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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11월 5일 경진 1번째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조강에 나가 공신 부자의 일·홍문관 상소·변방의 사무를 의논하다

조강에 납시었다. 사간 이세인(李世人)이 아뢰기를,

"공신 부자의 음가와 원종 공신 1등의 외람된 당상 관작 등의 일을 여러 달 동안 논란하여 아뢰었으나, 지금까지 주저하시니 신 등은 실망됩니다."

하고, 영사 박원종은 아뢰기를,

"홍문관의 상소를 수의(收議)할 때 미처 보지 못하였었습니다. 그러나 폐주 때 창기(娼妓)를 바친 자는 처음에는 임숭재였고, 중간에는 신수근이었으며, 끝에는 구수영이었다고 신은 들었을 뿐입니다. 홍문관과 대간이 이를 말하는 것은 어찌 듣고 본 것이 없어서이겠습니까? 그리고 신은 강혼의 윤색(潤色)과 효증의 아첨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전에는 명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들의 기평(譏評)하는 바가 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간이 논집(論執)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비록 형적이 없는 일로 추문할 수 없겠지만 그 직질(職秩)을 강등시켜서 대간의 논란에 부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원종이 아뢰기를,

"근년 외방 민호(民戶)가 성군(城軍) 등의 일로 경중(京中)에 부역하므로 부채가 몹시 많은데, 지금 들으니, 본주인의 독촉이 너무 심하여 민호가 편히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는 가을을 기한으로 본수(本數)만을 도로 징수하고 배(倍)를 더하지 말게 하소서.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법으로 엄단할 것으로, 팔도에 공문을 띄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좇았다. 세인이 아뢰기를,

"근년에 변방이 모두 허술하지만, 남방이 더욱 심합니다. 경상도전라도는 왜인과 경계를 연접하고 있으나 연해(沿海) 수령을 전혀 가려서 차임하지 않고 혹 남행(南行)198) 으로 차임하여, 방어하는 일을 전혀 조처하지 못하니, 근자에는 유헌·김양보 등이 또한 살해되었습니다. 청하건대 연해 각 고을은 재략이 있는 무신과 장재(將才)있는 문신으로 교대하여 차임하소서."

하였다. 상이 박원종을 돌아보고, ‘이 말이 어떤가.’고 묻자, 원종이 대답하기를,

"세인의 말이 옳습니다. 신이 일찍이 경상도 절도사를 지낸 지 이제 이미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삼포에 왜인이 번성하였는데 지금은 필시 더욱 심할 것입니다. 우리 백성들은 부역하기에 지쳤는데, 만약 불우(不虞)의 변이 있으면 반드시 땅을 휘몰아 올 것이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북방의 인민들 역시 피폐하여 민간에 우마를 가진 자가 없으니,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말탄 군사가 없을 것입니다. 신도 매양 생각이 이에 미칠 때 실로 한심하여집니다. 성상께서도 신중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9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금융-식리(殖利) / 재정-역(役)

  • [註 198]
    남행(南行) : 과거에 의하지 않고 부조(父祖)의 공이나 생원, 진사, 유학으로서 벼슬하는 자의 통칭.

○庚辰/御朝講。 司諫李世仁曰: "功臣父子蔭加、原從功臣一等堂上官爵猥濫等事, 累月論啓, 至今留難, 臣等缺望。" 領事朴元宗曰: "弘文館上疏收議時, 臣未及見之。 然廢主時, 以娼兒進之者, 初則任宗載也, 中則愼守勤也, 終則具壽永也, 臣聞此而已。 弘文館、臺諫言之, 豈無聞見乎? 且姜渾之潤色, 孝曾之(河諛)〔阿諛〕 , 臣則未知也。 然此二人前則有名望, 今則爲人所譏, 不知其何故也。 然臺諫論執不止, 雖不可以無形之事推之, 降其職秩, 以副臺諫之論何如?" 皆不允。 元宗曰: "近年外方民戶, 以城軍等事, 赴役於京中, 受債甚多, 到今聞之, 則本主徵督太甚, 民戶不得安接。 限來秋以本數還徵, 毋令加倍。 如有違者, 痛繩以法事, 行移八道何如。" 上從之。 世仁曰: "近年以來, 邊圉虛疎, 南方尤甚。 慶尙全羅道境連倭人, 而沿海守令, 專不擇差, 或以南行差之, 防禦之事, 專未措辦, 近者柳軒金良輔等亦遇害。 請於沿海各官, 以有才略武臣, 有將才文臣交差。" 上顧謂朴元宗曰: "此言何如。" 元宗對曰: "世仁之言是也。 臣嘗爲慶尙道節度使, 今已十餘年, 其時三浦倭人繁盛, 今必尤甚。 我民則困於賦役, 如有不虞之變, 則必捲土而來, 不可不慮。 且北方人民, 亦爲困弊, 民間無有牛馬者, 如有緩急之事, 則必無騎馬之兵。 臣亦每念及於此, 未嘗不寒心。 上亦不可不重念。"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9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금융-식리(殖利) / 재정-역(役)