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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7권, 중종 3년 11월 27일 신유 1번째기사 1508년 명 정덕(正德) 3년

복의에게 ‘종친이 각자 마음먹는다’ 함의 출처를 캐니 동청례에게 들었다 하다

전교하기를,

"경 등은 오늘이 치재일(致齋日)이라 죄인을 추문(推問)하지 아니하고자 함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지만, 나의 뜻으로는 이 일이 비록 작다 해도 실은 중대한 것이다. 오늘 만약 추문하지 않으면 혹 지완(遲緩)될까 두렵다. 동청례에게 다시 형신을 가해서 불복하면, 신복의도 또한 형신을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 ‘종친이 각자 딴 마음을 먹고 있다.’는 말이나, ‘원훈이 화를 받으면 사직은 그 다음이 될 것이다.’ 하는 말이나, ‘갑을에는 오히려 정하지 못한다.’ 하는 것이, 이 어찌 들은 바 없이 말한 것이겠으며, 또 어찌 같이 의논한 자가 없었겠는가?"

하고, 유순정(柳順汀)에게 전교하기를,

"이 일을 경이 먼저 듣고도 즉시 와서 아뢰지 아니하였으니, 이 추문에 참여하지 말라."

하였다. 박원종이 아뢰기를,

"순정(順汀)을 추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명하시니, 신이 중국에 갔다 돌아온 즉시로 이 말을 들었사오나 지금까지 아뢰지 못하였으므로 신도 또한 미안합니다. 순정은 원훈인 사직의 신하이온데, 지금 참여하지 못하도록 명하신다면 사람들의 이목에 어떠하겠습니까? 청컨대, 따라 참여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전교하기를,

"신복의(辛服義)를 체직시키고, 그 말의 출처를 상세히 심문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복의가 공초하기를,

"신은 성종조(成宗朝)의 출신으로 관직이 한림(翰林)783) 을 지냈사온데, 불행히 폐조에서 중견(重譴)을 입고 옥중(獄中)에 있다가, 정국(靖國)의 때를 만나 원종(原從) 1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같은 동리에 친교가 있는 동청례(童淸禮)가 집으로 와서 담화하던 중에 저에게 말하기를, ‘폐주(廢主)를 대궐에서 쫓아낼 때에 나도 공로가 있었으므로 정국 공신에 참여할 만한데, 낮추어져 원종 1등의 열에 들어서 1계(階)의 제수를 얻었으나 지금 개정되었으니, 이는 삼대장의 논공이 잘못인 것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원망하고, 또 주상께서 미령하시니 금·명년에 액이 있을 것이므로 종친들도 각자 딴 마음을 먹고, 한창 화살촉을 만들고 있다.’ 하였습니다. 이를 듣고는 놀랍고 두려워서, 동년(同年)인 유순정(柳順汀)·박영문(朴永文)을 찾아가 보고 말하여 변을 막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참시(讖詩)는 폐조에 성중온(成仲溫)·성경온(成景溫)·한형윤(韓亨允)과 함께 옥중에 같이 갇혀 있을 때에, 경온이 말하기를, ‘이 참시로 본다면 우리들의 옥중 생활이 며칠이나 남았는가?’ 하였으며, 중온형윤도 또한 참여하여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이 공사(供辭)를 보건대, 이는 곧 원정(原情)784) 을 한 것이다. 다만 참어(讖語)를 들었다고 한 자에 대해서는 죽은 자와 중국으로 간 자만을 말했을 뿐이니, 그가 수금(囚禁)당한 월일과 사연을 아울러 심문하여 아뢰라."

하였다. 복의가 공초하기를,

"날짜를 기억할 수는 없으나, 을축년에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백악산(白岳山)운석(隕石)785) 의 일을 말하다가 수금되어, 무릇 14개월 만에 정국하는 날 석방되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292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변란(變亂) / 인사-임면(任免)

  • [註 783]
    한림(翰林) : 예문관 검열의 별칭.
  • [註 784]
    원정(原情) : 사정을 진정(陳情)함.
  • [註 785]
    운석(隕石) : 유성이 지상에 떨어진 것.

○辛酉/傳曰: "卿等今日以致齋, 欲不推, 固當然。 予意以謂此事。 雖小而實大, 今日若不推問, 則恐或遲緩也。 淸禮更加刑訊, 而不服, 則服義亦可刑訊。 其曰: ‘宗親各自爲心。’ 曰: ‘元勳受禍, 則社稷次之。’ 曰: ‘甲子猶未定。’ 此豈無所聞而言乎? 又豈無同議者乎?" 傳于柳順汀曰: "此事卿先聞而不卽來啓, 其勿與推。" 朴元宗啓曰: "順汀命勿與推, 臣赴京還, 卽聞此言, 迄今不啓, 臣亦未安。 順汀元勳社稷臣也, 今命勿參, 於人聞見何如? 請令隨參。" 傳曰: "辛服義遞職, 其言根出處詳問。" 服義供曰: "臣成宗朝出身, 職經翰林, 不幸在廢朝, 被重譴, 方在獄中, 獲遇靖國之時, 得參原從一等。 一日素與同里閈交親童淸禮到家, 談話間語余曰: ‘廢主出闕時, 吾有功勞, 可參靖國功臣, 而降在原從一等之列, 得授一階, 今乃改正。 此三大將論功之誤也, 人皆怨之。 且主上有病, 今明年有厄, 宗親各自爲心, 方打造箭鏃。’ 云, 聞之驚懼, 往見同年柳順汀朴永文說之, 使之防變而已。 讖詩則廢朝與成仲溫景溫韓亨允, 同囚獄中時, 景溫說曰: ‘以此讖詩觀之, 吾輩在獄中, 有幾日歟?’ 仲溫亨允, 亦預聞之。" 傳曰: "觀此供辭, 乃原情也。 但讖語與聞者, 只以死者與赴京者言之, 其被囚日月及辭緣, 竝問以啓。" 服義供曰: "日月不記, 乙丑年以曾爲持平時, 言白岳山隕石事, 見囚凡十四朔, 至靖國之日得放。"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292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변란(變亂)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