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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권, 중종 2년 윤1월 25일 기사 3번째기사 1507년 명 정덕(正德) 2년

공조 참의 유숭조가 삼공 시해 모의를 아뢰니 조광보 등을 잡아 국문하다

공조 참의(工曹參議) 유숭조(柳崇祖)가 아뢰기를,

"김공저(金公著)가 집을 빌려 신의 이웃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달 초에 공저가 신의 집에 와서 신에게 말하기를, ‘좌상(左相)080) 이 전왕의 나인들을 많이 데리고 있고 또 빈객 접대를 좋아한다. 그리고 유자광(柳子光)이 공을 논할 때 그 고향 사람들을 많이 참록(參錄)하였는데, 그 날 시위 군사 중에 참여 못한 자들이 모두 분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별의 변괴[星變]가 있으니 변고가 생길까 염려된다.’ 했고, 이달 15일께 공저가 또 와서 신에게 말하기를, ‘박(朴)·유(柳) 두 정승이 지금 마음대로 방자하니 광망(狂妄)한 무리들이 공격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려하느냐?’ 하니, 대답이, ‘무사(武士)들이 약에 대해 물어보려고 우리 집에 많이 오는데, 사람마다 모두 그렇게 말한다.’고 하므로, 신이 또 묻기를 ‘누구냐?’고 하니, 공저의 대답이, ‘이장길(李長吉)의 무리다.’고 합니다. 신이 또 묻기를, ‘그런 광망한 일을 어찌하여 하느냐?’고 하니, 공저가 대답하기를, ‘윤탕로(尹湯老)를 시켜 위에 계달(啓達)하게 해서 이 두 정승을 제거하려 한다. 다만 탕로는 믿기 어려우니 가볍게 말할 수 없고, 또 죄악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역시 경솔하게 거사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신이 남곤(南袞)에게 들으니, 의 말이, ‘내가 심정(沈貞)에게 들었는데, 이 말하기를, 「공저정미수(鄭眉壽)를 장수로 삼아, ·를 제거하려 하는 데, 거사하게 되면 바른 선비인 유숭조 같은 이들이 모두 응한다.」고 하였다.’ 하고, 오늘 아침에 이 또 신에게 말하기를, ‘이 와서 말하는데, 「문서귀(文瑞龜)의 말이 김공저·이장길 등이 함께 의논하고 거사하려 한다.」고 한다.’ 하므로, 신이 과 함께 의논하고 와서 아뢰는 것입니다. 이 또 신에게 말하기를, ‘심정 역시 와서 아뢰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인(喪人) 남곤(南袞)광화문(光化門) 밖에 와서 정원에 전언하기를, ‘아뢸 일이 있어 감히 문밖에 왔습니다.’ 하고, 흰옷에 갓을 쓰고, 정원에 나와 아뢰기를,

"어제 심정(沈貞)이 우리 집에 와서 말하기를, ‘내가 입신 행세(立身行世)하기는 했지만 항상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으며, 미친 사람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오늘 나올 때에도 노복을 많이 거느리고 왔다.’고 하므로, 신이 묻기를, ‘인심이 고무되고 흥겨워하는 이 때에 어찌 그런 불안한 말을 하는가?’ 하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김공저(金公著)가 영공(令公)을 와서 뵈었는가?’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보름께 와서 보고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심정이 말하기를, ‘공저가 특별히 말한 것은 없는가?’ 하므로, 신이, ‘없다.’고 답하니, 심정이 말하기를, ‘공저이장길(李長吉) 등과 상의하고, 조정에 있는 1품 재상으로 장수를 삼아, 가만히 박(朴)·유(柳)를 습격한 뒤 정사를 도우면 성군이 치세(治世)를 이룰 수 있다 하더라.’하고, 또 김공저가, 조정에 있는 명사의 반은 우리 편에 들었고, 전번에 이 뜻을 남곤에게 은밀히 표시하였으나, 이 이렇다 할 대답이 없기 때문에 물러나 왔다고 하더라.’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들으니 놀랍기 이를 데 없어, 자세히 물으려 하였으나, 마침 다른 객이 와서 이 가겠다 하므로, 신이, ‘다시 오지 않겠는가?’ 하니, 이 ‘내일 오겠다.’ 하고, 오늘 아침에 또 왔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어제 그대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였다. 군은 어디서 들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문서귀(文瑞龜)가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이 말을 듣고서 어찌하여 지금까지 아뢰지 않았는가?’ 하니, 이 대답하기를, ‘오늘 김극성(金克成)과 함께 아뢰기로 의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의 말을 듣고 감히 와서 아뢰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고 행 호군(行護軍) 심정과 장악원 정(掌樂院正) 김극성이 아뢰기를,

"신 등이 문서귀에게 들었는데, 서귀의 말이 ‘내가 조광보(趙廣輔)에게서 들은 말인데, 「지금 천변이 있고 또 참기(讖記)081) 가 있으니, 은밀히 박원종(朴元宗)·유자광(柳子光)·노공필(盧公弼)을 습격하여야 하겠다. 이 3인을 제거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들으니 놀람을 금할 수 없어 와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서귀에게 말하기를, ‘미친 선비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으니, 네가 다시 물어가지고 오라.’ 하였더니, 서귀가 또 와서 말하기를, ‘내가 조광보에게 물으니, 광보의 말이, 박경(朴耕)이 자세히 안다고 하므로, 박경의 집으로 갔더니, 이 나와서 만나보고 말할 즈음에, 의 처가, 「찬 곳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하여, 이 곧 나를 데리고 유생 김식(金湜)의 집으로 가서, 「이미 천변이 있고 또 참문(讖文)이 있는데 난을 일으킬 자는 반드시 박원종이다. 또 노공필유자광과 친교가 두터우니, 이 3인을 제거하고, 정미수(鄭眉壽)로 수상을 삼는다면, 아랫사람들의 말하는 것을 미수가 무슨 일인들 듣지 않겠는가? 김감(金勘)이 병조 판서가 되었을 때 벌써 이 뜻을 알았고, 이계맹(李繼孟)유순정(柳順汀)과 친하므로 계맹순정에게도 말하려 하였으나, 순정의 눈에 까풀이 끼였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또 자품(資品)을 따른는 법[循資之法]은 쓸 수 없고, 과거(科擧) 역시 할 것이 아니며, 서얼(孽孼)도 통용하여야 한다. 종친을 쓰지 않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종친 중에는, 판서·참판·참의·정·좌랑(佐郞)이 될 사람이 많다. 이 3인을 제거하고 홍유손(洪裕孫)을 시켜 윤탕로(尹湯老)에게 전하여, 대궐 안에 들어가서 말하여, 상께 안심하시도록 한 뒤 우리가 아래에서 조처한다면, 선치(善治)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김공저(金公著)·이장길(李長吉)의 3형제는 심복을 삼아 일을 시킬 수 있으며, 조원기(趙元紀)·유숭조(柳崇祖) 역시 이 뜻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내가 박경(朴耕)에게 말하기를, 「이계남(李季男)이 아느냐?」고 하니, 의 말이 「계남은 속된 기운이 있으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신 등이 감히 아뢰는 바입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삼공(三公) 및 부원군(府院君) 이상, 그리고 의금부(義禁府) 당상을 패초(牌招)082) 하고, 또 금부 낭관(禁府郞官)을 나눠 보내어, 박경·김공저·이장길 등과 일에 관여된 사람들을 잡아다 추고(推考)하게 하라."

하였다. 그리고 전교하기를,

"주강(晝講)·석강(夕講)을 정지한다."

하였는데, 이 사람들을 국문하려는 것이었다.

영의정 유순(柳洵)·무령 부원군(武靈府院君) 유자광(柳子光)·창산 부원군(昌山府院君) 성희안(成希顔)·좌의정 박원종(朴元宗)·우의정 유순정(柳順汀)·의금부 당상 이계남(李季男)민효증(閔孝曾)윤탕로(尹湯老) 등이 빈청(賓廳)에 나갔다가 이어 근정전(勤政殿) 뒤로 갔다. 또 도승지 홍경주(洪景舟)·동부승지 이유청(李惟淸)에게 명하여 함께 심문하게 하고, 주서(注書) 강홍(姜洪)·검열(檢閱) 이말(李𡊉)윤인경(尹仁鏡) 등으로 하여금 참여하게 하고, 또 돈령부 정(敦寧府正) 한세환(韓世桓)·장악원 정(掌樂院正) 김극성(金克成)·병조 정랑(兵曹正郞) 윤귀수(尹龜壽)·의영고 주부(義盈庫主簿) 김양언(金良彦) 등으로 문사 낭청(問事郞廳)을 삼았다.

박경(朴耕)이 먼저 오고, 조광보(趙廣輔)가 다음에 왔는데, 광보는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대궐 뜰에 와서, 큰소리로 글을 외우는 등, 미친 사람의 태도가 현저하였는데, 맨 먼저 유자광을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자광같은 소인이 어찌하여 이 곳에 있을 수 있느냐? 무오년083) 에 현량(賢良)을 무함하여, 김종직(金宗直)같은 이들이 모두 주륙(誅戮)되었는데, 지금 또 무슨 일을 하려는가. 상방검(尙方劍)084) 을 얻어, 이 간사한 신하의 머리를 베이고, 밝은 임금을 모시고 어진 정승을 얻으면, 좋은 치세를 보게 되겠다."

하였다. 성희안이 묻기를,

"간사한 신하가 누구인가?"

하니, 광보유자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박원종을 보고 말하기를,

"네가 성군(聖君)을 추대하였으니 공이 과연 크다. 그러나 또한 어찌하여 집에다 폐왕(廢王)085) 의 나인을 두고 있는가?"

하고, 또 성희안을 지목하면서 말하기를,

"지난날 한훈(韓訓)이 너를 명유(名儒)라고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유자광과 함께 일을 하는가. 자광이 뇌물로 준 목화 【곧 면화(綿花).】 를 받고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또 사관(史官)을 지목하여 말하기를,

"저것이 강홍(姜洪)이구나. 강홍아, 네 아비는 죄없이 참형을 당하였다. 저것은 이말(李𡊉)이구나, 너희들은 사관이다. 내 말을 특서(特書)해야 한다."

하였다.

좌의정 박원종이 독계(獨啓)하기를,

"전번에 익명의 글을 신의 집에 던진 자가 있었는데, 그 사연에 말하기를, ‘네가 폭군을 제거하고 진주(眞主)를 익대(翊戴)하였으니, 그 공이 곽광(霍光)086) 보다 못하지 않다. 그러나 유자광은 폐조(廢朝) 때 폐주로 하여금 살육지심(殺戮之心)을 일으키게 한 자로서 간사하기 이를 데 없는데, 무슨 공으로 제4공신에 두게 하였는가? 그는 또 수령(守令) 20여 인을 죄없이 논계하여 파직한 자다. 회령 부사(會寧府使) 채윤혜(蔡允惠)는 무슨 죄로 논계하여 파직하였는가? 나는 유식한 사람이라 이것만을 말하겠다. 만일 무식한 사람이 어두운 밤에 해치려고 한다면, 네가 어찌할 것인가?’ 하였는데, 신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반드시 이 무리의 소위였습니다."

하고, 성희안은 아뢰기를,

"전일, 삼공(三公)을 명나라 서울에 보낼 것을 논할 때, 삼공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순전히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조광보는 국문 결박을 받을 때에는 희롱하는 것이라 여겨 ‘희롱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형장 10여 개를 때리니, 큰 소리로 통곡할 뿐이었다. 박원종이 말하기를,

"참으로 미치고 또 병들어 형장을 때려도 무익하니 그쳐야겠다."

하고, 이윽고 아뢰기를,

"광보는 정말 미치고 병들었으니, 형추(刑推)하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하였다.

그리고 저녁때 추관(推官)087) 에게 전교하기를,

"죄인을 모두 형문(刑問)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심정(沈貞)·유숭조(柳崇祖)·남곤(南袞)·문서귀(文瑞龜) 등에게 음식을 먹이게 하였다.

추관들이 함께 의계(議啓)하기를,

"신 등이 자세히 들으니, 그 계획이 일조 일석에 된 일이 아니고 또 이름 있는 조관(朝官)에게 관련된 일이 많으니, 일일이 묻는다면 그 도당이 자연 나올 것입니다. 저들의 생각으로는, 가만히 3인만 습격하면 기타는 항거하는 자가 있더라도 다 휩쓸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유숭조는, 심정이 아뢰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하여, 자기의 죄를 면하려고 와서 아뢴 것입니다. 숭조도 함께 가두소서."

하니, 좋다고 전교하였다.

추관들이 함께 의계(議啓)하기를,

"정미수(鄭眉壽)·김감(金勘) 등은 모두 직위가 중하고 병이 있는 사람이니, 금부(禁府)에 가둘 수 없습니다. 이조(吏曹)·예조의 대문 안에 보호하여 두었으니, 내왕하며 심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다시 아뢰기를,

"신 등이 반복하여 생각하건대 이번 일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 숭조공저(公著)와 대질(對質)함에 있어 언사가 서로 어긋나, 끝까지 추문(推問)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만일 추문하지 않으면, 명일에는 다시 계책을 내어 대답할 것이니, 끝내 사실을 캐어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신 등이 밤중에 나가면 변이 있을까 염려되니, 신 등은 위장 남소(衛將南所)로 물러나가고 고신(栲訊)할 자는 고신하고 평문(平問)할 자는 평문하여, 오늘 밤 안으로 끝내고, 명일 아침에 계달할까 하옵니다. 또 정미수·김감 등은, 승문원(承文院)과 도총부(都摠府) 당직방에 나누어 가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좋다고 전교하였다.

문서귀(文瑞龜)는 아래와 같이 공술(供述)하였다.

"신은 조광보(趙廣輔)와 소년 시절부터 교제하고 있는데, 이 달 보름께, 광보가 발광하여 위태로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가 보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그 아우 광좌(廣佐)가 신을 보고 말하기를, ‘우리 형의 광증은 진짜 미친 것 같지 않다. 한번 가 보라.’ 하기에, 4∼5일 지나서 가 보니, 용모와 언소(言笑)가 자약한 것이 과연 미친 자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이, ‘네가 정말 미친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미친 짓을 하는가?’ 하니, 광보가 말하기를, ‘사실 내가 일부러 하는 것이다. 이장길(李長吉)이 폐조(廢朝) 때, 모반할 생각이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기밀 보지(保持)를 위해 나를 해하지나 않을까 하여, 일부러 미친짓을 함으로써 장길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어찌 미쳤겠는가.’ 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네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어찌 어머니에게 욕설까지 하는가?’ 하니, 광보의 말이, ‘내가 어머니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장길로 하여금 더욱 미친병이 있음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또 일반 사람에게도 모두 나의 미친 증세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장길은 재주 있는 자다. 토끼를 덮치려면 반드시 좋은 사냥개가 있어야 하는데, 장길은 일을 시킬 만한 자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누가 장길에게 무슨 일을 시키는 것인가?’ 하니, 광보가 말하기를, ‘박경(朴耕)은 학문이 있고, 또 일을 많이 아니, 그의 말이라면 사람들이 모두 믿는다. 그런데 유자광은 원래 임사홍(任士洪)과 함께 친교를 맺어 간악한 일을 하였고, 지금도 못하는 일이 없다. 박원종은 호부(豪富)하고 사치하며, 또 폐왕(廢王)의 기생을 데려다 살고 있으니, 장차 역모를 할 자는 이 두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또 그 밖의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노공필(盧公弼)은 선정(善政)에 방해하는 자이며, 경(耕)이 이미 정미수·김감·이계맹(李繼孟)과 일을 모의하였고, 김공저(金公著)·이장길의 무리를 시켜 인군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제거하려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또 묻기를, ‘일을 모의한 것이 어찌 그것만이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유숭조·남곤·이계남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천변이 있고, 또 도선(道詵)088)《참기(讖記)》에 이르기를, 「10대를 전하여 국운이 다한다」 하였으니, 지금 인군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제거하여 성상의 춘추가 연장되면 정미수(鄭眉壽)가 수상, 박경(朴耕)이 사장(師長)이 되어 서로 보좌할 것이니 30∼40년은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 반드시 반역을 할 것이나 저들도 스스로 보존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어 일을 일으키는 자가 있게 되면 난리가 진정될 날이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상께서도 역시 병환이 있으시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것을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어 심정에게 가서 말하려 하였더니, 마침 신병이 있어 가지 못하고, 이 달 20일에 서간을 심정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갑자기 복통이 나서 장옥(場屋)089) 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에 있다. 그리고 부탁할 말이 있으니, 와서 나를 보도록 하라.’ 하고, 또 종이 끝에 더 쓰기를, ‘부탁할 것이 매우 긴한 일이니 꼭 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그 날 미시(未時)에 왔으므로 신이 광보의 말을 에게 말하니, 이 놀라며, ‘이런 일이 있는가? 그러나 미친 자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다시 자세히 물어 보라. 내가 내일 입직(入直)하고 모레 다시 올 것이니, 너는 장옥에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으로는, 이미 광보에게서 사실을 자세히 들었으니, 다시 물을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은 이튿날, 바로 박경의 집으로 갔더니, 이 울타리 밑에 자리를 깔고 대접하였습니다. 신이 에게 말하기를, ‘원래 그대가 글씨 잘 쓴다는 말을 들었고, 또 광보(廣輔)를 통하여 그대가 학문의 실력이 있음을 들었다.’고 하면서 서로 말하다가 광보가 말한 일에 미치니, 경이,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신이, ‘정미수·김감·이계맹도 과연 이 일을 아는가?’ 하니, 경이, ‘알 것이다.’ 하므로, 신이, ‘미수 등이 인군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제거한 뒤에는 또 어찌하려는 것인가?’ 하니, 의 말이, ‘그 후의 일은 미리 말할 것이 없다. 미수 같은 이는 아랫사람들의 말을 잘 받들여서 말을 따르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니, 선치(善治)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미수 등이 성사하더라도 조정에 선량한 이가 많고 또 공신이 많으니 반드시 이의가 있을 것인데, 실패하는 일이 없겠는가?’ 하니, 이 말하기를, ‘그럴 염려는 없다. 이계맹유순정과 원래 친하기 때문에 이 일을 말하려 하였지만, 그 눈에 까풀이 끼였기 때문에 하지 못하였다. 또 성희안·유빈(柳濱)과도 말하려 하였으나 길이 없었다. 부귀를 탐하는 자는 눈에 모두 까풀이 끼여 있는 것이니, 일을 함께 의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또 묻기를, ‘유숭조·남곤 역시 알고서 옳다고 하였는가?’ 하니 경이, ‘남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더니, 다시 말하기를, ‘김공저(金公著)의 말이, 자기가 남곤에게 말하니, 이 듣고서 놀라고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하였으며 신이 또, 숭조(崇祖)가 아는지의 여부를 물었으나, 은 대답하지 않았고 신 역시 거기에 대하여는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신이 또 묻기를, ‘이계남(李季男)이 역시 알고 그렇게 여기는가?’ 하니, 의 말이, ‘계남은 위인이 속되어, 말할 수 없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아내가 에게 말하기를, ‘이른 아침에 무슨 잡담을 그리하는가?’ 하였습니다. 이 신에게 말하기를, ‘아내라는 것이 젊어서부터 성품이 착하지 못하고, 언제나 말이 많다.’ 하므로, 신이 ‘가겠다.’고 인사를 하였더니, 경이, ‘어디로 가는가?’ 하기에 신이, ‘김식(金湜)이 근처에 있어서 가서 만나보려 한다.’ 하니, 의 말이, ‘나 역시 을 안다. 그대가 먼저 의 집으로 가서 말[馬]을 내게 보내면 내가 따라 가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의 집에 가서, 그로 하여금 말을 보내게 하니, 이 곧 찾아오고, 광보의 아우 광좌(廣佐) 역시 우연히 와서, 뒷뜰에 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잡담을 하다가 말이 사람을 쓰는 일에까기 미치게 되었습니다. 의 말이, ‘내가 종친 중에서 보니, 참판·참의·정랑·좌랑이 될 만한 이가 적지 않다. 마땅히 모두 등용하여야 할 것이다. 또 중국 조정에서는 서얼(庶孽)도 관계치 않고 모두 쓰니, 우리 나라에서도 중국의 예에 따라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자격(資格)만을 가지고 사람을 쓴다는 것은 좋은 법이 아니니 지금 파하여야 할 것이고 과거(科擧) 역시, 선비를 뽑는 좋은 법이 아니니 모두 파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튿날, 심정이 과연 우리 집에 왔으므로, 신이 의 말을 다 일렀습니다."

그리고 김공저(金公著)는 아래와 같이 공술하였다.

"신이 사는 곳이 유숭조(柳崇祖)의 집과 거리가 매우 가까워 때로 서로 왕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그믐께 미친 사람 조광보(趙廣輔)가 신의 집에 와서 갑자기 미친 말로, ‘천구성(天狗星)이 떨어지고,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나는데, 박 정승무령군(武靈君)090) 등의 소위가 옳지 못하다. 또 중국에 주청하는 일이 많이 잘못되기 때문에 만여 인이 마음을 함께 하여 모해하는 일이 밖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장길(李長吉) 같은 무리가 이 일을 하려 하는데, 네가 아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였는데, 지난달 그믐께와 이달 초생간에 유숭조의 집에 가서 묻기를, ‘이런 일을 말하는 자가 있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숭조의 대답이, ‘채윤혜(蔡允惠) 역시 미친 말을 하였는데, 이 밖에는 별로 다른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이 광보의 말한 것을 듣고, 광증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여 곧 나아가 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또 재차 공초에서 말하기를,

"다른 사연은 모두가 신이 말한 것입니다. 또 유숭조가 신의 말하는 것을 듣고 대답하기를, ‘그것이 광인의 말이기는 하지만, 만일 그 일을 하려면 반드시 탕로(湯老)를 길잡이로 할 것이다. 그러나 탕로는 보잘것없는 위인이니 일을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 이어 한 권의 책을 내어 보이며, ‘태백(太白)’이라고 쓴 곳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별이 태미원(太微垣)091) 으로 들어가면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그외의 일은 모두가 신이 듣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니, 명하여 1차 고신(拷訊)을 하게 하였다. 박경(朴耕)은 공초에서 말하기를,

"문서귀(文瑞龜)·김식(金湜) 등을 신이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5∼6일쯤 전인데, 서귀가 당지(唐紙) 2장을 가지고 소시(小詩) 2수를 써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신이 노둔(老鈍)하여 그 시사(詩詞)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써주었을 뿐, 다른 일은 말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고, 재차 공초에서는,

"문서귀가 고한 것 중에, ‘서귀김식의 집에 가서, 으로 하여금 말을 보내서 신을 맞아 오게 하여, 신이 곧 의 집으로 갔다.’는 말은, 과연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외는 신이 알지 못합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1차의 고신(拷訊)을 가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1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080]
    좌상(左相) : 박원종.
  • [註 081]
    참기(讖記) : 예언 문서.
  • [註 082]
    패초(牌招) : 승지가 왕명을 받아 부르는 일.
  • [註 083]
    무오년 : 연산군 4년의 ‘무오 사화’때를 말함.
  • [註 084]
    상방검(尙方劍) : 임금이 쓰는 검.
  • [註 085]
    폐왕(廢王) : 연산군.
  • [註 086]
    곽광(霍光) : 한(漢)나라의 대신.
  • [註 087]
    추관(推官) : 심문관.
  • [註 088]
    도선(道詵) : 고려 때의 신승(神僧).
  • [註 089]
    장옥(場屋) : 과장(科場).
  • [註 090]
    무령군(武靈君) : 유자광.
  • [註 091]
    태미원(太微垣) : 원(垣)은 성원(星垣) 즉 별자리. 종래 동양 천문학에서는 별자리를 삼원(三垣) 즉 북극(北極) 근방의 자미원(紫微垣)과 사자궁(獅子宮) 부근의 태미원, 사유궁(蛇遺宮) 부근의 천시원(天市垣)으로 구획했는데, 태미원은 현재의 사자좌(獅子痤)의 서쪽 10성(星)에 해당한다.

○工曹參議柳崇祖啓曰: "金公著借家來居于臣之隣。 本月初, 公著到臣家, 謂臣曰: ‘左相多畜前王內人, 且喜接賓客。 柳子光論功時, 其鄕人多參錄焉, 其日侍衛軍士未參者, 皆爲憤怨。 今有星變, 恐生變故。’ 本月十五日間, 公著又來謂臣曰: ‘兩相, 至今縱恣狂妄等輩, 欲擊之。’ 臣問曰: ‘何人欲如此爲?’ 答曰: ‘武士以問藥事, 多來吾家, 人人皆如此發說。’ 臣又問: ‘伊誰?’ 公著答云: ‘李長吉輩也。’ 臣又問: ‘如此狂妄之事, 何以爲之?’ 公著答云: ‘欲令尹湯老啓達, 除去此兩相。 但湯老難信, 不可輕說, 且罪惡未彰, 亦不可輕易擧事。’ 昨日臣聞之於南袞, 曰: ‘吾聞之於沈貞, 曰: 「公著鄭眉壽爲將帥, 欲除去, 若擧事, 則正士如柳崇祖之類, 皆應之。」’ 今朝又謂臣曰: ‘來言, 「文瑞龜金公著李長吉等, 欲同議擧事。」 云,’ 臣與同議來啓耳。 且語臣曰: ‘沈貞亦欲來啓矣。’ 喪人南袞, 到光化門外, 傳言於政院曰: ‘有欲啓之事,敢來門外。’ 以白衣著笠, 詣政院啓曰: "昨日沈貞, 到吾家言曰: ‘吾雖立身行世, 常懷未安之心, 懼爲狂士所擊, 今日出來時, 多率奴僕而來。’ 臣問曰: ‘當今人心鼓舞踴躍之時, 何發如此危疑之言乎?’ 不答良久而言曰: ‘金公著來謁令公耶?’ 臣答曰: ‘望時來見而還。’ 沈貞曰: ‘公著其別無所言耶?’ 臣答曰: ‘無也。’ 沈貞曰: ‘公著李長吉等相議, 欲以在朝一品宰相爲將帥, 潛擊而輔政, 則聖治可致。’ 又曰: ‘在朝名土, 半入於我矣, 前者將此意, 微示南袞, 則略不顧答, 故退來。’ 臣聞此言, 不勝駭愕, 將欲詳聞之際, 他客適來, 沈貞告去, 臣曰: ‘請更來何如?’ 期以明日, 而今朝又來。 臣言曰: ‘昨日聞君之言, 不勝驚駭, 終夜不寐。 君於何處聞之乎?’ 答云: ‘文瑞龜言之耳。’ 臣又曰: ‘君聞此言, 何至今不啓乎?’ 答曰: ‘今日與金克成, 已議偕啓。’ 臣聞語, 敢來啓耳。" 行護軍沈貞、掌樂院正金克成啓曰: "臣等聞之於文瑞龜, 瑞龜曰: ‘吾聞之於趙廣輔云: 「今有天變, 又有讖記, 當潛擊朴元宗柳子光盧公弼。 除此三人, 則可以善治矣。」 吾聞此, 不勝駭愕, 故來言耳。’ 臣謂瑞龜曰: ‘狂士之言, 不足盡信也, 汝須更問而來。’ 瑞龜又來語臣曰: ‘吾問趙廣輔, 則廣輔云: 「朴耕詳知矣」, 遂往朴耕家, 出見接談之際, 之妻以爲, 「冒寒而坐, 有何雜談耶?」 卽率我往儒生金湜家言曰: 「旣有天變, 又有讖文, 起亂者, 必朴元宗也。 且盧公弼柳子光交厚, 除此三人, 以鄭眉壽爲首相, 則下人所言, 眉壽何事不聽? 金勘爲兵曹判書時, 己知此意, 李繼孟柳順汀素善, 繼孟將欲言於順汀, 但順汀其目冒油故未果耳。 且循資之法, 不可用也, 科擧亦不可爲也, 庶孽亦可通用也。 不用宗親, 亦何意也。 宗親之中, 可爲判書、參判、參議、正、佐郞者多矣。 除此三人, 令洪裕孫, 傳於尹湯老, 使入言於闕內, 使上安心, 而我等在下措置, 則善治可以見矣。 且如金公著李長吉三兄弟, 可以爲(瓜牙)〔爪牙〕 , 而使喚也, 如趙元紀柳崇祖, 亦已知此意也。」 吾言於朴耕曰: "李季男知否?」 曰: 「季男有俗氣, 故不言耳。」’ 故臣等敢啓。" 傳曰: 牌招三公府院君以上及義禁府堂上, 又令分遣禁府郞官, 拿致朴耕金公著李長吉等, 及事干人推考。" 仍傳曰: "停晝夕講。" 蓋以將鞫此人等也。 領議政柳洵武靈府院君 柳子光昌山府院君 成希顔、左議政朴元宗、右議政柳順汀、義禁府堂上李季男閔孝曾尹湯老等詣賓廳, 仍就勤政殿北。 又命都承旨洪景舟、同副承旨李惟淸同推, 注書姜洪、撿閱李𡊉尹仁鏡等隨參, 又以敦寧府正韓世桓、掌樂院正金克成、兵曹正郞尹龜壽、義盈庫主簿金良彦等, 爲問事郞廳。 朴耕先至, 趙廣輔次至, 廣輔乃狂人也。 始至闕庭, 高聲誦書, 多有狂態。 始見柳子光, 高聲大唱曰: "子光小人, 何以得居此地耶? 戊午年誣陷賢良, 如金宗直之類, 盡被誅戮, 今又爲欲何事耶? 請得尙方劍, 斬此侫臣頭, 陪明主得賢相, 則善治可見矣。" 成希顔問曰: "侫臣誰也?" 廣輔曰: "乃柳子光也。" 又見朴元宗曰: "汝推戴聖主, 功果大矣。 然亦何爲家畜廢王內人耶?" 又目成希顔曰: "曩者韓訓, 以汝爲名儒也。 今何以與子光同事耶? 無乃受子光所賂木花 【卽綿花。】 而然耶?" 又目史官曰: "彼乃姜洪也。 姜洪, 汝父, 乃以無罪被誅矣。 彼乃李𡊉也。 汝等乃史官也。 當以吾言, 特書可也。" 左議政朴元宗獨啓曰: "前者投無名狀於臣家, 其辭曰: ‘爾去暴君, 翊戴眞主, 其功不下霍光矣。 但柳子光於廢朝, 使廢主啓殺戮之心, 而奸詐莫甚, 以何功, 而論置於第四功臣乎? 且守令二十餘人, 以無罪啓罷, 會寧府使蔡允惠以何罪啓罷乎? 吾則有識者也, 只此言耳。 若無識之人, 昏夜中傷, 則汝何以爲之?’ 臣到今思之, 必此輩所爲。" 成希顔啓曰: "前日論以三公赴京時, 所以不送三公者, 專爲此也。" 趙廣輔臨訊鞫結縛之際, 猶以爲戲也, 而曰: ‘勿戲。’ 杖十餘, 高聲痛哭而已。 朴元宗曰: "眞狂且病也, 杖之無益而止之。" 尋啓曰: "廣輔實狂且病, 請勿刑推。" 傳曰: "依所啓。" 初昏傳于推官曰: "罪人皆刑問可也。" 命饋沈貞柳崇祖南袞(文瑞袞)〔文瑞龜〕 等食。 推官等同議啓曰: "臣等詳聞之, 其計非一朝一夕之事, 多有干於有名朝士, 若歷歷問之, 則其黨當自出矣。 彼等之意, 必以爲旣潛擊三人, 則其他誰有抗衡者, 將盡爲風靡矣。 且柳崇祖, 聞沈貞將啓之意, 恐其事發, 欲免己罪來啓耳。 請竝囚崇祖。" 傳曰: "可。" 推官等同議啓曰: "鄭眉壽金勘等, 皆位重有病人也, 不可囚於禁府。 始保囚吏曹、禮曹大門內, 來往推問何如?" 更啓曰: "臣等又覆思之, 此事非輕。 今者崇祖, 與公著面質之時, 言辭相紆, 不可不畢推。 今若不推, 則恐明日更生謀計以對, 終難覈實。 且臣等冒夜以出, 恐有變故。 臣等欲退就衛將南所, 可栲訊者訊(者)之, 平問者問之, 今夜內畢推, 明朝啓達爲意。 且鄭眉壽金勘等, 分囚于承文院都摠府直房何如?" 傳曰: "可。" 文瑞龜供曰: 臣與趙廣輔自少相交。 今月望時, 聞廣輔發狂, 多發危言, 初不欲往見, 其弟廣佐見臣曰: ‘吾兄之狂, 似非眞狂也。 第往見之。’ 隔四五日往見之, 容貌言笑自若, 果不似狂者。 臣曰: ‘汝實非狂, 何以多爲狂者事乎?’ 廣輔曰: ‘故自爲之爾。 李長吉當廢朝, 嘗有不軌之志, 余與知之。 恐長吉, 以我知其謀, 必害之, 故佯狂, 使長吉不疑我也。 我豈狂乎?’ 臣曰: ‘汝若非狂, 何至罵母乎?’ 廣輔曰: ‘我罵母, 使長吉益信有狂疾, 且使凡人皆知我狂疾爾。 長吉有才者也。 如欲搏免, 必待良狗, 長吉, 可使爲事者也。’ 臣曰: ‘誰使長吉, 爲某事乎?’ 廣輔曰: ‘朴耕有學問之力, 又多解事, 其言人皆信聽矣。 柳子光素與任士洪, 交結爲奸, 今亦無所不爲。 朴元宗, 豪富奢侈, 且畜廢王之妓, 將爲謀逆者, 此兩人也。’ 臣又問其他, 答曰: 盧公弼有妨於善治者, 已與鄭眉壽金勘李繼孟謀事, 使金公著李長吉輩, 欲除君側之惡。’ 臣又問曰: ‘謀事者豈止此乎?’ 答曰: "柳崇祖南袞李季男不無知之矣。 今有天變, 且道詵 【高麗神僧。】 《讖記》云: 「世傳十葉國運盡。」 若今除君側之惡, 而聖算延長, 則鄭眉壽爲首相, 朴耕爲師長, 夾輔之, 可延三四十年矣。 不爾, 則必叛逆, 彼亦不能自存, 而繼有起事者, 則亂靡有定。 且今上亦有疾矣。’ 臣聞此, 不勝驚駭, 欲往見沈貞言之, 適身病未就, 本月二十日致簡于曰: ‘暴得腹痛, 未入場屋, 在家且有所囑, 須來見我。’ 又於紙尾, 加書曰: ‘所囑者甚緊, 須臨。’ 卽日未時來到, 臣以廣輔之言, 語, 驚曰: ‘有如〔此〕 事乎? 然狂者之言, 未可信也。 更詳問之。 我明日入直, 明明日當復來, 汝須毋入場屋待之。’ 臣意以爲: ‘事已詳聞於廣輔, 不須更問。’ 故臣翌日, 直往朴耕家, 於籬底, 設席待之。 臣謂曰: ‘素聞君能書, 因廣輔又聞君有學問之力。’ 仍相語, 以及廣輔所言事, 曰: ‘果有是事。’ 臣曰: ‘鄭眉壽金勘李繼孟果知此事乎?’ 曰: ‘其知之矣。’ 臣曰: ‘眉壽等除君側之惡, 復將何爲?’ 曰: ‘其後事不須預言。 如眉壽者, 能容受下人之言, 言無不從, 善治不難矣。’ 臣曰: ‘眉壽等雖成事, 朝多善良, 又多功臣, 必有異議, 寧無見敗耶?’ 耕曰: ‘必無是慮。 李繼孟柳順汀素善, 欲言此事, 而其目冒油未果。 且欲說與成希顔柳濱而無因也。 貪戀富貴者, 目皆冒油, 不可與圖事也。’ 臣又問曰: ‘柳崇祖南袞亦知之然乎?’ 曰: ‘意不得知之。’ 旋曰: ‘金公著云: 「余言于南袞, 聞之驚懼。」’ 臣問崇祖知與否, 不答, 臣亦不復問。 臣又問曰: ‘李季男亦知之然乎?’ 曰: ‘季男爲人俗, 不可以語此。’ 語未畢, 其妻謂曰: ‘晨朝有何雜談?’ 謂臣曰: ‘有妻自少, 其性不善, 每多言耳。’ 臣告辭, 曰: ‘向何之?’ 臣曰: ‘金湜在近, 欲往見之。’ 曰: ‘我亦知。 君可先往家, 送馬于我, 我當隨往。’ 臣到家, 令送馬, 尋至, 廣輔之弟廣佐, 亦偶到於後庭, 設席會坐雜談, 語及用人事。 曰: ‘余於宗親中, 見得可爲參判、參議、正、佐郞者, 非一, 所宜通用。 中朝不拘庶孽, 皆用之, 我國亦依中朝例用之可也。 循資格, 非良法, 今可罷之, 科擧亦非取士之良法, 竝宜罷之。’ 翌日沈貞, 果到吾家, 臣具道所云。" 金公著供曰: "臣所居與柳崇祖家, 相距至近, 時相往來。 去月晦間, 狂人趙廣輔, 到臣家, 忽發狂言, ‘天狗墜圮, 太白晝見, 朴政丞武靈君等所爲不是。 且中原奏請, 事多謬, 故萬餘人同心謀害, 自外至矣。 如李長吉輩, 欲爲此事, 汝知之乎?’ 日不記, 去月晦時, 今月初生間, 歸柳崇祖家問曰: ‘有言此事者, 此何如言耶?’ 崇祖? 滑窷 ‘蔡允惠亦發狂言。 此外別無他言。’ 臣聞廣輔所言, 意謂病狂所發, 不卽進告。" 再供曰: "他餘辭緣, 則皆臣所言。 且柳崇祖聞臣所言, 答云: ‘彼雖狂人之言, 若爲其事, 必使湯老, 爲之先導。 然湯老不侫, 不足與圖事。’ 因出示一卷冊, 指書太白處曰: ‘此星入太微垣, 則有兵事矣。’ 其餘則皆非臣所聞所語矣。" 命加栲訊一次。 朴供曰: "文瑞龜金湜等, 臣初不知。 退計五六日間, 瑞龜持唐紙貳張, 請書小詩貳首。 臣因老鈍, 未能記(臆)〔憶〕 詩詞, 但書給而已, 他無所語。" 其再供曰: "文端龜進告內, 瑞龜金湜家, 令送馬邀臣, 臣卽往家之言。’ 果有此事, 其他則臣不之知。" 命加栲訊一次。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1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