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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7권, 중종 4년 2월 7일 기사 11번째기사 1509년 명 정덕(正德) 4년

예조 정랑 신탁이 친히 왜인에게 가서 돌아가라고 타이르니 관소로 돌아가다

초저녁에 예조 당상(禮曹堂上)이 좌랑(佐郞) 윤탁(尹倬)을 시켜 문틈으로 아뢰기를,

"예조 낭관(禮曹郞官)이 동평관(東平館)099) 에 도착하여 사람을 시켜 왜인에게 타일렀으나 마침내 돌아가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일 굶었으니 저들이 비록 제 도리는 잃었지만, 저들은 객이요 우리는 주인이니, 주인으로서 객을 박하게 대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청컨대 낭관으로 하여금 친히 왜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관으로 돌아가도록 타이르게 하소서."

하니, ‘그리하라.’ 전교하였다. 정랑(正郞) 신상(申鏛)이 친히 가서 이른 뒤에야 관소(館所)로 돌아가니, 밤 2고(二鼓)100) 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311면
  • 【분류】
    외교-왜(倭)

  • [註 099]
    동평관(東平館) : 일본 사신이 와서 머무르던 객관으로, 지금 서울의 예장동에 있었음.
  • [註 100]
    2고(二鼓) : 2경.

○初昏, 禮曹堂上, 使佐郞尹倬, 以門隙啓曰: "曹郞官到東平館, 使人于諭之, 而終不肯還, 飢餓終日。 彼雖失道, 彼客我主, 以主待客, 不可薄也。 請使郞官, 親往倭人所在處, 諭使還館。" 傳曰: "可。" 正郞申鏛, 親往開諭, 然後乃還館所, 夜二鼓矣。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311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