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 송일·참판 김전이 사찰 건립을 반대하다
"이제 사찰을 다시 세운다는 전교를 들으니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 즉위하신 지 지금 겨우 5개월입니다. 신료(臣僚)들과 더불어 동심 협력하여 선정(善政)·선교(善敎)를 펴기에 여가가 없으셔야 할 것인데, 먼저 사도(邪道)로써 길을 여는 것이 가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비록 하교하시기를, ‘다만 도성 안의 사찰만을 다시 세우게 하는 것이라.’ 하시었지만, 사방에서 들으면 심산 유곡에라도 반드시 모두 세우게 되는 기틀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곤궁 피폐한 백성이 모두 놀고 먹는 것을 좋아하여 앞으로 반드시 머리 깎고 중이 될 것이니, 정치에 방해됨이 이보다 더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대비가 전교하기를,
"사찰(寺刹)은 오늘에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양종(兩宗)은 개국 초기부터 있었고, 내불당(內佛堂)·원각사(圓覺寺)·정업원(淨業院) 역시 세종(世宗)·세조(世祖)께서 세운 것으로서 조종(祖宗)의 유교가 정녕하다. 또 정희(貞熹) 왕후께서 세종·세조의 유교를 성종 대왕에게 부탁하여 후세 자손으로 하여금 이 뜻을 알아서 조종의 뜻을 상하지 않게 하시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 산천이 험조(險阻)하기 때문에 사사(寺社)를 세워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도성을 중히 여겨서인 것이다. 자손으로서 숭상하지는 않더라도 영영 폐지함은 불가하다. 폐왕(廢王)이 무도하여 인가를 철거하고 사사를 헐었지만, 지금 폐왕의 혁파한 것을 따르고 조종의 유교를 좇지 않는다면 역시 불효일 것이다. 하물며 주상이 숭상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창설하는 것도 아니며, 다만 국가 도성을 위하여 예전대로 하자는 것일 뿐이다. 유교(遺敎)를 경들에게 보이면 환하게 알 수 있을 것이지만, 동시에 궁중의 일까지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외인에게는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였으며, 상은 전교하기를,
"아뢴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조종의 유교를 이어받아 예전대로 할 뿐인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10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건설-건축(建築) / 사상-불교(佛敎)
○甲申/禮曹判書宋軼、參判金詮啓曰: "昨聞寺刹復立之敎, 不勝驚愕。 殿下卽位, 今纔五月矣。 當與臣僚, 同心協力, 施善政、善敎之不暇, 而先以邪道啓之可乎? 殿下雖敎曰: ‘止令復立城內寺刹。’ 四方聞之, 雖深山幽谷, 必皆建立。 是則殿下今日之命, 乃八道寺刹復立之機也。 今此困弊之民, 皆樂於游食, 必將剃髮爲僧, 妨政害治, 莫此爲甚。" 大妃傳曰: "寺刹非今日創始也。 兩宗則自國初設立, 內佛堂、圓覺寺、淨業院亦是世宗、世祖所建, 而祖宗遺敎丁寧。 且貞喜王后, 以世宗、世祖遺敎, 附囑于成宗大王, 使後世子孫, 知此意, 而不毁祖宗之意, 以我國山川險阻, 故建立寺社以鎭壓之, 是以國都爲重也。 子孫雖不崇尙, 不宜永廢。 廢王無道, 撤人家、毁寺社, 今若從廢王之革, 而不遵祖宗遺敎, 則亦爲不孝。 況主上, 非爲崇尙, 且非創始也, 亦爲國都因舊而已。 遺敎若示卿等, 則可洞知矣, 但以幷附宮中事, 不可使見於外人耳。" 上傳曰: "所啓固當, 然非予爲之, 承祖宗遺敎, 仍舊而已。"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1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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