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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0권, 중종 5년 3월 30일 을유 1번째기사 1510년 명 정덕(正德) 5년

정릉사 화재 등에 관해 의논하다

영의정 김수동·좌의정 유순정·우의정 성희안·우참찬 신윤무(辛允武) 등에게 전교하기를,

"대비전에서 나에게 하교하시기를, ‘전번에, 유생과 한잡인(閑雜人)들이 여러 날 정릉사에 출입하며 오래 전해 오는 보물과 경문을 훔쳐낸다는 말을 듣고, 내관을 보내서 가서 알아보게 하였는데, 유생들이 태연히 훔쳐내면서 도리어 돌덩이로 내관과 그 하인을 때리고 성을 내면서 욕설을 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밤에 그 절에 불이 나서 탔으니, 이는 내가 적간(嫡奸)하므로 말미암아 감히 이같이 한 것으로서 마음 아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간직했던 물건은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으나, 오래된 절간이 나 때문에 하루 아침에 분탕하여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도성 안이 크게 놀랐다.’고 하였다. 유생은 원래 이단(異端)을 물리치고 불경(佛經)을 빼앗는 것이지만, 공해를 분탕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절이 성안에 있는데 마음대로 불을 놓으니, 어찌 털끝만치라도 조정 상하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랴? 무단히 불을 놓은 것도 불가한 일인데, 하물며 대비의 명을 분하게 여기고 감히 이런 일을 함에랴? 옛말에 ‘쥐를 잡으려 해도 그릇을 깰까봐 못한다.’고 하였다. 대비께서 부리는 환관이 비록 미천한 자이나, 왕명은 높여야 할 것인데, 어찌 이 같은 위를 업신여기는 풍습이 있을 수 있으랴? 조정을 업신여기고 대비를 욕되게 하니, 그 죄를 어찌 이루 말하랴? 그 실은 나의 부덕(不德)한 탓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또 이것은 부형의 세력을 믿고 조정을 업신여겨 두려워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일을 중하게 말하면 모반하는 마음과 다름이 없고, 경하게 말하여도 도적과 다름이 없는 것이니, 어찌 경하다 하랴? 조정에서 아무 말도 없는 것이 가한가? 유생을 옛날에는 광동(狂童)이라 하였으나, 이들은 당연히 조정에 등용될 사람이니, 이것이 어찌 이치를 아는 자의 할 일인가? 아마도 유생을 사칭한 자의 소위일 것이다. 조정의 의견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영의정은 금부(禁府)에 가서, 자세히 추문(推問)하여 아뢰라."

하였다. 수동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신 등도 그 날 불빛이 도성에 가득히 비치는 것을 보고, 지극히 놀랐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인지를 몰랐는데, 이튿날 정부에 합좌(合坐)해서야, 흥천사 사리각(舍利閣)의 불인줄 알았습니다. 금부에 내리신 ‘가두어 추문하라.’는 전지를 보고서, 신 등은 이미 유사(有司)로 하여금 추국(推鞫)하게 하신 것으로 알고, 곧 와서 아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교를 들으니, 놀랍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광패(狂悖)한 자의 소위이지, 어찌 이치를 아는 자가 한 일이겠습니까? 이를 추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날 승전 내관(承傳內官)과 따라갔던 별감(別監) 등과 면질(面質)하면 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수동이 아뢰기를,

"신이 가서 심문하겠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위관(委官)223) 을 보내면 대간(臺諫)과 승지(承旨)도 참여하였는데, 이번에는 어찌하리까?"

하니, 전교하기를,

"대간은 갈 것이 없다. 승지는 형방(刑房) 승지가 가서 심문함이 가하다. 경의 의사를 보니, 가서 국문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하니, 수동이 움츠리고 물러갔다.

사신은 논한다. "절의 화재 때문에 유생을 심문하려고 하니, 이단(異端)을 두둔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므로, 이는 크게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수동이 명을 받고도 아무런 말이 없이 물러나가니, 이것은 폐주를 섬기던 마음가짐으로 임금을 섬기려고 하는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19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군사-금화(禁火)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註 223]
    위관(委官) : 죄인을 국문하기 위하여 임시로 정한 관원.

○乙酉/傳于領議政金壽童、左議政柳順汀、右議政成希顔、右參贊辛允武等曰: "大妃殿敎予曰: ‘頃聞儒生及閑雜人等, 累日出入貞陵, 偸出久傳寶物及經文, 使內官往視之際, 儒生等恬然偸取, 反以石塊, 歐打內官及隨率人, 切齒叱辱矣, 翌日夜焚蕩其寺。 此因我摘奸, 而敢爲如此, 不勝痛心。 所藏之物, 固不足惜, 久遠寺刹, 以我之故, 一朝焚蕩無餘, 都中驚駭。 儒生固宜務闢異端, 奪取佛經, 而未聞有焚蕩公廨者也。 寺在城內, 擅便縱火, 豈有一毫畏忌朝廷上下之心乎?’ 無端縱火, 猶爲不可, 況忿大妃之命, 敢爲此耶? 古云: ‘投鼠忌器。’ 大妃所使宦寺, 雖微者, 王命可尊矣。 安有如此凌上之風乎? 輕忽朝廷, 致辱大妃, 其罪何可勝言? 實由予否德所致。 此恃父兄之勢, 慢忽朝廷, 無所畏忌而然耳。 此事重言, 則無異叛心, 輕言, 則無異盜賊, 何得謂之輕乎? 朝廷無一言可乎? 儒生古稱狂童, 此等當爲朝廷之用, 此豈識理者之所爲? 疑是假托儒生者之所爲。 未知朝廷之意何如。 領議政其往禁府, 詳推以啓。" 壽童等回啓曰: "臣等亦於其夜, 見火光遍都城, 至爲驚動, 然未知其處, 翌日合坐于政府, 乃知興天寺舍利閣焚。 及見下禁府囚推傳旨, 臣等意以爲已令有司推鞫, 不卽來啓耳。 今聞下敎, 不勝駭愕。 此果狂悖者之所爲, 豈識理者之爲哉? 此推之不難, 其日承傳內官, 隨去別監等人面質, 則可以易辨矣。" 壽童曰: "臣當往推之。 然前此遣委官, 則臺諫、承旨, 亦與焉, 今何以爲之?" 傳曰: "臺諫不可往也, 承旨則刑房承旨往推可也。 觀卿意, 似不欲往鞫也。" 壽童局縮而退。

【史臣曰: "因佛宇之火, 欲推儒生, 無異扶護異端, 大是異事, 而壽童承命, 無辭而退。 是欲以事廢主者, 事君也, 惜哉。"】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19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군사-금화(禁火)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