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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10권, 중종 4년 11월 8일 병인 1번째기사 1509년 명 정덕(正德) 4년

나례의 폐지에 대해 의논하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대사헌 박열(朴說)·대사간 성세정(成世貞)박영문(朴永文)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박열이 아뢰기를,

"근일 천변이 자주 있고 지방에는 흉년이 들었습니다. 나례(儺禮)815) 의 놀이로 영인(伶人)816) 들이 양식을 꾸려 가지고 서울에 와서 머무는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청컨대 나희 관람을 정지하소서."

하고, 영사(領事) 박원종(朴元宗)은 아뢰기를,

"근래 하늘의 경계를 조심하기 위하여 당연히 거행하여야 할 일인 정조 및 동지의 하례 등을 모두 행하지 않습니다. 여러 신하들을 통틀어 연희하는 것은 1년에 한 번만 행하는 것이니, 전혀 폐지할 수 없고 연초에 대비전께 풍정(豐呈)817) 을 올리는 것도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변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을 모두 정지한다면 예악문물이 다 폐지되고, 국가 일이 쓸쓸해질 것입니다. 나례 구경이 놀이라 하지만 위로 대비전이 계시니, 거행하더라도 무방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례의 놀이는 배우(俳優)의 일이니, 행함이 옳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위로 대비전이 계시니 폐지할 수 없다."

하였다. 원종이 또 아뢰기를,

"신이 군기시 제조(軍器寺提調)로 있을 때, 화산대(火山臺)818) 를 보았는데, 우리 나라 장기(長技)의 일입니다. 크게 거행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일을 아는 장인(匠人)이 죽기 전에 자주자주 소규모로 거행하여 뒷사람들로 하여금 전습하게 함이 옳겠습니다. 만일 2∼3년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아는 장인이 또한 거의 없어져서 전습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고, 세정은 아뢰기를,

"금년은 흉년들어 지방 주민들이 초가을에도 꾸어 먹어야 하니, 영인(伶人)이 양식을 꾸려 가지고 와서 서울에 머물기는 어렵습니다. 나례가 상전(上殿)을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신은 금년에는 행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니, 원종은 아뢰기를,

"국가에서 천문에 정통하지는 못했어도, 일월의 영허(盈虛)와 사시(四時)의 소식(消息)이 틀리지 않게 역서(曆書)를 만들었습니다. 흠경각(欽敬閣)을 보면 세종 대왕의 제도가 지극히 자세하고 지극히 정밀해서, 일시의 노리개가 아니라 민간의 사시 질고(四時疾苦)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신이 들은즉, 성종조김응기(金應箕)·유숭조(柳崇祖) 등이 전의 제도를 수리 개작하였다 하는데, 그 때의 장인도 만약 수년을 지나면 반드시 거의 다 죽어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에게 명하여 천문을 학습하게 하고 있으나 흠경각은 대궐 안에 있어, 사람마다 출입하게 할 수는 없으니 내관(內官)과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및 관원들로 하여금 개수하게 하여, 선왕의 옛 제도를 후대에 유전하게 함이 어떨까 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390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풍속-풍속(風俗) / 신분-천인(賤人) / 건설-건축(建築) /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

  • [註 815]
    나례(儺禮) : 고려 정종(靖宗) 이후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민가와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邪神)을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 원래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유래된 풍습으로 새해의 악귀(惡鬼)를 쫓을 목적으로 행해졌는데 차츰 중국 칙사(勅使)의 영접, 왕의 행행(行幸)·인산(因山) 때에도 앞길의 잡귀를 물리치는 의미로 행해졌다.
  • [註 816]
    영인(伶人) : 악공과 광대.
  • [註 817]
    풍정(豐呈) : 해마다 2월·5월·8월·11월 초하룻날에 충훈부(忠勳府)에서 대비전(大妃殿)에 진연(進宴)을 하고, 종친부(宗親府)·의빈부(儀賓府)에서는 두 차례, 충익부(忠翊府)에서는 한 차례씩을 진연하는 예가 있는데, 그보다 의식이 더욱 성대하고 정중하게 올리는 잔치.
  • [註 818]
    화산대(火山臺) : 불놀이를 하는 궁정(宮庭)의 무대 모양으로 만든 대. 이 놀이는 고려조 말 조선 초기에 화약과 총포의 발생과 함께 성행하던 궁정(宮廷)의 놀이였다.

○丙寅/御朝講。 大司憲朴說、大司諫成世貞, 啓朴永文等事, 皆不允。 朴說曰: "近日天變屢至, 外方至爲凶歉, 觀儺戱事, 伶人裹糧留京之弊不貲。 請停觀儺。" 領事朴元宗曰: "近來以謹天戒, 一應當行之事正朝及冬至賀禮, 皆不行。 如群臣通宴, 一年只行一度, 不可專廢也, 歲首大妃殿進豐呈, 亦不可不行也。 雖有天變, 如此事皆停, 則禮樂文物皆廢, 而國事蕭索矣。 觀儺雖戲事, 上有大妃殿, 雖行之無妨。" 上曰: "觀儺戱玩, 俳優之事, 似不可行, 上有大妃殿, 不可廢也。" 元宗又曰: "臣爲軍器提調, 見火山臺, 我國長技之事, 雖未大擧, 須及其事知匠人未死之前, 頻頻少擧, 使後人傳習可也。 若不行二三年, 則其事知匠人, 亦且殆盡, 而無傳習矣。" 世貞曰: "今年凶歉, 外方居民, 見貸於初秋, 伶人裹糧留京爲難。 觀儺雖爲上殿之事, 臣以爲不可行於今年也。" 元宗曰: "國家雖未能精通天文, 然以日月盈虛消息之不差, 作曆書耳。 見欽敬閣, 世宗之制, 至詳至密, 非一時戲玩之具, 欲知民間四時之疾苦也。 臣聞成宗金應箕柳崇祖等, 修葺舊制, 其時匠人, 若歷數年, 則必死殆盡矣。 今者以金安國成世昌等, 命習天文, 然欽敬閣在禁內, 不可使人人出入, 令內官及觀象監提調與官員, 改修, 使先王舊制, 流傳後世何如?"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390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풍속-풍속(風俗) / 신분-천인(賤人) / 건설-건축(建築) /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