。 貴近有罪不治者, 必指南致元也。 所謂外戚無異能, 屢授顯職者, 不知指何人也。" 壽童等啓曰: "今觀臺諫所書啓五條, 辭甚剴切。 臣等在調燮之地, 修某弊政, 祛某弊事, 一未之爲也, 臺諫所言信然矣。 柳順汀本以世家, 厚蒙上恩, 布穀等物, 必爲優足。 如貨殖事, 臣等亦未之聞也。 政府之事, 三公論議, 參贊無擅爲之事, 景舟在職不謹, 未之知也。 辛允武淸簡可用人。 雖云無踐歷, 然曾爲守令, 爲參判, 爲節度使, 今爲參贊, 可謂諳練矣。 士習躁進之弊, 果如所啓。 近來公薦之路廣, 而未知何人見滯。 兩科外子弟無異能者, 勿敍顯職, 果爲當矣。 且許多守令, 豈皆盡得其人, 朝廷亦豈盡知其人乎? 殿最之外, 監司隨所聞, 或黜或褒可矣。 摘奸治罪, 果非帝王美事也, 奉使推鞫, 以掩覆爲賢, 以剛明爲非者, 亦未可知也。 律有失入失出之罪, 當以此治罪, 不必別立科條也。 人主之賞罰, 果重事也。 貴近之有罪不治者, 果如上敎, 必指南致元也。 戚屬之屢授顯職者, 臣等亦未之知也。 如此啓之者, 必欲使上, 用大公至正之道, 而防微杜漸也。 所謂大臣務悅人心者燮理, 果非臣等所可堪也。" 壽童啓曰: "所謂朝廷不和, 此必指臣而言也。 臣前日以爲: ‘心和氣和, 然後朝廷和而萬物和, 災變無自而作。’ 必以此言爲疑, 有是言也。" 成希顔啓曰: "所謂凌上, 此必指臣而言也。 臣於殿講之日, 論《尙書》敬之一字, 以今之爲下者, 不敬上官, 後進不敬先進, 爲問而已。 若廢朝時, 凌上之言之和, 則臣所目覩, 何敢發此言乎? 惡其異已之言, 必以臣等言: ‘李克墩, 不宜追論。’ 而云也。 且臺諫所啓, 豈無可收議之事? 權歸大臣之言, 亦防微杜漸也。 災變之出, 實由於此, 此臣等尤不可在職也。 於此, 益知公論所在, 三公未能盡職, 尤可信然。 若欲弭災, 速遞臣職, 代以他人, 以答天譴。" 壽童又啓曰: "昨日辭免之時, 卽命遞, 則臺諫必無此言, 上亦無用非人之失。 況臣之有罪, 一國所共知, 請亟遞之。" 傳曰: "其勿辭。" 仍傳于臺諫曰: "貴戚有罪不治者, 誰歟? 外戚屢授顯職者, 又誰歟?" 回啓曰: "判決事李陌、正〔言〕 李偉洪原縣監李瑋事, 臺諫論執, 而不卽兪允, 必以戚里之故也。 所謂有罪不治者, 果指南致元也。 人主若用私意於戚里, 則大臣之爲子弟求官者, 何能禁乎? 柳順汀貨殖事, 豈不詳聞而啓之? 大臣憂國如家, 則豈以貨殖爲事乎? 洪景舟無物望, 故啓之。 辛允武爲人可用。 成宗魚有沼, 亦以武臣, 爲贊成, 然允武則可待踐歷諳練, 然後用之。" 皆不允。


  • 【태백산사고본】 7책 1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53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