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10권, 중종 5년 1월 8일 을축 6번째기사
1510년 명 정덕(正德) 5년
박열·김세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열(朴說)로 동지경연 홍문관 예문관 제학(同知經筵弘文館藝文館提學)을 겸임하고, 김세필(金世弼)로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신용개(申用漑)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주문(主文)009) 이 되었음을 부끄러워한다. 지금에 있어서 문한(文翰)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남곤(南袞)이요, 그 다음은 강혼(姜渾)이요, 그 다음은 김전(金詮)이며, 또 그 다음은 내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 하였다. 일찍이 박열과 함께 재사(齋舍)에서 자는데, 열이 등불을 돋우고 글을 읽으니, 용개가 말하기를, ‘그대가 부지런히 글을 읽더라도 나는 마땅히 의발(衣鉢)010) 을 사화(士華)에게 전해 줄 것이요, 그대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니, 글을 읽은들 무슨 보탬이 있으랴?’ 하니, 열이 그만 중지하였다. 사화는 남곤의 자이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401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