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이현보 등이 경연의 중요성을 논하다
조강을 하였다. 지평(持平) 이현보(李賢輔)가 강혼(姜渾)을 추문하기를 청하고, 이어 아뢰기를,
"근일에 경연(經筵)을 그치지 아니하시고 어진 사대부(士大夫)를 접대하시니, 신 등은 기쁘고 경하합니다. 다만 독서하는 법은 단지 구두(句讀)뿐만이 아니라 마땅히 되풀이하여 깊이 사색(思索)해야 합니다. 《중용(中庸)》에,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따져서 묻고[審問] 신중히 생각한다.[愼思]’ 하였는데, 지금 경연시에 시강관(侍講官)이 치도(治道)로 논란(論難)하지 아니하고 전하께서 또한 하문하지 않으시니, 그 따져 묻고 신중히 생각하는 도에 있어서 부족합니다. 이제 만일 조용히 강론하신다면 성인의 치도(治道)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시독관(侍讀官) 최숙생(崔淑生)이 아뢰기를,
"이현보(李賢輔)의 아뢰는 말이 심히 타당합니다. 대체로 경연을 설치한 의도는 어진 사대부(士大夫)를 상대하여 고금 치란(治亂)의 도리를 논하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신하를 대할 때 오직 성심으로 대접하신다면 누가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신하를 부자(父子)처럼 대우하시고 다시 소원(踈遠)하게 대하지 마소서. 소신(小臣)은 성종조(成宗朝)에 경연관(經筵官)으로 항상 곁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경연(經筵) 때에는 말씀이 친절하시고, 모든 신하와 접대하실 때에는 조용하고 온화하시어 마치 부자(父子) 사이와 같이 하시자, 모든 신하가 아버지처럼 우러러보고 상하(上下)가 화목하였습니다. 폐주는 경연에서 신하를 접대할 때 묵묵히 한 마디 말이 없기 때문에 신하들이 승냥이나 범처럼 두려워하여 마침내 화란(禍亂)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성종의 마음을 본받으시고, 폐주의 일은 징계하소서.
제왕의 다스림은 《상서(尙書)》보다 더 자세함이 없습니다. 그 《상서》에,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다.’ 하였으니, 전하께서는 한번 숨을 쉬는 순간에도 이 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성탕(成湯)의 덕을 찬양하여 이르기를, ‘화리(貨利)를 불리지 않았다.’ 하였으니, 전하께서는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으시면 반드시 이 말을 생각하여 반성하소서. 동중서(董仲舒)가 이르기를,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조정이 바르고, 조정이 바르면 백관(百官)이 바르고, 백관이 바르면 만민(萬民)이 바르다.’ 하였고, 《서경(書經)》에 ‘말이 너의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도(道)에서 찾으라.’ 하였습니다.
전일에 대간(臺諫)이 상가(賞加)718) 를 의논할 때에 사람마다 모두 아는 바를 마음껏 말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그 뒤에 혹은 좌천되고 혹은 하옥(下獄)되어 거의 형구(刑具)로 고문을 당하기에 이르렀으니, 안팎이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폐주(廢主)가 즉위 초년에는 간언을 허용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직한 인사들이 말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할 말을 다한 것을 추론(追論)하여 죄를 더하므로 공명 정대한 사기가 좌절되어 남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즉위 초에 한갓 대간(臺諫)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옥(獄)에 가두기에 이르니, 사림(士林)이 비록 진언(盡言)하여 은휘하지 않으려 하나 폐주의 일에 징계가 되어 감히 진언하지 못하니, 이것이 국가의 작은 일이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모름지기 심려를 고치셔서 만민의 소망에 부응(副應)하여 추대(推戴)한 뜻을 깊이 생각하소서.
또 들으니, 충청도(忠淸道)는 도적(盜賊) 때문에 무고한 양민들이 많이 그 해를 입고 있으며, 황해도(黃海道) 역시 그러하다 하니, 장(將)719) 을 보내어 도적을 잡게 하소서."
하였다.
영사(領事) 박건(朴楗)이 아뢰기를,
"조종조(祖宗朝)에서 김구(金鉤)·김말(金末)을 사유(師儒)로 삼으니, 성균관(成均館)에서 나오지 않고 제자들을 교회하였다 합니다. 이제 모름지기 경학(經學)에 밝은 자를 선택하여 사유를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9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癸巳/御朝講。 持平李賢輔請推姜渾, 仍啓曰: "近日不輟經筵, 接待賢士大夫, 臣等喜賀。 但讀書之法, 非但句讀而已, 當尋繹思之。 《中庸》曰: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今經筵時, 侍講官不以治道論難, 而殿下又不下問, 其於審問愼思之道少矣。 今若從容講論, 則聖人治道, 槪可見矣。" 侍讀官崔淑生曰: "李賢輔所啓甚當。 大抵設經筵, 所以接賢士大夫, 論古今治亂之道。 殿下對臣下之時, 推赤心而接之, 則誰不盡心乎? 請待群臣如父子, 勿復疎遠。 小臣於成宗朝, 以經筵官, 常侍其側, 當經筵時, 天語丁寧賜接群臣, 從容和悅, 一如父子之間, 群下亦仰之如父, 上下和睦。 廢主於經筵, 接待臣下, 默無一言, 故臣下畏之如豺虎, 卒致禍亂。 殿下法成宗之心, 而懲廢主之事可也。 帝王之治, 莫詳於《尙書》。 其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殿下雖一息之間, 毋忘此言又贊成湯之德曰: ‘不殖貨利。’ 殿下少有私心, 則亦必思此言, 以自省。 董仲舒曰: ‘人君正心, 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書》曰: ‘有言逆于汝心, 必求諸道。’ 頃者臺諫論賞加之時, 人人皆以知無不言爲心, 其後或左遷, 或下獄, 幾至刑推, 中外失望。 廢主卽位初年, 容言納諫, 故直士正人, 無不盡言, 及其末年, 追論加罪, 正氣摧挫無餘。 今殿下卽位之初, 非徒不聽臺諫之言, 以至繫獄, 士林雖欲盡言不諱, 懲於廢主之事, 莫敢盡言, 此豈國家細故? 殿下須改心易慮, 以副萬民之望, 而深思推戴之意。 且聞忠淸道, 以盜賊之故, 無辜良民, 多被其害, 黃海道亦然, 須遣將捕捉。" 領事朴楗曰: "祖宗朝, 以金鉤、金末爲師儒, 不出成均館, 敎誨弟子。 今須選擇精於經學者, 爲師儒甚當。"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9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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