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을 강하다 양사에 이르러 김희수 등이 농사의 중요성을 아뢰다
조강에 나아갔다. 《시경(詩經)》을 강하여 양사(良耜)에 이르러 시독관(侍讀官) 김희수(金希壽)가 아뢰기를,
"주공(周公)이 풍(風)·아(雅)·송(頌)에서 다 농사를 중히 여길 것을 성왕(成王)에게 풍유(諷諭)하였으니, 옛사람이 농사에 뜻을 다하여 항상 군주(君主)로 하여금 농사의 어려움을 알게 하려고 한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성상께서는 유의하소서."
하고, 유순정(柳順丁)은 아뢰기를,
"금년은 매우 흉년이 들었는데 경기(京畿)가 가장 심하여 민생이 염려되니, 농사에 힘쓰는 정치를 완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에 힘쓰게 하여 묵는 땅이 없게 하고, 또 바닷가에 둑을 쌓아 전지를 만들 수 있는 땅이 있으면 백성에게 권하여 둑을 쌓아서 농사를 힘쓰는 바탕이 되게 하소서. 백성이 혹 해낼 능력이 없으면 관에서 또한 돕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각도 관찰사에게 유시(諭示)하소서."
하고, 희수가 또 아뢰기를,
"폐조(廢朝) 때 유리(流離)한 백성이 지금까지 아직 다 돌아와 안정하지 못하였으니, 모름지기 편안히 모이게 하는 정책을 힘써서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생업을 수행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민간에 요역(徭役)이 과중하여 백성들이 힘입어 살아갈 수 없는데, 수령(守令)의 가속(家屬)과 사족(士族)의 가속에게는 교군(轎軍)을 주지 않는다는 법을 조정에서 이미 세워놓았건만, 수령이 혹은 위세에 억압되고 혹은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부득이 교군을 뽑아 주니, 길가의 백성들이 이 일에 피곤하여 농사에 힘쓸 겨를이 없습니다. 이 폐해가 가볍지 않으니, 청컨대 지금부터 엄하게 금하소서."
하고, 장령 어득강(魚得江)은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가 비록 법령을 반포하여도 사람들이 받들어 행하지 않으며, 또 사치의 풍습을 개혁하고자 하여 조지(朝旨)가 날로 내리건만 거의 봉행하지 않아서 사치가 날로 일어나니, 모름지기 그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적발하여 장래를 징계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매우 마땅하다. 법금(法禁)을 세울지라도 아래에서 봉행하지 않으면 한갓 문구(文具)가 될 뿐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하였다. 득강이 아뢰기를,
"삼공(三公)의 임무는 도(道)를 강론하고 나라를 경륜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순정이 아뢴, 농사를 힘쓰자고 한 말은 단지 말사(末事)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사치의 폐단이 극도에 이르렀는데도 이것은 일찍이 논한 일이 없으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고, 헌납 성세창이 아뢰기를,
"금년의 실농(失農)은 거년보다도 심하여 시장의 곡가(穀價)가 뛰어올라 백성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국가가 무엇으로써 구제하려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음식·의복·궁실(宮室)이 모두 사치하며, 각사(各司) 관리들의 회음(會飮)이 절제가 없고, 시정(市井) 사람들은 다투어 사치하고 화려한 짓을 하고 있어서, 사치의 풍습이 날로 늘어나되 금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다시 논의를 정하여야 하여, 도성(都城) 안에는 사치하고 화려한 짓을 금지하고 외방(外方)에는 그 요역(徭役)을 덜어 주어서, 그 폐단을 구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순정이 아뢰기를,
"물소[水牛]를 조종조(祖宗朝) 때부터 각 고을에 나누어 사양하게 하였는데, 각 고을에서 사양하기를 꺼려 그것이 밭가는 데 쓰기에 마땅하지 않다고 칭탁하면서, 섬에 방목(放牧)하기를 청합니다. 물소는 그 성질이 추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만약 섬에 방목한다면 반드시 사상(死傷)이 많을 것이니 매우 좋지 않습니다. 신이 일찍이 물소를 하사 받아 인천(仁川)의 농장에서 밭을 갈게 하였더니, 하루에 일한 것이 보통 소의 두어 날의 일보다 배나 되었습니다. 이손(李蓀)이 김해 부사(金海府使)가 되었을 때에 또한 물소를 부려서 밭을 갈았더니 그 성과가 과연 보통 소보다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청컨대 방목하지 말고 돌보아 기르게 하소서."
하였다. 득강·세창이, 안윤덕(安潤德)·유회철(兪懷哲)의 일과 왕후·상궁의 족친을 종량(從良)하지 말 것을 아뢰고, 전경(典經) 유돈(柳墩)도 대간의 말에 따르를 청하였으나, 상이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65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농업-축산(畜産) / 농업-권농(勸農) / 물가-물가(物價) / 호구-이동(移動)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庚辰/御朝講。 講《詩》至《良耜》篇, 侍讀官金希壽曰: "周公於《風》、《雅》、《頌》, 皆以農事爲重, 而諷諭於成王。 想見古人, 致意於農事, 常欲使人主, 知稼穡之艱難。 伏願聖上潛心。" 領事柳順汀曰: "今年甚荒, 而京畿尤甚。 民生可慮, 務農之政, 不可緩也。 令民力於農事, 使無閑曠之地, 且於海邊, 若有築堰爲田之地, 勸民築之, 以爲務農之資。 民或不能, 官亦助之爲便。 如此等事, 請諭各道觀察使。" 希壽曰: "廢朝流民, 至今未盡還定, 須務安集之策, 俾民遂其生業。 民間徭役太重, 民不聊生。 守令家屬及士(施)〔族〕 家屬, 不給轎軍事, 朝廷已立其法。 而守令或迫於威勢, 或牽於私情, 不得已抄給, 路傍之民, 疲困於此, 無務農之暇, 此弊非輕。 請自今嚴禁。" 掌令魚得江曰: "我國家法令雖布, 人不奉行。 且欲革奢侈之風, 而朝旨日下, 略不奉行, 奢侈日興。 須摘其不畏者, 以懲其後。" 上曰: "此言當甚。 法禁雖立, 下不奉行, 則徒爲文具, 有何益耶?" 得江曰: "三公之任, 在於論道經邦。 而順汀所啓務農之言, 特末事耳。 今奢侈之弊極矣, 而曾不論啓可乎?" 獻納成世昌曰: "今年失農, 甚於去年, 市價騰踴, 民不聊生, 不知國家何以救之。 方今飮食、衣服、宮室, 擧爲奢侈, 各司官吏, 會飮無節, 市井之人, 競爲奢華, 奢風日增, 莫之能禁, 須更定議。 都城之內, 一禁奢麗, 外方則省其徭役, 以救其弊爲便。" 順汀曰: "水牛自祖宗朝, 分養於各官, 各官憚於養飼, 托其不宜於耕田, 請放於島以牧之。 此牛其性畏寒, 若放於島, 則必多死傷, 甚未便。 臣嘗受賜水牛, 耕田於仁川農庄, 一日之役, 倍於常牛數日之役。 李蓀爲金海府使時, 亦用水牛耕田, 其功果倍於常牛云。 請勿放看養。" 得江、世昌, 啓安潤德、兪懷哲及王后尙宮族親不宜從良事。 典經柳墩, 亦請從臺諫之言。 上皆不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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