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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2권, 중종 2년 1월 13일 정해 1번째기사 1507년 명 정덕(正德) 2년

좌의정 박원종 등이 사찰 건립 허가를 반대하자 대비전에 물은 후 허락하다

좌의정 박원종(朴元宗)·우의정 유순정(柳順汀)·이조 판서 성희안(成希顔)·도승지 홍경주(洪景舟) 등이 아뢰기를,

"사찰을 다시 세우는 일에 대하여 온 조정이 여러 날을 두고 간하였으나 아직 윤허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신 등이 별도로 아룁니다. 무릇 대소 신료 누구인들 전하의 잘못하시는 일이 없는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까마는, 신 등은 더욱 간절함이 있습니다. 신 등은 비단 불도를 배척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일호 일령(一號一令)을 내는 것이 모두 치체(治體)에 관계되는 때인만큼 이런 이단을 용납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인심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생각을 주밀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때입니다. 인심이 이합(離合)하는 이치는 폐조(廢朝) 때의 일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명하여 도성 안 사찰을 회복케 하시고 함경도의 신당(神堂)도 수리 회복케 하시니, 이 때문에 내외 인심이 경동하여 안정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종묘 문소전(文昭殿)의 담장에 무너진 곳이 많으니 이것을 먼저 보완 수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버려둔 채 먼저 사찰부터 창설한다면 온 나라 신민이 전하를 일러 어떻다고 하겠습니까? 또 육조나 대간은 맡은 일이 크고 많은데도 오래도록 일을 보지 않고 모두 대궐 뜰에 엎디어 있기만 하니, 그 폐해가 또한 적지 않습니다. 폐주(廢主)가 처음 정사할 때에는 간하는 말을 좇아 거스르지 않았으므로 잘못되는 일이 없더니, 그 뒤 차츰 처음과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간함을 물리치고 마음대로 하며 아랫사람들을 형륙(刑戮)하여, 이렇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즉위 초에 선정 선교(善政善敎)는 없고 먼저 해서는 안될 일을 가지고 아랫사람들에게 보이시니 인심이 어떻다고 하겠습니까? 온 나라 신민이 모두들 말하기를, ‘성군(聖君)이 중흥하였다.’고 하며 태평한 치세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다시 사찰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또 토목 공사를 일으킴에 있어서 민력을 쓰지 않으려 해도 그것이 될 일이겠습니까? 성종(成宗)께서 승려의 도첩(度牒)을 금하여 그 뿌리가 끊어지게 하려 하자, 정희 왕후(貞熹王后)017) 가 이 법을 좋아하지 않으시므로 성종께서 온화한 말로 간하여 중지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군액(軍額)이 점점 늘고 이단은 자연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신 등이 대비전에 아뢰려 하였으나, 승전색(承傳色)018) 에게 말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비전에 아뢰게 하라."

하였다. 박원종 등이 대비전에 아뢰기를,

"사찰을 다시 세우는 것이 온당치 못한 일이므로 온 조정이 뜰에 서 있는데, 상교(上敎)에서 이르시기를, ‘선왕의 유교가 있고 또 자지(慈旨)가 간절하시니 감히 어길 수 없기 때문에 허락하지 못한다.’ 하십니다. 신 등이 살피건대, 조정에서 일을 폐하면서까지 논쟁하고 있어 폐해가 적지 않으므로, 이것을 위에 아뢰고 또 대비전께도 아뢰고자 하여 위에 품했더니 허락이 있어 감히 아뢰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도 모자간에 있어서 아들이 불의한 일을 하면 어머니가 가르쳐서 바로잡고, 또 어머니에게 불의한 일이 있으면 아들이 간해서 중지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아들이 인군이 되었는데 불의를 가르칠 것이겠습니까? 지금 노성한 대신들이 모두 대궐 뜰에 모여 논쟁하여 마지않으니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이번에 내리신 명은 사방에서 아직 듣지 못하였을 것이니, 이 때에 중지하여야 합니다. 지금 대소 신료에서 유생에 이르기까지 분주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신 등은 인심이 요동될까 두렵습니다. 만일 불법(佛法)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다면 신 등이 성명(成命)을 기다릴 것도 없이 좇겠습니다만, 그러나 불교의 무익함은 고금을 통해 볼 때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세조 대왕께서 숭신(崇信)함이 지극하셨지만 별로 이익이 없었고 후세에 웃음을 남겼을 뿐인, 지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니, 대비가 전교하기를,

"내가 이단을 옳다 하는 것이 아니고 숭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나라 산천이 험조(險阻)하기 때문에 조종 때 이것을 세워서 진정하였던 것이고 또 유교가 있으므로 지금 나는 예전대로 하려는 것뿐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폐되는 일이 있다면 내 어찌 감히 주상께 말하겠는가? 지금 들으니 조정이 다 안정되지 못하고 인심이 한결같이 평안하지 못하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내가 듣고 싶어하는 일이겠는가? 내가 여자이기는 하지만, 어찌 의(義)아닌 줄을 몰라서 세우려는 것이겠는가? 다만 조종의 옛일을 가볍게 폐지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신당(神堂) 역시 조종의 옛일이며 또 내수사(內需司)의 종들을 시켜 중창하려는 것이지 인력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상이 비답하기를,

"사찰에 관한 일은 조종의 옛일이므로 부득이 하는 것이다. 지금 조정에서 누덕(累德)의 허물을 조종에 돌리는데, 이것이 말은 쉽지만 함부로 발설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종의 옛일은 진실로 영영 폐지해 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온 조정이 말을 하니 우선 3년을 한하고 다시 세우지 않는다. 또 신당을 수보하는 것은, 전례가 이미 내수사로 하여금 수보케 하였으니, 백성에게 폐되는 일이 없을 것이므로 허락하지 않는다."

하니, 또 아뢰기를,

"우선 3년을 한하고 세우지 말게 한다고 전교하시니, 신민이 보고 듣기에 무슨 쾌한 일이 있겠습니까? 들어주지 않으심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민생이 생업에 안정하고, 연사(年事)가 풍년 들기를 기다려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위에서 세우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쾌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대간은 반드시 위에서 결연히 들어주시기를 기다린 후에야 말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것을 영영 폐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경들이 여러 번 아뢰니 우선 그대로 허락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12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재정-국용(國用) / 건설-건축(建築) / 신분-천인(賤人)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註 017]
    정희 왕후(貞熹王后) : 세조 왕비 윤씨.
  • [註 018]
    승전색(承傳色) : 임금의 명을 전달하는 내시.

○丁亥/左議政朴元宗、右議政柳順汀、吏曹判書成希顔、都承旨洪景舟等啓曰: "寺刹復立事, 擧朝累日爭之, 未蒙兪允, 故臣等別啓之。 凡今大小臣僚, 孰不冀殿下無過擧, 然臣等尤有懇懇焉。 臣非但以闢佛爲啓, 今則出一號、發一令, 皆係關治體, 不宜爲此異端之事也。 況今人心, 亦未堅定, 慮之不可不周。 人心離合, 在廢朝可見。 今命復城內寺刹, 而咸鏡道神堂, 亦令修復, 此中外人心, 所以驚動未得安靜者也。 今者宗廟文昭殿垣墻頹圮處多, 此補葺之所當先也。 舍此不爲, 先創寺宇, 一國臣民, 謂殿下爲何如也? 且六曹及臺諫, 職事浩繁, 而久不治事, 咸伏闕庭, 其弊不貲。 廢主初政、從諫弗咈, 未有事之過擧, 厥後寢不如初, 拒諫自用, 刑戮群下, 以至於斯。 今殿下卽位之初, 未有善政ㆍ善敎、而先爲不當爲之擧, 以示群下, 其於人心, 以爲何如? 一國臣民, 咸曰: ‘聖主中興。’ 想望太平之治, 而復立寺刹可乎? 且土木之興, 雖欲不用民力, 得乎? 成宗禁僧度牒, 欲使自絶其(根抵)〔根柢〕 時, 貞熹王后不喜此法, 成宗以溫言諫止之。 故軍額漸多, 而異端自息矣。 臣等欲啓大妃殿, 而承傳色未能傳語, 故未啓耳。" 傳曰: "其啓于大妃殿。" 元宗等啓于大妃殿曰: "寺刹復立未便事, 擧朝立庭, 而上敎以爲, ‘有先王遺敎, 而慈旨且勤, 未敢違忤, 故不允。’ 臣等見朝廷廢事廷爭, 弊旣不貲。 以此已啓于上, 又欲啓大妃殿, 稟于上, 則許令啓達, 故敢此來啓。 常人之於母子間, 子爲不義, 則母當敎以正之。 母有不義, 則子當諫而止之。 況子爲人君, 而敎之以不義乎? 今老成大臣, 咸集闕庭, 爭論不已, 不可不聽。 且今之成命, 四方必未及聞, 當及此時止之。 今大小臣僚, 以至儒生, 莫不奔走, 臣等恐人心搖動也。 若佛法少有利益, 臣等不待成命, 而從之, 但佛敎之無益, 歷觀古今, 班班可見。 我世祖大王, 崇信極矣, 別無利益, 徒貽笑後世, 今不可不戒。" 大妃傳曰: "我非以異端爲是, 亦非崇信也。 我國山川險阻, 故祖宗建此以鎭之, 又有遺敎, 故今欲仍舊而已。 若小有弊事, 予豈敢言於主上? 今聞朝廷未盡安靜, 人心未盡寧一, 此豈予所樂聞哉? 我雖婦人, 豈不知非義, 而欲建之乎? 但祖宗舊事, 不可輕廢耳。 且神堂亦祖宗故事, 又令內需司奴子重創, 非籍民力也。" 上答曰: "寺刹事乃祖宗故事, 不得已爲之。 今朝廷以累德, 歸咎于祖宗, 此雖發言之易, 然言不可忽也。 祖宗舊事, 固不可永廢, 然今擧朝來言, 姑限三年勿復立。 且神堂修補, 乃前例也, 已令內需司修補, 其於百姓, 略無弊事, 不允。" 更啓曰: "上敎以爲姑限三年勿建, 其於臣民之聞見, 何快之有? 是與不聽納無異矣。" 傳曰: "待民生安業, 年運豐和, 欲復立之。" 更啓曰: "上有期待之心, 故下人不以爲快。 臺諫必待上決然聽納後已。" 傳曰: "此不可永廢, 然卿等累啓不止, 姑依允。"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12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재정-국용(國用) / 건설-건축(建築) / 신분-천인(賤人)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